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유령이 배회하고 있다.
유럽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다.
그 유령은 공산주의가 아니다.
‘유시민 왕따이즘’이다.
통합민주당, 탈당그룹, 우리당에 남아 있는 통합파 - 이들을 대표한 민주당과 열린우리당 지도부가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민주당은 통합을 전제로 우리당 해체를 주장하고 우리당 지도부는 이를 거부하는 힘겨루기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은 기존의 배제론을 후퇴시키고 신배제론을 내놓았다.
이 새로운 변종 배제론은 ‘다 좋은데 유시민은 안 된다’는 것이다. 왜 유시민은 안되는가. 그들은 대답한다. “유시민은 국정파탄과 이질세력의 중심인물이다.”
왜 국정파탄이고 이질세력인가 설득력 있는 논리는 더 이상 없다. 다시 물으면 그들은 신경질을 낸다. “이유를 묻지 마. 무조건 유시민이 싫다.”
국정파탄에는 참여정부 국정실패론이, 이질세력에는 트러블메이커라는 이미지가 어느 정도 일반화했다는 자심감이 있다. 사실 “말은 맞는데 싸가지가 없다”고 하면 ‘말은 맞는데’라는 논리는 사라지고 ‘싸가지가 없다’는 이미지만 남는다.
유시민에게 덧칠해진 부정적 이미지가 그렇다. 대중은 집단 이지메의 반복학습으로 그 이미지를 흡수하는 데 더 익숙해 있다. 논리는 궁색해도 이미지 조작에 성공한 그들은 당당하다. 민주당 좌우에서 탈당파와 아직 우리당 내에 남아 있는 상당수 의원들이 그 주장을 엄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도 그들의 주장을 받아쓰며 기세를 올리고 있다.
‘묻지마 통합’을 거부하고 배제론을 주장하다 수세에 몰리면서 유시민에 대한 ‘묻지마 비토’를 주도하는 사람은 박상천이다. 모르겠다. 박상천은 유시민에 대한 집단 왕따를 하나의 이즘으로 승격시켜 정치학 용어사전에 최초로 ‘유시민 왕따이즘’을 올려놓는 ‘성공한 정치인’이 될지는...
지금 유시민은 밤바다를 배회하는 조각배처럼 보인다. 왜 그들은 유시민을 배제하는가. 구체제에 대한 도전, 그것이 문제다. 구체제는 무엇인가. 가장 쉬운 총선 생존전략인 지역주의다. 또 하나는 기존의 정치기득권 상층이 지배하는 독점구조다. 지역주의를 극복하고 당원이 주인되는 정당을 건설하자. 이렇게 정치개혁을 주장하는 유시민은 이질세력의 ‘두목’이 되고 말았다.
사실 과거의 정치 패러다임의 변화를 주도한 사람은 노무현이다. 그들은 노무현이 싫다. 그런데 현 국면에서 노무현은 출마의 당사자도 통합의 대상도 아니다. 따로 때리고 공격할 대상이 필요하다. 대상을 축소화하고 집중 공격할 대표단수로 유시민이 적격이다.
노무현에서 유시민으로 일종의 전이작용이다. 유시민을 공격해 넘어뜨리는 것은 바로 노무현에 대한 한판승과도 같다. 맷집이 좋아서 넘어뜨리기가 쉽지 않지만 바로 그 좋은 맷집 때문에 집단폭행을 해도 동정론이 쏠릴 것 같지도 않다.
그런데 고민이 있다. 당 사수파로 알려진 그가 ‘기대와 달리’ 대통합신당에 합류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당 사수파로 잔류를 유도해도 유시민은 그 대통합 거부의 미끼를 덥석 물어주지도 않는다. 대권출마와 관련한 발언도 변죽만 울리고 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결정해야 할 문제”
“출마를 하든 자원봉사를 하든”
“마당이 없는 상황에서 나오겠다고 하는 게 이상해 보인다”
나오겠다는 것도 아니고 나오지 않겠다는 것도 아니다. 본인 스스로가 “피선거권이 있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는데 대놓고 나오라 말라 말하기도 궁색하다. 그러나 더 이상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다.
그들만의 자리에서 그 속내는 긴박하고 솔직하다. 그들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여 보자. 박상천과 김한길이 함께 있다. 이목희와 노사모의 돌연변이 ‘싸리비’ 정청래의 모습도 보인다. 목소리는 들리는데 누구인지는 모르겠다.
“이번 경선은 친노와 반노의 싸움이다. 우리 반노 진영에서 후보를 만드는 흐름을 주도해야 한다. 다 양보해도 유시민만은 통합 과정에서 합류를 막아야 한다.
개혁당 출신들은 훈련된 자들로 통합 초반부터합류시키면 구도가 흔들린다. 우리가 만약 해체론을 접고 유시민 배제 카드만 내놓으면 우리당 지도부도 받아들일 것이다.
이해찬과 한명숙 정도가 함께 하면 유시민을 제외해도 배제론으로 공격받지 않는다. 유시민 배제만 성공하면 통합의 명분을 얻고 주도의 실리도 차지한다. 이해찬 정도는 가볍다. 손학규와 정동영이 힘을 합하면 끝이다. 손학규는 지지율이 제일 높고 중도개혁노선에도 가장 어울리는 사람이다. 정동영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우리 민주당에서 거부감이 남아 있고 또 친노 쪽의 지지도 받기 어려운 것 아닌가. 정동영이 마지막에 손학규로 힘을 보태주는 게 좋을 것 같다.”
