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 엄청난 양의 비가 쏟아지고 소중한 인명이 희생되었다고 합니다. 재산피해도 물론 가슴아픈 일이지만 사망, 실종, 부상등이 속출하여 마음이 무겁습니다. 피해를 입으신 모든 분들에게 속히 마음의 평화가 찾아오기를 바랄 뿐입니다. 온통 뉴스가 홍수에 집중되고 있는 가운데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건이 묻혀버릴까 걱정입니다. 바로 법조비리인데요, 그것은 유엔의 대북제재안 통과에 못지않은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1. 법조마피아.
우리나라는 사법고시라는 독특한 제도를 통해서 법조인을 양성하고 있습니다. 사법부를 구성하는 판사도, 행정부에 속하는 검사도, 양쪽에 모두 속하지 않는 변호사도 바로 사법고시를 통하여 배출되고 있습니다. 형사사건에서 검사와 변호사는 서로 대립적 위치에 서게 되어 있습니다. 판사는 중립적인 입장에서 유무죄는 물론이고 형량까지 결정을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모두 사법고시를 통하여 선후배 또는 동기라는 인연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연고관계가 강하게 작동하는 우리사회에서 공정성을 확보하는데 어려움이 많을 수 밖에 없습니다.
판사가 퇴임하면 변호사 개업을 합니다. 검사도 퇴임하면 변호사가 됩니다. 연수원을 나오면서 변호사로 나선 사람들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세갈래 길로 나뉘었지만 강물이 흘러서 바다로 가듯이 그들은 결국 변호사라는 한물에 모이게 됩니다. 결국 서로가 서로를 위해서 눈감아주고 편의를 제공하는 일종의 패거리를 형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선배라서, 후배라서, 동기라서 서로를 위해서 이익을 제공하는 일이 흔히 발생하는 것을 봅니다.
우리나라의 정치인은 대부분 법조인들 입니다. 판사로, 검사로, 변호사로 이름이 좀 알려지고 나면 정치에 입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한민국의 정치가 법조인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걱정될 정도입니다. 유명정치인중에 법조인이 아닌 사람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국회의원도 대부분 법조계 출신입니다. 사법부와 입법부가 서로 연결되는 고리가 강하게 형성되었습니다. 또한 행정부의 임명직 관료들도 법조인이 많습니다. 법조인 비율이 높은 정치세력들이 집권하면서 행정부에도 진출하는 일이 많습니다. 본래 사법고시를 통하여 검찰에 들어간 사람들도 적지 않은데 정치를 통하여 더욱 늘어나고 있습니다.
경제계에서도 법조인들은 맹활약을 하고 있습니다. 합법적인 채널로 재벌그룹에 입사하는 법조인들이 있고, 외곽에서 기업의 이익을 수호하려는 로비에 나서는 법조인들도 적지 않습니다. 특정 재벌은 법조계의 고위 인사들이 퇴임하면 엄청난 규모의 대우를 하면서 스카웃을 하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법조계와 재벌들이 연결되는 고리입니다.
시민단체에도 상당수의 법조인들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리더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시민단체의 활동방향도 법조인들에게 단호하기 어려운 측면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습니다. 이미 일부 시민단체들이 정당들의 인적자원 공급자로 변질된 경우도 있습니다. 시민운동의 순수성이 훼손되었다는 의구심이 높은데 그런 역할의 일단도 시민단체에 속한 법조인들이 담당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우리사회의 모든 영역이 법조인들의 무대가 되고 있습니다. 그 들이 이미 거대한 마피아처럼 수 많은 분야에 들어가서 주요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사법고시라는 단일한 창구를 통하여 배출되고 있기 때문에 서로를 위해서 봉사하는 메카니즘이 형성되고 강화되가는 것입니다.
2.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법조비리.
우리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던진 대형 법조비리 사건이 종종 발생합니다. 주로 변호사와 법조브로커들이 연결고리 역할을 하면서 서로의 이익을 챙기는 유형이 가장 전형적인 것입니다. 브로커들의 경우 영향력있는 판사들과 검사들에게 여러형태의 이익을 제공하면서 관계를 유지강화합니다. 그것을 무기로 범법행위자에게 사건무마를 위한 청탁을 해주고 거액의 돈을 받습니다. 또 변호사에게는 사건수임을 알선하고 서로 연결을 해주기도 합니다.
