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전 제가 서프라이즈에 올렸던 글입니다. 거의 글을 쓰지 않는데 그의 이름과 기사를 보고 며칠 동안 고민하다 되는대로 써 본 글입니다. 혹시 본인이 읽을지 모르겠지만 읽더라도 반성은 커녕 안영미처럼 '미친 거 아냐?'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그들이 마구 휘두르는 칼에 그나마 이런 식으로라도 반응하지 않으면 돌아가신 노무현님에게 너무 죄송하고 미안해서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2&uid=61692
한겨레 김종구씨,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우선 당신이 일하는 직장의 방침이 '씨'를 선호한다고 하니 저도 '만민평등'의 원칙에 따라 함자 뒤에 '씨'를 붙여 드리겠습니다.
며칠 동안 고민한 끝에 개인적인 일화를 이런 게시판에 올리려고 하니 그렇지 않아도 요즘 심각하게 앓아내고 있는 울화증과 우울증에 겹쳐 가슴울렁증까지 겹치려고 합니다.
최소한 49재까지는 말도, 글도 가능하면 하지 않으려 했지만 여기서 한마디 짹 해놓고 가지 않으면 이번에는 답답증이 새로 더해질 것 같습니다.
김종구씨는 저를 잘 기억하지 못하리라고 생각합니다만, 물론 저도 댁을 잘 알지는 못합니다. 다만 부인과의 친분으로 1991년 결혼식에 가서 부조금도 내고 먼 발치서 얼굴 한 번 본 것이 고작이죠. 그리고 결혼 후에는 가끔 회사에서 '잘 나가는' 신분으로 승승장구한다는 것을 어깨 너머로 전해들었습니다. 저는 한겨레의 창간주주였지만 가난한 신문사의 가난한 기자들에게 도움이 더 되지 못하는 것만이 안타까왔던 그저 그런 보통시민이었을 뿐입니다.
인터넷도 없던 시절, 몇년 간의 외국생활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한겨레21인가에 쓴 기사를 보고 댁을 통해 부인의 연락처를 알아냈습니다. 이미 종사하는 업종이 달라 자주 볼 기회는 없었지만 가끔 연락을 하며 지내는 그런 사이였었죠.
2002년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고, 뭔가 사회가 변할 거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냉소적인 저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당선 이후 한겨레의 논조가 참 이상하더군요. 복잡하고 분석적으로 말하자면 이 글은 밤이 되어도 못 끝내기 때문에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제까지 한편인 줄 알았던 동지가 괜히 딴지 건다는 그런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손바닥 뒤집듯 명백하게 말할 증거는 없어도 유시민처럼 '비등점이 낮은' 저같은 사람들은 감으로 그런 것을 느낍니다. 같은 한겨레 안에서도 논점과 의견이 다른 기사, 칼럼들이 가끔 충돌하는 것을 보며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었지요.
딱히 뭐라고 말할 수 없는 한겨레에 대한 거리감은 그때 시작이 되었지요. 그건 제가 '노빠'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노무현과 관련이 없는 일에도 그와 참여정부를 끌어들이며 문제삼는 논조를 보며 합리성과 설득력의 결여, 무조건 이래도 싫어, 저래도 싫어라며 징징 짜는 유치원생 애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노빠여서 한겨레가 이상하게 보인 게 아니라 한겨레가 어처구니없는 수작을 하게 되자 노무현을 다시 보았다는 점에서 한겨레는 저를 학습시켰습니다. 조중동의 개수작이야 그 이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믿고있던 한겨레가 많이 모자라는 행보를 보이자 그 덕에 오히려 노빠 비스무리한 길을 밟았다고 할까요?
최소한 탄핵 전에는 저는 노무현을 대한민국 60년사에 처음으로 믿음을 주는 정치인이라는, 무책임한 희망을 가진 단순한 지지자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저처럼 사랑하기만 해 놓고, 책임은 몽땅 그 사람에게만 뒤집어 씌웠던 이들에게 탄핵은 벼락을 달고 온 쇠방망이처럼 온 몸과 정신을 후들겨패는 충격이었습니다. 지금은 허탈감과 무기력함과 분노가 뒤범벅이 되어 솔직히 이 글을 쓰는 이 시간에도 이런 말 해봤자 뭐하나 싶을 정도로 탈진 수준입니다만 그때는 분노만이 치밀어 오르던 시절이었지요.
