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천국문지기입니다. 연일 계속되는 쇠고기 공방을 보면서 울적한 마음을 감출 수 없습니다. 국민의 뜻과 염원을 무시하는, 국민의 건강과 안녕을 무시하는, 결국 대한민국의 근본원리인 헌법을 무시하는 이명박 정권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합니다.
어떤 분들이 현재 이명박 정부의 행태가 70년대 유신체제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이야기합니다. 저도 일정 부분 그 의견에 동감합니다. 그러면서 문득 드는 생각이 대한민국에서도 "교조주의"가 부활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는 분명히 역사의 발전을 후퇴시키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부마항쟁과 87년 6월항쟁을 통해 낡은 교조주의를 배격하고 새로운 민주질서를 이룬지 20여년만에 과거로 회귀하는 움직임에 대해 분명한 문제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 교조주의 부활의 조짐과 문제에 대해 논의해 보고자 합니다. 이 글은 경향신문 5월 8일자 박홍규 칼럼 "정치와 깡패"에서 모티브를 떠 올렸음을 미리 밝힙니다. 관심이 있으신 분은 아래 글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원문보기 : [박홍규 칼럼] 정치와 깡패
늘 강조하듯 필자가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 글은 철저히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니 시민광장 회원님들의 반대논의도 충분히 있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비판은 필자의 무지의 소산이기 때문에 겸허히 수용하겠습니다.
1. 교조주의의 정의와 유신체제 하에서의 교주주의
교조주의의 사전적 정의는 "전승된 신념·학설·교의로부터 출발하여 그 진리내용과 인식가치를 구체적으로 주어진 새로운 인식과 실천적인 경험에 비추어 재고하지 않는 무비판적이고 비역사적이며 형이상학적인 사고방식"입니다. 쉽게 풀이하면 하나의 가치관과 철학을 절대적인 진리로 인식하여 그 가치관과 철학을 무조건적,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여 다른 가치관과 철학을 인정하지 않는 사고체계를 의미합니다.
특히 이러한 교조주의는 흔히 절대적인 진리인 교조(敎條)와 절대적인 진리를 처음 주장한 교조(敎祖)와의 일치가 생기게 됩니다. 여기서부터 교조주의의 폐해는 시작합니다. 교조(敎條)와 교조(敎祖)의 일치에 따른 문제점은 아래에서 자세히 기술하겠습니다.-앞으로의 논의에서 혼동을 피하고자 교조(敎祖)를 교주로 표현하겠습니다.-
1960년대 군사구테타로 집권한 박정희는 정권의 정통성이 미약했습니다. 따라서 정권의 정통성을 주장하는 수단으로 교조주의를 교묘히 이용했습니다. 즉 당시 상황에서 한국전쟁을 경험한 세력의 결집을 위해 "철저한 반공주의"를 하나의 교조로 산정하고, 이를 대대적으로 홍보하여 자신의 정통성을 세우는 도구로 활용하였습니다.
또한 "조국 근대화"를 또 하나의 교조로 산정하여 민심의 이반을 막으려 노력했습니다. 이 부분은 아래 혁명공약을 보시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군부정부의 교조주의는 60년대 국민의 단결과 정부의 집중적인 지원에 의해 어느 정도 가시적인 성과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여기까지는 교조주의의 순기능이 적절히 작용을 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혁명공약
1. 반공을 국시의 제일의로 삼고, 지금까지 형식적이고 구호에만 그친 반공태세를 재정비 강화한다.
2. UN헌장을 준수하고 국제협약을 충실히 수행할 것이며, 미국을 비롯한 자유우방과의 유대를 더욱 공고히 할 것이다.
3. 이 나라 사회의 모든 부패와 구악을 일소하고 퇴폐한 국민도의와 민족정기를 바로잡기 위해 정신한 기풍을 진작시킨다.
4. 절망과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고 국가자주경제 재건에 총력을 경주한다.
