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광주강연 - 유시민의 제4의 길, 정권재창출의 원칙
/ 토선생
1. 유시민의 제4의 길 : 선진통상국가 그리고 사회투자국가론
유시민이 말하는 사회투자국가론의 해석 1 : 지속가능한 발전 개념
오늘날 지속가능한 발전은 바로 사회, 국가발전의 새로운 화두이다. 지속가능한 발전 (Sustainable Development)의 개념은 환경을 고려한 경제발전 및 사회시스템의 변화를 요구하는 개념이다(참조: UNEP and Wikkipedia).
그러나 이것을 다른 측면, 즉 사회/경제측면에서 해석해 보면, 지속가능한 경제개발 (Sustainable Economic Development)은, 국가경제개발의 목표에서 경제개발을 통한 이익이 사회 모든 부분에 골고루 미치며, 정책 및 전략의 수립에 있어 현 세대뿐 아니라 미래세대의 요구를 담아내고 그들의 능력을 최대한 발전시키도록 개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 하에 국가정책의 수립은, 일반적 경제정책 안에서 성장과 분배의 문제를 어떻게 조화롭게 관리할 것인가가 쟁점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현실을 본다면, 성장제일주의자와 복지제일주의자와의 갈등, 현세대와 미래세대의 갈등, 지역간 갈등은 대한민국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있어 가장 큰 암초로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지역(경제)발전, 산업발전, 복지, 교육, 주택 및 주거환경 등에서 합당한 정책개발과 국민적 협력을 반드시 이끌어내야 그 성공을 보장받을 수 있다.
왜 박정희를 넘어야 하나?
유시민의 박정희 발언은, 일차적으로는 한국이 반세기전 선택한 통상국가/산업국가의 방향설정이 불가피한 결정이었음을 즉 한국이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운명적 결정이라는 것을 역설하기 위한 것이다. 대다수의 선진경제국가들이 식민지 자본의 혜택을 입은 반면, 대한민국은 일제 수탈, 한국동란과 분단이라는 폐허에서 시작했다는 점을 본다면 압축성장의 폐해는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가가 주도하는 개발중심의 계획경제 형태의 경제정책은 고도의 경쟁적, 유동적인 세계시장구조의 변화에 대응하기 어렵고, 국민의 총역량을 이끌어내는데 한계가 있다. 또한 그 과정에서 비롯된 정경유착과 비리구조는 단지 개별인자의 부도덕성에만 근거한다고 보기 어려운 제도적 결함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박정희식 성장제일주의 경제정책의 폐해는 바로 그 지속가능성의 단절에 있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박정희는 언젠가 우리가 넘어가야 할 문제이다. 이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없이는 앞서 말한 지속가능한 발전의 당위성과 여기에 중요한 전제인 사회통합과 협력을 이끌어내기 어려울 것이다.
유시민이 말하는 사회투자국가론의 해석 2 : 한국형 지속가능한 발전 형태
한 국가의 경제발전이 지속가능하기 위한 가장 큰 역량은 바로 사회 통합, 국민 통합이 담보될 때 가능한 것이다. 지금 한국은 삼십년전 민주화의 국민적 요구와는 또 다른 문제를 안고 있다. 여전히 부패한 기득권이 존재하지만 그래도 삼십년전의 상황과 비교할 정도로 나쁘진 않다. 또한 여전히 존재하는 사회부조리의 문제를 민주/반민주의 구도 안에선 판단하기도 어렵다. 따라서 보다 높은 의식과 사회적 검증기준이 필요한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상식과 원칙’이란 화두는 ‘민주주의와 국민주권’이라는 독재시대의 저항 정신을 계승하는 오늘날의 시대정신인 것이다.
한국은 이미 통상산업중심의 경제로 왔고 여기에 근본적인 변화는 불가능 하다. 실제 결과론적으로 본다면 박정희의 선택은 옳은 것일지 모른다. 그러나 성장위주의 경제개발이 가진 한계성을 우린 지난 수십년간 체험했고 많은 부분에 수정을 가했다. 이는 유시민의 이번 광주강연에서의 지표설명에 잘 나타난다. 지속가능한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선진적 통상산업이라는 한국경제발전방향에 대한 대중적 이해와 더불어 지속가능성에 있어 가장 큰 문제인 사회투자 즉 국민 총 역량을 높이는데 변화된 전략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는 유시민이 주장하는 사회투자국가론을 통해 설명된다.
