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난한 가족이 있었습니다.
형제가 셋인데 셋 모두를 교육시키기에는 부모의 능력이 역부족이었습니다. 맏이는 집안을 이끌어 갈 기둥이니까 부모는 전적으로 지원을 했고, 기대를 받들어 맏이는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을 나오고 좋은 직장을 갖고 안정된 터전을 잡았습니다.
둘째는 맏이 뒷바라지에도 버거웠기에 일찌기 생활전선으로 내보냈습니다. 밑바닥 부터 전전하던 둘째는 세월이 흘러도 생활이 그닥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셋째는 둘째의 공백(?)으로 한결 안정을 찾은 부모의 도움을 받아 맏이처럼 자신이 원하는 길을 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습니다.
세 형제는 각자 가정을 꾸렸고, 아이들을 낳았습니다.
경제능력이 있는 맏이는 자기가 걸어 와서 성공한 그 길을 학습삼아 아낌없이 아이들 뒷바라지를 했고 부모의 전적인 지원 하에 아이들은 제 꿈을 찾아갔습니다.
살림이 어려웠던 둘째는 아이들 뒷바라지에 소극적일 수 밖에 없었고, 세 형제의 어린 시절보다 더 경쟁이 치열해진 환경에서 아이들은 뒤쳐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본인의 노력만으로는 넘어설 수 없는 벽이 있었고, 그 사이에 경쟁자들은 날 듯이 달려나갔습니다. 일정한 시간이 흐르고 보니 사촌들과의 사회적, 경제적 갭은 따라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벌어져 있었습니다.
세째 역시도 남부럽지 않게 아이들을 키워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둘째에게 불행이 닥쳤습니다.
심각한 교통사고를 냈고 피해자에 대한 보상문제는 가뜩이나 어려운 살림을 풍비박산이 날 상황까지 내몰았습니다.
이렇듯 똑같은 부모 아래 태어났지만 지원을 받은 정도에 따라 세형제의 인생은 달라졌습니다.
그 세형제의 자식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경쟁이 더욱 치열해져서 사촌들간의 갭은 윗세대보다 더욱 커졌습니다. 그러던 차에 가장 어려운 둘째에게 큰 불행까지 닥쳤습니다. 둘째의 불행은 혼자의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여기까지가 예시입니다.
이후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가정해 보겠습니다.
첫째, 맏이와 막내가 합심해 둘째를 도와주는 방법이 있습니다. 어릴 때 부터 부모의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한 둘째에 대한 미안함이 두 형제의 가슴에 멍으로 남아있었고, 지금이 도와줄 가장 절실한 때라는 것에 두형제 모두 이의가 없을 경우에 가능한 방법입니다.
둘째, 맏이는 지금까지 이루어낸 가정의 평온이 깨어지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둘째를 도와줘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자신이 힘겹게 이룩한 안락함이 흔들리는 것은 겁이 납니다. '그건 둘째의 팔자고 인생이야. 어쩔 수 없어. 더구나 나는 집안을 이끌어 가야할 가장이야'
셋째, 막내는 형에 대한 안쓰러움 때문에 힘 닿는대로 도울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이 가정하에 다음 얘기를 해 봅시다.
첫번째처럼, 내 것을 적극적으로 나누어서 어려운 사람을 도울 수 있는 마음을 진보라 합시다.
두번째처럼, 내가 이룩한 성이 흔들리는 것을 원치 않고, 잘 살든 못 살든 그건 그 사람의 책임이니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보수라 합시다.
세번째처럼, 내게 어떤 타격이 되지만 않는다면 도울 마음이 있다를 중도로 봅시다.(세밀하게 표현하면 중도좌 정도 되겠지요)
유시민을 지지하는 우리들은 어떤 입장을 갖고 있을까요.
개인적으론 첫번째처럼 행동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기부라든가, 사회봉사라든가 하는 구체적인 행위로 말입니다.
공인 유시민을 지지하는 입장에선, 세번째 정도의 입장을 취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개인으로서의 사회봉사도 중요하지만, 모든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놓아 두면 해결이 늦거나 덮어지기 때문에, 공적인 시스템의 작동으로 사회적 해결을 앞당길 수 있다는 이유에서 말입니다.
급질문님은 인물이냐, 이념이냐를 물었습니다.
위에 지극히 단순한 상황을 가정했습니다만, 결국 진보냐 보수냐 중도냐의 차이는 공동체에 대한 관심과 시스템에 대해 어떤 입장에 서느냐의 차이일 것이니, 단순한 예로써 저의 포지션이 어디쯤인지를 설명하는데 큰 무리가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 약자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것은 어릴 때 부터 가정과 학교를 통해서 배워 왔고, 굳이 체계적인 학습을 하지 않아도 천성적으로 반사회적인 유전자만 갖고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면,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어진 마음은 누구나 갖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보수는 악이고, 진보는 선이다 단순하게 가름할 순 없겠지요. 냉전이 종식된 시대에서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보수로서의 가치, 진보로서의 가치를 우리사회의 현실에 얼만큼 적용하고 수용할 수 있는지를 파악하고, 그에 맞는 적절한 정책이 시행되면서 양극화의 갭이 조금씩 메워져 갔으면 하는 것이 저의 바람입니다.
그래서 내 가정만 잘 꾸려도 사회구성원 노릇은 하는 것일테지만, 이렇게 유시민 지지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옳은가는 누구나 알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이란 시험대는 단순하게 선이냐 악이냐를 고르라고 하지 않습니다. 삶은 선과 악의 개념보다 훨씬 실체적이고 생물적이고 다양하고 또 변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릴 적 생각했던 세상과, 성인이 되어 바라보는 세상이 다르듯이 이것이냐, 저것이냐를 단순하게 재단할 수 없는 복잡한 시대에 산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현대사회에 있어서의 리더십이란 각각의 입장을 절충하고 통합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절차와 합의문화를 중시하는 유시민을 지지합니다.
또한 행정가로서의 소신과 책임감, 열정, 개혁의지를 지지하고 좋아합니다. (시민브리핑과 포커스에 다 나와 있습니다.)
또한 인간 유시민의 소박한 향기와 기품을 좋아합니다. (시민평전과 뒷담화를 보시거나, 그의 책들을 보면 자연히 알 수 있습니다.)
정치인 유시민의 냉철한 정세 분석능력과 사회 해부, 역사의 진보를 향한 끝없는 갈망을 존경하고 지지합니다. (이 부분은 기사검색만 해보셔도 쉽게 찾을 수 있겠네요.)
또... 필요하면 담에 더~
급질문님의 질문을 우문이라 현문이라고도 생각 않고, 또한 저의 답변이 우답이라 현답이라 생각지도 않고 그저 적었습니다. 궁금하시다기에.
부탁을 드린다면, '유령'과의 대화를 즐기는 난해한 사람들은 별로 없을 듯 하니 속 깊은 토론을 원하신다면 앞으로 '로그인'을 해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혹시 유령이란 단어에 기분 상하실까봐, 전 예전부터 토론을 원하면서도 자신의 위치와 목적을 밝히지 않는 사람을 유령이라 사용했었으니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확실히 불공평한 생각이 들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