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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광장이여, 시민주권시대의 길을 걷자
□ 목 차 □
서론
■ 시민주권시대를 준비하자
o 시민주권시대를 위한 시민주권운동
o 종교와 시민주권운동
o 프랑스 시민혁명과 시민주권운동
o 시대의 변천과 민주주의의 발전
- 노무현 대통령님 2007년 참평포럼 연설 재편집 -
■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는 권력
■ 권력을 견제하고 타파할 새로운 권력
■ 시민광장이 추구하는 가치와 전략은?
■ 대한민국 1%의 가치와 위력
■ 역사발전에 대한 전략적 사고를 하는 시민들
■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 줄 새로운 대한민국
결론 |
o 시대의 변천과 민주주의의 발전
- 노무현 대통령님 2007년 참평포럼 연설 재편집 -
1. 민주주의는 어떻게 발전해 왔나요?
민주주의는 혁명과 쟁취로 시작되었습니다. 전제권력으로부터의 자유를 추구하는 시민으로부터 출발했습니다. 군주제 왕권과 독재에 맞서서 인권을 위한 투쟁은 지속되었습니다.
▲ 1830년 프랑스 7월혁명을 그린 들라크루아,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부제 '1830년 7월 28일')
민주주의는 투쟁의 역사였습니다. 이 시기에 자유, 평등, 국민주권사상이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습니다. 민주주의가 승리하면서 저항권 사상이 많이 존중되었습니다.
이후 민주주의가 제도로 정착되기까지 혼란이 있었습니다. 공포 정치와 제정의 등장과 몰락의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민주주의는 확대되었고 발전했습니다.
그 이후 무산계급이 등장하고 그로 인한 한바탕의 소용돌이와 또 시행착오를 겪은 다음에 다시 민주주의가 확대 발전된 역사를 거쳤습니다. 이후 유산계급의 지배와 계급투쟁이 시작되면서, 지배에 대한 계급투쟁이 등장했습니다.
그러면서 한 쪽은 사회주의 혁명과 공산독재로 가고, 또 한 쪽은 사민주의 체제로 갔습니다. 그런 와중에 혼란을 극복하지 못하고 파시즘의 등장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이후 파시즘은 세계 대전을 통해 진작 몰락했고, 공산주의는 한참 있다가 무너져 버렸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선거권은 확대되었고 국민주권은 더욱 확대되었으며 민주주의는 아주 장족의 발전과 성장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보통 선거가 보편화되고 보수와 진보가 각기 당을 만들어서 경쟁하는 비교적 성숙한 민주주의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정당의 등장으로 견제의 원리에 변화가 있었습니다.
견제의 본질은 정당 간의 경쟁에 있는 것이고 임기가 있고 교대된다는 것이 가장 강력한 견제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견제를 위해서 정부와 국회를 분리시켜야 된다. 이원화시켜야 된다. 말하자면 정부의 반대당에게 국회의 다수당을 만들어야 된다고 하는 것은 시기에 맞지 않는 말입니다.
과거 근대 초기 민주주의 시대의 이론을 오늘 그대로 쓰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책임지고 일하게 하고 그 다음에 선거로서 심판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견제인 것입니다.
이제 그러면서 민주주의가 더욱 더 발전하게 되면 대화와 타협의 민주주의를 실현하게 됩니다. 그런 일을 실현하는 나라들이 성숙한 민주주의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연정을 하고 있는 나라들의 민주주의가 대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보다 한 단계 높은 민주주의라고 그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민주주의가 발전하면서 파시즘도, 냉전도, 안보적 대결도, 공산주의도 한물 가면서 민주주의에는 적이 없게 되었습니다. 국민도 정치에 대해 별로 적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민주주의 장래에는 어떻게 될 까요? 민주주의가 성숙하면서 국민들은 점차 정치와 선거에 무관심해 지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이른바 적이 사라진 민주주의라고 합니다. 민주주의가 발전하면서 정치에서 시민민주주의와 대중의 소외가 발생했습니다.
2.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의 발전은 어떻게 되나요?
