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소신을 주저없이 접을 수 있는 유연한 유시민
유시민의 경쟁력 1(바로가기-편집자)에 대한 열화같은 성원에 힘입어 연이어 2를 적는다. 사실 누구나 조금만 관심이 있으면 유시민의 경쟁력이 무엇인지 알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놈의 관심이란게 쉽게 생기지 않는다는 거다.
생활인이라서 그런거다. 우리가 정치꾼이 아니니 당연한 거다. 그냥 우리 보통 사람들이 정치인을 평가할 때는 간단하다. <인상비평>한다. 그것도 근거가 매우 희박한 2, 3차 자료들을 통해서 말이다. 그래도 그것은 그나마 낫다. 찌라시의 정보를 토대로한 인상비평은 말 그대로 비열한 평이라 할수 있다.
인상비평이 무엇인가? 묻는 사람이 의외로 많은 것 같다. 그래서 살짝 설명하고 넘어가겠다. <유시민이 싸가지 없다>또는 <유시민은 분열주의자>이다. 이런 것을 인상비평이라고 한다. 다시말해 싸가지가 왜 없는지 구체적으로 말은 못하고 그냥 '지적하는 말은 옳은데 그 말을 듣는 사람이 무지 싫어하게 말한다'는 거다.
그리고 분열주의자라는 것도 '잘못한 것을 지적하면서 자꾸 편을 나눈다'는 거다. 비판을 하면 자연
스럽게 그 비판이 옳다고 그르다는 찬반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거다. 그런데 이것을 분열이라고 모는 거다. 그 비판이 옳은 건지 그른 건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찬반으로 나누어지기 때문에 유시민은 분열주의자라는 거다.
이게 말인가? 똥인가? 결국 좋은게 좋다는 거다. 그러면서 아군의 뒷통수에 따발총 쏘는 놈들은 다 면죄부를 받고 타당한 비판을 한 유시민은 분열주의자가 된다. 이것을 인상비평이라고 한다.
그래서 분열주의자가 안되려면 대통합을 외쳐야 하고 원칙이나 상식에 입각해서 끝까지 가치를 지키자는 사람은 아집으로 뭉친 분열주의자가 된다면 도대체 토론이나 논쟁은 왜 필요한 것인가? 결국 이 인상비평이란 다름 아닌 자기들의 잘못을 덮기 위한 딱지붙이기일 뿐이다.
옳은 소리를 하면 당연히 강하게 느껴진다. 잘못된 길을 가는 것을 말리는 사람이 부드럽게 할수는 없는 것 아닌가? 왜 죽는 길로, 망하는 길로 가는데 어느 누가 강하게 말리지 않겠는가? 그러다 보니 점잖게 팔짱끼구 구경하는 사람들 눈에는 그런 유시민이 분열주의자 싸가지 없는 강성으로 보여지는 거다.
그럼 과연 그게 사실인가? 하는 거다. 전혀 사실이 아니다. 유시민을 조금만 관심있게 본 사람이면 이 사람이 싸가지가 없는게 아니라 너무도 싸가지 많은 사람이라는 것, 또 분열주의자가 아니라 타당한 논리에 근거해서 그것이 옳으면 자신의 소신마저 주저없이 버리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유시민의 경쟁력 그 두번째를 논하고자 하는 거다.
2. 유시민은 유연한 진보가 무엇인지 실천하고 있다.
도대체 유연한 진보란게 무엇인가? 머 어려운 것 없다. 굳어 있는 진보를 좀 녹인 거다.^ 진보만이 절대 선이라는 것, 이것을 상대적으로 만들었다고 보면 된다. 어떤 사안에서는 진보를 추구하는게 국민의 이익에 상충할 때가 있다는 거다.
물론 상충한다는 것을 어떤 정확한 기준 하에 평가할 수는 없다. 하지만 최소한의 기준,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선에서 능히 우린 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그렇다고 다수만이 절대 선이라는 것은 아니니 오해는 하지말라.
