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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기고] 내가 아는 박원순 <이이화| 역사학자>
나는 일흔이 넘게 살면서 많은 역경을 걸어왔다. 그 도정에서 나는 구두쇠·소매치기·폭력배·음모꾼도 만났고, 학문 연구에만 몰두하는 꽁생원과 남을 위해 희생적으로 봉사하는 인사들도 만났다. 박원순은 후자에 속하는 사람이다.
그런 그를 두고 이리저리 검증하고 평가하는 일은 당연할 테지만 엉뚱하고 모략질을 하는 듯한 발언들을 보고 실망보다 분노가 앞섰다. 아무개 목사는 박원순을 종북 좌파·선동가라고 지목했고, 어느 변호사는 위선자로 몰아갔다. 심지어 강남 호화 아파트에서 왕자처럼 산다고도 했고 자기 부인에게 이권을 몰아준 파렴치한으로 만들기도 한다. 이는 보수니 진보니 하는 진부한 논리도 아니요, 한 점 진실도 없는 음모적 수법이요, 품위 없이 막가는 발언들이다. 나는 역사 글을 쓰면서 가장 무서운 게 사기꾼보다도 정치 음모꾼이라고 여겼다.
1980년대 중반, 그때까지 여러 가지로 제한을 받았던 한국 근현대사 연구를 위해 새 모임을 만들었고 박원순은 경비를 대는 등 열성적으로 참여했다. 그런 과정에서 자체 공간을 확보할 수 없어서 사무실을 이리저리 옮겨 다녔다. 그때 은행에 저당 잡힌 건물을 박원순이 은행부채를 떠안고 우리 연구소의 소유로 넘겨주었다. 이 건물 때문에 그의 집이 날아갔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그 뒤에도 그는 참여연대, 아름다운재단 등을 설립하면서 자기 주택 한 채 없이 지내왔다. 그는 돈만 생기면 책을 사서 필요한 기관에 증여하였고 바쁘게 돌아다니면서도 지하철이나 버스만을 이용한다. 단언하건대 그는 노인 대우도 할 줄 알고, 소외된 사람과 주부의 고통과 어린이의 보육에도 마음을 쏟고 있다.
오늘날 많은 고위 공직자들이 자신이나 자식을 군 면제자로 만들어 현역에서 빠지기도 하고, 주민등록지를 옮겨 다니면서 부동산 투기를 일삼고, 불법적인 뇌물이나 이권을 챙기는 모습을 수도 없이 보아왔다. 국민이 직접 뽑는 지방단체장의 경우, 이런 도덕성은 무엇보다도 요청된다. 나는 박원순이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살지 않는다”는 공자의 말대로 너무 정직한 게 약점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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