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 감독의 미덕 6가지

영화 <밀양>이 화제다.
칸국제영화제에서 15분간 기립박수를 받았다는 언론 보도가 인터넷 게시판을 달굴 무렵, 어느 네티즌의 댓글 한마디에 웃음이 나왔다.
'밀양, 크게 히트하진 못하겠군. 한국 사람들은 좋은 영화보다 재미있는 영화를 찾으니’
재미있는 영화는 비디오로, 좋은 영화는 극장에서 보는 버릇이 있는 나는, 지난 일요일 부산 서면의 CGV로 향했다.
1. 유괴범의 딸로 나온 제자, 송미림
전도연이 밀양으로 이사 온 후 아들을 보낸 웅변학원 원장에겐 중학생 딸이 하나 있다.
그 딸은 가출했다가 학원차를 몰던 아버지에게 붙잡히는 장면으로 처음 등장한다. 이후에도 아버지의 범죄 이후 전도연의 피아노 학원을 엿보다 들킨 뒤 우는 장면, 불량 남학생들에게 맞는 장면, 소년원을 다녀온 후 미용실 알바로 취직해 전도연의 머리를 커트해 주는 장면에 나온다. 한마디로 반듯하지 못한(!) 시골 아이다.
이창동 감독이 작년 봄, 부산과 그 인근 몇몇 학교에서 이 배역 캐스팅을 위한 오디션을 시행할 때, '송강호와 전도연이 출연하는 영화'이며, 가출하고 방황하는 여중생 역할’이라고 소개하던 기억이 난다.
이 역할을 맡아 출연한 아이 송미림은, 내가 재작년 경남 양산의 한 중학교에 근무하던 시절의 제자이다. 영화의 전반부에서 이 아이를 만났을 땐, 무언가 묘한 기분과 녀석의 연기에 대한 감탄이 마음을 메우더니 후반부 이 아이가 등장하는 마지막 장면에 이르렀을 땐, 부끄러움으로 바뀌었다.
나는 그 아이를 일 년간 지켜보며, 단 한 번도 녀석의 재능에 주목한 적이 없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 아이를 미워한 적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그다지 큰 호감을 느껴본 적도 없는 아이였다. 내가 주목하지 않은 아이였다.
그런데, 그 아이에게 잠재된 놀라운 재능을 이창동 감독은 단지 몇 분간의 오디션을 통해 발견하고 캐스팅한 것이다. 그 애보다 훨씬 더 예쁜, 훨씬 더 능청스런, 훨씬 더 사투리가 자연스런 지원자들이 각 학교에 많았을 텐데, 이창동 감독은 모래 속에 감추어져 있던 진주 미림이를 찾아낸 것이다.
그 아이와 선생과 제자로 한 학교에 있던 시절, “미림아, 세상엔 공부가 다는 아니란다. 모두에겐 저마다의 소질과 적성이 있는 법이니 네 재능을 키워나가려무나” 라고 단 한번이라도 말을 건내었다면(물론 나는 그런 적이 없다), 학교를 옮긴 지금도 녀석에게 반가운 마음으로 격려 전화 한통 쉽게 할 수 있을 텐데... 네 연기 잘 보았노라고...
이창동 감독은 고교 국어교사 출신이라지.
이창동 감독님, 저는 언제쯤이면 이 감독님만큼 아이들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을까요. 전업하신 전직 교사, 이 감독님이야말로 참 교사이십니다.
2. '있음직한데 아무나 쉽게 발견할 수 없는 것’을 주목하는 이창동
교사가 되기 전 그러니까 부산으로 내려오기 전에, 어느 작은 매체의 인터뷰 담당자 노릇을 했었다.
돌이켜 보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함량 미달의 글을 남발하고 있었지만, 아무튼 나로선 개인자격으론 독대할 수 없는 노 대통령도(당시 해양수산부 장관), 김근태씨도, 권영길씨도, 추미애씨도, 천정배씨도, 김원웅씨도, 홍세화씨도, 고종석씨도, 박노자씨도 만나곤 했으니 참 재미있던 시절이었다.

