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민주정치'를 위한 동화, 모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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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모모와 친구들
세 형제가 한 집에 살고 있어 그들은 정말 다르게 생겼어. 그런데도 구별해서 보려고 하면, 하나는 다른 둘과 똑같아 보이는 거야.
첫째는 없어. 이제 집으로 돌아오는 참이야. 둘째도 없어. 벌써 집을 나갔지. 셋 가운데 막내. 셋째만이 있어. 셋째가 없으면, 다른 두 형도 있을 수 없으니까.
하지만 문제가 되는 셋째는 정작 첫째가 둘째로 변해야만 있을 수 있어. 셋째를 보려고 하면, 다른 두 형 중의 하나를 보게 되기 때문이지!
말해 보렴. 세 형제는 하나일까? 아니면 둘일까? 아니면 아무도 없는 것일까? 꼬마야, 그들의 이름을 알아맞힐 수 있으면, 넌 세 명의 막강한 지배자 이름을 알아맞히는 셈이야.
그들은 함께 커다란 왕국을 다스린단다. 또 왕국 자체이기도 하지! 그 점에서 그들은 똑같아.
- 모모 中에서, p210 - |
아내가 늦깎이 대학원생이 되었다. 그 바람에 일주일에 두 번은 일찍 퇴근해 애들을 돌봐야 한다. 자녀 양육이 아내의 몫만은 아니지만 막상 애들을 돌보려니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차라리 야근을 하는게 낫지 가사와 양육의 힘듦과는 비교해서는 안될 것 같다.
아이들을 올바로 키우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일정 수준 이상의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이 동시에 요구된다. 씻기고, 먹이고, 공부시키고, 놀아주고, 책 읽어주는 일을 매일 함께 해 왔던 아내가 새삼 대단하다는 것을 경험으로 깨닫고 있는 중이다.
자녀양육의 일과 중 제일 마지막 순서는 동화책 읽기다. 아들은 엄마가 동화책을 읽어주었던 시간이 되면 내게도 책을 읽어 달라고 조른다. 잠들기 전 아내가 읽어주는 동화책 이야기를 자장가 삼았던 것이 습관이 된 듯 하다.
아들이 가져온 책을 내가 소리 내어 읽어주었다. 아들은 엄마 목소리에 비해 거칠고 투박했을 내 목소리에도 자장가 삼아 스르르 눈을 감고 잠이 들었다. 곤히 잠든 아들 모습이 하루 동안 지친 피로를 풀어 준다.
이 일도 계속하다 보니 적응이 되고 재미가 붙었다. 일주일에 두 번이지만 책 읽어주는 아빠 역할이 익숙해 진 모양이다. 지금까지는 아들이 읽어 달라는 책을 읽었지만 삼 주 전부터는 내가 선별한 책을 읽어주고 있다.
내가 아들에게 읽어주려고 첫 번째로 선택한 동화책 제목은 ‘모모’다. 이 동화책은 내가 5년 전에 구입하여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이다. 그러니까 어렸을 때 읽었던 책이 아니라 어른이 되어서야 읽게 된 책이다. 아들에겐 내용이 다소 어렵지 않을까 싶었는데 예상과는 달리 이야기가 재미있다고 한다. 여러분들에게도 일독을 권한다.
내가 이 글을 쓰려는 이유는 예리한 정치 분석 고수들의 칼럼들 가운데서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래서 잠시 동심으로 돌아가 현실과는 다른 상상의 세계에 빠져 보는 기회가 된다면 좋겠다. 귀기울여 들어본다면 ‘모모와 친구들의 이야기’가 오늘날 우리에게 시간에 대해 매우 중요한 의미를 전달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모모의 부제목에는 ‘시간을 훔치는 도둑과, 그 도둑이 훔쳐간 시간을 찾아 주는 한 소녀에 대한 이상한 이야기’라고 적혀 있다. 과연 시간을 훔치는 도둑은 누구이며, 그 도둑이 훔쳐간 시간은 무엇이며, 모모가 어떻게 그 시간을 찾아 주게 될까?
자 이제부터 이 이상한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우고 한 번 빠져 보도록 하자.
소통의 방법을 아는 모모
어느 커다란 도시에는 오늘날의 서커스장과 비슷하게 돌로 지어진 원형극장이 있었다. 이 원형극장을 알고 있는 사람은 가까이에 살고 있는 이웃 마을 사람들뿐이었다. 옛 유적이긴 하나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이 극장터에 언제부터인가 한 소녀가 살고 있다는 소문이 마을 사람들에게 퍼졌다. 그 소녀의 이름은 모모였다.
모모는 자신의 이름 외에는 태어난 곳과 나이, 부모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었다. 이웃 사람들은 외톨이 모모를 위해 허물어진 집을 수리해줬고, 난로와 침대까지 보내 주었다. 이웃 마을 사람들 모두는 가난했지만 모모를 위해 남긴 음식들을 들고 와서 종종 파티를 열곤 했다. 그러면서 모모와 이웃 사람들은 매우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모모가 친절한 이웃 사람들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을 사람들은 모모를 만난 것이 커다란 행운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어떻게 해서 모모가 마을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었을까? 모모가 살고 있는 원형 극장터에는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모두들 어떤 문제가 있으면 모모를 찾아가 말하는 것은 일상이 되어 버렸다.
