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의 대권 기상도. 그는 지금 100점이다.
세대를 관통하는 힘
정명(正名)이란, 말의 개념을 바르게하여 실질의 존재를 파악하는 힘입니다. 이러한 파악이 노무현 정부에 들어 고민되며 정리되기 시작했습니다. 대한민국에 정론지가 없다라는 그 사실은 정말 비극적인 문제이며 이 비극적인 당면문제에 맞서 아직도 싸우고 있는 노무현의 노고를 우리들은 기억해야 할것입니다.
본인이 생각하기로 우리의 언론이 바르게 서지 못한 근본적 문제는 자립적인 의지가 상실되어온 폐해가 주를 차지한다고 생각합니다. 왜정시절 그 수많은 학자, 그리고 선비들이 대동북아 번영이라는 시대적 암부에 좌초되고, 더러는 편승하여 개화라는 수동적 피드백에 토착적인 우리들의 그릇을 버리고, 문화적인 침략을 당해낼 요령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들은 조국의 광명이 부활할 때에도 이념적인 잣대와 적개심의 반로로 신탁통치의 비운함을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광야에 흩어져 독립군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조국이라는 이름으로 살기위해 거치른 들판에서 총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만주로 향했고 연해주를 건너 블라디보스톡까지 나아가 반식민의 뿌리를 잉태한 혁명의 전사들이였습니다.
허나 지금 이 나라에서 그들을 테러범이라 부르는 좀비 근성을 가진 인물들이 더러있습니다. 서슴없이 자행되는 이 비겁한 지식의 오만을 보며, 독재의 찌꺼기에 잠재적으로 저당잡힌 그들의 의식들은 과연 우리들에게 어떠한 미래를 가져다줄 수 있을것인가라는 진지한 고민이 필요할때입니다.
그나마 일말의 양심으로 후학을 선도해야할 선생의 직함을 때려치우고 욱일승천기 앞에, 그리고 천왕이라는 비이성적인 굿판앞에 혈서로서 맹세한 지도자의 명함이 남로당을 거쳐 미군정의 호휘아래 철권적인 통치행위를 약속합니다.
개념이 무시되었고 시민혁명이 짓밟혀졌으며 이데올로기가 우리 사회에 우상으로 군림했습니다. 피아의 식별을 떠나 그와 반대선에 존재한 부류들은 폭도라는 이름으로 단죄 당했으며 동시에 언론은 시녀노릇을 떠맡았고 그 표독한 시녀노릇이 우리 사회의 기득권으로 성장하여 이 시대와 세대를 관통해야할 정명(正名)의 이름을 더럽히고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앞으로의 대선은 노무현이 세우는 정명(正名)의 기틀을 바로잡아 세대를 관통하여 소통하려는 책임있는 지도자에게 우리들의 미래를 걸어야 합니다.
서민출신이 대통령 되었다는게 중요했던것이 아닙니다. 고작 고졸 출신이 대통령 되었다는게 소중했던것도 아닙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자신의 어버이들이 이타적으로 가르치던 선린적 문화를 배반하고 미개하다라는 피해의식 속에서 협잡의 그늘로 성장한 기회주의자들의 전형을 타파하며, 그 배신과 오욕의 정치로 군림하려는 기득권들의 담론들을 발겨벗겨 공의로운 자세로서 공론다운 공론을 토론해낼 수 있는 정론들이 살아 숨쉬는 사회.
그러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신의(信義)위에 원칙과 상식을 제시할 수 있는 선비다운 선비가 우리들의 뱃머리를 잡아주어야 하는것입니다. 세대를 관통할수있는 힘은 거창한 논리나 이념따위에 존재하는것이 아닙니다.
위장전입에 불법적인 땅매입 수수까지 의혹받는 아무개가 제 아무리 경제를 외쳐봐도 그것은 개발독재의 환영일뿐이지 우리 내부의 진정한 고민덩어리가 아닙니다. 배신의 정서를 극복해야합니다.
성공 이데올로기라는 목적전치의 오류들을 극복해야 합니다. 배고픔을 아는 지식인 딸각발이 선비처럼 말입니다.
목이 부러지지않는 당당한 선비 유시민
유시민은 핏대를 올리며 노무현을 변호했습니다. 노무현이 옳아서 노빠질을 자처했던 상식있는 사람들처럼 유시민은 공의를 실현하는 노무현을 지지하고 지켜왔던것입니다. 가당치도 않는 곡학아세로 민중의 역사를 부정하며 길들려온 독재적 잔재가 우리들의 정론을 무너뜨리고 세대간의 소통을 막아왔습니다.
