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고만 있으면 안 될 것 같습니다.
보통 재보선 하면 <낮은 투표율 + 한나라당 조직표/중장년층 공세 + (언론이 부추긴) 정권 심판론> 등이 한데 뒤섞여 한나라당의 '열어볼 것도 없이 승'이 공식이었는데요.. 이번 재보선은 통상의 경우와 달랐습니다.
일단 근 몇 달 이상 한나라당의 묻지마 고공행진이 지속되고, 열린우리당은 내부 갈등, 어리버리, 우왕좌왕 등으로 연명하면서 (게다가 '법적으로도' 이미 여당이 아니게 되었죠) 정권 심판론의 의미가 퇴색되었습니다.
이 구호는 이미 지난 지방선거에서 민심이 소름끼칠 정도로 무섭다는 것을 보여준 것으로 일단 효력을 다 했다고 봅니다.
한나라당은 지방선거 압승이 결코 달콤한 솜사탕만이 아니라, 민심의 거대한 에너지가 반대로 칼이 되어 자신들에게 꽂힐 수도 있음을 직감하고 두려움 혹은 외경심마저 가졌어야 하는데, 대권놀음, 경선싸움, 돈놀이 등으로 허송세월했죠. 이번 재보선에서도 박/이 두 대권주자(?)가 한바탕 난리만 치고 다니고, 연일 열린우리당이랑 대통령 공격에 여념이 없었는데, 대통령 때리기로 반사이익 누리는 선거는 지난 지방선거로 끝났다는 것을 전혀 생각해보지 않은 모양입니다.
거기다 선거 직전 고질적인 병이 터졌습니다. 운 나빠서 걸린 게 아니라, 터질 게 터진 거죠. 후보매수, 과태료 대납, 공천 비리, 게다가 양념으로 송광수 총장의 어설픈 물타기 등... 이런 일련의 '줄줄이 부패 사탕'은 유권자들이 '끄덕도 하지 않는 한나라당의 오만함과 무능함에 경종을 울려야 할 거 같은데...' 하는 심정에 확실한 도장을 찍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오늘과 같은 참패라는 결과물을 가져다 준 거죠.
그러나... 그렇다고 적의 실패는 우리의 승리인가 하니,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열린우리당은 계속되는 우왕좌왕, 말로만 통합 타령, 실상은 한나라당 이중대 행세 (사학법 개정, 국민연금 법안 처리 등..) 등으로 이미 식물 정당에 가까울 정도로 경색되어 있습니다.
사실 지난 전당대회를 지켜보면서, 통합의 필요성에는 개인적으로도 공감했지만, 자칫 통합이라는 결과적 목표에만 집착하지는 않나 하는 걱정도 되었습니다. 무엇을 위한 통합인가, 무엇을 통한 통합인가 등등 통합의 철학 등을 당내 구성원들이 공유해야 할 것인데, 그저 의장 선출 박수 짝짝짝, 누구 선출 짝짝짝 등 화장하기에만 바빠서 적잖이 가슴이 아팠습니다.
열린우리당의 상황이 이럴진데, 과연 재보선 결과만 보고서 '한나라당은 끝났다', '박그네랑 맹박이는 벌써 레임덕이네' 정도로 만족해서는 안 될 듯 합니다.
이번 선거에서 무소속이 약진한 것은 유권자들의 민심을 읽는 중요한 단초로 보입니다. 유권자들은 기존의 정치권에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여의도 정치꾼들의 행태, 그들만의 정치, 유권자는 그저 밥줄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직업 정치꾼'들에 대해서 더이상 참을 수는 없다는 것을 표출한 것이죠.
사실 열린우리당이 이런 유권자들의 민심을 잘 읽고 그에 맞게 일련의 개혁 입법을 성공시키고, 수구 정당의 패악질에 대해서 적절히 견제하고, 민노당 자칭 진보꾼들에 대해서도 합리적 대안을 내놓을 것을 종용하는 등, 듬직하게 행동을 한다면 유권자들은 맘 편하게 관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역할을 해 줄 것으로 기대한 열린우리당이 저렇게 지리멸렬하자, 유권자들이 맛보기로 조금씩 조금씩 무대에 간섭을 하는 모양입니다. 지난 지방선거와 이번 재보선을 통해서요... 아마도 이번 대선에서도 지금까지의 일관된 민심의 흐름은 계속될 것입니다.
합리적 개혁과 동북화 평화체제 구축, 양극화 해소와 복지도 중시하는 동반성장을 추구하는 민심 혹은 세력은 이미 근저에 흐르고 있는데, 관건은 이러한 민심 혹은 세력을 너끈히 담을 수 있는 그릇을 가진 인물이 부상해야 할 텐데요... 뭐 꼭 누구여야 한다는 건 좀 그렇고, 서프에서 자주 거론되는 이해찬, 유시민, 한명숙, 강금실, 진대제 등 각각 나름대로 시대정신을 대표할 만한 분들이 한바탕 어우러져 누가누가 잘하나 봅시다 하는 공동주연 드라마를 연출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