가능하면 매일 거리로 나섰고, 시간되면 1인시위도 하며 보내던, 힘들지만 보람있는 3, 4월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광화문 교보 앞에서 종로경찰서 경찰들이 저에게 시비를 걸었습니다. 사복(아마 윗대가리겠지요) 한 놈이 제 앞에 서서 이런저런 협박 같은 것을 하더군요. 1인시위는 분명 합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데 여자 혼자 서있으니 겁주려고 하는 수작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 이들의 속성이 어차피 강한 놈에게 약하고, 약한 자에게 군림하려는 것을 빤히 알고 있는지라 대답 한 번 안 하고 핸드폰 꺼내 들었지요.
그 놈 보는 앞에서 바로 댁에게 전화했습니다. 뭐, 그 이전에 안부삼아 전화통화 두어 번 한 게 전부인지라 어색한 것은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만 그 상황에서 그래도 그런 놈들 보란 듯이 한겨레 윗자리인 댁에게 전화하는 게 그럴싸할 것 같아서 그랬습니다만...
우선 안부를 묻고 제가 하고 있는 '행위'에 대해 말했었지요.
"저 지금 1인시위 중입니다!"
"예? 뭐라고요?"
"탄핵반대 1인시위 중이라고요!"
"아, 그런데요? (안부 얘기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예의 100% 탑재, 어허허 너털웃음이었는데 탄핵과 1인시위 얘길 하니까 급싸늘해지더이다. 비등점이 낮아서 금방 느낍니다.)
"제 앞에 지금 종로경찰서 인간이 와서 뭐라뭐라 해대는데 혹시 거기선 취재 안 나오십니까?"
"글쎄, 그런데 원하는 게 뭐예요?" (말투 완전 급속 냉각입니다. 30초 안에 이 정도로 어투 바뀐다면 아무리 눈치 없는 사람이라도 대화 계속하기 힘들죠...)
제가 더 이상 뭘 말하겠습니까? 어차피 진짜 취재 오란 얘기도 아니고 경찰 앞에서 '나 이런 사람이야' 싶은 쇼 한번 하려던 목적이었는데요.
"별 거 아닙니다. 그냥 상황이 그렇다구요.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라고 말하며 후다닥 끊었습니다. 그새 경찰들은 어영부영 다른 데로 가버렸구요.
그런데 댁이 얼음 말투로 변하는 동안 제 마음은 심하게 화상 입었습니다. 그냥 저라는 한 인간에 대해 그렇게 싸늘했다면 그냥 욕 한번 내갈기고 말았겠지만 제가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키운, 댁이 봉직하는 회사가 노무현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는지 댁을 대표로 해서 깨닫게 되어서 어처구니없이 한방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데스크에 있는 댁이 가진 인식은 아마 평기자의 기사를 주무를 때도 반영될 것이고, 댁이 그러할진대 밑에 있는 친구들은 또 오죽하겠습니까?
어쨌든 그날 이후, 못나고 마음 좁은 저는 당신이란 사람을 지속적인 연락처 명단에서 지웠습니다. 부인은 그 이후 몇 번 연락을 했습니다만 제가 먼저 하게 되지는 않더군요. 제 맘 속에 생긴 깊은 상처 언급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대통령이 탄핵에서 돌아오고 세상은 잠시 미봉책으로 그렁저렁 몇년이 지났지요. 한겨레가 노통과 참여정부에 대해 미친 강아지새끼처럼 발목 붙잡고 늘어지고, 한여름 똥파리처럼 엉겨붙는 정신분열적 행태를 보면서, 다시 외국 나갈 때 완전히 정기구독을 끊었습니다.
