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구속수감 초읽기.
2007년 5월 10일을 관통하는 현재의 사건입니다.
29세의 나이에 회장직에 오른 그는 지긋한 나이와 실무경험을 가지고 있는 수 많은 그룹내 임직원들 앞에 “나, 회장이야!”를 드러내 보이고 싶어했습니다. 우루루 십수명의 수행원들을 몰고 다녔고 그렇게 허울을 키워 자신을 포장했습니다.
그렇게 살아오길 25년. 아들이 밖에서 맞고 들어오자 예의 그 수행원들과 함께 몰려가 아들을 때린 사람들에게 앙갚음을 해 주었습니다. 김회장 자신은 이런 일 쯤이야 아무런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겠지요. 하지만 그는 내용이야 어찌됐든 압수수색을 당했고 증거인멸 우려를 이유로 사전구속영장을 받게 되었습니다.
예부터 지배자들은 전쟁에 성공하면 으례 성을 쌓아올렸습니다. 일본의 막부들이 그랬고 중국의 왕들이 그래왔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바로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또 다른 자신이 나타나 자신을 거꾸러뜨릴 것 같은 피해망상. 정복에 성공한 거의 모든 지배자들은 성을 쌓았고 그 성안에 측근들을 불러들였고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게 했습니다. 진나라의 시황제가 지식인들을 감시하기 위해 그들을 동원하여 만리장성을 쌓은 것은 유명한 일입니다.
우리 정치문명으로 얘기를 옮겨보겠습니다.
이전 글에 김대중 대통령은 포용을 통해 舊정치문명에 안착하고 노무현 대통령은 폭력과 감시와 줄세우기라는 갑옷과 지역주의 선동이라는 성벽으로 상징할 수 있는 舊정치문명의 핵심에 ‘상식과 원칙’이라는 무기 단 하나로 핵심까지 뚫고 들어갔다고 얘기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는 바로 핵분열을 일으켰다고……,
이것은 비단 차떼기라 일컬어지는 한나라당만을 겨냥해 한 얘기가 아닙니다. 이것은 당 대 당의 헤게모니 싸움을 빗댄 것이 아닙니다. 문명이지요. 어느 당을 막론하고 어느 정치인을 막론하고 新정치문명과 舊정치문명 둘 중에 선택을 하라는 겁니다.
舊정치문명은 갑옷을 챙겨입고 있습니다. ‘너 누구 편이냐’의 편가름은 물론이고 상호 공격의 시점에 ‘얼마나 충성심을 보이느냐’의 측정을 하고 ‘어느 쪽에 더 많은 가능성이 있느냐’의 줄서기와 막판엔 ‘그래도 우리가 남이가’의 지역선동 망국병을 도지게 하는 것이 바로 舊정치문명의 가장 큰 특질입니다.
舊정치문명인가 아닌가를 판단하는 바로미터는 딱 하나입니다. 공동체 혹은 국민의 행복과 안위를 목표로 하고 있는가입니다. 그것이 변함없는 목표라 하면 현재 노무현 대통령의 얘기들은 너무나 당연하고 쉬운 얘기입니다.
‘질서 있는 통합’, ‘신의를 지키는 정치’, ‘명분과 정책과 세력’.
국민들에게 통합의 당위성을 설득하고 명분을 쌓으라는 얘깁니다. 통합, 통합 얘기들은 무성한데 국민들이 봤을 때 필요한 것이냐, 필요하다면 어떤 정체성의 사람들과 세력이 모이는 것이냐 그 과정이 국민들에게 보일 때 ‘말’이 되는 과정일 것이냐에 대한 고민과 움직임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또, 정치인들이라면 그 역할과 본분이 국민들을 위한 것이라면 국민들 보시기에 말이 되도록 서로의 가치존중은 해야 한다는 겁니다. 비아냥대거나 헐뜯거나 자신과 자신에 줄 서 있거나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해서 지역을 볼모로 붙들어 놓고 힐난 해서 자신을 과시하거나 변별력을 가지는 일은 국민들에게 미안한 일이라는 겁니다.
그렇게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명분과 정책과 세력이어야 한다고 대통령이 피토하며 편하게 갈 길 마다하고 대국민과 대정치권에 어젠다를 들이대는 겁니다.
그럼 왜 대통령은 쉬운말로 국민을 위한 참정치 하라고 얘기 안하는 걸까?
과거 死語로 존재하던 민주주의라는 단어가 유린당했듯 ‘국민’이라는 단어 또한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학살자 전두환도 독재자 박정희도 ‘민주주의 수호’를 외쳤습니다. 지금도 극렬단체들은 인공기를 불태우며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외칩니다. 정치와 붙어먹던 언론들도 ‘민주주의 수호’를 외쳤습니다. 그 때 정작 국민들은 자유민주주의를 맛보지 못했습니다. 舊정치문명이 ‘자유와 민주’를 잡아가둬 햇빛을 못 보게 했기 때문입니다.
‘국민’도 마찬가집니다. 저들 舊정치문명에 국민을 위하고 국민의 행복과 안위를 목표로 하는 정치를 하라고 말하면 대통령은 대번에 파렴치한으로 몰릴 것입니다. 언론이 물고 뜯을 것입니다. 또 다시 뜻은 감춰지고 껍데기만 이리저리 찢길 것입니다.
‘아니 그럼 우리가 국민을 위한 정치를 안 한단 말인가?’
‘이게 다 국민을 위해서 하는 일인 걸 대통령만 모르고 있단 말인가?’
‘우릴 싸잡아 국민을 무시하는 저열한 정치장사꾼으로 비하하고 있다’
전혀 거리낌없이 이렇게 얘기하며 달려들 사람들입니다.
진정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의 정치를 표방한다면 舊정치문명은 무장해제를 해야 합니다. 줄 세우고 지역을 볼모로 하는 갑옷과 성벽을 스스로 무너뜨려야 합니다. 그렇게 맨살로 국민과 함께 해야 합니다. 두려워할수록 갑옷과 성벽이 필요할 겁니다. 국민은 두려운 존재이기도 하지만 어머니와 같은 그리고 아버지와 같은 아량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들에 게 자신의 전체를 드러내고 그들의 품에 안겨본 사람들은 그들의 품이 얼마나 넉넉하고 배려심 많은지 그리고 얼마나 현명한 사람들인지 알게 됩니다.
갖은 정치공학으로 주판알을 튕기고 있는, 갑옷도 모자라 성벽에 둘러 쌓여 전전긍긍해 하는 불쌍한 舊정치문명이여-
이제 그 부유한 감옥에서 나와 들판을 함께 걸읍시다.
우리는 갑옷을 던져버리고 성벽을 무너뜨린 新정치문명의 일원으로 누구든 받아줄 수 있는 국민들입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당신을 온전히 우리에게 던지십시오. 우린 이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