5. 민족적 숙원인 국토통일을 위해 공산주의와 대결할 수 있는 실력의 배양에 전력을 집중한다.
6. <군인> 이와 같은 우리들의 과업이 성취되면 참신하고 양심적인 정치인에게 정권을 이양하고 우리는 본연의 임무로 복귀할 준비를 갖춘다. <민간> 이와 같은 우리들의 과업을 조속히 성취하고 새로운 민주공화국의 공고한 토대를 구축하기 위해 우리의 심신을 바쳐 최선의 노력을 경주한다.
하지만 군부정부의 교조주의가 왜곡이 일어나기 시작한 계기가 바로 71년 "3선개헌"과 이와 연결되는 72년 "유신헌법"의 제정입니다. 박정희 정권은 이쯤에 이르러 조국 근대화와 철저한 반공주의라는 교조와 박정희라는 교주의 일치를 시도하게 됩니다. 이러한 시도의 정점이 "한국적 민주주의"의 제창입니다.
한국적 민주주의의 내용은 "서구식 자유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려면 그러한 이념과 제도를 지탱할 수 있는 특정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여건이 있어야 하는데, 한국의 경우에는 국제적 평화와 국내적 정치안정 및 경제적 안정과 번영이 없고, 사회적 동질성이 깨어져 있으며, 정치-사회세력 간에 타협과 양보의 정신이 부족하기 때문에, 서구식 민주주의는 한국에서 오히려 많은 역기능을 초래했는데, 이러한 역기능을 극복하고, '총화'를 달성하여 안보위기의 극복, 경제성장의 지속, 남북대화를 통한 평화통일의 달성과 같은 한국사회가 해결해야 할 시대적 과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토착화된 민주주의체제로서 한국적 민주주의체제인 유신체제가 요구된다"는 것입니다.
요약하면 현재 한국상황에서 서구적 민주주의를 시행할 토양이 부족하기 때문에 민주주의의 일부 기능을 제한하여 체제발전을 도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유신체제의 정당성을 국민에게 각인시키고자 시도하게 됩니다. 또한 이러한 한국적 민주주의-이른바 유신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박정희 대통령의 지도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국민에게 끊임 없이 부각시켜 교조와 교주의 일원화를 시도하게 됩니다.
이러한 교조-교주 일원화 움직임은 비판세력에 대한 강력한 탄압을 필연적으로 수반하게 됩니다. 대표적인 것이 긴급조치입니다. 1974년에 발표된 긴급조치 1호부터 1975년에 발표된 긴급조치 9호에 이르기까지 체제에 대한 어떠한 도전과 비판도 강력히 통제하여 교조-교주 일원화를 공고히 합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필연적으로 국민의 저항을 야기할 수밖에 없었고 1979년 부마항쟁과 10.26사태로 이어지며 정권의 몰락을 야기하는 중요한 요인이 됩니다. 즉 체제를 강화하기 위한 교조주의의 왜곡이 결국엔 체제의 붕괴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가 된 것입니다.
이상의 역사적 사실에서 교조주의의 순기능과 역기능을 알 수 있습니다. 즉 교조주의의 경우 올바른 교조의 설정은 구성원의 단결과 협력을 가능케하여 조직의 역량을 최대한으로 키울 수 있지만, 교조와 교주의 일원화 움직임은 폐쇄적이고 무비판에 의해 조직의 붕괴를 야기할 수 있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단지 박정희 정권만이 아니라 동유럽이나 남미 독재정권의 붕괴, 중세 카톨릭 쇠락의 역사에서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2. 유신체제의 붕괴와 교조주의 왜곡의 절정
박정희 정권을 이어받은 전두환 정권에서도 교조주의는 계속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10.26사태와 유신체제의 붕괴로 한국 내에서 교조적 민주주의가 사라질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이른바 서울의 봄으로 지칭되는 흐름 속에서 반대세력의 분열이 일어나게 되어 교조적 민주주의의 완전 해체는 어려워졌습니다. 그럼 서울의 봄 시대에 유신반대체제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바로 그들 세력 내의 교조주의가 절정에 달하게 됩니다.