모모에게는 어리석은 사람이 갑자기 아주 사려 깊은 생각을 할 수 있게끔 귀기울여 들을 줄 아는 재능이 있었다. 모모는 가만히 앉아서 따뜻한 관심을 갖고 온 마음으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자신도 깜짝 놀랄 만큼 지혜로운 생각을 떠올리는 것이었다.
모모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거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이 문득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게끔, 그렇게 귀기울여 들을 줄 알았다. 불행한 사람, 억눌린 사람은 마음이 밝아지고 희망을 갖게 되었다. 자신이 수천 수백만의 평범한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던 사람들이 모모를 만나면서, 자신이 이 세상에서 독특하고 소중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었다.
모모에게서 노무현을 보다
노무현도 외톨이였던 적이 있었다. 정치적 이익을 포기하고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 자신의 고향에서
여러번 패배의 아픔을 겪었다. 그런데 그의 의지와 아픔을 보고 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이 생겨났다. 우리나라 최초의 청치인 팬클럽은 노무현을 ‘노짱’이라고 불렀다.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노짱을 위해 자신의 돈과 시간을 투자했고, 그러면서 노짱과 함께 하려는 사람들은 점차 많아졌다.
노짱이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노짱을 만난 것이 커다란 행운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어떻게 해서 노짱이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었을까? 한 명, 또 한 명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된 이유는 그에게서 바로 희망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놀랍게도 노짱은 소통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소통은 귀기울여 듣는 일에서 시작 되었다. 정치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언론의 홍보를 의지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수 많은 국민들의 참여로 전국적인 인기와 지명도는 놀랍게 증가되었다. 노무현은 인터넷이라는 소통도구를 통해 더욱 널리 알려지게 되었는데, 그것은 그가 따뜻한 관심을 갖고 온 마음으로 국민들의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정치란 선거 때 내 한 표 행사하는 것뿐이라며, 소극적으로 알고 있던 대다수의 사람들이 참여정치에 희망을 갖게 되었다. 자신이 수천 수백만의 평범한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던 사람들이 노짱을 만나면서, 자신이 정치적으로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독특하고 소중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었다.
모모가 있는 원형극장은 놀이터
물론 모모는 귀기울여 듣는 데 있어서 어른과 아이를 가리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은 어른과 다른 이유로 옛 원형극장 터를 찾아왔다. 모모가 거기 살면서부터 아이들은 그 어느 때보다 재미있게 놀 수 있었다. 한순간도 지루한 때가 없을 정도였다.
모모가 멋진 제안을 내놓기 때문은 아니었다. 아니 모모는 그냥 거기 앉아서 같이 어울려 놀았을 뿐이다.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는 모르지만, 모모가 있으면 아이들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새록새록 떠올렸다. 그들은 매일 새로운 놀이를 생각해 냈고, 점점 더 멋진 놀이를 만들어 냈다. - 모모 中에서, p33 -
유시민이 있는 시민광장은 놀이터
과거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인터넷에 ‘노사모’를 만든 것과 마찬가지로 유시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인터넷에 ‘시민광장’을 만들었다. ‘노사모’나 ‘시민광장’은 정치란 더럽고 오염된 짓거리를 서슴없이 하는 자들의 전유물이라는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어 놓았다. ‘시민광장’에 사람들이 점차 모여 들면서 재미있는 놀이가 많이 생겨났다. 한순간도 지루한 때가 없을 정도였다.
유시민이라는 정치인이 멋진 제안을 내놓았기 때문은 아니었다. 아니 유시민은 그냥 거기 앉아 눈으로만 지켜보다 가끔 같이 어울려 놀았을 뿐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는 모르지만, 유시민이
있으면 사람들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새로새록 떠올렸다. 그들은 매일 새로운 놀이를 생각해 냈고, 어떻게 하면 더 멋진 놀이터를 만들어 낼 것인지 고민하며 즐거워 했다.
모모의 두 친구 - 말 없는 노인과 말을 잘하는 청년
모모에게는 친구가 아주 많았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좋아하는 친구가 둘 있었다. 나이 든 친구의 이름은 도로 청소부 베포였고, 또 다른 친구는 젊은 관광안내원 기기였다. 모모에게 둘 중 누가 더 좋으냐고 묻는다면 아마 대답하지 못했으리라.
나이 든 친구인 도로 청소부 베포는 결코 서두르는 법이 없었다. 베포는 누가 무엇을 물어 보면 빙그레 웃기만 하고 대답을 하지 않았다. 대답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되면 아무말도 하지 않았지만, 대답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면 두 시간, 아니 하루 종일 걸리더라도 곰곰이 생각하고 대답을 했다.
