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골에서 나고 자랐다. 유년기를 돌아다 볼 때 마다 아이들을 콘크리트 숲인 도시에서 키우면서 괜한 연민과 미안함이 느껴질 때가 많다. 내가 기억하는 시골에서의 유년기의 추억이 아리도록 좋은 까닭이다.
그때 우리는 너나없이 흙과 함께 뒹굴었고 정식적인 수영법을 모르고도 물을 다뤘으며 계절마다 다른 간식거리를 차려놓는 뒷산을 애용했었다. 마땅한 시설이 없기에 길가고 기찻길이고 장소불문 아이들의, 아이들에 의한, 아이들을 위한 공동 놀이터의 하나같은 악동들이기도 했다.
찻길이라야 수시로 뿌우연 먼지를 호탕하게 일으키며 지나가는 군용차와 탱크뿐이었다. 집 바로 뒤에 군부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의 도로는 아마도 민간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군대를 위해서 필요했던 것같다.(말이 그렇다는 것) 오가는 승용차라야 아들을 군에 맡긴 도시 부모가 설렘을 안고 면회하러 올적에 아주 가끔이나 볼수 있는 신기한 물건쯤으로 여겨졌으니 말이다.
그렇게 군부대 전용도로나 마찬가지였던 도로를 운전하는 사병들은 수시로 달려드는 아이들을 의식해 매우 조심스럽게 운행했으며, 차소리만 들으면 놀다가도 뛰어와 꽁무니를 쫒아다니며 휘발유 냄새를 들이마시는 아이들에게 오히려 씨익 웃어주는 게 그들 사이의 인사법이었다. (그땐 왜 그 이상한 냄새를 좋아했을까)
아이들이 위험한 놀이를 위험한 줄도 모르며 즐기는 사이에도 산의 먹거리가 풍성했음인지 위험한 동물이 인가에 출몰했다는 흉흉한 소문은 없었다. 산은 산대로, 들은 들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조화와 평온을 유지하던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그러나 시대는 시골 또한 변하게 만들었다. 내가 살던 그곳 또한 예전의 사람중심의 한적함은 사라지고 군용차가 점령했던 도로는 승용차 쪽으로 주도권을 넘긴지 오래다. 아이들 웃음소리가 하얗게 넘치던 길은 그들을 내려다 보며 미소짓던 푸른 하늘의 기억속에만 아련하게 간직되어 있을 뿐이다. 도시는 젊음으로 넘치지만 시골에선 젊은 사람 구경하기가 도시의 흐린 밤하늘에서 별을 찾는 것 만큼이나 쉽지 않다.
한창 마을이 활기로 넘치던 그 시절, 봄이 되면 제 때에 모심기를 하기 위해 동네 어른들은 서로 날을 꼽았다. 내것부터 먼저 하고픈 욕심이야 왜 없었을까만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기에 사람들은 품앗이로 서로 도와야 한다는 걸 고래적부터 잘 알고 있었다.
그러고도 손이 모자라 쩔쩔 맬 즈음이면 뒷산 군부대에서 수십명의 군인들이 원정을 나왔다. 해마다 봄이면 보는 익숙한 풍경이었다. 주민들이 군부대에 요청을 한 것인지 비전투시의 군인들의 임무에 지역주민을 돕는 것도 포함되어 있어서였는지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저 내겐 당연한 장면일 뿐이었다.
그때 꼬마들 눈에 비친 군대는 마을 사람들의 안전을 지켜주는 곳이었으며 군인들은 바쁜 일손을 덜어주는 고마운 아저씨들이었다.(그들이 아저씨가 아니라 새파란 형이란 건 내가 큰담에야 알았다) 그런 그림이 그려질 즈음이면 새참에, 점심에 여인네들은 머리에 이고 지고 논두렁을 들락거리기에 바빴다.
군인들은 모처럼 군부대를 공식적으로 탈출해 사제공기로 심호흡을 하고 덤으로 꿀같은 사제밥을 먹어 좋고, 주민들은 품앗이보다 원가가 저렴한 노동의 생산력에 만족했다. 윈윈은 그때도 자연스레 있었다.

저렇게 서로 돕고 사는 거구나. 난 아주 어릴 적 부터 군대가 전시중이거나 훈련중일 때가 아니라면 지역주민을 도와주는 곳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설령 그게 사실의 전부가 아니더라도 그런 관계가 나쁜 것인지에 대한 충분한 이유는 찾지 못할 것 같다.