유신체제를 반대하는 세력들의 경우 유신체제 하에서는 "유신체제 극복"이라는 하나의 절대적인 목표를 위해 단결했습니다. 또한 유신체제를 옹호하는 움직임에 대해 강력한 반발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세력의 내부에서 원하든 원치 않았든 교조주의의 움직임이 나타납니다. 교조주의를 통해 조직을 통합하고 조직의 역량을 집중함으로써 결국 유신체제의 극복이라는 지상명제를 실현하게 됩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유신체제의 극복이라는 명제를 실현할 때 쯤에서 그들 세력 내부에서 교조-교주 일원화의 움직임이 이미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특히 교주의 다원화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즉 유신체제 극복이라는 원칙의 실현과 이에 따르는 민주주의 회복이라는 또 다른 원칙을 산정하는 과정에서 헤게모니 다툼이 벌어지게 됩니다. 이른바 YS와 DJ의 선명성 경쟁이 바로 그것입니다. "민주주의 회복"이라는 하나의 교조를 둘러싸고 교주의 정통성 투쟁을 함으로써 세력의 분화와 약화를 초래하게 되고 결국 민주주의 회복이라는 원칙을 실행할 구심력을 잃게 되면서 전두환 정권의 탄생을 결과적으로 돕게 됩니다.
YS와 DJ의 분열과 90년대 학생운동권의 분열을 동일시하는 또 다른 견해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부분은 분명히 다릅니다. YS와 DJ의 분열은 교주의 정통성 타툼이었다면, 학생운동권의 분열은 서로 다른 이념의 다툼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즉 YS와 DJ의 분열은 정치적인 논리에서의 다툼이었다면 운동권의 분열은 서로 다른 교조주의의 충돌이라고 보는 점이 옳은 견해일 것입니다. 좀 더 상술하자면 운동권 세력의 경우-일반적으로 NL과 PD로 표현됩니다.- 정권타도라는 대명제에 서로 다른 교조주의가 연합을 한 형태로 지속되다가 그들의 목적이 달성이 되었을 때 각자의 교조주의로 분화한 것이라 보면 옳을 것입니다. 최근의 민주노동당 분당의 경우도 이와 같이 해석해야 할 것입니다.
말이 좀 다른 부분으로 빠졌는데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 5공화국으로 지칭되는 전두환 정권에서는 교조주의의 왜곡이 절정에 달한 시기였다고 생각합니다. 이 시점에 와서 모든 교조주의 세력들에게서 교조-교주 일원화를 넘어서 교주의 절대적인 지위를 인정하는 형태로 변하게 됩니다. 유신체제의 경우는 정권에서만 이러한 움직임이 일어나지만 전두환 정권에서는 정권 내부만 아니라 반정부세력(표현이 적당한지 모르겠습니다.) 내부에서도 교주의 절대적인 지위를 인정하는 사이비 교조주의가 절정에 달하게 됩니다. 이쯤에서는 교조는 없어지고 교주만 남은 형태가 된 것입니다.
3. 6월항쟁과 사이비 교조주의 붕괴, 그리고 미완성
1987년 6월 대한민국은 뜨거웠습니다. 호헌철폐와 직선제 개헌쟁취의 거대한 파도가 대한민국의 전체를 휘감았습니다. 바로 그간 지속되어진 사이비 교조주의에 대한 국민적인 저항이 시작된 것입니다. 즉 이러한 흐름 이면에는 60년대 이후 계속되었던 정치적 교조주의의 배격이라는 국민들간의 암묵적인 합의가 존재하였고, 그 합의가 호헌철폐와 직선제 개헌이라는 구호로 등장하게 됩니다.
