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시간 일반 대중들에게 소외된 정치를 그 주인된 시민들에게 돌려주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처한 분명한 현실을 직시하면서, 시민광장이 나아갈 길을 모색해 본다.
소통은 사람들의 원초적 욕구
거리에서 전화를 걸기 위해서는 가까운 공중전화 박스를 찾아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곳이 번화가라면 전화를 걸려는 사람은 공중전화 박스 앞에서 거의 항상 줄을 서서 기다려야만 했다.
전화를 걸기 위해서는 십 원짜리 동전을 준비해야만 했고, 시내전화라면 제한시간이 3분이었고, 만일 도수 높은 시외 지역이라면 좀더 많은 동전이 필요했다.
줄을 선 사람들을 위해 웬만하면 한 통화로 끝내야 했기에 공중전화 박스 위에는 ‘용건만 간단히’ 라고 적힌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만일 급한 일이 있다고 공중전화를 혼자서 두 통화, 세 통화해야 한다면 목숨을 걸고 해야만 했다. 줄 선 사람들 중에 성질 급한 사람에게 칼을 맞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 당시 성질 급한 남자가 전화를 오래 한다는 이유만으로 어떤 아주머니를 칼로 찌른 사건이 가끔 신문에 나기도 했다.
해방 전후 시대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부터 불과 20~30년 전 일이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지금에 비하면 누군가와 소통한다는 것이 무척 어려웠던 시기였다. 그래서 그 당시 시내에서‘다방’이라는 곳은 전화를 받기 위한 장소로 곧잘 애용되었다.
“김사장님 전화 받으세용~~~.” 라고 카운터 마담의 목소리에 두 세 명은 자신을 찾는 전화인가 싶어 고개를 돌려 쳐다보던 때가 그 때 그 시절이다.
누군가와 소통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님을 경험했던 많은 사람들이 지금은 거리에 공중전화박스가 있는지 없는지 조차도 관심이 없다.
만일 요즘 같은 시대에 거리에서 전화를 건다면 먼저 얼굴 맵시를 단정하게 하고 휴대폰을 든 손을 앞으로 쭉 뻗어 얼짱 각도를 맞춰야 할 것이다.
기술의 발달로 말미암은 편리한 도구들로 인해 사람들의 행동패턴은 그에 걸맞게 많이 달라졌다. 이제 사람들은 언제, 어느 곳에서든지 소통할 수 있는 관계가 되었다.
‘다방’은 오래전에 사라졌고, 맛과 인테리어로 승부하는 스타벅스와 같은 고급 커피숍이 유행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이제 어떻게 만날 것인가는 고민하지 않고, 어디서 만날 것인지 정할 뿐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든지 누군가와 소통하기 원한다. 통신기술은 사람들의 이러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다.
오늘날 소통의 도구를 만드는 기술은 고급 상품이 되었고, 고부가가치 서비스 사업으로 자리매김 하게 되었다.
소통의 실패는 인간관계의 단절
지금은 여의도 공원으로 탈바꿈 됐지만, 딱 20년 전만 해도 그곳은 광장이었다. 그 시절을 기억하는 분들이 많겠지만 당시 대통령 후보로 나왔던 DJ와 YS의 연설을 듣기 위해 약 100만에 가까운 인파가 모였다고 한다.

그 때 뿌려진 무가지에 찍힌 사진상으로는 여의도 광장 전체가 사람들로 빼곡하게 들어차 발들일 틈이 없을 정도였다. 안 세어 봐서 잘 모르겠지만 사진만으로는 꼭 사실 같았다.
그 때는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한 이후라 시민들의 정치적 관심이 무척 높았던 시기였다. 후보 개인별로 실시된 지역별 연설회에 몰려든 인파로 도로가 통제되는 지경이 되기도 했다.
대통령은 체육관에서 뽑는 줄로만 알았던 시민들이 대한민국 대통령 후보의 연설을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어디 있었겠는가?