결론적으로 성장과 분배를 함께 끌어가야 하는 것이 대한민국이 처한 현실이며 이를 바탕으로 한 발전전략의 수립과 정책집행이 다음 정부의 과제임은 분명하다. 이의 성공적 달성을 위해서는 국민통합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지속가능한발전 = 선진통상국가 + 사회투자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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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통합
2. 정권 재창출의 원칙
첫째
유시민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의 10년을 인정하고, 잘못된 부분은 고쳐나가는 것이 바로 대통합신당이다. 지난 10년을 부정하는 집단이 정권재창출을 말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지 않는가”라고 말했다. 정확한 진단이다.
이것은 논리적 모순과 더불어 정서적/감정적으로도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은 정서적/감정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 아무리 비민주적 행위와 나쁜 짓을 했더라도, 국민의 역린을 건드리는 결정적 한방이 없다면 맘을 쉽게 돌리지 않는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 이다. 대통합신당의 명분을 제아무리 잘 포장한다 하더라도, 참여정부의 성과를 인정하는 30프로의 국민이 있는 한 참여정부를 부정하는 대통합신당의 명분이 국민을 설득하기는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유시민은 “참여정부와 성공한 10년을 거부하는 대통합은 원칙에 맞지 않다. 그 기준이 되는 것이 바로 열린우리당 해체를 주장하는 것이다. 열린당 해체를 전제하지 않는 한 대통합은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난 이것이 유시민의 입장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보는 유시민은 대통합의 가능성에 최대한 유연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고 본다. 다만 그 본질 – 참여정부와 성공한 10년의 인정 - 을 훼손하지 않는 한 어떤 형태의 대통합이던 참여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것이다.
왜 우리에겐 “참여정부와 성공한 10년’이 중요한 것인가? 현 대선판국은 반한나라 vs 한나라의 구조로 예견되고 있다. 그래서 범여권의 통합이 중요한 이유이고. 그렇다면 한나라당의 정권탈환의 핵심주장은 무엇인가? 바로 ‘잃어버린 10’년인 것이다. 지난 10년이 실패한 10년이어야만 그들의 정권탈환이 가능할 수밖에 없다. 국민이 미치지 않고서야 잘나가고 있는 대한민국호를 범법자들과 경제파탄자의 손에 쥐어줄리 있겠는가 말이다. 유시민은 적어도 통합을 하더라도 최종 게임에서 승리의 열쇠가 될 명분만은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범여권대통합의 참여정부 실패론과 유시민 배제론은 그야말로 무뇌아들의 삽질이라고밖에 볼수 없다. 참여정부의 실패론은 바로 한나라당의 논리를 그대로 인정해주는 결과밖에 되지 않는다. 이래가지고 잃어버린 10년을 외치는 한나라당과 싸움이 되겠는가? 그러니 명분도 없고, 실리도 없는 대통합은 자멸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단지 희망이 있다면, 저 삽질하는 무리들이 하루빨리 정신차리고, 참여정부의 성과를 인정하고 배째론 (배제론)을 거두고 전열을 가다듬고 본선을 준비하는 것이다. 빠져도 한참 빠져있는 여권이 적어도 한나라당의 정권탈환을 위해 몸부림치는 근성의 반만이라도 닮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다.
둘째
유시민은 “어둠을 욕할 것이 아니라, 빛을 가져와야 한다. 철지난 상품을 가져오는 한나라당을 욕할 것이 아니라, 국민이 성원할 만한 새상품을 가져오면 된 것이다”라고 말했다.
성공적 기업경영의 핵심은 바로 ‘혁신 (innovation)’이다. 수만은 성공한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는 소비자는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기업의 혁신의 최종결과를 구매하는 것이다. 시장의 지형을 변화시키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제품과 서비스는 바로 보이지 않은 소비자의 (스스로 조차도 느끼지 못하는) 열망을 발굴하고 개발하는 것이다. 소비자의 감동은 여기서 발생한다. 내가 본 유시민은 이것을 이해하는 몇안되는 정치인이다.