예를 들어 이런 거다. 유시민 의원은 자이툰부대 파견과 1, 2차 파견 연장에는 분명 반대했다. 그러다가 3차 파병 연장 때는 찬성을 했다. 오마이뉴스 박형숙 기자의 작년 기사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유 내정자는 지난해(2005년) 11월 서울대 특강에서 "미국의 이라크 전쟁이 명분 없는 전쟁이라는 소신에는 변함이 없지만 궂은 일은 대통령이 하고 폼은 국회의원이 잡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며 "(대통령이) 욕먹을 때는 같이 먹고 비가 올 때는 같이 맞아야 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이 말이 듣는 입장에 따라 대단히 싸가지 없게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파병 반대한 사람들이 모두 폼 잡는 사람으로 매도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파병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다만 굳이 파병하지 않고 다른 방법이 없겠는가 정도의 고민은 대한민국의 국민이면 누구나 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낭만적이지 않다는 거다. 어차피 기차는 떠난다는 것, 유의원의 고민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반대만 하는 것이 대안이 아니라는 거다. 대안이 없을 때 파병을 해야 한다는 거다. 하지만 자신의 소신은 파병 반대이나 정치를 하면서 소신만 지킬 수 없다는 것을 배웠다며 그가 인사청문회에서 정형근 의원의 파병 소신을 번복한 것에 대한 질문에 답했다.
그래서 또 이것으로 인해 유시민은 진보측으로부터 엄청난 비판을 받았다. 또 있다 그는 한미FTA에 대한 소신 발언을 한 것을 우린 기억할 것이다. 진보는 한미FTA 자체를 절대악으로 규정하고 있는 상태이다. 여기에다 대구 굳이 매를 벌 이유가 없는 유시민이다. 그가 조금만 노련했다면 조금만 계산적이었다면 입을 다물고 있는게 이득이 되는 일임을 알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입장을 관료로서, 그리고 경제학도로서 한미FTA가 여러가지 어려운 상황에서도 체결되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정치인이기전에 자신의 소신과 국익을 놓고 고민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우린 몇가지 예를 통해 알수 있을 것이다.
소신을 지키는 것도 위대하다. 하지만 더 큰 대의를 위해 자신의 소신을, 폼 잡는 것을 기꺼이 주저없이 포기하는 사람, 아니 정치인을 우린 본 적이 없을 것이다. 있다면 노무현 대통령 뿐이다. 그는 진성당원제 논란으로 우리당이 탈당과 해체로 달리고 있을 때도 기꺼이 침묵함으로서 진성당원제 양보에 동의를 했다.
그는 고집으로 정치를 하지 않는다. 그는 상식의 눈으로 정치를 본다. 나의 어줍잖은 평이 아니라 그의 발언을 통해서 우린 보지 않았는가? 정치인에게 자신의 세력이 잇다는 것은 최고의 자산이다. 그럼 유시민에게 세력은 누구인가? 진보세력일 것이다. 그런데 유시민은 진보세력과 호흡을 하지 않고 대의, 즉 국가를 위해 자신의 소신을 저울질한다.
이런 정치인을 난 노무현 이후에 본 적이 없다. 과도한 징찬이라고? 위의 근거가 그 팩트 아닌가? 이라크 파병 반대했다가 다시 찬성으로 돌아설 때 그는 욕먹을 것을 각오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복지부 장관 인사청문회때 그 유명한 2대8 가르마를 선보이며 이전의 빽바지 논란 이상의 경악을 우리에게 던져주었다.
혹자는 그것을 카멜레온이라고 비아냥거린다. 그런 비야냥은 번지수를 잘못 찾은 거다. 그는 국민들 앞에 자신의 소신을 굽힌 거다. 인사청문회를 무사히 통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임명권자인 노무현 대통령의 얼굴에 먹칠을 하지 않기 위해 자신이 스스로 굴욕을 각오한 것이다.
