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못 만들면, 네는 뒈진데이!
처음 뵙습니다, 여러분(꾸벅)! 저는 아직 이곳이 좀 낯섭니다. 지난 금요일에 9562번째로 가입한 신참이니까요. 친구 따라 강남 간다지만, 저는 어느 웬수를 따라 여기까지 왔습니다. 아, 떼인 돈 받으러 오거나 저 몰래 바람 핀 인간을 찾으러 온 건 아니니까 맘 놓으시고요.^^ 마흔 살 동갑내기 남편, 그 인간이 웬순데 그 인간 따라 들어오게 된 기구한 사연입니다.
맞벌이 부부에 큰애가 6학년이니 제법 사는 게 번잡하고 정신없고 그럽니다. 근데 이 인간이 틈만 나면 ‘유시민’ 따라 다닌다고 정신을 못 차리는 겁니다. 작년 여름부턴가 심상찮더니 어느 날은 킨텍스에서 뭔가 한다고 같이 나서자더군요. 피곤하다 너나 가라며 쌩깠습니다. 아이들 데리고 다녀오겠다며 나가더니 저녁 무렵 아이들 데려다 놓고 또 나가서 자정 넘겨 들어오더군요. 술 냄새 솔솔 풍기며 뭐가 좋은지 히죽거리면서 말이죠.
그게 겨우 시작이란 걸 그땐 몰랐습니다. 주민등록번호 불러봐라, 휴대폰 투표 신청해야 된다, 전화 오면 유시민 찍는다 해라… 낮에 직장으로 전화질 해대며 얼마나 못 살게 구는지 짜증날 때가 한두 번이 아녔습니다. 그래도 사내라고 나랏일에 관심 갖고 그러는 거겠지 하고 하자는 대로 오냐오냐 했습니다. 점점 퇴근 뒤 어딘가 들렸다오는 횟수도 많아지고, 점점 귀가시간도 늦어지고, 점점 술 처먹는 자리도 늘어난다 싶더니….
새벽 두 시쯤일 겁니다. 한 번에 딱 못 열고, 현관문 비번을 여러 번 삑삑거리게 하더니 (좀 마셨다 이거겠죠?) 거실 소파에 널브러지는 게 아니겠습니까. 물어도 대답도 없고 옷도 안 갈아입고 그냥 처자더군요. 바닥에 굴러 떨어진 휴대폰에 문자 몇 개가 보였습니다. 괜찮다, 힘내자, 어쩌구저쩌구…. 잠도 안와 YTN 뉴스 보니 그 양반이 선배 어떤 양반 지지하며 후보 사퇴한다고 나오더만, 그 양반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슬슬 걱정이 되더군요. 저게 미쳐가나 싶고.
잠잠했습니다, 한동안. 칼퇴근에 용돈도 많이 안 쓰고, 애들 숙제도 잘 봐주고…. 그래 네가 이제 인간 되나 보다 했지요. 새해 들어 그 기대는 여지없이 깨졌습니다. 제가 사는 동네에 지역모임인지 뭔지 만든다며 설치고 다니더니 이젠 시도 때도 없이 전화 걸고 받고 지랄들 하며 다니는 것이었습니다. 꼬박꼬박 달마다 정기모임에 마른 날에도 처질러대는 번개에 정말 눈꼴시어 못 봐주겠다고 투덜대던 어느 날, 그 인간 집단들을 대면할 날이 찾아 왔습니다. 부부동반으로 밥을 먹자나 뭐라나….
깜짝 놀랐습니다. 맨날 전화에다 ‘대추 대추’ 하기에 누가 대추일까 궁금했는데, 떡 보니 영락없는 ‘대추’였습니다. 땅딸한 데다 살짝이 벗어져 반짝이는 이마, 통통한 배… 하지만 ‘성이 나 있어’ 보이지는 않았는데 아무튼 속으로 엄청 웃었습니다. 제법 진지한 얘기들을 나누더군요. 우리 여인네들은 옆 테이블에서 아이들 크는 얘기, 학원 얘기, 자기 남편들이 언제 철들겠느냐는 한탄들을 수다로 풀었습니다. 헤어질 때 우리들끼리 담에 또 보자는 말이 쉬 나오더군요. 나름 재미없진 않았습니다.