확성기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로 인해 그들이 말하는 연설을 잘 알아듣기는 힘들었지만 사람들은 광장으로 모였다.
나는 그 당시 사람들이 그렇게 모였던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들의 갈망을 풀어줄 사람과 직접 소통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단일화의 실패로 시민들의 열망인 군정종식은 이룰 수 없는 꿈이 되어 5년 뒤로 미루어 졌다. 단일화의 실패는 소통의 실패였다. 이후 소통의 부재로 고착화 된 것이 지역주의였다. 지역주의 극복의 절호의 기회를 놓쳐버린 것이다.
정치인들이 시민들과의 소통보다는 지역주의에 기대기 시작하면서 정치는 시민들에게 소외되기 시작했다.
소통의 실패는 영호남 사람들의 인간관계마저 단절 시켰다. 어쩌면 대다수 정치인들은 시민들에게 소외되어 외면받기를 간절히 원했는지도 모르겠다.
소통의 부재는 언론이 부채질
그 때나 지금이나 신문 1면과 방송에 반드시 한 꼭지씩 이상은 꼭 등장하는 기사가 정치 뉴스이지만 그런 뉴스가 반복되면 될 수록 시민들은 정치를 외면하고 정치는 시민들로부터 소외되었다.
시민들과 소통하기 위해 존재해야 하는 언론은 더욱 언론사주의 이익을 대변하기에 이르렀다. 차츰 더 많은 언론들이 국민들과의 소통을 위한 중재자 보다는 거간꾼의 역할을 수행했다. 소통의 부재를 부채질한 것이다.
과거 386세대들은 사상과 문학, 낭만과 이상을 추구했기에 국가와 민족의 앞날을 걱정하는 이들이 세대의 주류를 이루었다.
야학을 통해 농민의 딸들과 서러움을 함께 했고, 방학때는 농활을 통해 농촌의 아픔을 피부로 느꼈다. 민족의 아픔을 고뇌하며 통일을 외쳤고, 독재에 맞서 최류탄 맡아가며 꽃병을 던졌던 세대들은 그 시대의 문화적 트렌드였다.
그런데 이제 그러한 기억들은 이미 전설이 되어 버렸다. 룸살롱에서 여자를 껴안고 음주가무를 즐겨하는 386 운동권 국회의원들이 손학규와 정동영에게 줄을 선 현실을 두 눈으로 목격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현실로 인해 시민들은 정치를 외면하기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빠른 속도로 정치로부터 소외되었다. 더욱이 거간꾼이 되어 버린 언론은 광고주들의 입김에 의해 학생과 시민들의 관심사를 국가의 미래보다는 개인의 성공으로 돌려놓았다.
대학생들은 취업과 어학연수, 연인들에게는 영화와 자동차, 결혼한 부부들은 자녀교육과 부동산이 일반적인 문화적 트렌드다. 아! 10~20대들의 일상에서 대부분 시간을 차지하는 PC게임은 빼놓을 수 없겠다.
언론에 의한 정치와 국민들간의 소통의 부재.
이것이 현실이다.
소통하는 방법을 아는 대통령
그런데 2002년 12월 19일,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됨으로 상식과 원칙은 승리하였다. 이로써 국민들은 일반 대중들과 소통을 시도하는 첫 번째 대통령을 만나게 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은 가히 혁명적인 일이었다. 과거 정치인들이 단절시켜 놓았던 영호남의 지역주의와 소통하기 시작했다.
그는 언제부터인가 서로 다른 정당만을 지지하는 호남과 영남의 가교 역할을 시도했으나 영남에서도, 호남에서도 돌팔매질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뚝심과 호시우행(虎視牛行)으로 탄핵에서 살아났고, 다시 일촉즉발(一觸卽發) 전쟁의 위기 순간에도 바위처럼 남과 북 화해의 손을 놓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통일에 대한 접근과 이해가 서로 다른 국가와 정당에 대해서도 소통의 끈을 놓치지 않아 결국 통일의 기틀을 잡는 남북정상선언을 이끌어 내었다.
