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우면 덥다고, 서늘하면 날씨 좋다고 밤마다 맥주 한 잔씩 하는 게 습관이 되었습니다.
그냥 잘까 하다 샤워를 마치고 상쾌한 마음에 주섬주섬 슬리퍼를 끌고 동네 가게를 향했습니다. 아파트 관리하시는 (70대로 보이는) 어르신 두 분이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시는데 아니나 다를까 대통령 씹는 얘기.
"박정희는 대기업 돈 받아 먹긴 했어도 서민들은 안 건드렸다고, 근데 노무현은 서민들 피를 빨아 먹는다니까!!"
맥주를 사서 돌아오는 길에도 현 대통령을 씹는 얘기는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제가 슬쩍 얘기 사이를 비집고 끼어들었습니다.
"어르신들 무슨 재미난 얘기들 하시나봐요?"
"에이 젊은 사람들은 노인네 얘기 별로 안 좋아하잖아?"
"아뇨, 아까 대통령 얘기 하시길래 저도 관심이 있어서요."
"젊은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노무현이 말이야, 서민들 피 빨아 먹는 건 인정해야 돼 안 그래?"
네. 할 말 많고, 근거 있는 반박 충분히 가능하단 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난 어르신들에게 이 한 마디만 했습니다.
"에이~ 언제까지 대통령만 바라보고 사실 거예요. 박정희 때도 피땀 흘려 일하신 분들은 어르신들 같은 국민들이고, 지금도 나라 경제 살린다고 지금까지도 일 손 놓지 않고 일하시는 어르신들같은 국민들 아닙니까? 그 공이든 과든 왜 대통령한테만 돌려요. 대통령들 보다 국민이 더 소중하지요."
어르신들이 마치 어린아이같은 미소로 우쭐하시고 저 역시 웃으면서 자리를 떴습니다.
새마을 운동이랍시고 국민들 온통 몰아세우고 그들 사이에 조장이라는 완장 채워 북한의 5호담당제와 다름없는 상호 감시체제를 만든 박정희라고 말 할 수 있었습니다. 서울에 살던 도시빈민들을 점점 더 외곽으로 내 몰고 그 자리에 대기업들이 아파트와 상가 지어 돈 벌 수 있게 해서 정작 서민들 피를 빨아 먹은 돈, 기업으로부터 받아 먹은 박정희라고 말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말 듣고 고개 끄덕이며 '내가 잘 못 생각했구나'라고 할 양반들 아니란 걸 압니다. 도리어 핏발 세우며 '그러는 노무현은 뭘 잘 했느냐'고 바로 생각과 인간을 양 갈래로 타서, 나와 자신들을 적과 적으로 상정하고 전투에 임할 것이란 것도 압니다. 하지만 설득보다는 화제를 바꿔 놓은 이유는 내가 비판하는 가장 커다란 박정희의 잘못이 바로 일본의 생각가치인 전체주의를 이 땅에 심어 놓은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나라를 위해서라면 개인의 기호와 가치, 그리고 자유와 인권 등은 송두리 째 짓이겨버려도 국가라는 명분 앞에서 그 어떤 외침도 혼란과 분열과 빨갱이라는 딱지를 붙여버리면 그만인 상황을 이 땅에 가져다 놓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언론은 아직도 어떤 사안에 대해 전체주의적 시각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물론, 조금 세분화는 되었습니다만 그 말하기 좋아하는 우파와 좌파의 상대적 전체주의가 여전히 이 땅엔 판을 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전의 박정희와 같이 그 구조 속에서 서로 이익을 챙겨가고 있지요.
요즘 많이 민주화 되었다고 합니다. 인권과 자유가 넘친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또한 우파 입장에서 좌파를 봤을 때, 또는 좌파 입장에서 우파를 봤을 때 '인권과 자유에 대한 방종'이라며 서로 삿대질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통령 씹어돌리기가 국민스포츠가 된 데에는 언론의 역할도 크지만 아직도 전지전능한 제왕적 대통령의 허상을 가진 개인들이 그만큼 많기 때문일 겁니다. 공이든 과든 대통령에게 돌리고 개인은 그 아래에서 그저 허기나 채우고 책임을 돌리거나 할 수 있으면 마음 놓이는 다분히 일본스러운 생각가치.
단 시간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만 차근차근 멀리보고 잃어버린 자신을 찾아서 지금부터라도 걸어가야겠습니다.
나 자신은 살아온 세월만큼의 우주입니다. 대통령만 바라보고 살아가기에 그 우주가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너무도 크고 너무도 소중합니다. 한마디로 언론에 휘둘리기에 나, 그리고 당신이라는 우주는 너무나 위대합니다.
난 우리를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