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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제로스님과 니미럴리스트님의 글을 읽고, 한참 전에 쓴 글이지만 후불제민주주의를 읽은 후 쓴 제 글을 조금 정리하여 올립니다. 장하준과 유시민, FTA를 놓고 대립의 평행선을 달려가게 된 참여정부와 진보 좌파 사이의 인식의 간극, 저는 그 노선과 방법론은 타협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뚜렷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기득권 세력과의 가장 원초적인 싸움을 우리가 목전에 두고 있지 않은가. 통합을 할 수 없다면, 타협이라도 해야 하지 않은가....니미럴리스트님이 장하준을 민족주의로 대표하고, 유시민을 신자유주의로 대표하면서 비교를 했습니다만, 저는 '장하준' 편의 유시민의 실존적 고민을 보면서 유시민의 민족주의를 느꼈습니다. 한반도의 안보와 바꿔버린 이라크 파병에서도 역시 그의 민족주의적 관점을 읽습니다. 민족, 또는 자국 이기주의의 딜레마를 극복할 수 없는 한반도 운명의 절박함을 읽었습니다. 세계 자본의 흐름에서 이미 우리의 자본도 서로 착취하는 구조 속에 편입되어 있습니다. 사다리 더 아래쪽 국가들의 시장과 값싼 노동력을 착취하고 있습니다. 유시민 역시 좌파와의 인식 차이 때문에, 논쟁하려 하지 않고 '타협'하고 '연대'하자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고도, 타협하자고 손내미는 유시민을 미워하는 좌파가 있다면, 감정적인 적대감으로 밖에 볼 수 없습니다.
진보와 좌파는 서로의 진정성을 의심하면 안 됩니다. 인신공격이나 감정적 대립이나, 자존심 싸움이 아닌, 서로를 존중하는 협정 위에서 경쟁을 해야 합니다. 정권을 잡고 나면, 노선 대립을 하든 정책 대립을 하든 할 때인 것이고, 지금은 서로 협력할 때입니다. 우린 지금 좌초해 가는 배 위에 서 있지 않습니까.
[후불제민주주의] 내 맘대로 읽기
3월 16일
책 전체를 통틀어 가장 꽂힌 구절이 있다면, '민주공화국은 지적 생태계 의 種 다양성을 보장한다' 란 부분이었습니다. 이념적으로 앞선 전체주의 국가보다는 들끓는 용광로와 같은 대한민국을 더 사랑하는 이유를 이 한 문장이 설명해 주었습니다. '사회는 다양한 신념과 이익이 서로 의존하고 경쟁하면서 균형을 이루고, 그 균형 상태가 점진적으로 변화해 가는 이해관계의 생태계' 라는 점에서는 그 구성원들의 최대 덕목은 바로 '관용' 이라는 점일 것입니다. 개인의 사상적 궤적들은 비록 온도 차이가 있더라도 민주주의와 헌법 정신을 파괴하는 불관용의 세력들과 싸움을 함께 하는 이들, 유시민은 그래서 이 책에서 최대한 '자기 규정'을 절제하고 있습니다. 연대를 위한 열린 미덕들에 더 방점을 둡니다. (내 맘대로 읽기입니다...^^*)
크게는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작게는 시민광장의 경험에 이르기 까지, 그 사회의 형식과 제도의 발전과 더불어 개개 구성인자들의 문화적 수준과 소양이 서로 조응을 할 때만이 그 시스템의 정신이 발현된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 요즘, 이 관용의 미덕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됩니다. 적과 아군의 전선을 어디에 그를 것인가, 나, 우리, 아군의 울타리를 확장할수록 우리편의 전선은 더 크고 더 강해지겠지요. 그 방법으로 유시민은 '관용'을 얘기합니다. 추상적으로 보이지만, 유일한 방법론입니다. 그래서 나는 나의 '선을 실현하고 싶은 의지'가 유시민의 '선에의 의지'가 같은 연대의 틀 안에서 조우할 수 있다고 느낍니다.
