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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관위여, 나도 고발하라!
/ 유시민 버전
본 피고인은 2007년 6월 23일 선거관리위원회에 의해 선거법위반 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검찰에 고발당하고 이에 불복, 다음과 같이 헌법소원 이유서(이하 헌소이유서)를 제출합니다.
본 피고인은 우선 이 헌소의 목적이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거나 선거관리위원회 조치의 과중함을 애소(哀訴)하는데 있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두고자 합니다. 이 헌소는 다만 도덕적으로 보다 향상된 사회를 갈망하는 진보적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려는 노력의 소산입니다. 또한 본 피고인은 선거관리위원회의 고발내용에 어떠한 논란거리가 내포되어 있는지 알지 못하며 알고 싶은 생각도 없습니다.
자신의 행위의 정당성을 판단하는 기준으로서 본 피고인이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하느님이 주신 양심이라는 척도이지 인간이 만든 법률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법률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는 본 피고인으로서는 정의로운 법률이 공정하게 운용되는 사회에서라면 양심의 명령이 법률과 상호적대적인 모순관계에 서게 되는 일은 결코 일어날 수 없으리라는 소박한 믿음 위에 자신의 삶을 쌓아올릴 수밖에 없었으며 앞으로도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법은 자기를 강제할 수 있는 힘을 보유하고 있지만 양심은 그렇지 못합니다. 법은 일시적 상대적인 것이지만 양심은 절대적이고 영원합니다. 법은 인간이 만든 것이지만 양심은 하느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본 피고인은 양심을 따랐습니다. 그것은 법을 지키는 일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양심의 명령을 따르는 일이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본 피고인뿐만 아니라 모든 네티즌들이, 이 사건에서만이 아니라 그 이전의 어느 사건에서도 그랬습니다.
본 피고인이 고발당한 것은 선관위의 일방적인 조치와 지침에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며, 선관위의 일방적인 조치와 지침에 따르지 않은 것은 그것을 따를 필요를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고, 그것에 순응할 필요를 느끼지 않은 것은 본 피고인이 선관위의 조치를 따르지 않았다고 하여 그것이 법의 심판을 받아야할 만큼 본 피고인의 양심에 비추어보아 잘못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러한 선관위의 수법은 지난 수십 년간 대를 이어온 독재정권들이 기회 있을 때마다 상투적으로 구사해 온 낡은 수법을 그대로 답습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선관위는 이제 찬란하게 꽃피우려 하는 인터넷상의 네티즌들의 참여민주정치참여활동을 실질적으로 봉쇄하는 동시에, 60만 대군을 동원해도 때려 부술 수 없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권을 훼손시키는 데에 어느 정도는 성공한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마치 자신이 대통령과 헌법위에 군림하여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며 마음껏 주무르는 존재가 된 듯한 자기만족조차 조금은 맛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누군가가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선관위가 정의를 외면해 왔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선거관리위원회가 공정한 선거관리를 넘어 선거에 부당하게 간섭하여 시민들의 자유를 억압해왔다”는 뜻일 것입니다. 누군가가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선관위가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만을 사용하며 공정하게 선거관리를 해왔다”라고 말한다면, 그리고 그가 진정 진지한 인간이라면, 그는 틀림없이 “정의란 곧, 선관위의 의지이다”고 굳게 믿는 인간일 것입니다.
끝으로, 현재 마치 '후보측에 의해 고용된 선거알바'의 본보기처럼 되어 버린 본 피고인은 이 헌소이유서의 맺음말을 대신하여 자신을 위한 몇 마디의 변명을 해볼까 합니다.
본 피고인은 다른 사람보다 더 격정적이거나 또는 잘난 체 하기 좋아하는 인간이 결코 아니며, 하물며 빨간 물이 들어 있거나 위법을 숭배하는 네티즌은 더욱 아니기 때문입니다.
본 피고인은 인터넷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장 평범한 네티즌에 지나지 않으며 늘 ‘불의를 보고 지나치지 말라’, ‘이웃의 아픔을 나의 아픔처럼 생각하라’, ‘거짓말 하지 말라’고 가르쳐 주신, 지금은 그분들의 성함조차 기억할 수 없는 국민학교 시절 선생님들의 말씀을 불변의 진리로 생각하는, 오히려 조금은 우직한 편에 속하는 네티즌입니다.
본 피고인은 이 변명을 통하여 가장 순수한 사랑을 실천해 나가는, 조국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실천하는 행위, 곧 민주주의의 재생을 요구하는 네티즌들의 투쟁 전체를 옹호하고자 합니다.
빛나는 미래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 설레던 열아홉 살의 소년이 지금 파렴치한 범법자처럼 비난받게 된 것은 결코 온순한 소년이 사악한 네티즌으로 성장했기 때문이 아니라, 선관위가 ‘가장 온순한 인간들 중에서 가장 열렬한 투사를 만들어 내는' 부정한 권력기관이기 때문입니다.
본 피고인이 지난 세월동안 거쳐 온 인터넷에서의 여정은 결코 특수한 예외가 아니라 이 시대의 모든 네티즌들이 공유하는 보편적 경험입니다. 본 피고인은 이 시대의 모든 양심과 함께 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에 비추어, 민주적정통성도 효율성도 갖지 못한 선거관리위원회의 조치에 저항하여, 말할 자유와 참여민주주의의 회복을 요구하는 네티즌들의 운동이야말로 가위 눌린 대한민국의 혼을 흔들어 깨우는 새벽 종소리임을 확신하는 바입니다.
모순투성이이기 때문에 더욱 더 내 나라를 사랑하는 본 피고인은, 불의가 횡행하는 시대라면 언제 어디서나 타당한 격언인 네크라소프의 시구로 이 보잘것없는 독백을 마치고자 합니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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