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 창당, 서두를 일이 아니다
일단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어서 좋습니다. 이야기를 주고 받아야 그 속에서 공감대가 만들어지고 대오가 만들어지지 않겠습니까?
두 아들 아빠님과 우국충정님 등은 비례대표를 날려버릴 수 없다는 이유로 조기 창당을 말씀하고 계시고, 유시민 의원님은 조기 창당에 회의적인 시각을 보이며 2년 후 지방선거를 목표로 창당 준비를 차근차근하겠다고 합니다. 저 역시 여기에 동의하는 편이구요. 하여간 논의를 이어가봅니다.(이하 경어체 생략)
망망대해의 외로운 돛단배
우리가 이 시점에서 논해야 할 것은 과거의 역사를 돌아보는 것이다. 먼 역사가 아니라 불과 10년의 역사다. 그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함은 물론이다.
거슬러 가보자.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은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이었나? 절대 그렇지 않다. 그것은 기적이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3홍 게이트'라 불리는 자식들의 비리와 권노갑 등 측근들의 부패로 식물대통령이나 마찬가지였다. 퇴임 1년 전부터는 사실상 대통령직을 정상적으로 수행하기 힘든 상태였다.
집권 여당인 민주당 지지율이 형편없었음은 말할 나위 없었다. 그런데 노무현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누구의 힘으로? 집권 여당의 힘? 전혀 아니다. 그것은 오롯이 '노무현과 시민들'의 작품이었다.
자, 그런데 거기까지가 전부다. 노무현 대통령은 집권 초기 '망망대해의 외로운 돛단배'라며 당신을 표현했다. '외로운 돛단배'는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토대의 부재를 말하는 것이다.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든든하게 뒷받침해줄 정당도, 정치인도, 시민세력도 변변치 않은 한국의 정치 지형을 말하는 것이다.
그 와중에 탄핵사태까지 거치면서 과반수의 열린우리당이 등장했다. 그러나 그들이 노대통령과 정치적 지향점을 함께 했나? 전혀 그러지 못했다. 그 결과가 2007년 대선이다.
탄탄한 토대 구축이 최우선
실로 2002년은 기적이었다. 그러나 기적은 토대의 부재를 말해주는 역설적인 표현에 불과하다. 그리고 우리가 깨달아야 할 교훈이 여기에 놓여있다. 튼튼하고 반듯한 토대 구축이 최우선의 과제라는 점 말이다.
설령 정당을 만들어서 비례대표를 배출한들, 도대체 정강과 정책은 언제 합의하여 만들 것인가? 노사모, 참평포럼, 시민광장은 지향점이 비슷하니까 그냥 모이면 되는가? 그렇다면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우리가 공통적으로 지향하는 가치점에 대해 합의는 되었나? 대충 되었다고? 솔직히 말해서 합의된 건 아무것도 없다.
어떤 분은 진보정당의 노선방향, 정당구조에 대해서 이미 나올만큼 나왔다고 한다. 도대체 뭐가 나왔는가? 나올만큼 나왔다고 한다면 정리 좀 해주시기 바란다. 아무리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다. 그동안 노대통령과 유의원의 각종 발언과 강연에 많은 이야기가 나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리되었나? 정리되지 않았다. 인식의 공유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노빠, 유빠라고 하는 우리 스스로도 제대로 학습되지 않은 내용들이다. 물론 고개 끄덕이며 이해는 했겠지만,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말과 행동으로 체화되었는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공부하자는 것이다.
토대구축이라고 했다. 무엇이 토대인가? 그것은 '각성된 시민세력의 확장'이다. 참여정부 5년을 거치면서 우리나라의 지식사회와 시민단체세력의 한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는 곧 '시민사회와 시민세력의 부재'로 표면화되었다.
국가의 의사를 결정하고 정책을 만들어 집행하는 프로세스는 다음과 같다.
여론형성-정책반영-정책결정-정책집행
이 가운데 최하부 단위는 여론형성 단위다. 언론은 중간매개체다. 여론형성의 제일 밑바닥은 일반국민들의 여론을 집적하는 시민사회세력이다. 이 토대가 모조리 무너진 상황이다. 이념의 부재가 불러온 사태다. 내가 굳이 사상과 이념을 말하는 것은 단순히 관념적인 논의를 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럴 만큼 한가하지도 않다. 무너진 시민사회의 토대구축은 사상과 이념의 정립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각성된 시민사회세력 구축이 최우선 과제
과거 87년 6.10항쟁 이후 우리나라는 시민운동이 만개했다. 그러나 그 시민운동은 국민들과 괴리된 소수 엘리트주의로 빠져버렸다. 그 결과 올바른 여론형성은 엄두도 내기 힘들어졌다. 참여정부 5년 내내 소위 좌파와 우파 진영에게 시달린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제2의 시민운동이다. 토대가 붕괴된, 즉 시민들과 유리된 시민운동을 반성하고 제대로 된 시민사회세력을 구축하는 게 최우선 과제다.
이런 토대를 구축하지 못하면 설령 5년 후에 유시민을 대통령으로 만들다한들, 제 2의 기적으로, 또 다시 외로운 돛단배 신세가 될게 뻔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런 기적은 되풀이되지 않는다. 초인이 나타나서 우리를 구원해주는 그런 기적은 2002년으로 끝났다.
노대통령이 주창한 시민주권운동은 단순히 정치영역에 해당하는 깃발이 아니다. 우리 사회 모든 영역에서 펼쳐야 할 운동이며, 정치는 각 영역의 의사를 집적하고 정책으로 관철시키는 최종의 단계에 불과하다.
우리 스스로가 먼저 각성해야 한다
하여간 지금 상황은 진보정당에 대한 개념정립도 안된 상태다. 소위 노빠, 유빠들이 공유하는 인식도 그리 넓지 않다.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공유하고 있을까? 나는 이것부터 이야기하자는 것이다. 인식의 공유는 그냥 노무현이, 유시민이 던져 준 말로 끝나서는 안된다. 그것은 단지 논의를 시작하는 화두에 불과하다. 엄청나게 많은 여백이 남아있다. 그 여백을 우리가 열심히 이야기하고, 그런 과정을 통해 인식을 공유하고, 사상체계로, 이념체계로 '정리'해야 한다.
우리 스스로가 시민사회의 주체세력으로 거듭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는 얘기다. 그 주체세력이 만들어내어 인식의 공유를 넓혀나가야 할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있다.
이런 튼튼한 시민사회세력이 존재해야, 이를 바탕으로 한 진보정당의 건설이 가능하며, 그래야 흔들림없이 백년을 지탱할 수 있다.
'타인의 언어를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그것을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가치로 체화하는 것은 별개다.'
그래서 지금은 공부하고 준비해야 할 단계다. 우리 스스로 각성하는 것이 먼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