어느 달엔 문성근씨와 인터뷰를 했다. 그 인터뷰는 개혁국민정당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지만, 그 무렵 개봉된, 이창동 감독의 영화 <오아시스>에 대한 질문도 했던 것 갔다.
그 때 문성근 씨가 이창동 감독에 대해 한 대답을 옮기자면 이러하다. 영화 <밀양>을 본 뒤 다시 잡지를 찾아 그 대목을 읽어보니 예전보다 더욱 공감이 간다.
“참 징그러운 사람이죠, 이창동 그 사람. <초록물고기> 한번 같이 해보았는데, 그 이후로 안 써주니까 같이 못했지만 참 지독한 사람이에요. 옆에서 괜히 얼쩡거려 보는데 그래도 안 써줘요. 오죽하면 끼기 좋아하는 명계남도 한 번도 출연 못했잖아요. (웃음)
<박하사탕>에서는 출연을 못했지만, <오아시스>에서는 설경구가 취조받는 장면에서 뒤편에서 취조받고 있는 범죄자로 나온다고 하던데...
다들 리얼리즘, 리얼리즘 그러다 보니까 상상이나 뭐 이런 걸로 만들어 놓고 이게 리얼리즘이다 생각하는 경우도 많거든요. 그런데, 이창동 감독은 ‘있음직한데 아무나 쉽게 발견할 수 없는 것’ 이것을 기막히게 찾아냅니다. 이게 정말 호소력 있게 전달하는 게 많아요.
이창동 감독이 그 동안 영화 세 편(<초록물고기>, <박하사탕>, <오아시스>)에서 만들어낸 인간형들은 참으로 있음직한데 남들은 쉽게 발견하지 못하거나, 관심을 두지 않았던 인물들이죠. 그런 면에서 그 사람의 예술가로서 대단한 집념이랄까 그런 것들이 돋보입니다.”
<월간 인물과 사상> 2002년 10월호
3. 이창동의 정직과 겸손
엔딩 자막이 올라갈 때, 원작 소설로 소개되는 작품은 이청준의 ‘벌레이야기’이다. 그 소설을 직접 읽어본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그 ‘원작’ 소설이 전체 20여 쪽에 불과한 단편이라는 것조차 아는 이는 드물다.
‘밀양’이라는 지명이 언급되지 않는 것은 물론, 구성과 등장인물이 판이하게 다른 그 짧은 단편에서 이창동 감독은 단지 ‘유괴 사건’이라는 모티브를 빌려 왔을 뿐이다. ‘벌레이야기’에서 영감을 얻긴 했겠지만, 2시간이 넘는 영화에 짜임새와 생명력을 불어넣은 건 오로지 이창동의 작가주의적 관점과 상상력일 테다.
그런데, 별로 정의롭지도 정직하지도 못한 나로선, 이창동 감독의 정직과 겸손이 정말 놀랍다.
지식인이라는 대학 교수들이 논문 표절을 밥 먹듯이 하고, 창작인이라는 음악인들이 곡 표절을 밥 먹듯이 하는 이 세태에, 세계최고의 과학잡지에조차 논문조작을 대수롭지 않게 하는 '석학'의 시대에, 이창동 감독은 아주 오래전, 거의 20년 전인 1988년에 읽었던 그 소설에서 영감만 얻고서도 그 작품이 ‘원작’이라고 얘기하는 것이다.
나 같으면 아마도 스스로 원작 소설 따위는 이 영화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었을 것 같다. 다시 말하자면, ‘원작’을 밝히지 않는 게 아니라, ‘원작’이 따로 존재한다고 여기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게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어떠신가, 이창동 감독 쪽인가 아니면 나와 같은가.
4. 용서, 이창동의 의도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영화의 가장 핵심적인 대목으로, 감옥에 있는 아들 살해범을 면회 다녀온 뒤 전도연이 부르짖는 절규를 꼽는다.
