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은 즉자적으로 분석해서는 안된다. '역사적 의미'를 찾지 못하면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특히 '한나라당 vs 반한나라당'의 이분법적 대결구도로 정치를 들여다보는 정치공학적 분석도 피해야 한다.
그나마 의미가 있다면 '진보 vs 보수'라는 틀거리로는 유의미한 분석이 나올 수는 있을 것이다. 왜 그런지는 차차 말씀드리겠다.
먼저 20대와 30대가 살아온 시기를 이해해야
먼저 투표율이 저조한 20대를 변명해 본다. 동시에 30대도 변명한다.
20대는 1978년~1988년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이다. 이 세대의 막내는 6월 항쟁 직후에 태어났다. 이들이 20세로 막 성인이 된 시기는 1998년~2008년이다. 또한 386세대(1960~1970년생)와 20대 가운데 끼여있는 30대 대다수(1971~1977년생)도 20대가 경험한 시대와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이들이 성인이 되는 시기에 이르기까지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그것은 바로 민주주의의 발전이다.
|
1단계 민주주의 완성
1987년 6월~1997년
- 대통령 선출 직선제 쟁취에서 김대중 대통령 선출에 의한 평화적 정권교체
2단계 민주주의 완성
2002년 12월~2007년 12월
- 참여정부 출범에 의한 특권질서 해체 및 민주적 제도 확립 |
이런 저런 갈등이 있었지만 적어도 권력의 횡포나 독재, 권위주의를 20대는 경험할 기회가 없었다. 20대가 살아온 시기는 두 번의 정권교체가 일어나 절차적 민주주의는 번영을 이룬 시기다. 소위 386 세대(1960~1970년생)가 군사독재와 권위주의 체제를 견뎌내야 했던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그리고 이 시기는 한국 경제가 크게 발전한 시기이기도 하다. 민주주의가 발전하는 속도만큼 1인당 국민소득도 크게 높아졌다.
전두환 정부의 임기가 끝난 1988년 4000불을 돌파한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해 불과 10년이 안되는 1996년에 1만2천불을 돌파하기에 이른다. 그 후유증으로 1997년에 IMF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이를 잘 극복한 결과 2007년에는 2만불을 돌파한다.
20대가 자란 시기는 IMF 위기도 극복한 경제번영기였다. 절차적 민주주의도 발전하여 권력에 대해 불의를 느낄 수 있는 요인도 없었고, 정치에 대해 각성할 요인도 부족한 상황이었다.
※ 분명히 나의 글을 오해할 사람들이 있어서 미리 전제를 밝혀두자면 나는 이들을 긍정적으로 변명하는 것이 아니다. 객관적인 사회현상으로 파악을 해야만 이들을 각성한 시민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대안도 찾을 수 있다는 걸 말하는 것이다.
386세대에 포함되지 않는 30대는 약간 다르다. 특히 30대의 막내들은 막 성인이 되었을 때 IMF라는 국가적 위기에 직면한 세대다. 이들의 부모들이 일자리를 잃으면서 등록금을 걱정해야 했고, 이들의 제일 어른인 1971년생들은 극심한 청년실업의 고통을 겪어낸 세대다.
소위 '민생'이라는 프로파간다에 쉽게 노출된 세대이기도 하다. 그들이 경험한 것은 당장의 생존문제였고, 정치는 너무 멀리 있었다. 이들이 정치로부터 멀어지는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결과일지도 모른다.
이제 386의 책임을 묻는다
386 세대는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과 함께 한 세대다. 온 몸으로 독재정권과 싸워야 했고, 평화적 정권교체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인 세대다. 20대, 30대와는 전혀 다른 상황을 경험한 세대다. 정치적 각성에 있어서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들 역시 경제적 번영을 구가한 세대이기도 하다. 386세대가 사회에 발을 내딛은 시기는 대체적으로 IMF 위기 전후다. 경제적 위기를 겪은 세대이면서 동시에 그 위기를 극복한 이후의 경제적 번영에 직접 동참한 세대다.
사회적으로는 가정을 꾸리고 최대의 관심사인 아파트 장만에 승용차 구입 등 소비를 이끌었던 세대이기도 하다.
현재를 기준으로 386세대를 보면 대체적으로 38세에서 48세에 분포한다. 이들은 10년전인 1998년 이후 주로 결혼을 했으며 2002년 이후에 아파트와 승용차를 구입한 세대이기도 하다.
