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적추적 장맛비가 내리는 월요일.
홀로 길을 떠났습니다.
홀로 걷는 자는 이따금 그 길 위에서 참 많은 것을 배우고 많은 것과 만납니다.
길 위에선 언제나 선택을 해야하고 선택으로 인해 가지 않은 길에 대해 돌아보기도 합니다.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힘찬 연어만큼은 아니라도
홀로 걷는 길은 펼쳐진 대로를 걷는다 해도 외롭고 고단한 일입니다.

끝도 보이지 않는 길에 서면 누구나 이런 생각을 갖게 됩니다.
'돌아갈까, 아니 그것도 너무 늦어버린 건 아닐까?'
'쉬자. 쉬었다 가자.'
'아니, 아니지 곧 해가 질텐데. 곧 해가 질텐데.....,'

누군가의 강요에 의하지도, 의무감에 의해서도 아닌데 홀로 걷는 자가 산 길을 벅찬 숨을 몰아쉬며 오릅니다. 땀은 비오듯 쏟아지고 챙겨 온 물 한 통 없이 홀로 걷는 자는 무엇엔가에 이끌려 산을 오릅니다.
"헉헉 헉헉 헉헉 헉헉"
'거기엔 아마도 굉장한 것이 있을 것이야'
'바람은 땀을 닦아 줄 것이고 난 그 자리에 앉아 잠시 쉬면서 고단을 풀 수 있을 것이야'
홀로 걷는 자에게 가장 큰 고통은 그 길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것과 그 길의 끝이 얼마나 남아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저 발 앞만 보고 가면 모든 것을 잊고 앞으로 나갈 수 있지만 더 멀리엔 낭떠리지도 있을 수 있고 행여 이마며 눈에 상채기를 낼 수 있는 나뭇가지도 피해야 하기에 무턱대고 발 앞만 보고 갈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그렇게 세상에서 처음 만나는 흙과 돌과 계단과 나무들을 헤치고 산에 오른 홀로 걷는 자의 눈앞이 갑자기 환해졌습니다.

가뿐 숨을 몰아 쉬며 도착한 정상에는 이 어마어마한 광경이 홀로 걷는 자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고요하다 못해 적막한 그 자리에서 홀로 걷는 자는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이유는 그도 모릅니다.
그저 떠오르는 말이라곤 이것 밖에 없었습니다.
'고맙고, 고맙고, 또 고맙다'
홀로 걷는 자는 어느 자리이든 거기가 끝일 수 없기에 황홀감을 뒤로 하고 힘겹게 걸어 온 길을 다시 되돌아 가야 합니다. 어쩌면 이것은 홀로 걷는 자의 숙명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홀로 걷는 자는 또 다시 홀로 다른 길을 찾아 나섭니다.



홀로 걷는 자의 앞에 나타나는 길들은 때론 험하고 좁고 가파른 길이기도 합니다.
길은 홀로 걷는 자에게 넌지시 화두를 던지기도 합니다.
"너는 누구인가"
"어디 참아낼만큼 참아내 보거라"
"길은 그저 길이 아니다. 네 마음이다"
상냥한 가르침과 엄한 꾸중과 혹독한 냉대가 길 위에서 홀로 걷는 자가 주워들은 얘기들입니다.
하지만 늘 길이 호통만 치거나 배우게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잠시 잠깐 숨 좀 쉬며 가라고 홀로 걷는 자의 발길을 붙잡기도 합니다.


어두운 길을 헤쳐 온 홀로 걷는 자에게 딱딱해진 발바닥 뿐만이 아닌 때로는 가슴 시릴 정도로 시원한 사이다를 눈으로 마시게 해 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또 다시 길은 시작됩니다.
여전히 구불구불하고 딱딱하고 때로는 어두운 그 길을 다시 떠납니다.

하지만 홀로 걷는 자에게 이번 여행은 혼자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 길의 끝에서 또 다른 홀로 걷는 자들과 만나 마음을 나눴습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저 흐뭇한 또 다른 홀로 걷는 사람들......,
걸어 온 길들만큼이나 치열하고 뜨겁고 가슴 시리게!
홀로 걷는 자들이 이렇게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함께 길을 갑니다.
그 길 위에서 우리는 산짐승과 뱀들의 공격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뒤쳐진 이들을 챙기며 속도를 내지 못할 때도 있을 겁니다.
갈래길에서 이견을 가진 두 패가 다툴 수도 있습니다.
"이 길을 꼭 가야 하냐"며 중도에 시들해 질 수도 있습니다.
사무치지 않을수도 있고 그래서 꽃을 피워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이 길을 가야만 합니다.
눈부신 풍광과 시원한 바람과 달콤한 휴식을 길의 끝에서조차 만날 수 없다 해도,
그래도 우리는 이 길을 가야만 합니다.
나의 후배들과 나의 아이들과 나의 조국이 내가 걷는 만큼 행복해질수 있기에
우리는 이 길을 반드시 걸어가야 합니다.
함께 사는 세상에서 함께 꾸는 꿈.
우리는 이 길을 가야만 합니다.
사진/글 : 해질녘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