저 마다가 그 소통의 장벽에 움추려들어 바른말도 가려하며 대통령의 말주변에 트라우마를 일으키고 있을때 유시민은 당당히 일갈하며 정치적 성장을 거둔 사람입니다.

고매한 정신으로 커온 사람입니다. 노무현의 정치적 자산이 아닐지라도 선비 유시민의 강단과 지조는 대한민국에 필요한 리더쉽이며 독재의 씨앗으로 잉태되어 표변한 전복된 가치를 개조시킬 유일한 사람입니다.
대한민국 개조론은 민주공화국상의 진정한 군주인 국민들께 드리는 현실정치인 유시민의 현실적 대안입니다.
국민들을 섬기는 책사 유시민의 새로운 리더쉽입니다. 제왕에서 친구로 그리고 국민들을 섬기는 신복(臣僕)으로 우리들은 수평적인 노선을 갈아타며 민주주의의 함의와 개념을 다시 정립해야합니다.
그것이 미래의 길이고 한 국가의 명암을 좌우하는 중요한 키워드가 될것입니다. 저마다 대통령병 걸린 사람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대선철마다 찾아오는 대권운세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짜증을 유발시킵니다. 이 나라의 주인이 국민들로 존재하는데 하늘이 내린 제왕을 바래서 될 일이 되는것입니까?
섬기는 사람이 필요하지요. 이리저리 철새처럼 떠도는 간신배가 아닌 충신이 필요한것이지요. 국민을 섬기는 충신같은 대통령, 그 리더쉽의 새로운 접근법은 기호1번 유시민이 하고있는 것입니다.
효자 대통령 그리고 소통의 활로
유시민에게서 맷돼지 얘기가 나와 처음에는 갸우뚱했습니다. 그런데 효자 대통령이 되겠다는 그의 말이 제 무릎을 치게 만듭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세대간의 갈등을 어떻게 풀어야겠습니까?
독재시절을 살아온 우리 어르신들 세대는 동기가 유발되지 않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개미처럼 일하고 저축한 사람들입니다. 그 분들이 허리 휘어지게 보릿고개를 넘겨오며 자랑스러운 한강의 기적을 만들었음에도 고스란히 그 명암은 개발독재의 유령인 독재자의 수혜로 대변되고, 잘못된 시스템의 구조로 독재의 전신을 이어받은 정치세력들이 보기좋게 말아먹었음에도 정론지가 존재하지 못한 까닭에 그 답답함이 좀 처럼 풀리지가 않습니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우리 어르신들에게는 동기유발이 아니라 보상을 해줘야 합니다. 그것이 효자 대통령인 유시민의 소통법입니다.
되지도 않은 운하파기로 경제개발의 환영을 말하는 사람보다야, 맷돼지 잡아드리고 목욕탕 만들어 드린다는 효자대통령을 우리 어르신들이 더 이뻐하지 않겠습니까?
어려운 살림에 자식농사 끝마쳤더니 모두들 자기 살기바뻐 외롭게 소외된 우리 어르신들을 국가가 먼저 나서서 효도해줘야 하는것 아닙니까?
이상에 근접한 선진 통상국가 실현을 386세대들에게 동기부여하고, 슬픔과 노여움으로 청춘을 지냈던 청년정신으로 젊은세대들에게 인간적인 드라마를 펼쳐줄수있는 유시민의 소통법만이 적격 아니겠습니까? 지금으로서 민주정권을 네거티브로 공략하는 딴나라당을 이길수있는 유일한 후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유시민의 바람이 불것입니다. 사람다운 사람들의 고귀한 명령이 베일의 암투를 벗어 공명되고 타전된다면 충분히 이길수있고 반한나라 전선의 대항마라는 작금의 정치지형을 극복하며 동북아 번영의 새로운 틀이, 선린우호적인 강한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으로 재편될수있습니다.
유티즌 여러분, 유시민의 행보가 나날히 신선해지고 있습니다.
열린우리당의 거듭난 악재로 인해 대선구도를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던 필자에게 앓던이를 빼주는 것처럼 그는 정말 열심히 뛰고있고 그를 빛나게하는 우군들이 그의 부족한점을 매꾸며 같이 성장해나가고 있습니다.
유시민뿐만 아니라 그 우군들 역시도 100점을 줘도 아깝지않습니다.
머지않아 진실된 품위를 사랑하는 우리들이 얼룩진 배경으로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리던 기백의 함성들을 복기하며, 힘찬 여명의 찬가들로 소금같은 빛들을 닫혀진 마음으로 비추어 살아나갈 그날을 기대해봅니다.
아무리 장고해봐도 지금은 어쩔수 없이 기호1번 유시민입니다.
지금 저의 선택은 효자 대통령 유시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