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전 장관이 참여정부의 노선을 '사회자유주의(Socilal liberal)'이라고 말하자 여기저기서 해석은 하고 있지만 명확하게 개념 정리는 안된 듯 합니다. 일단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소셜 리버럴은 역사적으로 존재하는 개념이라는 것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각종 정치체제의 개념을 비교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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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자유주의(Social liberalism) : 자유주의(시장경제체제)를 토대로 공정한 분배를 강조
*공산주의(Communism) :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위해 생산수단의 공유가 필요하며 이를 폭력적 혁명에 의해 달성하자는 노선
*사회민주주의(Social democracy) :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와 관리를 주장하며 이를 민주주의적(의회의 다수결을 통한)인 방법으로 쟁취하자는 노선 |
솔직히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모든 개념을 갖다놓고 정리해야 합니다만 그럴 시간적 여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핵심적인 개념만 정리했습니다.
여기서 '민주주의(Democracy)'라는 개념이 문제되는데요. 민주주의는 어떤 정치체제에서도 기본으로 깔고 가는 이념입니다. 마르크스도 민주주의를 지향한 것이니까요. 민주주의라는 것이 인간의 자유와 평등이라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원리라고 한다면, 그 어떤 정치철학도 이를 배제하지는 않겠지요. 그래서 ‘민주주의’가 붙었느냐, 안붙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기본바탕에 깔려있으니까. 따라서 소셜 리버럴에 데모크라시가 안붙었다고 하여 시비를 거는 일은 없어야 하겠습니다.
소셜 리버럴이라는 개념은 '영국의 지성'이라고 불리우는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1873)에 의해 생겨난 개념입니다. 밀이 태어나서 살았던 시기는 시민혁명 직후입니다. 프랑스는 혁명에 의해, 영국은 국왕과 귀족, 시민간의 타협에 의해 민주주의가 막 시작되었던 시기입니다.
산업혁명 이후 상인계급의 힘이 강해지면서 자유주의와 자본주의가 동시에 성장하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이 과정에서 빈부격차가 심해지면서 마르크스의 공산주의이론도 함께 성장하였던 시대입니다.
밀은 기본적으로 자유주의자입니다. 인간의 자유(사유재산권 보장, 신체의 자유, 사상의 자유 등)를 최고의 가치로 세웁니다. 여기까지는 자유방임주의를 주창한 아담 스미스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빈부격차 확대 문제에 관해서는 마르크스를 비롯한 공산주의자들만 고민한게 아니었습니다. 이건 자유주의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바로 J.S.Mill이 그런 자유주의자입니다.
19세기 영국은 계급간 타협(왕, 귀족, 시민)으로 민주정치가 발전하고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국가권력의 억압'은 줄어들었습니다. 문제는 자본주의의 발달로 인한 '자본의 억압'이 생겨난 것입니다. 밀은 '자본의 억압'을 '자유의 적'으로 규정하게 됩니다.
'자본의 억압'을 '자유의 적'으로 인식한 것은 마르크스와 동일합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자본을 타도하는 방향으로 간 것이고, 밀은 자본의 존재를 인정한 위에서 자본의 억압을 해소하는 방법을 찾게 됩니다.
여기서 나온 것이 바로 '사회적 자유주의(Social liberalism)'입니다. 공정한 분배를 통한 사회개혁을 주창한 것입니다.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의 개혁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밀의 사상은 영국과 미국에서 호응을 얻었으며, 영국에서는 노동당이, 미국에서는 민주당이 이 노선을 발전시켜 오고 있습니다. 영국의 토니 블레어도 사회적 자유주의를 주창하였는데, '개인의 자유'와 '공정한 분배'를 동등하게 강조하는 밀의 입장과 동일합니다. 미국의 오바마 새정부도 비슷한 노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 민주당의 이념적 기반을 제공한 폴 크루그먼 교수가 쓴 <미래를 말하다>의 원래 제목이 <The Conscience of a Liberal>입니다. 여기에 사용된 Liberal은 진보주의자로 해석됩니다. 적어도 영국과 미국에서는 Liberal을 단순하게 '자유주의'로만 해석하지는 않습니다. 그 이유는 그 반대편의 보수주의(Conservatism-영국의 보수당, 미국의 공화당)와 대비되기 때문입니다.
어떻든, Liberal이라는 단어에 함몰되지 말라는 의미에서 덧붙여 설명을 드린 것이구요.
소셜 리버럴은 '인간의 자유'와 '공정한 분배'를 동시에 추구해나가는 노선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두고 싶습니다. 소위 성장이냐? 분배냐? 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뛰어넘자는 것입니다.
참여정부의 경제정책 기조가 뭐였습니까? 바로 성장과 분배를 동시에 추구한 것입니다. 이러한 가치를 기준으로 말할 때는 좌파정책이냐? 우파정책이냐?는 구닥다리의 좌우 갈라치기는 아무런 실익도 없는 관념적 놀이에 불과하다는 말씀도 덧붙입니다. 좌면 어떻고, 우면 어떻습니까? 그게 뭐가 중요하죠? 좌우가 가치판단의 기준이 되기나 합니까? 좌는 무조건 선이고, 우는 악이라도 됩니까? 따라서 참여정부 노선이 중도좌파다, 아니다 중도우파다 라는 논의 자체도 아무런 실익이 없는 쓸데없는 말장난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이런 수준은 이제 극복할 때도 됐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인간의 삶이 오늘보다는 내일, 내일보다는 모레, 점점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그게 좌냐 우냐 따위는 중요치 않습니다. 성장이 먼저냐, 분배가 먼저냐 이런 논쟁에서 벗어나 유연하게 사고하자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유연한 진보'가 아닌가 합니다.
소셜 리버럴리즘을 주창했던 밀의 어록을 하나 소개하면서 마칩니다. 개인적으로 '생존없는 자유는 공허하고, 자유없는 생존은 맹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생존의 문제가 해결된 다음 인간이 가장 강하게 욕망하는 것은 자유이다."
(진중권이가 예전에 유시민이 소셜 리버럴을 말하니까 '형용모순'이라고 비웃던데요. 진중권은 이 세상이 '반대말'로만 이루어진 세상인가 봅니다. 제 글은 진중권을 비웃어주는 글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