6월항쟁이 기존 유신체제 하에서의 반정부운동, 전두환 정권 내의 민주화투쟁과 다른 점은 바로 교주의 존재가 소실되었다는 점입니다. 물론 유신체제 하에서의 반정부운동, 전두환 정권 하에서의 민주화투쟁의 일련의 역사적 흐름의 결과로 6월항쟁이 발발한 측면이 크지만-물론 필자도 6월항쟁의 가장 커다란 요인이 이러한 역사적 흐름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가장 뚜렷한 변화는 주도세력과 추종세력(표현이 좀 어려워 그냥 이렇게 표현합니다.)의 구분이 모호해졌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즉 기존의 반정부활동은 소수의 지도자와 그를 따르는 대중에 의해 조직적으로 결성되고 활동했다면 6월항쟁에 이르러서는 주동세력과 추종세력의 차이가 없어졌다는 점이 가장 큰 변화입니다. 과연 누군가가 6월항쟁의 주도자를 특정할 수 있겠습니까? 만일 특정한다면 그건 아마도 현 체제를 부정하는 국민 전부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6월항쟁은 4.19혁명과 함께 가장 대표적인 민중봉기운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6월항쟁을 통해 전두환 정권은 붕괴하였고 노태우 정권이 탄생했습니다. 우리는 이 과정을 통해 사이비 교조주의를 완벽히 붕괴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잡았는데 일부 정치인의 욕심에 의해 다시 10년 후로 교조주의의 붕괴를 미루어야 했습니다. 이 욕심이 바로 3당합당입니다. 3당합당이야말로 사이비 교조주의의 가장 큰 폐해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교조가 사라지고 오직 교주만이 존재하는 사이비 교조주의나 사이비 교조주의 집단의 경우 자신의 이익을 위해 어떠한 행위도 할 수 있으며, 이 행위는 정당하며, 비판을 하는 세력은 철저히 배격하는 사이비 교조주의의 만행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결국 3당합당을 통해 한국의 사이비 교조주의 정치의 극단을 보게 됩니다. YS와 DJ의 대립 속에서 교조라 불리는 원칙이나 이념은 상실된 채 오직 교주라 불리는 두 거물 정치인의 의중에 의해 한국정치의 향방이 좌우됩니다.
6월항쟁을 통해 사이비 교조주의 정치 배격의 희망을 보았다고 한다면, 한국정치사에서 사이비 교조주의의 완전한 붕괴는 2002년 대선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됨으로써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노무현 후보와 이회창 후보의 경쟁구도를 일반 국민과 일부 기득권세력의 대결로 볼 수 있고, 이를 좀 더 확대해서 생각하면 사이비 교조주의 완전붕괴를 바라는 세력과 교조주의 정치형태를 지속하려는 세력간의 투쟁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 투쟁의 결과 참여정부가 탄생하였고 한국적인 사이비 교조주의 정치는 붕괴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저의 이런 의견에 "참여정부도 일부 추종세력-이른바 노빠라 창하는-과 이를 이용하는 교주-아마도 노짱을 말하는 것이겠죠.-에 의한 정부라 볼 수 있고 따라서 사이비 교조주의 정치의 연장이다."라는 반론을 제기하시는 분이 있을 수 있고, 단순히 생각한다면 맞는 주장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참여정부의 활동을 자세히 살펴보면 기존의 사이비 교조주의 정치에서 보여주었던 특징이 많이 사라졌음을, 아니 아주 소멸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이비 교조주의의 가장 큰 핵심은 교조는 사라지고 교주만 남는다는 것과 이 교주의 절대적인 지위와 영향력를 들 수 있습니다. 이 문제를 참여정부에 대입하면 결론은 쉽게 도출될 수 있습니다. 참여정부의 교주가 노무현 대통령이라는 점은 부인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물론 저는 인정하지 않습니다만- 그 지위와 영향력이 추종세력에 의해 절대적인가 하는 점은 단호히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일 노무현 대통령의 절대적인 지위와 영향력에 귀속된 추종세력이었다면 임기 내내 지속된 핵심 지지세력과의 갈등과 이탈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한 1인에 의한 통치를 배격하고 시스템에 의한 통치를 지향한 것이 참여정부의 기본 원칙이고 참여정부 기간 내에 충실히 잘 지켜내었다는 점에서 참여정부의 교주는 노무현 대통령이 아닌 국가통치 시스템이라고 하는 것이 옳은 주장일 것입니다.
