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마주친 유빠
인터넷이란 것이 매우 묘한 세상이다.
어떤 정치토론 사이트에다 유시민 발언록을 올리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유빠가 되어 있었다. 몇 년씩 유시민 장관을 지지하는 까페를 만들거나, 팬클럽 활동을 꾸준히 하는 정말 성실한 유빠들과는 차원이 다른 나는 솔직히 유빠라고 하기에도 뭐한 사람이다.
나는 그냥 자연스럽게 유시민의 글을 좋아하고 그의 정치적 태도를 신뢰하는 소심한 지지자에 불과하다. 그런 내가 진짜 유빠를 만난 경우는 딱 두 번이다.
처음으로 만난 유빠는 대통령 탄핵이 일어났던 때였다.
평소에도 집단으로 움직이는 것을 극히 좋아하지 않는지라, 나는 탄핵시위도 혼자서 참가했다. 하루 일이 끝나고 대통령 탄핵이 결정되었던 날 밤, 나는 혼자 차를 몰고 여의도로 향했다. 순복음 교회 앞에 차를 세워놓고 까마득한 옛 기억을 추수르며 국회 앞으로 발걸음을 돌렸었다. 세상에서 가장 온순한 인간 중의 한 명을 화나게 만든 순간이 바로 그때였다. 나는 평소에도 왠만하면 큰 소리도 내지 않는 사람이다.
현대카드 빌딩 앞이었던 것 같다. 밤은 스산하게 깊어져 가는데, 수백 명의 사람들이 촘촘이 자리를 차지한 그곳에는 설명할 수 없는 슬픔과 분노가 공존하고 있었다. 세상은 언제나 결국에는 올바른 방향으로 갈 것이라는 성실하고 순진한 믿음이 부서지고 있었다. 나는 서류 가방을 짊어지고 촛불도 하나 준비하지 못한 채 어정쩡한 자세로 그저 집단 속으로 섞여들어가 있었다.
그 때 내 옆에 있었던 젊은 아가씨가 나의 어색함을 참지 못하고 말을 붙여왔다. 그녀는 나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어왔다. 나는 그냥 화가 나서 혼자서 왔다고 말했다. 그러자 자신은 시민사랑 회원이며 유시민 의원이 입원했다는 소식을 받고 왔다고 했다. 나 역시 유시민을 좋아했으므로, 왠지 모를 호감이 일었다.
속으로는 "아하 이 양반이 유빠구만..."
나에게 촛불을 나눠주고 신문지 깔개를 만들어줬던 그녀는 어디에 있을까.
그리고 오늘 또 한 명의 중년의 유빠를 만났다.
유시민 장관보다는 어리지만 이제 40대 중반에 들어선 386의 첫 세대. 나의 친척이지만 나는 그 인간이 유빠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친척들 사이의 정치 격론(?)장에서 늘 조용히 앉아만 있어서, 조용히 변심한 40대로서 한나라당을 지지하고 있으려니 짐작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우연히 만나 한참 이 이야기 저 이야기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유시민을 칭찬하고 있더란 말이다. 밥을 먹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담배 피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어디서 많이 듣던 논리, 어디서 많이 듣던 평가가 계속 나왔다. 그래서 내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유시민 좋아해?" 간결한 응답이 되돌아왔다. "그래..."
가까운 곳에서 또 먼 곳에서 서로의 환경은 다르지만 정치적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 공유의 매개가 유시민이라는 걸 알게 되는 순간이 있다. 흔치는 않지만 그 순간은 기분 좋은 경험이 된다. 지금은 유시민 장관으로 있지만, 언젠가는 유시민 의원으로 돌아오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그의 정치적 선택이 어떻게 이루어질지 알 수 없지만, 썩 괜찮은 정치인으로 만나게 될 것을 확신한다.
그리고 그의 행로에 따라서 또 다른 유빠, 혹은 유시민 지지자를 만날 것이다. 그러한 만남이 정치적 시민으로서의 유의미한 연대로서 맺어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