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지프스의 형벌, 그러나 멈추지 않는다.
- 우리를 다시 지역주의 굴레로 몰아넣는 자들에게 -
인간이 가장 고통스러워하고 견디기 힘들어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이른바 ‘시지프스의 형벌’이라 이름하는 ‘무용하고 희망 없는 노동’일 것이다. 시지프스는 신들로부터 높은 산꼭대기까지 바위를 굴려 올리는 형벌을 받는다. 이 바위는 산꼭대기에 고정되지 않고 다시 굴러 떨어진다. 그러면 다시 산 아래로 내려가서 그 바위를 굴려 올려야만 하는 것이다.
대통합신당과 민주당의 합당 소식을 접하면서 이 시지프스의 형벌이 떠올랐다. 민중은 정치가 개혁되고 지역주의가 무너지기를 소망하며 노무현을 대통령에 올리고 여당에 과반수를 확보해 주었다.
그러나 노무현은 굴러 떨어졌고, 신당은 도로 호남당으로 복귀하였다. 이제 이회창 신당이 충청당으로 복귀하면 정치는 정확히 옛날 그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온 힘을 다해 산 위로 돌을 밀어올린 민중은 자신들의 노력이 ‘무용하고 희망 없음’을 확인하며 절망한다.
지옥의 문 앞에는 “이곳에 오는 자들은 모든 희망을 버려라!” 라고 쓰여 있단다. 역으로 표현하자면 희망이 없다면 그곳이 바로 지옥과 같다는 말이다. 우리는 지금 지옥의 문을 지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민중의 고혈을 빨아 먹다가 국가부도 사태를 가져온 자들이 다시 정권을 잡았고, 민중의 소망을 도로 지역주의를 확립하는데 써 버린 가짜 민주 세력만이 존재하는 지금의 정치 현실을 보면서 무슨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이곳이 지옥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러나 시지프스는 오늘도 바위를 밀어 올리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그것은 그가 현자이기 때문이다. 이 일은 그에게 가해진 가혹한 형벌이지만, 그에게 주어진 유일한 일이다. 그가 이 일조차 하지 않는다면 그는 자신의 존재 인식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이 일의 무용함과 희망 없음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는 분명히 이 바위를 세울 수 있을 것이며, 그렇게 되면 무용해 보이던 이 일은 위대한 일이 될 것이다’라는 희망과 의미를 가지고 어깨에서 피가 나도록 돌을 굴려 올리고 있는 것이다.
비록 지금은 바위가 도로 산 아래로 굴러 떨어져서 절망스러움을 감출 길이 없으나 우리는 산 위에 바위를 올려 놓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맛본 자들이다. 군사 쿠데타 살인 정권을 무너뜨렸으며, 정권 교체를 이루었으며, 상고출신 노무현을 꼭대기에 세워봤다. 이것이 우리의 도전이고 희망이다. 우리는 이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그렇기에 오늘의 정치 현실이 아무리 처참하다고 해도 우리에겐 지옥이 아니다.
속절없이 꼭대기에 올려 졌던 노무현이라는 바위가 굴러 떨어짐으로써 우리는 다시 끝없는 저주 속으로 빨려 들어감을 느꼈으나 이제야 말로 모든 실체를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누가 적이며, 누가 배신자인지 분명히 알게 되었다. 노무현의 등과 옆구리를 찌르고 나온 칼에 묻은 피를 보고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꼭대기에 올려놓은 우리의 바위를 밀어 떨어뜨리려고 핏대를 세운 자들을 우리 눈으로 똑똑히 봤다.
그렇기에 이젠 그 자들에게 더 이상 속지 않을 수 있다. 그들이 아무리 우리를 속이려고 해도 속지 않을 수 있다. 자신들끼리 뭉쳐서 우리에게 선택을 강요한다고 해도 더 이상 어둠 속의 어린아이처럼 두려움 속에 그들의 손을 잡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이 아무리 곱고 하얀 손을 내민다고 하더라도 그 손은 결국 엄마를 잡아먹은 호랑이 손에 분칠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는 또 다시 바위를 밀어 올려야 한다. 저들의 현란한 눈속임과 방해를 이겨내고서 노무현이라는 바위를 꼭대기까지 밀어 올려 세웠던 것처럼 우리는 새로운 바위를 찾아서 밀어 올려야 한다. 이때 주의해야 한다. 속아선 안 된다. 바위가 좀 가볍다면 수월하겠지만 속에 불순물이 든 것이다. 불순물이 들어 있으면 꼭대기에 세웠을 때 스스로의 흔들거림으로 도로 굴러 떨어지고 마는 것이다. 우리는 이번 대선에서 그런 자를 분명히 보았다. 두 번 다시 이런 실수를 범하지 말아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