뿐만 아니라 좌익(左翼)이나 우익(右翼), 진보와 보수의 갈등과 다툼 사이에서도 중용(中庸)의 도를 지켜나갔으며 배려와 관용으로 소외된 계층을 감싸 안았다.
인간 노무현의 일생의 소원은 국민통합이다. 하지만 목전까지 다가 왔던 꿈이 급류에 휩쓸리는 모습을 우리 모두는 목격했다.
국민통합이라는 정치적 과제를 해결할 의지를 가진 정치인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아무래도 내가 정치적 입신영달의 욕망에 눈이 먼 자들에게 너무 지나친 기대를 하는 것 같다.
시민광장도 정치지향적인 조직인가?
당선과 더불어 그렇게 국민들과 소통하는 노무현 대통령을 통해 정치에 소외되었던 일반 시민들이 차츰 참여정치에 대한 눈을 뜨게 되었다.
하지만 과거로부터 학습되어온 조직에 대한 이해로 인해 참여정치는 운신의 폭이 매우 좁았다. 오랜 기간 동안 정치를 외면하고, 정치로부터 소외된 더 많은 시민들로 하여금 정치에 참여토록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고, 숫자로나 조직으로나 무척 역부족이었다.
대의민주정치에 대한 공통된 의견은 쉽게 말해 사람들이 많아지다 보니 대표를 뽑아 의사결정을 하기 위한 것이었다. 과거 대의민주정치가 독재에 의해 악용된 경력이 있다보니 꽤 조심스러울 것 같기도 하지만 오늘날 정당의 대표가 공천권을 쥐는 것은 관례가 되었다.
그런데 정당의 대표가 공천권을 쥐고 있는 현실에 반발해서 참여정치 당사자들이 요구한 것은 상향식 민주 정치였다.
상향식 민주 정치를 쉽게 이해하자면 정당의 대표가 공천을 쥐고 흔드는 것이 아니라 동네 단위에서 대표를 뽑고, 그 대표들이 지역대표를 뽑고, 그 지역대표들이 광역대표를 뽑으며, 그렇게 뽑힌 사람을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의원, 그리고 국회의원 후보로 뽑는 것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한 면으로는 민주적인 관점에서 바라봤을 때 나름 타당한 이유가 되기도 하다. 하지만 상향식 민주 정치도 결국 수직적인 조직의 틀 안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또한 참여정치 당사자들끼리도 정당에 대한 이해의 폭과 깊이가 서로 상이했다. 그래서 나는 우리들에게 익숙한 정치지향적인 조직구조에서 탈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지향적인 조직 구조의 치명적 단점
상향식 민주 정치 제도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최대한 민주적인 방식으로 대표를 뽑기 위해 그러한 정치적인 기반을 둔 조직 체제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그런 조직체 안에서도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정치지향적인 조직은 시간이 지날수록 고착화된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구성원들간의 친밀도가 증가된다는 말이다. 적나라한 표현을 빌린다면 서로 매우 끈적끈적한 관계로 발전한다.
그러면서 그 조직은 정체된다. 끈적할 정도로 절친한 관계로 발전될수록 더 많은 구성원들의 지속적인 참여는 줄어들고 참여하는 인적 구성과 분포도 편협해 진다.
각 사람들의 개성과 체질, 성향과 동기부여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그런 조직은 구성원들의 성향이 대세를 이루는 쪽으로 치우치게 마련이다.
때로는 상반된 성향을 가진 구성원들이 대립하면서 한 쪽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할 경우 분열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단일 조직 체제로 50년 이상 유지해 온 강력한 조직이 있다. 그 조직은 군대다. 분대, 소대, 중대, 사단, 군단, 군사령부라는 부대규모를 한결같이 유지해 왔다. 군대는 국가와 더불어 특수한 조직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렇지 않은 조직체계는 모두 분열을 경험했다. 우리나라에 그렇지 않은 정당이나 조직이 있는가? 있으면 말해 보라.
