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요즘 왜 이렇게 정신을 놓고 다니니?"
위 말은 누가 어떤 상황에서 했는지가 굉장히 다른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평소 아이에게 잔소리 일절하지 않던 아버지가 출근하면서 아이에게 툭 던지고 돌아서는 말이라면 아이에겐 꽤 아픈 말로 들리게 됩니다. 하지만 늘 쌍소리와 버럭버럭 큰소리가 습관적으로 쏟아지는 아이에게 이 말은 충격은 커녕 아주 일상적이고 가벼운 관형표현일 뿐입니다.
"노동자, 농민 다 죽이는 한미FTA 즉각 중단하라"
"국민들은 경제난에 죽어나가고 있다!"
"단식에 들어간다!"
극단입니다.
조중동의 그 극악스러운 저주의 헤드라인들에 다들 오염되었거나 무뎌진 겁니다.

사회에서 오가는 말들과 이슈의 표현이 설득의 목적이 아니라 자극의 목적입니다. 누가 얼마나 더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인식"할 수 있게 할 것인가에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이 "자극"에는 소위 말하는 여야도 좌우도 따로 없습니다.
의사들이 자신의 배를 칼로 가르고 국회의원이 서서히 죽어가는 일인 단식을 외칩니다. 깃발이 없으면 단체행동에 나설 수 없고 차마 한 나라의 국회의원이라는 사람들이 입에 담을 수 없는 추잡하고 저열한 단어들을 함부로 뇌까리고도 염치없음을 모릅니다.
집안에서는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죽여버린다'는 말을 서슴없이 쓰고 있으며 아이들마저 친구나 후배들에게 똑같은 말을 하며 그 뜻에 대한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학부모가 교사에 극단적인 언어인 폭력을 행사하고 보고 배운 아이들은 같은 아이를 실제로 "죽여"버립니다.
꽤 시간이 흘렀지만 일전에 방송사들은 경음과 격음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걱정하며 어느 순간부터 단어들을 바꿔 발음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짜장면을 [짜장면]이 아닌 [자장면]으로, 관건을 [관껀]이 아닌 [관건]으로......,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언론인들이 왜 그리 앞다퉈 선정적이고 도발적인 단어들만 골라 "자극"을 하려하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이제 좀 사실에 의한 사실을 위한 사실의 사고를 하고 싶습니다. 아이들은 주먹에 앞서 토론을 할 줄 알고 의사들은 자신의 배를 가르기 전에 자신의 뜻이 무엇인지 의견이 무엇인지 사실을 말했으면 좋겠습니다.
FTA를 반대하는 이유와 FTA가 필요하다는 의견의 납득이 갈만한 대화를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말과 자극의 인플레이션엔 반드시 끝이 있습니다. 그것은 공멸입니다.
복어의 독이 그렇게 맛있다지만 정도를 넘어서면 그 맛을 즐기다 그만 죽게됩니다. 그것도 함께 죽게됩니다. 현재의 자기를 붙잡기 위해 모두의 미래를 수렁으로 끌고 들어가는 걸 누군가는 막고 나서야 합니다.
도를 넘어서도 한참 넘어서고 있는 정치언어의 인플레이션이 진행되는 와중에 주 쿠웨이트 북한대사에게 건넨 대통령의 짧은 한마디는 가슴을 울립니다.
"진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아직 희망은 죽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