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정치구도를 분석할 때 가장 유용하고 현실적인 것이 아마도 지역구도일 것입니다. 거의 대부분의 선거에서 지역구도는 확연히 눈에 보이는 수준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개표결과를 안봐도 훤히 예상할 수 있을 정도이니 가히 한국정치는 지역구도가 지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렇게 심각한 지역구도에 대하여 사람들의 안이한 인식을 대할 때마다 대단히 우려스러운 생각들이 떠 오릅니다. 지금 정치권이 서서히 정계개편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도 바로 지역구도와 일맥상통하고 있습니다. 정책이 같아도 지역기반이 다르면 쟁투하고, 정책이 전혀 달라도 지역기반이 일치하면 함께 가는 것이 바로 지역구도에 의한 정계개편일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지역구도로 인하여 생기고 있는 실질적인 문제점들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깊은 생각이 없이 단순히 지역구도는 좋지않다는 인식만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역구도 정치는 왜 문제일까요? 단순히 인구가 많은 영남이 유리하기 때문일까요? 지역구도에 상관없이 정치의 질은 높아질 수 있는 것일까요? 좀 생각을 정리해 볼 필요가 있을 듯 합니다.
첫째, 지역구도는 고질적인 대립과 갈등의 정치를 만드는 원흉입니다.
영호남을 각기 기반으로 하는 거대정당들이 경쟁하는 구도에서 각당은 지역유권자의 정서에 영합하여 상대쪽을 공격합니다. 영합의 수준을 넘어 적극적으로 지역갈등을 유발하고 증폭시켜서 선거에 유리한 국면을 조성하기도 합니다. 그런 과정에서 정치는 끝없는 대결만 있을 뿐입니다.
정책이 전혀 다를 바 없는 정당들이 서로 싸우는 것은 유권자를 결집하기위한 수단입니다. 대화와 토론은 의미가 없는 정치가 계속 이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국회가 싸우느라고 일을 못하는 중요한 원인중 하나가 바로 지역구도입니다.
둘째, 질 높은 정책대결은 실종될 수 밖에 없습니다.
지역구도 하에서 치뤄지는 선거에서 가장 표를 쉽게 확보하는 방법은 역시 지역구도에 기대는 것입니다. 과거 한나라당이 민주당에 대하여 비정상적인 비난을 하면 영남유권자의 표가 결집하고 그것은 그들이 승리하는 지름길 이었습니다. 민주당도 그렇게 반한나라당 정서만 자극하면 표를 쉽게 모을 수 있었습니다. 정책을 대강 제시해도 되는 이유입니다.
그렇게 선거의 승패를 판가름하는 정치에서 건강한 정책대결이나 질높은 정책의 개발을 기대하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국민은 정책에 대하여 관심을 가질 겨를이 없습니다. 우리 지역편인지 아니면 상대 지역편인지만 판단하게 됩니다.
셋째, 계급정당의 탄생을 막고 있는 것도 바로 지역구도입니다.
계급을 대변하는 정당이 반드시 바람직한 것만은 아닙니다. 그것도 역시 대립과 반목의 정치가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역구도에 비하면 좀 더 발전된 정당정치로 볼 수 있습니다. 지금처럼 영남의 빈민층이 한나라당을, 호남의 부유층이 민주당이나 열린우리당을 지지하는 현상은 국민이 진정으로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정치에 반영하지 못합니다.
정치라는 것이 국민의 이해관계를 반영하여 국가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것이라는 점에 반하여 지역구도는 근원적인 목적과 거리가 먼 정치행위를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계급정당들이 좀 더 생산적으로 발전하여 점차 정책적 차이가 줄어드는 것은 그 다음의 지향점이 될 수 있습니다.
넷째, 지방자치의 근간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습니다.