솔직한 말로 지금은 21세기다. 사람들은 가깝게 자주 만난다고 해서 반드시 친해지고 소통이 되는 것은 아니다.
가깝고 자주 만나는 것으로 친다면 부부나 직장동료 사이만 한 경우가 또 있겠는가? 그렇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들리는 이혼 소식은 부부사이에서 일어나고, 싸움과 원수지간도 직장 동료간에서 주로 생겨난다.
싸움과 결별의 원인이야 여러 가지겠지만 그들 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소통하는 방법을 몰랐거나 소통의 부재로 말미암은 것이지 자주 만나지 못해서 발생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내 말에 “그러면 만나지 말아야 하느냐!” 고 딴지는 걸지 말기를 바란다. 내가 주장하는 것은 만남보다 소통이 중요함을 말한 것이다.
시민광장의 속성은 소통의 유전자를 공유
사람의 생명에 비유하자면 시민광장도 태동과 탄생의 시기를 겪었다. 시민광장은 2007년 6월 9일에 공식적으로 창립되어 4개월 남짓 지나고 있다.
하지만 모태에서 열 달이라는 기간을 보내는 사람처럼 시민광장도 그 태동이 있기까지는 2년이 넘는 꽤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고 한다.
그렇기에 매우 짧은 시간이지만 시민광장은 전국적으로 빠르게 창립될 수 있었고, 매우 훌륭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고 보여진다.
시민광장은 소통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소통의 유전자는 참여민주주의 가치를 지향한다. 이 유전자는 노무현으로부터 태어났고, 유시민에게서 이어져 온 것이다.
시민광장은 이렇게 참여민주주의 가치를 지키려는 것이다. 시민광장의 슬로건인 ‘유시민을 믿고 지지하는 참여시민네트워크’ 라는 말 속에는 시민광장의 정체성이 매우 함축적으로 담겨 있다고 생각된다.
시민광장은 ‘유시민’이라는 콘텐츠를 생산해내는 유일한 기업이다. 그 상품의 독창성과 참신성은 유티즌들의 창의성과 자발성에서 구현된다.
시민광장은 현존하는 사이트중 가장 이상적인 소통도구를 가지고 있다. 시민광장이라는 ‘소통도구’를 통해 참여시민네트워크라는 ‘소통구조’를 구현해 낸다.
시민네트워크에 참여하는 각 구성원들이 적는 글과 댓글을 통해 스스로 언론이 된다. 시민광장에 방문한 눈팅들은 서로간에 소통하게 된다.
익숙한 닉의 글들을 통해 때론 감동하며 공감하고, 때론 웃고, 때론 슬퍼하며 내일 같이 느끼며 소통하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정치 칼럼도 물론 많이 있으나 오프라인과 병행하는 참여도를 따진다면 소통의 유전자를 보유한 곳은 시민광장이 유일하다고 생각한다.
네티즌이 시민광장과 물리, 화학적 결합을 하면 그는 유티즌이 된다. 유티즌은 주위 동료나 아는 사람들에게 시민광장 가입을 권유하고 컴퓨터에 사이트 주소를 즐겨찾기 해 두도록 하자.
시민광장의 유연성은 급변하는 환경에 적합
정치는 가치를 추구하고 시장은 이익을 추구한다. 그런데 이익을 추구하는 시장이 언론을 지배하고, 언론은 여론을 지배함으로 민심을 왜곡한다.
이렇게 해서 발생하는 문제가 시장이 정치권력을 추구하고, 정치는 이익을 추구하게 되면서 가치의 상실 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가치의 상실에 대해서 단적인 예를 한 가지 들어 보면 인간의 인격을 도덕성 보다는 경제력으로 인정하려는 경향을 말할 수 있겠다. 올해 유력 대선 후보자의 지지율을 보면 알 수 있는 현상 아닌가?