우리나라 민주주의는 사상이 정립되기 전에 헌법으로 먼저 제정되어 법치주의 형태로 시작되었습니다. 헌법에 민주주의에 내재된 가치인 자유와 평등, 박애의 정신이 제정헌법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프랑스의 경우 민주주의는 피를 흘려 쟁취한 것입니다. 그러나 지배받는데 길들여졌던 우리 국민들은 민주주의를 왕 대신 대통령이 통치하는 것이고, 전제군주제와는 다르지만 어쨌든 새로운 지배질서로 받아들였던 것 같습니다.
즉, 대통령제 국가를 왕권 국가와 크게 다를 바 없다고 여겼던 것이지요. 차이라면 왕을 국민이 투표로 뽑는다는 정도의 이해를 가졌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권력으로부터의 자유가 민주주의의 본질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과 박정희의 독재, 그리고 전두환 노태우의 공포정치가 모두 가능했던 이유가 저는 우리 국민들에게는 절대주의 체제에 매우 길들여진 사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해방 후 친일파가 다시 득세했는데도 국민들은 저항하지 못했습니다. 국민들은 민주주의에 대한 사상과 이념의 토대가 전무한 가운데 곧바로 전쟁을 치러야 했습니다. 통치를 받는게 익숙했던 국민들은 저항권을 행사할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조선 건국 이래로 600년 동안 우리는 권력에 맞서서 권력을 한 번도 바꿔보지 못했습니다. 비록 그것이 정의라 할 지라도, 비록 그것이 진리라 할 지라도 권력이 싫어하는 말을 했던 사람은, 또는 진리를 내세워서 권력에 저항했던 사람들은 전부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 자손들까지 멸문지화를 당했습니다. 패가망신을 했습니다.”
- 2001년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 연설 中에서
저항권은 민주주의에 대한 각성과 갈망을 가진 학생들에 의해 4.19로 처음 표출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4.19혁명을 통한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도 그 싹이 트기도 전에 군화발에 밟혀 버립니다.
민주주의에 각성된 학생들과 지식인에 비해 절대 다수의 국민들은 강력한 통치를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민주주의 보다는 절대주의에 의한 지배질서를 더 선호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박정희의 쿠데타는 성공했고, 절대적인 통치를 원하는 국민들을 만족시켰습니다. 해방 이후 이어진 반공의 기치는 여전했고, 그 이후 지금까지 박정희의 절대적인 통치를 기억하고 있는 세대들은 아직도 그에게 높은 지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2009년 중반을 넘어가는 지금도 다수의 국민들은 절대주의 사상에 더 익숙합니다. 이명박의 독재정치에 극렬하게 반발하는 국민들이 있는 반면에, 이명박을 통해 독재자 박정희를 향수하는 국민들도 다수 있습니다. 이명박 정권은 자신의 이미지를 박정희와 오버랩 시키기 위해 노력중이고 언론과 방송을 통해 열심히 마케팅하고 있습니다.
현재 박근혜의 지지율은 독재자 박정희의 이미지와 당시 지배했던 기득권 세력의 지지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을 산업화시켰다는 아버지의 후광을 입고 있지만, 박정희가 독재자임에도 국민지지율이 그렇게 높은 것은 그만한 사상적 배경이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지배사상을 가진 자들은 독재권력을 선호합니다. 자유를 추구하는 자들은 지배사상에 끊임없이 도전합니다. 지배사상을 가진 자들이 정권을 잡고 있는 동안 민주주의는 국민들의 의식과 관습과 문화로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제도로 정착되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투쟁과 젊은이들의 피로 겨우 형식적, 제도적인 민주주의만을 쟁취하게 된 것입니다.
실질적, 의식적인 민주주의가 우리나라에 정착되기 위해서는 시간도 비용도 더 필요한 것 같습니다. 민주주의가 실질적, 의식적으로 국민들의 사상으로 자리 잡을 때에라야 비로소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을 가진 공동체가 생겨나게 될 것입니다. 어쨌든 민주주의는 국민들 속에 사상으로 자리 잡아가는 분량만큼 발전하게 될 것입니다.
민주주의II 민주주의통론 Rev 1.0 by 제베
민주주의II 시민주권이론 Rev 1.2 by 제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