이와 같은 점에서 참여정부 기간동안 정권에 의한 사이비 교조주의는 완전히 붕괴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완전한 교조주의의 붕괴에는 실패한 것 또한 사실입니다. 일부 세력-한나라당과 보수언론 등-은 "참여정부 반대"라고 하는 새로운 원칙에 단결합니다. 이것이 그들에게는 새로운 교조가 된 것입니다. 바로 이 때문에 "모든게 노무현 탓이다"라는 웃지 못할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이명박 정부 출범의 원인을 보수세력의 담합과 진보세력의 분열로 보는 견해가 많습니다. 아마 맞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하지만 좀 더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완전한 사이비 교조주의의 붕괴라고 하는 대전제를 실현하지 못한 점에서 원인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 즉 참여정부 기간동안 진보세력의 교조주의는 붕괴되고 새로운 어젠다를 도모하는 사이비 보수세력은 언론을 중심으로 새로운 사이비 교조주의 세력으로 뭉치게 됨으로써 세력대결에서 패한 부분이 첫번째이고, 이미 교조주의의 대립에 익숙한 국민에게 새로운 어젠다를 설정하고 설명하는 노력이 부족했던 점이 두번째 문제입니다.
어쩌면 시간의 부족이 하나의 원인일 수 있겠지만 좀 더 솔직히 말하면 노력의 부족이 더 큰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국민과의 소통의 문제-노무현 대통령이 가장 아쉽게 생각하는 부분입니다.-를 좀 더 근본적인 원인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이 지난 참여정부를 통해 교조주의 정치를 완벽히 소멸하지 못하고 다시 부활시킨 원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4. 이명박 정부의 출범과 사이비 교조주의 부활의 가능성
이명박 정부의 출범과 지난 4달의 활동을 보면서 한국정치에 다시금 사이비 교조주의가 부활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듭니다. 앞에서 논의한 바 교조주의가 절대악은 아닙니다. 적절한 교조의 설정은 조직원의 단합을 보장함으로써 조직의 역량과 성과를 최고로 발휘할 수 있는 순기능이 있습니다. 하지만 교조와 교주의 일원화, 나아가 교조의 실종과 교주의 절대 권위화는 많은 폐악을 가져다 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현 이명박 정권에게 불안한 마음을 숨길 수 없습니다.
이명박 정권과 그 추종세력을 교조주의 집단이라 정의한다면 그들의 교조는 무엇일까요? 찾을 수 없지만 굳이 하나만 꼽으라고 한다면 아마 "실용"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그 교조가 현재의 상황에서 적절한 것인가 하는 문제를 고려해야 합니다. 그들이 맹신하는 "실용"은 어쩌면 국민의 정서와는 거리가 먼 실용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실용을 바로 효율성과 등가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적절한 교조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기업경영이라면 효율성은 추구해야 할 절대 명제이지만, 국가경영에서 효율성은 추구해야 할 절대 명제는 아닙니다. 이는 기업의 목적이 사익추구이고 정부의 목적은 공익추구라는 차이를 인식하지 못한 무지에서 나오는 오류입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실용-저는 실용이 아니라 효율성이라고 생각합니다.-은 철저한 자본주의로의 복귀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순수한 자본주의 체제가 불안정하다는 것은 서구 자본주의의 변화과정을 통해 잘 알 수 있습니다.
교조의 부적절한 설정보다 더 큰 문제는 교조=교주의 일원화의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현재 정부나 여당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견제할 수 있는 사람이나 세력은 전무합니다. 물론 보기에 따라서는 박근혜 의원을 생각하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이는 내부적인 권력타툼이라고 보는 편이 정확한 분석일 것입니다.