유일하게 '규정'이 된 사회자유주의에 대해선 조금 더 생각해 보고 정리할 생각입니다. 생산 수단의 사적 소유를 인정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로 구분을 한다면, 시장 경제, 그리고 국가 정책의 결과로 나온 한미 FTA와 같은 것으로 유시민의 사상적 궤적 역시 보수 우파로 규정하는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현실 자본주의를 혁명이 아닌 이상, 극복할 수 있을까요. 이미 혁명은 끝난 시대입니다. '사회자유주의'는 세계 자본의 힘을 부정할 수 없는 허약한 우리 현실에 대한 자기 고백이라 생각합니다. 조금 더 생각을 정리해 봐야겠지만, 우리 사회에서 보수와 진보는, 경제 체제로서 사회주의 자본주의가 아니라, 인정할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적 토대 위에서 계급적 기득권을 지키려는 '보수'와 국민 주권을 되찾으려는 '진보'로 정치적인 프레임을 재정립할 필요성이 있지 않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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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편에서, 이론적인 완결성과 미를 추구하는 학자로서의 장하준과는 구분되는 정치인으로 서의 유시민의 현실 인식을 보여줍니다. 이론적인 궤적을 깊이 추구하는 이론가를 개인적으로 부러워하는 속내도 한 줄기 슬금 보여주기도 하지만, 현실 정치인으로서의 치열한 인식의 좌표를 '사다리 걷어차기' 단상을 통하여 표출합니다. 우리나라는 사다리의 어디쯤에 와 있는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정치인이라면, 대통령이라면, 우리나라가 亞제국주의로라도 성공할 수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진솔한 자기 고백입니다. 개인의 이기심이 집단의 발전을 위해서 이타적 방식의 사회적 대타협을 이뤄낸다고 한다면, 국가적 이기주의는 각 국가간의 이기심들이 전 인류적 차원에서의 대타협으로 극복해 내야 하겠지만, 현실 세계는 미국과 초국가적 거대 자본의 룰이 지배하는 세상입니다. 사다리 걷어차기는 이기심과 경쟁의 메카니즘의 단면을 보여주며, 한 국가가 극복할 수 있는 차원이 아닙니다. 국가 이기주의의 무한 경쟁의 장을 경험해 본 현실 정치인으로서 개인적 철학과 현실 사이의 괴리에 대한 유시민의 자기 고백이 그래서 더 절실하게 와 닿습니다. |
저는 이 진솔함 때문에 유시민이 정치인으로서 신뢰감이 갑니다. 개인의 사상과 명예보다 앞선 객관적인 현실 인식이 참여정부 시절엔 개인의 명예를 지키기 보다는 정치적 경호실장이 되기도 했었다는 회고로도 표출되었었죠. 이것이 바로 제가 개인적으로 조금 더 왼쪽의 사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유시민을 현실 정치의 유일한 대안으로 판단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사상적인 추구는 현실적인 실현 가능성에 의해서 조절되고 타협해 가야 하는 것입니다. 유시민은 그냥 자유주의가 아니라 앞에다가 '사회' 자유주의라고 붙입니다. 혹자는 자유주의에 방점을 찍고 혹자는 '사회'에 방점을 찍습니다. 저는 지향점과 현실 좌표의 결합이라고 읽습니다.
책의 말미에 유시민은 '선의 연대'를 제안합니다. 유시민은 '악한 시스템'에 대항해서 선을 행하려는 의지를 가진 모든 대상들에게 우리는 동지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약간 오른쪽에 있든, 약간 왼쪽에 있든, 중간에 있든 대한민국의 헌법과 국민의 권리를 챙취하려는 모든 세력들에게 자신들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악한 권력에게 맞서자고 호소하면서 끝을 맺습니다.
유시민은 그래서 '관용'을 얘기하고 '유연'을 강조합니 다. '선의 연대'를 호소하면서 '지향점'과 '현실 좌표'가 서로 배척하고 싸우는 것을 누구보다 안타까워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진보적 리버럴과 좌파 사민주의는 서로 정책과 지향점에 있어서 현실적인 차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품어온 사민주의적 지향이 우리의 민주적 토대를 완성시켜가는 초석이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수준 높은 물질적 정신적 토대를 필요로 하는 사민주의를 실현하기 어려운 코 앞의 현실에서, 다른 국가의 이기심을 극복하고, 거대자본을 극복하기 위한 유시민의 현실 인식을 공감하고 지지합니다. 한발 앞의 현실적 당면 과제를 먼저 극복해야하는 유시민의 리버럴을 지지합니다. 커다란 선의 연대를 통해서 함께 나가자고 하는 유시민의 진정성이 이 책을 통해서 이 땅의 양심적 세력들에게 '선의'와 '관용'이라는 메세지로 울렸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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