“유시민이 경선에 참여한 순간 공격의 대상이 손학규와 정동영이다. 이 두 사람의 문제점을 가장 쉽게 국민에게 설득해낼 사람이 유시민이다. 손학규에 대해서는 대통령 후보 되려고 집안을 뛰쳐 나왔냐고 그의 이중성을 누구보다 신랄하게 공격할 것이다. 정동영은 우리당 창당의 주역이고 당의장으로 공천권까지 행사했고 비례대표도 정동영계 사람 제일 많은, 우리당 책임의 제일 당사자로 지목할 것이다.
그의 말주변을 당해 낼 재간이 없다. 또 그가 직접 국민을 상대하면서 뜨는 순간 우리는 주도력을 상실한다. 손학규와 정동영의 단일화 문제는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 단일화를 너무 일찍 서두르다가는 친노 쪽의 결집을 자초할 수 있다. 그건 내게 맡기라. 지금 당장은 유시민 배제에 집중하자.”
“일차적으로 유시민의 출마를 봉쇄하는 것이 급선무다. 문제는 출마선언도 하지 않았는데 여론조사에서 범여권 5위 안에 랭크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경선에 참여하면 그 괴력이 어디까지 미칠지 가늠할 수 없다. 열렬 지지자들이 전국 각지에 게릴라처럼 준동하고 있다. 2002년의 노사모보다 업그레이드된 수준이다.
우리끼리 얘기지만 다른 지역은 후보가 복수인데 범여권에서 덩치 큰 대구 경북은 유시민 하나다. 지역 출신을 선호하는 투표 성향을 무시할 수 없다. 그렇다고 그 쪽의 반영 비율을 낮출 방법이 없다. 만약 유시민이 출마선언을 하면 예선전에서 잘라야 한다. 그래서 여론조사의 맹점을 보완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별도의 컷오프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지금은 이이제이 전술을 구사해야 한다. 이해찬을 키워야 유시민을 잡을 수 있다. 내가 직접 나서면 작전으로 눈치챌 우려가 있어 개인적으로 인연이 있는 노사모 상부와 대통령 측근들에게 간접적으로 전달했다.
‘지금 친노 후보는 이해찬으로 단일화해야 한다. 이해찬으로 집중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지지가 겹치는 유시민이다. 유시민에 대한 설득은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한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유시민은 대통령이 말해도 문제가 안 된다.’
이렇게 말했는데 그 쪽 캠프와 측근들은 대강 수긍하는 흐름이고 친노 내부의 유시민 배제론으로 발전하는 기미도 보인다.”
처음부터 끝까지 유시민 타령이다. 그들은 유시민이 대선의 상수가 되는 것이 두렵고 변수가 되는 것도 견딜 수 없다. 여야가 따로 없다. 그들의 정치는 기득권 세력 현상 유지가 목표임을 여실하게 증명한다. 그래서 주적은 그 기득권에 저항하는 유시민이지 한나라당이 아니다.
구체제의 부활을 기도하는 흐름이 장마철의 음습한 곰팡이처럼 피어나고 있다. 그들은 혁신세력에게 자살명령을 내리고 아니면 대학살을 시작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유시민은 사면초가다.
2004년 3월 12일 대통령 탄핵일, 유시민이 울부짖으며 국회 경위들에게 끌려 나오는 모습이 재연되고 있다. 그들의 행태는 2002년 노무현 후보를 정몽준으로 바꿔치기 시도했던 ‘후단협’의 모습 그대로다.
다른 것이 있다면 당시는 후보를 만든 다음이고 지금은 후보를 만들기 전이라는 시점 차이 뿐이다. 그런데 유시민은 유유자적하고 있다. 대한민국개조론을 내고 전국을 돌며 강연정치를 하고 있다. 탄핵 날 밤, 풀어진 허리띠를 다시 고쳐 매고 TV토론에서 전여옥과 맞붙던 당당한 모습 그대로다.
유시민은 지금 초원을 외롭게 달리고 있다. 그림자 외에는 친구도 없을만큼 외로웠다는 징기즈칸의 고백을 듣는다. 병사로 십만, 어린애와 노인을 합쳐 이백만도 되지 않았던 몽골. 징기즈칸은 전쟁 중 목에 칼을 쓰고도 탈출했고, 얼굴에 화살을 맞고 죽었다 살아나기도 했다. 금나라의 몽고족에 대한 대학살정책이 그를 ‘몽골의 푸른 늑대’로 키워냈다. 그는 중국대륙을 지배했던 금나라 병력의 한 줌도 안 되는 병사로 중원을 차지했다. 징기즈칸은 말했다. “나를 극복한 그 순간 나는 징기즈칸이 되었다”
2005년 12월 7일, 유시민이 광주에서 말했다.
“다음 대선에서는 지지자를 신명나게 하는 사람이 주인공이 될 것 같다”
그렇다. 선거에서 자발적 동력은 가치의 선택을 전제로 발동한다. 가치의 혼돈에서, ‘악마와의 계약’에서 그 동력은 솟아나지 않는다. 지금 악마와의 계약으로 영혼을 팔 수 없는 사람들이 유시민의 곁에 있다. 그들은 이미 개인 유시민을 극복하고 넘어버린 ‘유시민들’이다. 그 유시민들이 말한다
"유시민만은 안 된다는 '묻지마 비토'는 왜 유시민이 반드시 출마해야 하는가를 웅변으로 말해주는 역설이다"
조국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그래서 유시민이 아직도 슬퍼하고 분노하며, 국민을 향해 또 다른 항소이유서인 ‘출사표’를 써야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