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은 언감생심 꿈꾸기도 어려웠던 4강신화를 만들었다.
열심히 땀흘려 노력했던 선수들과 그들을 적절히 이끌어준 히딩크 감독의 리더쉽이 조화를 이루었고, 온국민의 열화와 같은 성원이 큰 힘으로 작용하였다. 홈에서 경기를 치르는 유리함이 적지않게 작용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축구협회와 모든 축구인들이 합심하여 국가대표팀의 훈련과 준비과정을 도왔다는 점이다. 축구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월드컵 대표팀을 위해서 존재하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실력이 좀 딸리는 팀이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훨씬 많은 훈련과 그것을 통해서 잘 다져진 팀웤밖에 없다.
지난 토요일 대우루과이전을 보면서 여러가지 아쉬운 점이 많았다.
전반적으로 손발이 맞지 않는 엉성함이 눈에 들어왔다. 그나마 공격에서는 가끔 날카로운 플레이를 볼 수 있었으나, 수비의 조직력은 너무도 엉성하여 국가대표 축구팀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2002년에 비하여 선수들의 역량이 결코 떨어지지 않는 것 같은데 왜 그렇게 엉성한 플레이를 하고 있는지 답답했다. 포백시스템에 익숙하지 못하여 오버래핑의 공백을 중앙수비수나 미드필더들이 유기적으로 커버하지 못하는 것은 하루이틀의 문제가 아니다.
상대팀의 개인기가 워낙 출중한 관계로 깊은 오버래핑시 공을 빼앗기면 바로 차단하기 어려웠던 것은 분명히 실력의 차이일 것이다. 반칙이라도 해서 역습을 끊어야 하지만 그것을 피하고 빠르게 역습하는 상대방이 출중한 팀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2002년을 상기해보면 곧장 해답을 찾을 수 있다. 그 때에 비하면 ELP에서 뛰는 선수만도 몇명씩되고 빅리그를 경험한 선수들도 몇명된다. 결코 그 때에 비하여 선수들의 역량이 후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홍명보라는 걸출한 수비수의 공백을 매워줄 훌륭한 수비수가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이미 국가대표팀의 코치를 담당하고 있으니 노하우를 얼마든지 전수받을 수 있는 길이 있다.
다만 그 때와 달라진 것은 한가지다.
선수들이 함께 모여서 연습하고 발을 맞춰볼 시간이 너무 모자라기 때문에 감독의 전술이나 코치들의 역량이 선수들에게 녹아들지 못했을 뿐 아니라 선수들 상호간의 유기적인 호흡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문제점이다. 특히 골키퍼가 카리스마를 가지고 수비수들의 위치들을 조율해내야 하는데 그것도 훈련량이 모자라니 불가능한 것이다.
축구의 발전을 위해서는 국내리그의 정상화가 필수적인 요소이다. 그래서 각 프로팀이 국가대표 선수들의 훈련소집에 비협조적이거나 소극적인 태도를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다. 모든 것을 국가대표에 맞춰서 운영하다보면 국내리그가 엉망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국가대표의 성적이 좋고 A매치에서 스타플레이어를 많이 배출해내지 못하면 국내의 프로리그도 관중이 줄고 시들해지는 원리를 무시해선 안될 일이다. 특히 2002년 월드컵 4강이후 K리그의 관중이 현저히 늘어났던 기억과 청소년 축구대회에서 훌륭한 경기를 거듭하던 박주영이 프로축구의 관중동원에 기여했던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세계 청소년 축구4강을 이룩한 후에 온국민이 축구에 열광하던 시기가 있었음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축구가 전반적으로 세계의 강팀들과 수준차를 상당히 극복한 것도 사실이지만 여전히 우리는 축구강국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인프라도 모자라고 선수층도 두텁지 못하다. 다만 우리가 좋은 성적을 내는 방법은 강팀들보다 더 많은 훈련을 통하여 유기적인 조직플레이를 추구하는 길 밖에 없다. 특히 수비의 조직력은 단시일내에 해결될 수 없는 어려운 과제이다.
그렇다면 K리그도 약간의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과거처럼 일년내내 국가대표를 소집해서 훈련하는 것은 지나친 일이지만 적어도 지금의 훈련기간으로는 국가대표 축구가 좋은 성적을 낼 가능성이 없다. 경기3일전에 소집하여 잠시 발을 맞춰서 좋은 경기를 할 수 있는 수준이 아직은 되지 못한다. 프로구단들의 국가대표 훈련차출에 대한 대폭적인 양보가 필요하다. 적어도 지금의 2~3배는 소집훈련 기간을 늘려주어야 한다.
해외에서 뛰는 선수들이야 우리의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처지이니 국내선수라도 함께 발을 맞추고 코칭스테프의 전술을 몸에 익힐 시간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국가대표팀이 좋은 성적을 거두고 스타플레이어들이 많아지면 K리그에도 잃는 것보다 더 많은 득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축구선진국만큼 훈련해서 그들을 이길 가능성은 거의 없다. 프로축구와 국가대표가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할 때이다.
아울러 걸출한 수비수가 없어서 계속 고전하는 우리의 축구풍토도 개선이 시급한 일이다.
항상 골을 넣는 공격수에게만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는 풍토에서 좋은 수비수가 나올 수는 없다. 그러한 풍토에서는 항상 좋은 자질을 가진 선수가 공격포지션만 고집할 것이기 때문에 좀 자질이 떨어지는 선수만 어쩔 수 없이 수비수를 선택하게 된다. 훌륭한 수비수에도 박수갈채가 쏟아지는 고급축구 문화가 필요한 때이다.
박지성, 이동국, 설기현, 박주영, 안정환도 관심의 대상이 되어야 하지만 못지않게 이영표, 오범석, 김동진, 김용대, 김영광등에게도 아낌없는 박수갈채가 쏟아질 때 비로서 훌륭한 자질을 가진 선수들이 골키퍼나 수비수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축구는 공격수만으로 할 수 없다. 훌륭한 수비수나 골키퍼도 똑같은 비중으로 필요한 것이다.
한국축구의 발전을 위하여 국가대표에게 좀 더 많은 훈련시간을 배려하고, 수비수들에게도 좀 더 많은 관심이 기울여지기를 바란다. 실력이 좀 못하면 더욱 많이 훈련해서 조직력을 다져야 이길 수 있음을 특히 프로구단의 관계자들이 명심해주길 부탁하고 싶다.
우리는 아직 축구선진국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