※ 당장 이를 뒷받침할 통계를 내놓지 못해서 미안하다. 이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도 아니고, 통계청 자료를 찾아보았으나 연령별 통계를 찾기 힘들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틀린 분석은 아닐 것이다.
38세와 48세 걸쳐있는 386세대는 사실 우리나라 경제가 발전하는 한 가운데에 존재한 세대이기도 하다. 1997년 IMF 위기를 극복한 이후 현재에 이르는 경제적 번영을 최대한 누린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 결과 386세대가 우리 사회에 폐단을 끼친 부분이 바로 부동산과 사교육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최대 관심사이자, 소위 민생을 피폐하게 만드는 주범인 부동산시장과 사교육시장의 폭발을 이끈 주역들이 다름 아닌 386세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출빚이 가장 많은 세대, 문화향유에 대한 욕구가 가장 강한 세대, 자신 소유의 아파트에 집착이 강한 세대, 자식 교육에 대한 열정이 지나친 세대, 그것이 바로 386세대의 또다른 모습이다.
※ 이 부분 역시 디테일한 통계작업이 필요한 부분이다. 예를 들어 각 연령대별 소득수준, 아파트와 승용차 보유 현황 등의 통계가 필요하다. 혹시 도움주시는 분이 있으시면 참 고맙겠다.
한 때 정치적으로 가장 각성한 세대인 386이 바로 가장 세속적인 욕망을 추구하는 세대이기도 하다. 나는 지금 세속적인 욕망을 추구하는 것이 나쁘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현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현상에 앞으로 우리가 모색해야 할 대안이 숨어있다.
두 번의 정권교체, 그 주역은 모두 386세대
나는 이번 총선 결과를 20대와 30대에게 묻는 것은 전혀 과학적이지도, 객관적이지도, 미래지향적이지도 않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리고 동시에 미래를 위해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모색하기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다.
1997년 김대중 대통령의 탄생은 386세대의 염원 그 자체였다. 오랜 군사독재와 권위주의 체제를 온 몸으로 겪어야 했던 세대이기 때문이다. 김민석, 임종석, 오영식 등 386세대를 대표했던 주자들이 평화적 정권교체의 전위대 역할을 했음은 불문가지이다.
그리고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의 탄생 역시 386세대가 한 가운데 서있다. 그 결과 참여정부는 386이 주무른다는 마타도어에 시달리기도 했다. 이 당시에는 노무현이라는 새로운 코드가 20대와 30대를 정치로 불러모은 시기이기도 했다.(별개의 주제로 남겨둔다)
그만큼 386세대가 한국 민주주의 발전 역사에 한 가운데 서있었음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386세대는 어느 하나의 '가치'로 집결된 세력은 아니다. 앞 단락에서 말했듯이 부동산과 사교육시장의 팽창 주범이 바로 386이라는 점이다. ‘욕망’의 극대화를 가져온 세대 역시 386이다.
이명박 대통령으로의 정권교체 주역 역시 386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두고 싶은 것이다. 결국 97년의 정권교체도, 2002년의 정권 재창출도, 그리고 2007년의 정권교체도, 그 중심에 386세대가 서있다.
'욕망'과 '가치'의 대립
이 지점에서 '욕망 vs 가치'라는 대립구도가 도출된다. 386세대의 모순이기도 하다. 정치적으로 각성(가치 추구)하면서도 동시에 '욕망을 추구'하는 모순적 세대가 386세대다. 그리고 오늘날 2007년과 2008년에 386세대는 '욕망'을 선택했다.
386세대가 아파트값 상승으로 상징되는 욕망을 선택한 것은, 그들에게 더 이상 추구해야 할 가치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87년 6월 항쟁과 97년 정권교체, 2002년 정권 재창출을 이어갈 가치를 스스로 확립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 사회의 보수화를 이야기한다. 보수화라는 표현 자체에 대해서는 별도로 분석이 필요하겠지만 일단 긍정하는 토대위에서 보더라도 한국 사회의 보수화를 이끈 세대는 다름아닌 386이다.
2007년 대선은 386이 안고있는 모순이 드러난 선거이기도 하다. 그리고 2008년 총선은 그 연장선상에 불과하다.
2007년 대선은 진보와 보수의 대결도 아니고, 한나라당과 반한나라당의 대결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뚜렷한 지역주의 대결도 아니다. 본질은 바로 '가치 vs 욕망'의 대결이었다.
