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서 읽은 어떤 스님의 이야기다.
[지방에서 일을 마치고 서울행 열차표를 예매한 스님은 몹시 피곤하여 차를 타면 한숨 자고 가리라 좌석을 찾았는데, 어떤 젊은 여자가 그 자리에 앉아 있더란다. 내 자리니 일어나 달라고 말하려는 순간 그 여인의 얼굴은 몹시도 창백하고 피곤해 보여 말문이 닫히더란다.
결국 스님은 말할까 말까를 여러번 망서리다 몇시간을 꼬박 자기 좌석 옆 걸이에 대충 기대어 서울까지 올라 왔고 내릴 때 까지도 그 여인은 깊은 잠에서 깨어나지 않더란다.
힘들고 지친 몸으로 플랫홈을 빠져 나와 수 많은 사람이 오가는 복잡한 길을 걸어 가는데 갑자기 어떤 생각이 번개처럼 머리를 스치며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뜨거운 기쁨과 환희가 솟아오르더란다.
'아! 우리 모두는 모르는 가운데 누군가로부터 조건없이 받고 있구나!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가운데 얼마나 많은 것들을 서로 주고 받고 살아가는가!'
스님은 내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누군가에게 조건 없이 주고 나서야 자신 또한 그동안 모르고 받아왔을 그 많은 은혜들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지 비로소 알게 되었노라.] 라고 책에다 적었다.
그렇다. 인간은 좋은 일을 하면 생색을 내고 싶어 하는 약간은 유치한 마음을 갖고 있다. 좋은 일을 하고 생색내는 거야 안하고 한 것처럼 위장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지만, 이왕이면 저 스님처럼 받는 사람이 끝내 모르게 전달하는 좋은 일이야 말로 세상을 품격있고 향기롭게 하는 것 아닐까.
오히려 보이게 보다는 보이지 않는 이런 작은 배려가 쌓이고 쌓여 믿음직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것이리라 믿는다.
전 국민을 분노케 한 숭례문 방화자가 70대 노인으로 밝혀졌다. '오죽하면 이 짓을 하겠는가' 했지만, 꼭 그리해야만 했는지 되묻고 싶다. 600년 한 역사를 개인적 울분으로 태웠으니 속이 시원하신가. 그래서 남은 게 무엇인가. 노령에 차가운 감옥에서 생을 마감해야 할지도 모른다. 누굴 위한 화풀이고 누굴 위한 복수인가.
방화전에 적어놓았다는 편지를 보니 할아버지 나름대로의 빗나간 분노를 사회가 부추긴 측면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개인적 차원의 결정된 것에 대한 불복과 다수에 대한 보복을 연결해서 이해해 주기엔 그 원한이 너무나 개인적이고 제한적이다. 그래서 불질러야 한다면 이 세상에 남아날 것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반사회적 행동을 하게 된 계기가 토지보상금에 대한 불만때문이었다니 처량하기 그지없다. 이런 참담한 일을 벌이기 전에 누군가 그의 말을 들어주고 화를 눌러 줄 순 없었을까 안타깝기도 하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얼마나 많은 소중한 것들을 조건없이 보이지 않게 주고 받고 있을까'
저 스님처럼 끝까지 서서가진 못할 지언정 살아가면서 한두번쯤은 피곤한 이에게 잠시라도 자리를 내어줄 수 있는 측은한 마음은 지니고 살아야 하는 것 아닐까.
방화범이 스님의 십분의 일의 마음만 지녔더라도 최악의 선택으로 스스로를 옭아매는 패착만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세상일은 억울하다 생각하면 끝이 없다. 물론 구도자도 아닌 중생이 항상 손해보고 억울하게 살라는 말이 아니다. 다만 나눔과 양보속에서 세상이 따뜻해진다는 걸 믿어야 한단 뜻이다. 최소한 내 기분만으로 공동체적 가치는 파괴하지 말아야 할 것 아닌가.
어떠한 이유로도 개인적 원한을 다수를 향한 폭력으로 연결시키는 횡포는 용인될 수 없다. 어쩌다 우리 사회는 '나는 잘못없는 데 너는 문제'인 그래서 '다수에게 보복'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상황까지 왔을까.
이 시대에 팽배한 배금주의, 내 것에만 집착하는 사회, 손해보지 않겠다는 극단적 이기심이 숭례문 사태를 불러낸 것이다. 잘 생각해 보면 방화범 자신도 누군가로부터 저 여인처럼 조건없이 받은 것이 있을 것이다. 받은 것은 기억 못하고 못 받은 것만 쳐다 보고 앙심품는 인심, 세상은 위험하고 불안하다.
사회에 대한 화풀이성 폭력과 범죄는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 범죄가 끼치는 영역과 파장은 점차 다양화 하고 규모도 커지고 있다. 헌데도 우리 사회는 이런 범죄에 대한 예방과 대책이 전혀 없다는 것이 이번 일을 계기로 또 한번 아프게 확인됐다.
정부와 치안을 담당하고 있는 모든 관계자들은 한두 사람의 악의에 의해 다수가 대책없이 당할 수 밖에 없는 악순환의 고리를 어떻게 끊어나갈 것인지 이제부터라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또한 일 터질 때 마다 사후대책으로 엄한 애국심을 자극해 국민성금을 모아서 재건하는 단순후진뻔뻔시대로 돌아가선 제2, 제3의 숭례문 사태를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국보 1호는 사라졌지만 국가기관, 개인 모두가 이 사회에서 자신이 누구이고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뼈아프게 돌아 보는 성찰의 계기는 최소한 되어야만 한다. 그것이 우리 시대가 두눈 부릅뜨고도 속수무책으로 잃어버린 것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다.
또한 악의를 물리칠 수 있는 유일한 해답은 '함께 사는 세상'을 향한 다수의 지향과 확고한 인식밖에 없는 것 같다. 억울한 사람들이 생기지 않도록 함께 노력해 주는 세상이 아름답다. 또한 무엇인가 결정된 이후엔 덜 억울하도록 설득하고 이해시키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앙심품고 뒤에서 칼을 가는 사회는 더 위험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그렇게 가고 있는가. 누군가의 홧병을 생산시키지 않으며 홧병에 걸린 이들을 다독여 풀어낼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는가. 방치하고 원한을 키우고 있진 않은가. 다수가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는가.
곧 정권이 바뀐다. 경제지상주의자인 이명박 정부는 돈에 미쳐 반사회적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교도할 것인가 해법은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집권 5년동안 무차별 개발로 더 많은 원한을 만들어 내진 않을지, 숭례문 사태가 던지는 메시지를 잘 읽어야 할 것이다.
옛말 하나도 안 틀린다. '돈이 웬수다'. 위나 아래나 돈이라는 한 곳으로 쏠리고 있는 대한민국은 위태로워 보인다. 제발 정신차리고 잘들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