베포는 천천히, 하지만 쉬지 않고 쓸었다. 한 걸음 떼어 놓을 때마다 숨 한 번 쉬고, 숨 한 번 쉴 때마다 비질을 한 번 했다. 앞에 지저분한 거리를 두고 그렇게 청소를 하다 보면 종종 위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럴땐 곧바로 모모 옆에 앉아 자신의 생각을 들려 주었다. 모모에게는 소통의 방법을 아는 능력이 있었기에 베포의 생각은 모모를 통해 말로 풀려 적절한 단어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또 다른 친구인 젊은 관광안내원 기기는 베포와는 정반대였다. 기기는 말문이 막히는 법이 없었다. 기기의 기발한 생각과 이야기들은 사람들에게 웃음과 감동을 주었다. 기기는 비록 꾸며 낸 이야기를 관광객들에게 말했지만 아무도 그 말이 틀리거나 잘못됐다고 증명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 이야기는 어차피 학자들도 연구할 수 없는 천 년이나 이천 년 전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기기는 특히 모모가 옆에 있을때는 자신이 한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는 이야기가 자기 입에서 술술 나오는 경험을 하곤 했다.
관광 안내원 기기와 도로 청소부 베포처럼 전혀 다른 세계관과 인생관을 갖고 있는 전혀 딴판인 두 사람이 서로 친구가 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친구 사이였다. 묘하게도 기기를 경망스럽다고 탓하지 않는 사람은 나이든 베포밖에 없었다. 마찬가지로 말솜씨 좋은 기기가 비웃지 않는 사람은 괴짜 노인 베포밖에 없었다.
그 이유는 역시 꼬마 모모가 두 사람의 말에 귀기울여 듣는 태도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노무현의 두 친구 - 인터넷 눈팅과 논객
노짱이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주 많았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좋아하는 친구가 둘 있었다. 특히 좋아하는 친구 둘은 주로 인터넷에서 만나기 때문에 그 둘을 얼마만큼 자주 만나는지에 대해서는 아는 이가 거의 없다. 하지만 듣는 것을 잘하는 친구의 이름은 ‘인터넷 눈팅’이며, 말을 잘하는 친구의 이름은 ‘인터넷 논객’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노짱에게 둘 중 누가 더 좋으냐고 묻는다면 아마 대답하지 못했으리라.
듣는 것을 잘하는 친구인 인터넷 눈팅은 하루중 대부분의 시간을 책상 앞에서 보내는 사람들이다. 주로 직장등에서 컴퓨터 모니터에 인터넷 브라우저를 몇 개 띄워놓고 회사 업무용 창과 서프라이즈, 혹은 최근의 ‘시민광장’ 창을 오고 가면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하루 두 시간 혹은 하루 온 종일 걸리더라도 토론방에 올라오는 중요한 글들은 모두 읽는다.
서프 같은 경우에는 중독성이 있어 만일 모니터에 서프 창을 띄워 놓지 않으면 금단현상이 생겨나 업무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인터넷 눈팅들은 업무를 서둘러 끝내려 하지 않는다. 업무와 눈팅을 병행해서 하루 일과를 보냄으로 민감한 시사 문제를 정확히 분석할 수 있는 안목을 가지기 위함이다. 따라서 인터넷 눈팅은 결코 서두르는 법이 없다.
말을 잘하는 친구인 인터넷 논객은 인터넷 눈팅과는 정반대였다. 최근 시사 문제에 대해서 조중동문이라는 메이저 신문 기자들의 헛발질과 그러한 신문에 게재된 유명 교수들이 쓴 칼럼의 논리적 허점을 금새 드러내는 것이었다.
날카롭고 논리적인 칼럼을 쓰는 인터넷 논객들은 적어도 온라인상에서는 시사적 문제에 대한 의제를 항상 선점해오고 있다. 각기 실무분야의 전문가이기도 한 이들 인터넷 논객은 통신환경의 급격한 변화와 맞물려 21세기 오피니언 리더로 새롭게 자리매김하고 있는 중이다.
인터넷 논객과 인터넷 눈팅이라는 전혀 다른 성향을 가진 사람이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두 사람이 친구 사이이기 때문이다. 인터넷 논객의 글이 날카롭고 논리적인 칼럼이라고 인정하는 사람은 인터넷 눈팅밖에 없었다. 마찬가지로 인터넷 논객이 비웃지 않는 사람은 인터넷 눈팅밖에 없다.
그 이유는 역시 노짱이 두 사람의 말에 귀기울여 듣는 태도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다음 글은 제2부 / 회색 신사입니다.
□ 차례 □
예고편 / 진실은 그 사람의 삶 속에 있다.
제1부 / 모모와 친구들, 놀랍게도 노짱은 소통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제2부 / 회색신사, 제1편 - 그들의 거짓말 "우리도 한 번 잘 살아 보세"
제2부 / 회색신사, 제2편 - 노짱, 회색신문의 정체를 밝히다.
제2부 / 회색신사, 제3편 - 노짱을 까는 회색신문들의 발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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