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 카프라, 벽돌쌓기 그리고 수많은 컴퓨터게임. 요즘 아이들의 놀이기구입니다. 그렇게 1:1의 대응으로 놀이를 하니 저게 무슨 재미일까 하며 전 측은하게 보기도 하지요.
“바람아, 놀자!”
점심 먹기가 무섭게 아이들은 골목에서 날 불러대고 후닥닥 물에 말아 김치 한 조각 얹어 밥을 집어넣고는 뛰어나갑니다.
다방구, 오징어, 얼음땡, 삼팔선.
몸이 유일한 놀이기구였고 땅바닥에서 노니 팔꿈치며 무릎은 늘 멍들어있지 않으면 딱지가 앉아 있곤 했었습니다. 이렇게 몸으로 서로 부대끼며 하는 놀이가 그야말로 심신단련에 자연스러운 도움이 되었던 것도 그렇지만 사실은 이런 놀이를 통해 우린 민주주의를 터득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몸으로 하는 놀이이니 체격조건이 좋은 녀석들은 늘 놀이에서 우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두 차례 놀이를 하다가 체격조건에 따라 너무 승부가 쉽게 가려지면 아이들은 모여 회의를 합니다. 각자의 조건에 비추어 되도록이면 공평하게 승부가 날 수 있도록 룰을 정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땅따먹기의 경우 손이 큰 아이는 그만큼 유리합니다. 그러면 한사람의 뼘을 기준으로 하여 계량화를 시킵니다. 즉, ‘공정성에 입각한 입법과정’을 거치게 되지요.
여기서 덩치 큰 녀석이 저 한테 유리한 룰만을 고집하다가는 그 순간 왕따가 되어버리므로 공평한 법률 만드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참아내야 합니다.
새로운 룰에 적응하는 것이 순식간에 잘 이루어지기는 만무합니다. 반드시 시행착오를 겪게 되죠.
“봐라, 이번엔 나한테 너무 불리하게 됐다.”
“그건 네가 맨날 이길 때만 생각해서 그렇다.”
“나, 그럼 안할래!”
삐쳐서 집으로 돌아갔던 녀석도 내일은 반드시 나와 다른 놀이를 제안하거나 만들어진 새로운 룰에 적응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무엇을 위해 토론하고 법을 만들었을까. 뭔가 경제적으로나 권력 등이 얻어지는 것이 따로 없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아무리 싸우고 다치고 해도 집으로 돌아갈 때 ‘오늘 하루도 정말 끝내주게 놀았다’하며 마음 뿌듯해지는 그 느낌, 오직 그것이 그 당시 삶의 목표였기 때문 아닐까 싶습니다. 함께 느끼고 함께 가지는 행복 말입니다.
몸으로 하는 놀이가 지겨워지거나 시즌이 바뀌면 아이들은 골목 여기저기 옹기종기 모여 경제행위를 합니다. 딱지치기, 구슬치기 등이죠.
구슬로는 봄들기도 하고 깔빼기도 하고 접기도 하며 잃다가 따다가 흐름이 반복합니다.
난 개인적으로 대부분 잃는 편이었습니다. ^^;; 혼자만 경제행위를 하다보면 늘 엄마한테 손 벌리기도 미안하기도 하거니와 공부 안하고 매일 구슬치기만 한다고 해서 욕먹기 십상이니 내 구슬 다 잃으면 친구 녀석들 구슬치기하는 자리를 뱅글뱅글 돌며 몇 개 얻을 심산으로 친구에게 유리하게 편을 들어주거나 합니다. 그러다 우린 조합을 결성하지요. 이른바 깜부를 겁니다.
이 조합원들은 누군가 다 잃으면 잘 하는 녀석이 다시 붙어 잃은 만큼을 다시 따주거나 조합의 모든 구슬들을 걸고 크게 한 판을 벌이기도 하지요. 그 조합만이 쓰는 백구슬 혹은 철구슬 같은 오야(일본말입니다만)구슬을 하나씩 징표로 가지고 있기도 했었고.
이처럼 어른이 간여하지 않는 아이들만의 세상에서 우리는 토의하고 안건을 제출하고 협의를 거쳐 새로운 법안을 만들기도 했으며 경제활동을 통해 경제적으로 살아남는 법이나 연대를 했을 때의 장점과 단점 등을 스스로 익혀나간 것입니다.
그리고 더욱이 중요한 것은 그 동네에서 재미있게 놀고 친구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일정한 룰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것이죠.
이런 과정을 경험해보지 못하고 자란 사람들도 분명히 있을 겁니다. 아마도 나 같은 천민보다 금이야 옥이야 굉장한 보호를 받았고, 흙투성이에서 놀기보다 개인교사를 들여 열심히 공부하고 부모님이 원하고 또 그들 가문에 걸맞는 직업을 가지게 된 소수의 일명 귀족들이 대부분일 겁니다.
난 이 사람들이 참 불쌍하게 여겨집니다. 참으로 사는 게 힘들 것입니다. 추억도 흐릿할 것이고, 참 재미를 느껴보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사회 각계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서 이 폭풍처럼 휘몰아치고 변화무쌍한 현상의 흐름들을 어떻게 감당해낼까 참으로 걱정됩니다.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 하는 것보다 백배, 천배는 진하게 그것을 직접 경험해 본 사람과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죠.
정치 쪽에서, 법조계, 경제계 등지에서 황당무계해 하고 갈피를 못잡으며 이 변화하는 시대를 도저히 따르지 못할 것으로 보이는 이 나름대로의 귀족들.
내가 어릴 적, 그리고 자라오면서 느끼고 고민했던 아픔들을 이 사람들은 이제서 경험하나 봅니다. 안타깝습니다.
이 글을 보고 계시는 어머니, 아버지들께 부탁드립니다. 아이들 많이 놀게 해 주십시오. 아이들 스스로 저들끼리 대화하고 부딪히면서 민주주의와 자유경제를 깨우치게 해 주십시오.
조금 다쳤다고, 싸운다고 어른들 끼어들어서 그들의 온전한 교육을 망치지 마십시오. 그럴수록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 힘겨운 삶을 삽니다. 그들에겐 그들의 세상을 만들고 준비할 의무와 권리가 따로 있습니다.
학교교육 잘 못 됐다고 말씀하시기 전에, 교육부 정책 나무라시기 전에 엄마와 아빠가 아이들에게 제공해 줄 수 있는 참 민주주의의 기회를 져버리지 마십시오.
이제, 우리의 시장은 세계입니다. 그에 걸맞는 나라의 꼴을 갖춰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