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편소설 □
오백원만의 죽음
Y역에서 오백원만을 본 지도 대략 5년은 지났성 싶다. 왜 오백원만인지는 조금 있다 알게 된다.
내가 처음 오백원만을 보았을 땐 막 변성기를 넘긴 듯한 소년의 모습이었다. 피부도 맑았고 어찌 보면 약간은 귀티도 흐르는, 그 또래의 여느 집 자식들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오백원만은 Y역에서 산다. Y역이 제집이다. 따로 집이 있는 지, 가족이 있는 지 등은 전혀 알 길이 없지만 Y역이 집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의 행동반경은 Y역 주변에서도 개찰구 안이다. 그를 개찰구 밖에서 본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까.
Y역을 늘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역의 걸인이나 노숙자가 대개 낯이 익다. 서로에게 단골인 셈이다. 내가 십오년 째 계속해서 보는 노숙자도 있는데 그는 언제나 같은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Y역의 기차 타는 곳, ‘만남의 장소’에 있는 쓰레기통 옆이다.
그도 가끔씩은 바깥으로 나와 노점 음식을 파는 리어카 주변을 어슬렁거리기도 한다. 다른 걸인, 노숙자들도 마찬가지로 대낮에는 역 주위의 백화점 앞이나 로터리를 배회하며 원을 그리 듯이 맴돌다, 해가 질 무렵이면 Y역 자신의 장소로 돌아온다.
오백원만은 Y역 주변에서 상주하는 걸인 중 가장 나이가 어리다. 얼핏 보면 고교생 쯤으로 보이기에 그를 처음 본 이 들은 그저 학생이려니 한다.
역 주위의 걸인들은 깡통을 앞에 두고 죽은 듯이 엎드려 있거나, 상처 입은 다리 - 주로 다리이지만 - 를 드러내고 잔뜩 얼굴을 찌푸린 표정에 다소 협박하는 듯 하는 모습이 특징이다.
그러나 오백원만의 방식은 다르다. 그저 모기만한 소리로
“저... 집에 갈 차비가 없는데... 오백원만...”
나는 처음에는 천원짜리 지폐를 주곤 했다. 오백원만 달라고 하면 동전이 없을 때도 많거니와 동전을 찾으려면 가방을 뒤져 동전 지갑을 꺼내야 하는 일이 번거롭기도 하여 그냥 천원을 주었다.
Y역에서 지난 5년 동안 쭉 그를 관찰해 보면 - 아니 관찰이라기보다는 출퇴근길에 어차피 만나게 돼 있었다. - 그는 언제나 똑 같은 방식으로 구걸을 한다. 내 나이와 비슷한 여인네들, 그러니까 제 또래의 자식을 둠직한 여인들만 정확하게 선택한다.
대개 여인들이 전철을 기다리며 의자에 앉아 있거나 서 있으면 조용히 다가가 작은 소리로
“저... 집에 갈 차비가 없어서... 오백원만...”
내가 지켜본 바로는 거의 실패는 없었다. 대개 여인들은 측은한 표정으로
“그래, 천원이면 집에는 갈 수 있는 거니?”
라며 오히려 천원이라 미안하다는 듯이 말한다.
오백원만은 옷도 깨끗하게 입었다. 여름이면 짙은 티셔츠에 카고 바지를 입고 유행하는 운동화를 신었으며, 겨울에는 베이지색 계통의 프록코트를 입었는데 시류에 들어 맞는 복장을 하고 다녔다.
Y역은 유동인구가 많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기차와 전철이 함께 만나는 역이기 때문에 언제나 붐비는 그런 장소다. 그런 곳에서 똑 같은 사람을 다시 만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Y역이 오백원만의 본거지이고 나는 언제나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전철을 타다 보니 어떤 때는 그를 매일 보기도 하였다.
어느 날이었다. 플랫폼 의자에 앉아 전철을 기다리는 데 오백원만이 다가 왔다.
“저... 집에 갈 차비가 없는데... 오백원만...”
나는 고개를 들고 그를 쳐다보며
“아직도 집에 못 갔냐?”
하고 물었더니 그는 슬며시 웃으며 돌아서더니 느적느적 걸어서 딴 여인한테로 갔다. 그도 가끔씩은 이처럼 실수를 하였다.
한 번은 그가 플랫폼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는데 저 쪽에서 공안경찰이 모습을 나타내자 그야말로 눈 깜짝 할 새 사라져 버렸다. 방금 전 내 앞에 있었는데 정말 희한한 노릇이었다.
나는 두리번거리며 그를 찾았으나 도무지 보이질 않았다. 그러나 공안이 사라지자 전철 선로에서 플랫폼으로 머리가 쑥 올라왔다. 전철 선로로 내려가 몸을 순식간에 숨긴 것이었다.
또 어느 날은 며칠 동안 그가 보이질 않아 나는 속으로 근거지를 다른 역으로 옮겼나... 괜시리 궁금해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Y역에 또 다시 모습을 나타내곤 하였다.
한 번은 그가 선로 위를 정말 날아다니는 광경을 보기도 하였다. 날다람쥐 아니면 타잔, 수퍼맨인가 싶을 정도로 선로를 이쪽 저쪽으로 자유롭게 왕래하였다. 이미 전철이 저 만치서 달려오고 있었다.
