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대통령께서 탈당을 발표하신다고 합니다.
오늘(2/22일) 열린우리당 신임지도부와의 만찬자리가, 공식적인 입장표명의 자리가 될 거라고 합니다. 어느새 한국의 특이한 집권문화 중의 하나로 자리잡은, '임기말 대통령의 집권여당 탈당'이 이번에도 어김 없이 5년만에 재현되는 거지요.
하지만 이전과 비교하면 뚜렷하게 다른 점들이 많습니다.
1) 역대 노태우, 김영상, 김대중 대통령의 탈당보다 가장 이릅니다. 아직 대선이 10개월이나 남아있는 시점이지요.
2) 대통령 후보가 자기 당선을 위해서 만든 당으로부터의 탈당이 아닙니다. 대통령께서도 신년회견에서 말씀하셨듯, 민자당, 신한국당, 민주당과는 달리 열린우리당은 노무현 대통령 당선 이후에 창당되었고, 대통령이 만든 당도 아니지요.
다만 노무현 대통령 평생의 신념인 '국민통합'과 이를 가능케 하는 유일 로드맵인 '정당개혁'의 시대정신을 담아 창당한 당입니다. 열린우리당이 담고 있는 노무현의 '시대정신'을 일컬어 열린우리당을 '노무현당'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면, 그 '노무현당'으로부터 그 '노무현'이 탈당하는 것은 맞습니다.
아직 그 당에 입당도 허락받지 못한 상황에서. "우리당에 표를 줄 수 있는 일이 있으면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하고 싶다." 이 한 마디 하셨다가 헌정사상 최초로 탄핵의 굴욕을 당하셨던 대통령이십니다. 당직임명권, 공천권 한번 행사한 적 없는 당 때문에 대통령 당선 이후에 집권여당을 두번이나 탈당하는 첫 대통령이시기도 합니다. 참으로 파란만장하십니다.
3) 임기말 권력형 비리에 의한 탈당이 아닙니다. 대통령의 처음부터 지금까지 도덕적으로 깨끗하고 레임덕 없는 첫 대통령이 집권여당을 탈당하십니다.
4) 미래권력과의 싸움에서 굴복하는 탈당이 아닙니다. 노태우는 김영삼 후보에게, 김영삼은 이회창 후보에게 밀려났습니다. 하지만 2007년, 이른바 범여권의 대권후보는 이례적으로 없는 상황입니다.
5) 따라서 레임덕은 없습니다. 이 시간 찌라시들은 여야 구분이 없어져버린 이 상황에서, 개헌, 작통권, FTA, 비전2030 등 산적한 미래형 국정과제가 온전히 추진될 수 있겠냐면서 우려인지 기대인지 모를 비아냥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웃기지 마십시오. 늘 칼만 꽃는 그 새끼들 데리고 이만큼 해오신 분입니다. 대통령 후보로부터 임기말 대통령까지 때리기, 죽이기, 훈장질이라면 이미 이골이 날대로 난 대통령이십니다. 레임덕 따위와는 놀아줄 시간조차 부족할 따름입니다.
그렇다면 대통령께서는 왜 탈당을 하실까요.
돌이켜보면 탈당이라는 말이 처음 나오기 시작했던 무렵이, 2005년 4.30 재보선 23:0 참패에 이은 10.26 재보선 4:0 전패 이후 터져나온 이른바 '청와대 책임론'이었습니다. 이후 틈만 나면 공공연하게 지속적으로 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했습니다.
"탄핵지갑은 이미 줏은 거고, 이제 대통령은 제발 탈당 쫌 해달라. 대통령 탄핵발의 주범 민주당하고 합당 쫌 하게." 그 뻔뻔한 새끼들을 상대로 그 때마다 대통령은 모든 책임은 당신에게 있다면서 당을 추스렸습니다. 기가 막힐 따름이지요. 아무리 현실정치가 명분도 의리도 어이조차 상실했다고 해도 말입니다.
참여정부의 대통령이 지니고 있다는 유이한 권력, 당적과 인사권. 해가 바뀌자 마침내 대통령의 인사권 무력화 레이스가 시작됐습니다.
5.31 지방선거 전야, 범궁물연대 대의원들로부터 다시 압도적인 선택을 받은 재선 당의장 정동영은 지방선거 필승카드라면서 이해찬 총리를 끌어내렸고, 도망친 전임 당의장의 꼭두각시를 자처한 비상한 신임 당의장 김근태는 민심수습의 외통수라며 김병준 부총리를 끌어내렸습니다. 집권여당은 한나라당 그리고 찌라시와 한 목소리로 개혁코드인사 불가를 읊어댔습니다.
수구복종과 구태야합이 이글거리던 2006년의 여름, 하지만 대통령은 단호했습니다.
"정권 말기에 대통령 때려서 잘 된 사람 한 명도 없다. 당은 패배주의를 버려라. 대통령은 절대로 탈당하지 않는다. 퇴임 후에도 정치개혁이 완성되는 그 날까지 당원으로써 백의종군할 것이다. 그래도 탈당하고 싶은 사람은 대통령에게 탈당을 요구하지 말고 자신이 탈당하라."
하지만 이미 패배주의를 넘어 자기부정을 완성하기 시작한 그 당은, 전효숙 헌재소장의 임명을 방해하는 한나라당의 불법적 횡포를 뚫어내지 못했고, 결국 굴복한 대통령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부당한 횡포죠. 그런데 어제 대통령이 헌재소장 임명동의안을 철회했습니다. 굴복한 거죠. 현실은 대통령이 굴복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대통령은 부당한 횡포에 굴복했습니다."