이명박과 한나라당은 욕망을 자극했고, 그 반대자들에게는 가치가 없었다. 오히려 이명박의 반대자들 역시 민생이라는 정체불명의 프로파간다로 인간의 욕망을 자극했을 뿐이다. 욕망의 승리가 바로 2007년 대선이다.
그런데 갑자기 2008년 총선 결과를 놓고 투표율이 저조한 20대에게 몰매를 때린다. 대단히 부도덕한 처사다. 그들을 때리기 전에 한국 사회를 욕망으로 치닫게 한 386 스스로에게 회초리를 들이대야 마땅하다.
386세대는 절차적 민주주의 완성 이후 새로운 미래비전을 세우는 데 실패했다. 20대와 30대가 배울 수 있는 그 무엇(가치)을 남기지 못했다. 오히려 절차적 민주주의를 획득한 이후 실질적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데 무관심하거나 조소를 보냈던 세대가 바로 386세대다.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가 추진했던 각종 정책을 여기서 다시 꺼내지는 않겠다. 다만 명토박아 두고 싶은 것은 1인 혹은 소수가 독점했던 권력을 국민에게 되돌려주는, 실질적 민주주의의 완성을 위해 노력했던 참여정부의 노력을 폄하하는데 가장 앞장섰던 사람들이 바로 정치적으로 각성했다던 386이라는 점이다.
지역주의를 허물기 위한 노력의 산물인 전국정당 열린우리당의 붕괴는 역사적으로 가장 퇴행적인 것으로 기록될 것이며, 이를 막아내기는 커녕 홍위병으로 앞장섰던 386세대는 역사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현실 정치권력의 획득(절차적 민주주의)에만 집중한 세력의 한 가운데에 김민석이니 우상호니 임종석이니 하는 386그룹들이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절차적 민주주의의 완성을 넘어 실질적인 민주주의(가치) 쟁취에 무관심한 결과는 바로 ‘욕망’앞에 무릎을 꿇어야 했다는 것이다.
분화하는 386, 기로에 선 386
이 지점에서 386을 하나로 묶어서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음을 느낄 것이다. 그렇다. 386도 분명히 분화했다. 이렇게 저렇게 나뉘어지고 있다. 그 기준은 바로 ‘욕망과 가치’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일단 386세대를 보면 아래와 같다.(나의 주관적 기준이다. 원래 학자들도 자기 나름대로 기준을 세우고 분석을 한다. 나의 기준에 불만 없으시길 바란다. 불만이 있다면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면 될 일이다.)
|
가치지향적 386 : 실질적 민주주의 쟁취에 관심을 가진 386
욕망지향적 386 : 부동산과 사교육에 경도된 386
권력지향적 386 : 민주당과 한나라당에 존재하며 현실 정치권력
쟁취에 경도된 386 |
'가치지향적 386'과 '욕망지향적 386'은 일반 시민들로 존재한다. 그리고 '권력지향적 386'은 그 대치점에 서있는 현실정치인들이다.
이번 총선 결과를 보면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서 국회에 입성하는 386이 굉장히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386세대의 숫자는 굉장하다. (누가 자료를 올려주시면 감사하겠다. 지금 시간에 쫓겨서 자료정리를 못했다.)
한나라당의 386은 대거 국회에 입성했지만, 민주당의 386은 대거 낙선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가치를 세우지 못한 세력이 인간의 욕망을 자극한 세력에게 패배했음을 말해준다.
▲ 한나라당 공천으로 국회 입성하는 386.
왼쪽부터 홍진표/신지호/최홍재/정태근/김성식/권영진/구해우
시민으로 존재하는 386을 보더라도 마찬가지다. 가치지향적 386은 극소수다. 그들은 이제 시민주권운동을 이야기하며, 개념을 제대로 정립조차 못하고 있는 상태다. 이대로가면 욕망의 질주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386은 기로에 서있다. 자칫 욕망에 휩쓸려버릴 수 있는 기로에 선 우리 사회의 주축세력이 바로 386이다.
시간관계상 여기서 이어질 '386의 비젼과 새로운 모색'에 대해서는 내일 쓰겠다.
그동안 총선과 관련해서 쓴 글, 그리고 오늘의 글, 결코 단발적으로 쓰는 글이 아니다. 모두 주제의 일관성을 갖고 연결된 글이다. 내 나름대로 미력하지만 새로운 가치를 세우고, 미래를 모색하고 있다. 진지한 반론과 보론이 이어진다면 감사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