실용정부=이명박이라는 등가식이 진리처럼 여겨지는 상황에서, 또한 대통령에게 모든 정부권력이 집중되는 현상을 보면서 사이비 교조주의의 출현을 우려하는 것이 결코 과장된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비판세력의 부재와 무조건적인 복종 등 사이비 교조주의에서 나타날 수 있는 많은 현상이 이명박 정부 내부에서 출현하고 있음도 사실입니다.
더욱 염려스러운 점은 그 폐해가 이미 가시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오륀지로 대표되는 영어공교육 강화발언과 오해, 의료보험 민영화 추진과 보류, 한미 쇠고기협상 등에서 보여진 이명박 정부의 모습은 교주-이명박 대통령-의 독단과 추종세력의 맹목적 복종에서 야기될 수 있는 근본적인 문제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따라서 현재 전국에서 번지는 쇠고기협상 반대와 이명박 대통령의 탄핵문제도 이러한 점에서 볼 수 있습니다.
5. 맺음말에 갈음하여 : 사이비 교조주의와 시민광장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미 이명박 정부 내에서 사이비 교조주의의 행태와 그 폐혜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박근혜 의원을 전면으로 내세워 자신의 본 모습을 감추려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의 본 모습이 가려지겠습니까? 잠시 면피를 하고 나서는 여론이 잠잠해지면 다시 그들의 본 모습으로 국민들에게 나아갈 것입니다.
이러한 행위가 반복되면 국민은 이명박 정부의 참 모습을 알아가고 또한 대안세력을 찾으려고 할 것입니다. 마치 참여정부 말 대안세력으로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을 선택했듯, 또 다른 정치세력을 무대 전면에 부르고자 할 것입니다. 짧게 본다면 2년 후 지방선거, 4년 후 총선, 5년 후 대선에 이르는 과정에서 말입니다. 우리들은 국민들의 부름에 대비하여 준비를 하여야 합니다. 지금은 그럴 시기입니다.
이상에서 논의한 것을 바탕으로 사이비 교조주의가 우리 시민광장에게 시사하는 바를 주목하여야 합니다. 그것은 첫째, 올바른 교조, 이른바 지향점을 설정해야 합니다. 유연한 진보 등의 논의가 그런 맥락으로 볼 수 있겠죠. 하지만 이러한 지향점이 추구하는 바는 좀 더 구체적이고 명확해야 하며 국민들을 설득시킬 수 있는 모습이어야 합니다. 교조라 불리는 지향점이 우리의 가치관이나 철학을 반영하기 때문에 시민광장의 정체성을 국민에게 잘 알릴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기도 합니다.
둘째, 시민광장이 사이비 교조주의로 빠질 수 있는 위험을 경계해야 합니다. 올바른 교조의 설정 없이 교주의 일방적인 논리에 좌우돼서는 안된다는 점입니다. 물론 시민광장이 첨맘님을 믿고 지지하는 모임임에는 분명합니다. 하지만 우리들이 첨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은 인간적인 측면도 간과할 수 없지만 첨맘님의 철학이나 지향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바를 첨맘님을 통해 실현하고자 하는 마음이 더욱 클 것입니다. 따라서 노공이산님이나 첨맘님에 대한 무조건적인 순종(?)은 극히 경계해야 합니다. 아마 이러한 것은 노공이산님이나 첨맘님도 바라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더욱 노공이산님이나 첨맘님의 철학과 지향을 공유하는 노력을 경주할 때입니다.
앞에서 말했듯 교조주의가 무조건적으로 부정적인 면만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교조주의가 사이비 교조주의로 변질이 되지 않는 한, 건전한 토론과 비판, 변화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한 조직원을 하나로 통합하여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역사적인 사실에서 이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두서없고 논리없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시 말하거니와 논리의 비약이나 허술함은 전적으로 필자의 무지의 소산입니다. 건전한 비판은 열린 마음으로 수용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