이런 유형의 사건이 빈발하지만 그 때마다 근원적인 해결책이 마련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서로가 경제적 이익을 매개로 공생하고 있는 처지이기 때문에 그것을 차단하기 어렵습니다. 서로 처지가 바뀔 수도 있기 때문에 힘을 가졌을 때 편의를 많이 제공해야 후에 협조를 받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문제는 서로가 같은 문을 통하여 들어온 한식구라는 의식에서 싹트는 것입니다.
법조비리를 막으려면 법률적인 체계변화를 통하여 구조를 깨야합니다. 그러나 국회의원도 다수가 법조인들입니다. 당연히 자신들이 손해볼 법률에 동의할 리가 없습니다. 법조인 출신의 국회의원이 일을 잘하지 못해서 낙선을 하더라도 다시 변호사로 일하면 생계에 지장이 없습니다. 당연히 후에 자신에게 돌아올 이익을 생각하며 입법활동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법조비리가 발생할 때마다 비판여론이 비등하지만 곧 잦아들고 맙니다. 법의 수요자인 국민이 분노할 때만 여론이 들 끓고 국민이 잊어버리면 수그러드는 일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항상 그렇게 형성된 먹이사슬에서 극심한 피해를 보는 것은 비법조인인 국민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잘못된 구조를 고치려면 국민의 힘으로만 될 수는 없습니다. 곳곳에 도사린 법조인들은 그런 개혁을 막아서고 있습니다. 국민이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조소속에 절망할 수 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3. 이상적인 사법개혁.
실현이 도저히 가능하지도 않고 따라서 현실성이 없는 이상으로 사법개혁의 그림을 그려볼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분명히 국민에게 유리한 사법구조의 디자인은 가능합니다. 거대한 법조마피아들에 의하여 항상 좌절될 수 밖에 없어서 실현가능성이 문제일 뿐입니다.
법조인 양성제도를 혁파해야 합니다. 검사는 행정고시에 검사시험을 포함하는 방향으로, 판사는 현행의 사법고시를 유지하고, 변호사는 로스쿨과 국가자격시험으로 대체하여 완전히 분리해야 합니다. 그리고 판검사의 변호사 자격자동부여를 없애야 합니다. 대신 검사나 판사가 평생직업이 되도록 보장해야 할 것입니다.
검사동일체의 원칙이 없어져야 합니다. 전국의 검사를 검찰총장부터 일렬로 세우는 지금의 직급을 모두 혁파해야 합니다. 검사는 오로지 독립적으로 수사하고 기소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후배가 검찰의 수장이 되어도 계속 근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바로 변호사라는 자격증이 그것을 방해하는 원흉입니다. 수사권의 일부를 경찰과 나눠야 합니다. 기소독점을 인정하더라도 수사권까지 독점하는 것은 검찰을 견제없는 비리의 온상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판사의 경우도 직급을 없애거나 축소해야 합니다. 변호사 자격증이 자동으로 부여되지 않는다면 평생을 판사로 살아가야 할 것이기 때문에 후배가 대법관이 되고 대법원장이 되어도 판사로 봉직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차후에 변호사가 되어서 수임료를 챙겨야할 처지가 아니라면 좀 더 연고에서 자유로운 판결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변호사의 경우 불법행위를 할 경우 단호히 자격을 박탈해야 합니다. 법을 다루는 사람들이 법을 스스로 파괴하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지금은 변호사가 불법행위를 하더라도 가벼운 징계를 받고 곧 다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변호사회에서 징계를 하는 것으로는 효과를 볼 수 없습니다. 판사의 판결에 의하여 자격박탈이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판검사의 문호를 일부 개방하는 것은 조직의 활력을 위해서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변호사중에 상당한 자격을 갖춘 사람의 일부를 판검사로 기용한다면 임용시 변호사의 자격을 포기하도록 해야 합니다. 판검사가 평생직업이어야 한다면 당연히 퇴직하고 다시 돌아갈 직업이 있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일반 기업에 입사하는 법조인이야 어쩔 수 없는 일이나 선출직 공직에 출마하여 당선되는 경우 변호사 자격증을 포기해야 합니다. 언제든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업이 준비되어 있다면 최선을 다할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치를 하거나 선출직 공무원이 된다면 그 일에 삶을 걸고 노력해야 당연한 일입니다. 안되면 그만두고 다시 변호사하는 그런 태도로 일을 잘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항상 반복되는 법조비리의 근원은 법조계가 거대한 마피아조직이 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개혁하기는 거의 불가능할지 모릅니다. 바람직한 법조계의 모습은 단지 그림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실현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단지 이상에 불과한 하나의 그림을 끄적여 보았습니다. 그것이 그림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슬플 뿐입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정녕 깰 수 없는 우리사회의 자화상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