그래서 오늘날 가치를 추구하는 세력은 존재 근거를 상실할 지경에 이르게 되었고, 이익을 추구하는 세력들이 시장과 정치를 독차지 하게 되는 기반을 마련하게 되었다.
참으로 위기상황이다. 앞으로 시민광장은 왜곡된 언론을 바로 잡는 기능도 함께 수행해야 한다. 즉, 매우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포탈처럼 인터넷 언론으로서의 역할이 필요하다.
그렇게 시민광장에게 국민들과 소통하는 언론의 역할을 기대해 본다. 이를 위해서는 시민광장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많아져야 한다.
시민광장의 회원수와 방문자수가 늘어나기 위해서는 한 가지 방법 밖에 없다. 시민광장은 소통의 유전자를 보유한 광장들로 계속해서 복제되고 분화되어야 한다.
시민광장은 급변하는 환경에 적극적으로 적응해 가면서 시민들의 정치세력화를 이루어야 한다.
시민네트워크 정치
조직의 개념을 설명하기가 조금 난해한 것이 네트워크 조직이다.
네트워크 조직의 교과서적인 설명은 상호의존성이 큼에도 불구하고 자본적으로는 연결되지 않은 조직들이라고 정의 된다. 그리고 네트워크란 서로의 자원을 내부 자원처럼 활용하기 위하여 형성된 조직간 협력관계라고 설명된다.
사실 인터넷과 함께 최근 급속하게 발달한 통신기술이 아니었다면 네트워크 조직은 그냥 이론에 불과했을 것이다. 포탈의 카페나 블로그 등은 네트워크 이론을 응용해서 적용된 것이다.
운영자의 개성과 개설 목적에 따라 카페나 블로그에 참여한 구성원들이 학습해 가면서 자기복제를 통해 각 구성원들도 또 다시 카페를 개설하거나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블로그를 만들게 된다.
자기복제능력은 계몽이 아닌 소통 구조 안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인적 네트워크가 형성될 때에만 길러진다. 그곳에 참여한 구성원들 모두가 자기복제능력을 갖추게 된다.
각종 포탈에서 카페나 블로그등을 사용해 본 사람들은 셀 수도 없이 많은 카페와 블로그들이 모두 자발적인 참여자들의 복제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이해할 것이다.
이것이 네트워크 조직의 위력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카페나 블로그들은 생산자가 곧 소비자가 되어 공유의 바다 가운데서 파도타기가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한 기능들로 인해 과거 전혀 몰랐던 사람들이 온라인의 만남에서 다시 오프라인의 만남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 모두가 경험한 바대로 우리 사회의 문화적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시민광장 회원 모두는 수평적 리더쉽을 가진 지도자
앞으로 시민광장은 232개 지역광장 뿐만 취미와 여가 활동에 이르기까지 동질성이 확보되는 조직이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하나의 큰 세력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지역별로 또 다시 취미나 취향이 같은 사람들끼리 동호회를 만들어 보자.
등산광장, 축구광장, 낚시광장, 녹색광장, 대학별광장, 각종스포츠광장, 마라톤 광장, 40대 직장인 광장, 취업광장, 학부모 광장, 주부광장, 다이어트광장, 금연광장 등등...
분명한 것은 시민광장이 가지고 있는 소통의 유전자를 복제하는 방식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하향식이든 상향식이든 뭐든지 울타리를 치지 말자. 네트워크 조직의 특성을 살려 나갈 수 있도록 하자.
각기 다양한 취미를 가진 시민광장 회원들은 모두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시민광장 회원들 각자가 주도하여 자신이 습득한 소통의 기술을 통해 자신이 제일 잘하는 취미생활과 동호회에서 사람들을 모으고 그 곳에서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지도자가 되어 그 사람들과 시민광장을 소통도구로 한 조직을 만들어 보자. 지역광장 창립처럼 10여명 이상이 참여한 조직은 카페를 개설할 수가 있다.