지난 4월부터 한겨레를 비롯해 이른바 무늬만 진보인 기회주의적이고 편파적이며 결코 사실 확인을 하지 않는, 확인을 하더라도 자기들 진영논리에 맞게 글 써대는 언론을 접해 본 적이 없습니다. 물론 조선일보는 이미 20여년 전부터, 중동은 사회에 여론 형성되면서부터 기본적으로 신문제호도 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당신이 썼다는 칼럼을 알 리도 없고, 무엇보다 너무 바빠서 이런 지랄같은 소나기는 그저 피해가자는 심경으로 기사라면 포털 제목만 힐끗 봤을 뿐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들이 나왔는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잘난 척 하자면 사실 저는 제목만으로도 이미 내용 다 파악할 만큼 기사 분석이 가능한 사람입니다.
5월 23일 이후, 아무 것도 할 수 없이 심신이 식물인간이 되어버린 저에게 수구꼴통 좌파들이 긁어대더군요. 제가 참여하고 있는 분야에는 이렇게 지 잘난 맛에 사는 좌파들이 득시글대서 그 분 살아계실 때도 속으로 꾹꾹 눌러참았는데 이제 이렇게 억울하게 돌아가시고 나니 저도 더 이상 참을 수 없더군요.
한나라 집단을 지지하는 인간들과는 이미 탄핵 때 등 다 돌렸는데 이 찌질이들이 반성 하나 하지 않고, 자기 합리화의 구멍 파 놓고, 알리바이를 위한 면죄부 작성에 너도 나도 앞장서면서 추도의 목소리를 높이니 너무 슬퍼서 아예 말이 안 나오는 저 같은 인간이 그 때 미치지 않으면 어떡하겠습니까?
한겨레, 경향, 오마이에 '세뇌'된, 자기 의견과 통찰력 따위는 원래 갖고 있지 못한 채, 이 찌질한 언론들의 비겁하고 무책임한 자기 진영논리만 얻어 걸친 이들과 한 판 붙으면서 저는 다시 등을 돌려야 하는 현실에 점점 슬픔만 깊어집니다.
그런 무리들의 집단적 무뇌성을 열심히 부채질했던 한 사람이 바로 김종구씨라는 걸 요 며칠 사이 알았습니다. 몇년 전 그 예감은 절 배신하지 않았던 것을 새삼 확인합니다. 당신의 그 급속 냉각 모드는 세 치 혀와 손가락으로 저지르는 예비 살인 모드이기도 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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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2009.4.30 [아침햇발] 비굴이냐, 고통이냐 - 김종구 논설위원
http://www.hani.co.kr/arti/SERIES/52/352674.html
너무 서러워하지도, 분노하지도 말았으면 한다. 그런 검찰을 대통령 재임 때 제대로 개혁하지 못한 원죄도 있으니 말이다.
조금 매정하게 말하면, 노 전 대통령의 앞에는 비굴이냐, 고통이냐의 두 갈래 길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 아프고 괴롭겠지만 지금의 운명을 긍정하고 고통의 길을 걸었으면 한다. 가령 노 전 대통령이 앞으로 기소를 면한다고 치자. 그래도 그의 무죄가 확인됐다고 생각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와 박연차씨의 돈거래를 상부상조의 미담으로 여길 사람은 더욱 없어 보인다. 없었던 일을 있었다고 진술할 필요야 없지만, 피의자의 방어권을 내세워 구차하게 법망을 빠져나가려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으면 한다. 그럴수록 더욱 초라해질 뿐이다. 야속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봉하마을 집 주변에 가시나무 울타리를 치고 ‘위리안치’되는 신세나, 옥중에 갇히는 생활이나 오십보백보다.
지금이야말로 그의 예전 장기였던 ‘사즉생 생즉사’의 자세가 필요한 때다. ‘나를 더 이상 욕되게 하지 말고 깨끗이 목을 베라’고 일갈했던 옛 장수들의 기개를 한번 발휘해볼 일이다. 그가 한때 탐독했던 책이 마침 <칼의 노래>가 아니던가. ‘사즉생’을 말하는 것은 노 전 대통령 개인의 부활을 뜻하는 게 아니다. 노 전 대통령이 선언한 대로 그의 정치생명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하지만 그는 죽더라도 그의 시대가 추구했던 가치와 정책, 우리 사회에 던져진 의미 있는 의제들마저 ‘600만달러’의 흙탕물에 휩쓸려 ‘동반 사망’하는 비극은 막아야 한다. 그의 ‘마지막 승부수’는 아직도 남아 있다.