그뿐인가. 비가 오거나 눈이 쌓이면 군인들은 둑을 막고, 눈을 치우고, 동네를 정비하느라 바빴다. 군부대 위문공연이나 영화라도 상영하는 밤이면 동네사람 대부분 잔치라도 벌어진 양 깨끗한 옷 차려입고 군부대의 운동장에 앉아 비내리는 뿌우연 스크린을 바라보던 기억도 새롭다.(군과 주민과의 친밀함이 적정한 수준이었는지 그냥 관행이었는지는 지금까지도 나는 모른다)
주민을 위협하는 멧돼지들의 습격에 대한 유시민 후보의 특전사를 활용한 멧돼지 소탕작전에 공감하는 이유가 이렇듯 내 유년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군대와 주민과의 화합'의 기억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내겐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어쩌면 당연한 공약이 논란에 논란을 거듭하는 것을 보면 답답한 마음마저 든다. '옛날에도 그랬었는데 왜!' 이런 의문이 드는 것이다. 지역주민을 돕는게 꼭 육군보병만의 일은 아니잖을까.
멧돼지로 인해 지속적으로 문제가 발생하고 있고 연로한 어르신들이 골머리를 썩는데도 느린 법의 개정에만 맡겨 두는 것보다는 대선후보로서 약속을 하고 지키는 것이 훨씬 현실적인 조치라고 생각함도 물론이다.
일부 환경단체의 생태보존의 필요성엔 동의하지만 생명에 대한 경외심도 때에 따라 하나의 우선순위를 골라야 한다면 사람이 우선임에는 두말 할 여지가 없다. 어떤 경우에도 국민의 안전은 최우선의 가치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낮은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사회, 사회적 소수와 약자의 고통을 이해하고 해결해 주는 사회, 4만불 급히 가는 것보다 결코 덜한 가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치는 국민을 위해서 필요한 제도이지 정치 그 자체를 위해서 국민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선후보로서의 친 생활형 공약은 소중하면 소중하지 문제삼아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돌아가자. 사람에게로. 누군가의 힘있는 손길이 꼭 필요한 낙담하고 있는 사람들속으로 순진하게 단순하게 들어가자. 고통받는 국민을 위하는 마음에 가벼움과 무거움은 없다. 다만 우리의 치레문화와 폼에 대한 억압과 인식의 사치가 그 차이를 다룰 뿐이다. 마음의 눈으로 보면 진심이 보일 것이다.

특전사를 동원해서라도 멧돼지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유시민 후보의 공약속엔 '사람'이 있다. 내가 이 공약을 적극 찬성하는 이유가 단순한 유빠이거나 유년기에 경험한 개인적인 달콤함 때문만이 아니라, 결국 모든 제도는 사람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신념때문이다.
물론 그러한 생각을 키워준 것은 내가 직접 겪어 본 '군과 주민간의 따뜻한 유대'에 대한 유년의 아름다운 경험이 시간의 층속에 박혀 있다가 이런 일을 계기로 흔쾌히 동의하도록 조종했을 수는 있겠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경험이 서로에게 나쁘지 않았다는 것. 아니 오히려 좋았다는 것을 나는 직접 보았다는 사실이겠다.
보라. 두메산골 어디에도 사람은 산다. 그들의 고통을 해결해 주는 정치가 가볍다면 세상에 가볍지 않은 것이 어디 있으랴. 난 그렇게 믿는다. 그럼 멧돼지 잡는데 군이나 경찰을 투입하자고 하면 되지 왜 굳이 공수부대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묻는다. 아무나 잡기엔 너무나 위험하고 무섭잖은가.
'사나운 멧돼지를 잡는 데는 훈련된 정예부대가 필요하다'는 유시민 후보의 말을 빌리며 긴 글을 마치도록 하자. 읽느라 애쓰셨다. 괜히 옛추억이 떠올라서 삼천포를 왔다갔다 했다.
시대가 바뀌었어도 여전히 도시와 농촌간의 이해는 가능하다고 믿으며, 사람과 사람사이의 교감만이 생소한 제안에 대한 의문을 잠재울 수 있다고 믿으며, 마음을 열면 오히려 공수부대와 국민과의 거리감을 해소하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믿으며, 유시민 후보의 멧돼지 소탕 공약을 적극 지지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