아무나 할수 있는 용기가 아니다. 그는 타협을 위해 타협하지 않는다. 그는 국가를 위해 조국의 미래를 위해 자신의 소신을 굽히고 타협을 하는 거다. 자신의 정치적 이득을 위해서 그가 단 한번이라고 자신의 소신을 굽힌 적이 있는가? 있다면 가져와라. 그 근거를.
그는 국민을 위한 것이라면 자신의 자존심을 버리고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는 보궐선거 때 민정당 출신을 위해 경북에서 앞장서서 선거운동을 했었다. 그런 그를 향해 진보 먹물들이 온갖 비아냥을 했었다. 유시민은 바보라서 그랬겠는가? 그는 우리당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한 것이다.
지역감정의 철옹성을 향해 부산에서 맨땅에 헤딩한 바보 노무현처럼 유시민 또한 우리당의 영남지역 교두보 확보를 위해 온갖 욕을 감수하고 거기서 살면서 선거운동을 했었다. 자신에게 아무런 정치적 이득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게 바로 유연한 진보다. 각목을 들어야 될 때와 각목을 내려야 할 때, 화염병을 들어야 할 때와 화염병을 내려야 할 때를 정확하게 읽을 수 있는 사람, 그가 바로 유시민이다. 그는 항상 국가, 조국의 미래에 그 기준을 두었다.
그는 단 한번도 자신의 이득을 기준으로 정치를 하지 않았다. 그가 서울대 프락치 사건에서도 후배들을 대신해서 폭행한 당사자도 아니면서 스스로 그 책임을 지는 모습을 통해서 우린 그의 희생정신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이념적 소신만이 절대 진리가 아니다. 진영논리가 절대기준은 아니다. 유시민은 자신의 생각과 소신을 접으야 할 때는 항상 타당한 근거를 가지고 타협을 했다. 항상 그 타협의 기준은 자신의 정치적 이득이 아니었다. 대한민국 정치발전의 미래를 기준해서 그는 항상 타협하고 원칙을 사수했다.
백년정당을 외치면서 우리당의 가치를 수호하자는 게 어찌 분열주의자인가? 오히려 우리당이 실패했다고 난파선에서 뛰어내리는 쥐쌔끼들이 비열한 놈들이 아닌가? 난파선과 끝까지 책임을 다하겠다는 사람이 당연히 더 박수받아야 하는 사람이 아닌가?
대통령이 위기에 처했을 때 모두가 대통령을 비난할때 그것이 스포츠가 되었을 때 유시민은 모두가 욕하는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같이 비를 맞아 주는 사람이 필요한 것 아닌가? 라고 반문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노대통령의 정책이 옳고 그름을 떠나 최소한 도리로서 비판하는 것보다 그냥 묵묵히 같이 책임을 지고 같이 비를 맞는게 더 옳은 일이 아닌가라는 거다.
때론 원칙을 사수하고 자신의 소신을 지키기 위해서 강하게 자신의 발언을 했던 유시민. 그러나 그것이 대한민국의 미래에 걸림돌이 된다면 주저없이 자존심마저 굽히면서 자신의 소신을 접구 엎드릴 줄 아는 정치인, 사심이 없는 정치인, 이런 정치인이야 말로 진짜 유연한 진보, 합리적인 타협을 위한 정치를 만들수 있는 21세기 정치인이 가져야 할 리더쉽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유시민의 경쟁력은 바로 국민을 위해서 자신의 소신마저 주저없이 버릴수 있는 그 용기, 결단, 그것을 난 유시민식 유연한 진보, 개혁이라고 말하고 싶구 그것이 경쟁력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사족.
글이 길다. 길어서 무지 미안하다. 그러나 오타나 문맥의 어색함은 각자의 몫, 즉 셀프는 변함이 없다.
2007년, 유시민이 대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