한겨레신문 2009.5.28 [유레카] ‘작은 비석’의 묘비명 - 김종구 논설위원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357567.html
'화장해라.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죽음은 소멸이다. 화장은 그 소멸을 더욱 극대화한다. 육신은 연기와 함께 한 줌의 재로 남고, 육체로 산 모든 것들은 무(無)로 환원된다. 사람이 죽으면 혼(魂)은 하늘로 올라가고 백(魄)은 땅으로 내려온다는 믿음이 있다. 죽음을 ‘혼백의 해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풍수지리학에서는 ‘백’은 죽은 이의 뼈에 붙어 있다고 여기는데, 화장은 그 뼈까지 모두 태운다.
비석은 이 세상을 살다 간 표지이다. 비록 육신은 세상에서 사라져도 그 한 모퉁이에 흔적을 남기고 싶어하는 인간 심리의 반영이 비석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뜻과 발자취는 돌에 남아 세월의 풍화를 견디며 후세로 이어진다. 화장과 비석은, 소멸과 영생 사이의 아득한 긴장을 유지한다. 비석 앞에 놓인 ‘작은’이라는 수식어가 애달픔을 더한다.
비석에 새겨지는 글이 묘비명(墓碑銘)이다. 서양에서는 ‘에피그램’이라는 문학 장르로 발전하기도 했다. 고인 스스로가 미리 묘비명을 써놓은 경우도 적지 않다. ‘썼노라, 살았노라, 사랑했노라’(스탕달),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니코스 카잔차키스) 등은 자주 인용되는 명문 묘비명들이다. ‘자기보다 현명한 사람을 주위에 모이게 하는 법을 터득한 자 이곳에 잠들다’(앤드루 카네기), ‘야구 역사에 한 줄기 빛을, 자신의 삶에 한 움큼 어둠을 남기고 떠난 외로운 영혼, 여기에 잠들다’(타이 코브) 등의 묘비명도 울림이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는 어떤 묘비명이 어울릴까. 이름 없는 수많은 시민들이 분향소 주변의 대자보판, 또는 인터넷 등에 올리는 글들 하나하나가 모두 묘비명으로 써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어찌 보면, 노 전 대통령의 묘비명은 사람들의 가슴속 깊은 곳에 이미 새겨져 있는지도 모른다. |
여기 서프에서 사람들이 당신에게 '집단 다구리'를 하든 말든 당신은 이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전갈의 본성 같은, 어줍잖은 기자 정신이라는 미명 아래 이들을 눈 아래로 내려보며 뭔가 열심히 자기 변명거리를 준비하고 있겠지요.
내가 키운 새끼라고 그래도 한겨레를 조중동과 같은 자리에 놓는 과잉 반응은 보이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썼습니다. 그게 균형감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겨레의 균형감각은 노무현이 미워서, 자기들 시키는대로 하지 않아서 졸지에 노무현을 박정희와 전두환과 같은 급으로 만드는 수준이더군요.
솔직히 그 내부에 자성의 목소리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아무리 인간이 되다 만 것이 기자라고 해도 ○ 잡고 반성하는 인간, 분명 한 둘은 있을 텐데 회사 근처 술집에서 끼리끼리 모여 앉아 '노빠들은 다 그래!'라고 낄낄대고 있을지 정말 정말 궁금합니다.
개중에는 그래도 은근 뜨끔한 것들도 있을 텐데 그러고도 밥 잘 넘어가고, 잠은 잘 올지, 가끔 자기가 사는 게 정말 옳은 것인지 한번이라도 생각은 하게 되는지 정말 궁금해서 못 참겠습니다.
그래도 인연이랍시고, 지난 몇년 동안 가끔, 부인에게는 한번쯤 안부인사라도 할까 했던 생각도 이젠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살면서 다시 볼 일 없기를 바랍니다. 내 전두환이같은 새끼에게, 한나라의 그 수많은 더러운 족속들에게 살의를 느껴본 적은 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알만한 사람에게 살의를 느낀 것은 처음이니 말입니다. 여기저기 둘러보니 꼭 저만 그런 것도 아니군요.
당신 이름은 역사에 남아 있다는 것 잊지 마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