뿐만 아니라 지역 현안 문제에 대해서도 지역 시민광장 이름으로 시민광장 카페 안에서 심도 있게 논의하고 지역주민들과도 소통해 나가야 한다.
시민광장은 그렇게 그런 식으로 성장해서 장기적으로는 시민광장 회원으로부터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 및 심지어 국회의원까지도 나올 수 있도록 하자.
물론 그 사람들은 특정 정당의 후보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시민광장 회원들이 꼭 특정 정당인은 아닌 한 사람의 지역시민에 불과하더라도 시민광장 회원으로서 지지하는 후보를 위해 선거운동도 하고 투표도 독려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민광장 회원들 각자는 소통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소통하는 방법을 학습한 뒤 사람들을 소통의 장으로 불러내자. 장기적으로는 시민광장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는 시민세력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시민광장에는 전국 대표일꾼 회의와 같은 의사결정 구조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지역 대표일꾼에게 의사결정을 위한 한 표를 주어야 한다는 생각은 네트워크 조직에는 어울리지 않는 발상이다.
중앙참여일꾼팀이 의사결정권을 갖는 것이 비민주적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왜냐하면 네트워크 조직의 특성상 업무적인 상호의존성이 크기에 서로의 자원을 내부 자원처럼 활용할 수 있도록 충분히 개방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에만 지역별로 가장 자발적인 모임이 보장된다. 취미나 동호회 영역에서도 언제든지 새로운 조직이 창립되고, 대표일꾼과 더불어 조직구성원이 탄생하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창립된 조직도 속성상 소통의 유전자를 공유해야 하기에 조직간 협력관계를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 그래서 시민광장 회원 각자는 수평적 리더쉽을 갖춘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중앙참여일꾼팀의 인적 구성이 매우 중요한 이유는 이러한 소통의 유전자를 보호하고 지켜내야 하기 때문이다.
자기복제능력을 갖춘 시민네트워크 조직
이처럼 시민광장은 소통 구조로 형성된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많은 국민들로 하여금 정치에 관심과 참여를 가지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시민광장 회원 각자가 지금까지 참여를 통해 먼저 학습한 것을 재교육 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도록 하자.
이것을 ‘자기복제능력’이라고 부르도록 하겠다.
우선 계몽이나 일방적 교육방식에서는 자기복제능력을 개인들이 갖춰 나가기에는 너무나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런 식이라면 제한된 시간에 우리가 1,800m 활주로를 닦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기복제능력은 계몽이 아닌 소통 구조 안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인적 네트워크가 형성될 때에만, 그곳에 참여한 구성원들 모두가 자기복제능력을 갖추게 된다.
그럴 때에만 새로운 조직들이 지속적으로 생겨날 수 있는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11.3 대번개를 통해 운영규약이 개정되면 앞으로 시민광장의 대표일꾼을 회원들의 직선으로 선출하게 될 것이다.
노무현으로부터 이어져 온 소통의 유전자를 중앙참여일꾼팀이 지켜나갔으면 좋겠다.
앞으로 구성될 제2기 중앙참여일꾼팀은 향후 참여민주주의 가치를 기치로 내건 소비자주권 운동이 전개될 때 절대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11.3 대번개를 기점으로 개인적인 정치적 욕심에 의해 결코 분열되지 않는 시민광장의 큰 틀이 짜여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유시민 의원님은 이미 두 가지 선거에 출마 선언을 했다. 먼저는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이고, 다음으로는 제18대 대통령 선거다.
시민광장도 전략적으로 단기적인 목표와 중기적인 목표를 세워야 할 것이다.
그러기에 앞서 무엇보다 시민광장의 장기적인 전략과 비젼을 제시하여 전국에 있는 유티즌들에게 분명한 방향성을 제시해 주기를 바란다.
우리 유티즌들은 그 때(時)를 준비하며 고부가가치 서비스 사업인 소통하는 방법을 배우고 익혀 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