지난 5월 지방선거에서 여당은 참패를 했습니다. 물론 지역구도에 의해서만 그렇게 된 것으로 보기에는 열린우리당의 잘못이 큽니다만 결국 한나라당의 대승이었습니다. 광역자치단체장, 기초자치단체장, 각급 지방의회를 거의 장악했습니다. 물론 수도권의 경우 그나마 열린우리당, 민주노동당, 민주당등이 지방의회에 소수를 진출시켰기 때문에 약간의 견제는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영호남은 어떨까요? 영남은 온통 한나라당의 싹쓸이입니다. 지방정부에 대한 의회의 견제는 전혀 기대할 수 없습니다. 마치 지방의회가 단체장의 거수기 노릇으로 전락한 모습입니다. 끼리끼리 나눠먹기 좋은 모양이 되었을 뿐입니다. 호남에서는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이 좀 고루 분포되어 그나마 덜한 모습이 되었습니다만 다시 지역구도가 강화되면 영남보다 더욱 싹쓸이가 횡행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복마전이라는 지방자치단체들의 행정은 거의 업자들의 돈벌이 수단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입니다.
다섯째, 보스와 똘마니들의 패거리 정치를 강화할 것입니다.
의회의 예를 들면, 국회의원 각각이 자신의 의사와 지역구민의 의견을 수렴하여 입법활동을 하고,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이 바람직 합니다. 하지만 지역구도 정치에서는 지역을 대표하거나 상징하는 정치인의 카리스마에 의하여 모든 것이 결정됩니다.
공천권이나 득표에 있어서 지역보스의 비위를 건드리면 정치적으로 매장될 것이기 때문에, 지역민의 의사보다는 항상 보스의 의중이 중요한 정치적 결정의 기준이 됩니다. 국민의 뜻이 정치에 반영될 수 없게 만들고 오로지 보스와 똘마니들의 패거리 정치만을 강화하는 것이 바로 지역구도 정치입니다.
여섯째, 정치적 이합집산을 반복하게 만듭니다.
우리나라의 정당들이 단명하는 이유중 하나가 바로 지역구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정당이 정책지향을 중심으로 뭉친 집단이 아니라 지역적 기반을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지역의 대표성을 누가 가지느냐에 따라서 항상 이합집산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가장 지역기반이 확고히 유지되고 있으며, 이 구도가 가장 유리하다고 할 수 있는 한나라당만이 그나마 좀 오래된 정당입니다. 나머지는 항상 지역연합이나 인물중심의 이합집산을 반복하게 되어 있습니다. 매 선거마다 상황이 달라지면 거기에 적응하여 살아남기 위한 정치인들의 발버둥을 반복적으로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일곱째, 지역구도는 개혁세력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합니다.
인구의 구성상 영남을 기반으로 하는 한나라당은 모든 선거에서 이길 수 밖에 없습니다. 수도권의 인구는 영남,호남 및 충청출신이 거의 비슷한 분포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나머지 전체를 합해도 영남의 유권자 수에 모자랄 정도입니다. 거기에 강원과 충청권 일부는 영남과 투표성향이 거의 비슷합니다. 지역구도를 껴안고 가면 갈수록 개혁세력은 점점 불리한 판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대한민국 정치의 개혁을 위한 첫걸음은 당연히 지역구도의 타파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을 놓아두고 다른 무엇을 추구한들 발전은 없고 퇴보와 전진을 반복할 뿐 입니다. 근원적인 문제는 지역구도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정치권에 훌륭한 사람을 들여보내도 계속 물이 들고 금새 썩어버리는 현상은 바로 이러한 지역구도가 너무도 거대한 벽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적당히 현실과 타협해서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우선의 승리를 추구하는 집단은 결코 긴호흡에서의 패배를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타협하는 정치인들을 강력히 비판하고 그들을 도태시키려는 국민이 많아져야 합니다. 현실이 그러하니 이해해줄 부분이 있다는 안이한 생각은 우리의 정치를 영원히 후진국 수준에 머물게 하는 매국행위입니다. 그렇게 해서 나아질 것이라면 아직까지 이렇게 강고한 지역구도가 남아있지도 않을 것입니다.
지역구도는 정면으로 도전하고 깨나갈 일이지,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껴안을 보물이 결코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