"지금 대통령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 자산은 당적과 대통령직 두가지 뿐인데, 만일에 내가 당적을 포기해야 되는 상황까지 몰리게 되면 임기 중에 당적을 포기하는 네 번째 대통령이 될 것입니다. 아주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임기를 다 마치지 못한 첫 번째 대통령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건 그저 대통령의 굴복일 뿐, 이제 자해의 통증조차 느끼지 못하게 된 그 당은 민주당 스토킹에 이어 고건 스토킹에 앞을 다퉜고, 그 점입가경 끝에 마침내 대통령의 선언이 나왔습니다.
"나는 신당을 반대한다. 지역당을 만들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열린우리당을 지킬 것이다. 당적을 유지하는 것이 당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된다면 그렇게 할 것이고, 탈당을 하는 것이 당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된다면 그렇게 할 것이다."
그리고 당을 지키는 길은 결국 '탈당'이 되었습니다. 2007년의 대국민 신년기자회견이었습니다.
오로지 12.19의 '승리'를 위해서이고 믿는 것은 무서운 '국민' 뿐입니다.
그렇게 하기 싫다시던 '탈당'의 굴욕을 감내하면서까지 당을 지키시려는 것을 두고, 퇴임 후 당신이 몸 담을 당을 확보하려는 것이라고 말하는 무리들이 있습니다. 물론 야당이고 꼬마영남당이랍니다. 아주 지랄들을 하십니다. 그래서 너희들이 개쑤레기 새끼들이라는 겁니다.
모두들 알고 계시듯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이 있던 날, 동시에 터져나왔던 뉴스가 있었습니다. '기간당원제'도 잠시 접어두자는 대통령의 부탁이었죠. 지금은 당을 지켜야 하기에.
왜 우리가 위 아래에서 동시에 굴욕과 굴복을 감내해야 하나 싶은 것도 잠시, 지금 이 상황이 '유시민 죽이기'를 넘어 그예 '유시민 지우기'라는 느낌이 오는 순간 도저히 생각의 정리가 힘들더군요.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을 보고 또 봤습니다. 노짱님이나 시민님이나 똑똑한 사람용과 멍청한 사람용으로 나누어서 멘트하시는 분이 아닌데, 복심 혹은 노림수를 숨겨두거나 하시는 분이 전혀 아닌데, 누구의 해설도 필요 없이 말하는 그대로 듣고 느껴지는 그대로 이해하면 된다는 걸 잘 알고 있는데, 참 힘들었습니다.
"제가 다시 살아났던 것, 드라마죠. 저는 국민들을 무서워합니다. 정말 무서워합니다. 저더러 겁 없다고 자꾸 그러시는 모양인데, 너무나 국민들의 힘을 생생하게 알고 있기 때문에요. 정말 두렵게 정치를 합니다."
마치 2002년의 노무현으로 돌아가기라도 한 것처럼 생생한 표정으로, 숙연한 출사표를 읽어내려가듯 말을 이어가는 대통령을 다시 보는 순간, 저도 모르게 가슴 한쪽이 쨍~ 하고 울리더군요.
"대통령이 지금, 또 한번의 12.19 승리를 이야기하고 있었구나."
"이 굴욕과 굴복을 삼키며 또 한번 불가능에 몸을 던지자고 하는구나."
"그렇게 국민을 감동시킬 수 있을 때 생생하게 무서운 국민의 힘이 우리를 또 한번 이기게 해주고, 다시 한번 더 큰 우리당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구나."
지난 8일, 비보도를 약속했었다는 기자간담회에서 '정치평론가' 시민님이 그러셨다지요.
"국민들은 참을성이 많지만 역린이라는 걸 가지고 있다. 용을 타고 놀다가도 딱 그 부위만 건드리면 촉망받는 정치인들이 여럿 죽어 나갔다. 국민들의 그 역린을 딱 건드린 것이다. 물론 한방에 나가 떨어졌다. 무섭다."
가슴이 뛰십니까? 오로지 무서운 국민을 믿고 시작하는 12.19 승리의 전투가 막 시작되고 있습니다. 한명숙 총리가 당으로 돌아옵니다. 아마도 오픈 프라이머리 1라운드에 몸을 던지겠지요. 다들 알고 계시듯 대통령께서는 임시국회가 끝나는 6일 이전에 개각 1라운드를 마치고, 즉시 대통령 4년연임제 원포인트 개헌안을 발의할 것입니다.
사흘 후면(2/25일) 노짱의 대통령 취임 4주년입니다.
지금부터가 시작입니다.
덧글.
얼마전 서프에 '백번이라도 천번이라도 굴복하겠습니다.' 했더니 이런 댓글을 주신 분이 계셨습니다. 노짱이 탈당하는 순간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탈당하는 순간이라 여기며 지내왔는데 이제 나보고 어쩌란 말이냐 하시더라구요.^^;;
귀머거리 3년에 벙어리 3년이라더니, 적을 적이라 부르지 못하고 유시민을 유시민이라 부르지 못하면서 말도 글도 그저 삼키면서 지냈습니다. 지금 그예 대통령을 탈당시키고서야 전투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더 이상은 그렇게 하지 않으렵니다.
시민님 좋아하시는 시의 한구절처럼, 오늘 아침 안개 무더기로 내려 길을 뭉텅 자르더군요. 아직도 다 걷히지 않은 그 안개 무더기가 여전히 길을 가리고 있는 것으로도 모자라는지, 밤에는 황사까지 찾아오실 작정이라고 합니다. 혹시 앞이 잘 안보이십니까? 그렇다면 가슴으로 보십시다. 노짱님을 믿습니까? 믿습니다. 시민님을 믿습니까? 믿습니다.
이제 곧 안개는 걷히겠지만 아마도 그 무렵처럼 또 숨 가쁜 하루하루가 이어지겠지요. 새벽통신, 계속하겠습니다. 다음 글은 "2007년, 유시민의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