대구 간다고 용돈 더 내놓으라 한 열흘 전부터 버티더군요. 나 안 가서 떨어지면 네가 책임질 거냐면서 대들기도 하고 아주 발광을 하더라고요. 대춘지 고춘지 하는 인간도 저한테 전활 해서 꼭 가셔야 된다며 아양도 떨고… 언젠 주말에 별거 있었냐 위로하면서 그 인간들 가는 데 간식까지 챙겨 보냈습니다. 토요일에 가서 일요일에 올라오더군요. 목소리는 갈라져 가지고 얼굴은 꺼칠한 게, 으이구 인간아 어디 가서 그렇게 돈을 벌어와 봐라 싶었습니다.
5월엔 광주 참배 간다고, 어디 전세버스 싸게 구할 데 없냐고 나한테까지 물어보고 설치더군요. 6월엔 어디, 7월엔 어디, 그 뒤엔 무슨 소식지를 만든다나 PC 앞에 앉아 교정을 보네 하면서 이젠 집에까지 시민광장인지 뭔지 하는 일거리를 가지고 오는 겁니다. 참 가지가지 한다 싶었죠. 지도 미안한지 설거지도 더 자주 하고 주말엔 베란도 청소 같은 것도 제법 야무지게 하고, 그 맛에 봐줬습니다. 얼마 전엔 공주 갑사를 가네 어쩌네 하며 내려갔는데, 자정 넘어 전화도 하더라고요, 나 혼자 다녀 미안하다고. 알면 됐다고 잠 깨우지 말고 얼른 끊으라고 질러버렸죠.
이젠 선거한다고 나한테 지지의 글 한번 써보랍니다. 참,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난 그 동네 인간들 아무도 안 지지한다 했습니다. 에이 그러지 말고 한번 써봐 하면서 앵깁니다, 이 인간이.
고백하자면, 몇 번 눈팅도 했습니다. 이 인간 혹시 딴 여편네들하고 노닥거리는 건 아닌지 하고, 감시 차원에서. 최근엔 SJLove님이 올린 글과 그 댓글도 재밌게 보았습죠. 그리고 저 사실 유시민 좋아합니다. 제 고향이 부산이고 제가 학산여고 1회 졸업생인데, 노무현 대통령님도 참 존경합니다. 그 양반 부산시장 나왔을 때 자봉도 죽어라 뛰고 그랬습니다. 이 인간은 유시민 양반이 더 좋다 그러더라만서도.
이 인간이 그 양반 반만 닮으면 좋겠다는 허황된 꿈도 꾸고 그럽니다. 성난대춘지 하는 분한테도 언제 집에 같이 왔길래 제가 그랬습니다. 열심히 하는 것도 좋은데 그 양반 반만 닮으소 하고. 박무님은 운동회 때 먼발치에서 뵙고 눈인사만 나눴습니다. 인상이 하도 좋으셔서 우리 남편 같은 인간하고 어울리는 게 좀 신기하다 싶기도 했죠.
정치는 사람을 감화시키는 예술이라고 누가 그러더군요. 박무님과 성난대추님이 자기를 감화시켰다나? 우리집 인간이 절 더 감화시키면, 저도 한번 유빠가 되어 보겠습니다. 용가리통뼌지 개뼌지 하는 분이 얼마 전 우리 딸 쓰라고 뽀로로 이불세트도 선물해 주고 그러는데, 좋습니다. 그런 것에도 감화될 수 있죠. 이 인간한테 이 글 써주는 대신 딱 두 가지만 지키라고 거래를 했습니다.
“늦는 거 좋다. 열두 시다. 열두 시까지만 들어온나!”
(제 아이디가 그래서 ‘열두시만’입니다. 이 인간 이 아이디 볼 때마다 긴장하라고.^^)
“그 양반 대통령 못 만들면, 네는 뒈진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