Y역은 서울방면, 인천방면, 수원방면 전철에 기차, 화물열차까지 다니는 복잡한 역이다. 그런 역을 무대로 제 집 드나들 듯 하였는데 내가 보기에는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게 오백원만은 Y역에서 나이를 먹어 가고 있었다. 소년 티를 완전히 벗고 수염이 턱에 거뭇거뭇 난 청년이 되었다. 출근길의 어느 날 본 그는 눈에 띄게 초췌한 얼굴이었다.
옷은 늘 보던 베이지색 프록코트였고 때에 절어 있었다. 얼굴은 개기름이 끼어 번들거렸고 눈은 초점을 잃은 듯 했다. 선로로 드나들지 않고 계단을 털레털레 힘 없이 내려가기도 하였다.
그래도 퇴근 무렵이면 어김없이 나타나 중년 여인들만 골라서
“저... 집에 갈 차비가 없는데... 오백원만...”
을 계속하였다.
그러다 나처럼 그를 자주 본 여인들도 있어 돈을 주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그럴 때면 그는 입을 삐죽거리며 심술궃은 얼굴로 돌아서는데 아주 실망한 모습이 역력했다. 꼭 엄마에게 용돈을 요구 했다 거절당한 아이처럼 보였다.
“야! 넌 왜 나만 보면 돈 달라고 그래? 맡겨 놨어? 이게 이제 보니 아주 상습적이네!”
내 나이 비슷해 보이는 중년 여자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슬쩍 쳐다 본 그의 얼굴은 능글맞은 표정으로 입술에는 비웃음을 띄고 있었고, 느릿한 걸음걸이로 반대쪽 승강장으로 걸어 갔다.
이런 일이 자주 있는 듯 보였고, 걸음걸이의 민첩함은 사라지고 꼭 노인네 마냥 느리게 움직였다. 나이로 치면 이제 스물너덧 일 텐데 너무 빨리 나이를 먹어 버린 것 처럼 느껴졌다.
그로부터 한참이나 지난 어느 날, 그러니까 그 해, 겨울이 꼭짓점에 다다른 날이었다. 나는 급행전동 열차가 들어오고 있다는 전광판을 보고 재빨리 계단으로 올라갔다. 내 눈 앞으로 분명 그의 베이지색 코트자락이 스쳐 지나갔다.
간신히 열차에 몸을 실었다. 전철 안은 그 날따라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늘 보는 풍경인 통화중인 사람, 조는 사람에 무표정한 얼굴, 수심이 가득 찬 얼굴들...
Y역에서 떠난 전철이 한 오 분정도 달렸을까, 갑자기 급정거를 하였다. 그리고 차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고 대략 사오분 정도 지나자 안내 방송이 나왔다. 선로에 인사사고가 발생하였으니 잠시만 기다려 달라는 소리였다.
전철 안이 갑자기 웅성거리며 모두 창 쪽으로 시선이 쏠렸다. 나는 그 때 서 있었기 때문에 밖을 내다 볼 수 있었다. 선로에 낯 익은 물체가 보였다. 그건 오백원만의 낡은 코트자락이었다. 때에 찌든 오렌지색 줄무늬가 들어 있는 운동화와 함께...
약간 움직이는가 싶었다. 이미 역무원들이 둘러싸고 있어 더 이상은 뵈지 않았다.
“누가 전철에 깔렸어... 죽었겠지... 자살일거야 틀림없이...”
“사고일 수도 있지요.”
사람들이 창 밖을 내다보며 한 소리씩 하였다. 나는 실내에 붙어 있는 광고판만 계속 응시하고 있었다. 전철은 계속 지체했고 이십분은 흐른 것 같았다. 이제 사람들은 잠잠해졌고, 앉거나 선 채 어서 빨리 차가 움직여 주기만을 바라는 표정들이었다.
조금 전 한 인간의 죽음은 재빨리 잊혀져 가고 있었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이 조는 사람에 하품하는 이, 따분한 또는 진지한 얼굴의 일상 풍경이었다.
나는 그저 멍하니 광고판만 보고 있었다.
“빨리 가려고 급행차를 탔더니 이게 뭐야!”
누가 불평을 늘어 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철은 출발하였다.
Y역에서 오백원만이 자취를 감춘 지도 삼년이 지났다. 그 동안에도 Y역은 별로 달라진 게 없었다. 여전히 소란스럽게 사람 무더기가 들고 나고를 쉼 없이 반복하고 있었다.
달라진 점이 있긴 있었다. 그건 개찰구 어귀에서 쉴 새 없이 떠드는 한 사내 때문이었다. 바투 깍은 머리에 언제나 위 아래 검은 옷을 걸친, 얼굴까지도 유난히 새까만 사내였다. 그 사내가 무슨 소린지 알아 들을 수 없는 말을 엄청나게 큰 목소리로 떠들면, 처음에는 관심을 보이던 사람도 자주 보게 되면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매 번 떠드는 건 아니고 역 대합실에 주저 앉아 있거나 개찰구 어귀에서 서성이는 날도 많았다. 그러다 발견한 사실은 검은 사내가 큰 소리로 떠들기 시작하면 다음 날은 어김 없이 비가 온다는 것이다.
내가 관찰해 본 바로는 거의 틀림이 없었다.
‘아마 내일은 비가 오려나......................’
2006년 9월
해당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