‘내가 용서하기도 전에, 어떻게 하느님에게 용서받아 마음의 평화를 누릴 수가 있다는 거야, 나는 이렇게 고통 속에 괴로워하는데 어떻게 살인범은 그렇게 평온하게 살 수 있는 거야’
그런데, 이창동 감독이 영화평론가 허문영씨와의 <씨네 21> 대담에서 말한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 영화 속 이야기는 한층 더 의미를 갖고 흥미를 더한다. 혹 이창동 감독의 아래 인터뷰 내용을 아직 읽지 못한 분이라면, 이 빛나는 뒷얘기를 소개해 드리는 나에게 자판기 커피값이라도 보내주시길...
"청문회 열기가 한창이던 1988년 '외국문학'이란 계간지에서 이청준 선생의 '벌레 이야기'라는 소설을 읽었다. 소설을 읽으면서 즉각적인 느낌은 '이게 광주 이야기구나'란 것이었다. 청문회에서는 광주학살의 원인과 가해자를 따지고 있었지만, 정치적으로는 이제 화해하자는 공론화 작업이 동시에 이뤄지고 있었다.
'벌레 이야기'에는 광주에 관한 내용이 암시조차 없는데도 나는 광주에 관한 이야기로 읽었다. 그 소설이 독자에게 이렇게 묻는 것 같았다. 피해자가 용서하기 전에 누가 용서할 수 있느냐, 라고. 그리고 가해자가 참회한다는 것이 얼마나 진실한 것이냐, 그리고 그것을 누가 알 것이냐.
다른 한편으로는 이청준 소설의 큰 미덕인데, 그 이야기를 넘어서는, 초월적인 것을 느꼈다. 어찌 보면 되게 관념적인 이야기인데 그게 늘 내 마음속에 있었던 것 같다. 아마 내 개인사와도 관련이 있었겠지. 그러다가 '오아시스'를 끝낸 뒤 밀양이라는 공간의 느낌과 그 이름이 이루는 아이러니한 대비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게 나도 모르게 '벌레 이야기'와 결합된 것 같다."
<씨네 21> 허문영- 이창동 대담 중에서
5. '거짓말이야' 이창동이 선물한 후련함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정당한 혹은 그렇지 않은) 권위의 힘을 빌어, 또한 (세련되게 혹은 그렇지 않게) 조직화된 정치, 사회, 언론 권력의 힘을 빌어, 진실이 아니거나 혹은 일부만 진실인 것을 다른 이들에게 전염시키려는 시도가 얼마나 많은가?
나는 이 영화에서 가장 통쾌한 장면이, 기독교 신자인 분들에게 죄송한 말씀이나, 비이치적인 맹신을 강요하는 교회 집단이 야외 부흥회를 할 때, 전도연이 몰래 앰프 장치에 씨디를 넣어, ‘거짓말이야’라는 노래가 울려 퍼지는 장면이었다. 오랫만에 통쾌함을 느끼게 해 준 이 감독에게 고마운 마음 금할 수 없다!
6. 송강호와 전도연, 이창동에게 경의를!
이창동 감독은 언제나 영화의 주연 배우에 그 역할에 가장 어울릴만한 사람을 캐스팅하는 것 같다.
사람들은 전도연의 연기에 찬사를 보내지만, 내 생각에 그 역할은 다른 뛰어난 여배우, 이를테면 문소리가 맡았더라도 (그보다 더 잘하기는 어렵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썩 잘 했을 것 같다. 즉, 전도연이 뛰어난 연기자이며 칸영화제 주연배우상을 받을만한 열연을 한 것은 틀림없지만, 전도연만이 그 배역을 소화할 수 있다고 단언하고 싶지 않다.
반면, 송강호가 맡은 카센터 사장 역할을, 최민식이 혹은 한석규가 혹은 설경구가 연기했더라면 어땠을까? 나는 송강호야말로 자신의 영화 인생에서 빛나는 이력을 추가했다고 믿는다.
송강호와 전도연에게 그 배역을 맡긴 이창동 감독에게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