여권의 질서 있는 통합과 후보선출과정이 예선이라면, 한나라당과의 일전은 바로 본선이 될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은 예선을 통해 마음의 반절쯤을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 나머지 반절은 본선게임을 통해 나오는 최종 결정인 셈이다. 이미 예선게임에서 국민들의 반응은 냉냉하다. 그러나 아직 본선게임이 남아 있다. 예선이 대정치권 게임이라면 본선은 대국민 게임이다. 나의 소망은 유시민과 유시민의 혁신 제안이 예선을 통과하고 본선에서 국민들에게 감동을 일으킬 수 있는 기회를 반드시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참고로, 유시민 제4의 길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글을 함께 올립니다. 서프에 '웃음소리'님이 쓰신 '노무현의 길, 제4의 길'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미 보았을지 모르지만, '대한민국이 가야할 길'에 대해 이보다 더 쉬운 설명이 없기에 첨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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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길, 제4의 길
/ 웃음소리(서프라이즈)
토니 블레어 총리가 다음 달 영국 총리직에서 물러난다. 1979년 보수당의 마거릿 대처에게 정권을 내주고 18년 동안 판판이 깨지면서 영구 집권 불임 정당으로 낙인 찍혔던 노동당을 제3의 길을 표방하면서 재건하여 1997년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면서 승리로 이끈 지 정확히 10년 만에 물러나는 셈이다.
원래 노동당이 대처에게 1979년에 정권을 내준 것은 노동당이 집권했는데도 불구하고 강경 노조가 제조업 비중이 나날이 줄어들던 영국 경제 전체의 달라진 현실과 기업의 경쟁력은 아랑곳하지 않고 고용 안정과 임금 인상 같은 노동자 중심의 복지 정책만을 강경하게 요구하면서 영국 국민들이 학을 뗐기 때문이었다.
강성 노조는 노동당 정부를 사꾸라라고 더 가열차게 몰아붙였다. 그리고 자기들이 정권을 장악하려고 했다. 심지어는 청소부들이 몇 달 동안 파업을 하면서 쓰레기를 치우지 않는 바람에 하이드파크 같은 런던 시내의 공원들이 쓰레기더미와 쥐떼로 뒤덮일 정도였다. 최악의 파업이 있었던 1978년에서 79년으로 넘어가던 그해 겨울을 지금도 영국인들은 “불만의 겨울”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1979년 노동당은 보수당에게 정권을 내주었다.
노동당이 예전처럼 허구헌날 복지와 노동자 중심의 정책만을 들고 나오는 한 아무리 경쟁력과 효율성만을 앞세우는 보수당 정권에 대한 불만이 강했다 하더라도 영국 국민은 선뜻 다시 노동당을 찍지 않았을 것이다. 블레어는 복지와 함께 경쟁력도 함께 추구해야 한다는 참신한 구호로 영국 국민을 안심시키고 사로잡았다.
집권 기간 동안 블레어는 너무 언론플레이에 기댄다, 미국한테 알아서 긴다는 비판을 듣기는 했지만 적어도 이라크 전쟁에 참전하기 전까지는 블레어가 버티고 있는 한 보수당은 만년 야당일 수밖에 없다는 자탄이 보수당에서 나올 만큼 영국 국민에게는 믿음직한 지도자였다.
그것은 경제 지표에서도 나타난다. 블레어는 노동당 일각에서 지나치게 우편향이라는 욕을 얻어먹으면서도 시장친화적이며 기업 투자에 유리한 정책을 추진하면서 일자리를 늘려 실업률을 크게 떨어뜨렸다. 국민소득도 크게 높였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영국의 국민소득은 프랑스의 4분의 3이었지만 이제는 거꾸로 프랑스가 영국의 4분의 3이 되었다. 한때는 영국도 IMF 구제금융을 받아야 할 만큼 파운드화가 폭락했던 적이 있었지만, 이제 파운드화는 초강세다. 런던은 뉴욕을 누르고 국제 금융 시장의 맹주로 무섭게 복귀하고 있다.
블레어는 교육 예산과 의료 예산도 보수당 집권 시절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크게 늘렸다. 런던의 웬만한 공공 박물관도 몇 년 전부터는 무료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훌륭한 문화 시설을 빈부에 관계없이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블레어 정부의 원칙이 아니었더라면 나오기 힘든 정책이었다.
10년 전 블레어가 들고 나온 복지와 경쟁을 동시에 고려하는 제3의 길은 이제 단순히 여러 선택지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를 받아들인 나라에서는 아무도 외면할 수 없는 외길처럼 되어버렸다. 보수당의 젊은 당수로 차기 총리가 유력시되는 데이비드 캐머런조차도 10년 전의 블레어를 방향만 바꿔 그대로 빼닮은 듯 좌파의 전매특허인 복지와 환경을 강조하면서 지지율을 끌어올리고 있다.
제3의 길은 10년 전에는 아무도 선뜻 걷지 않은 길이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검증된 길이 되었다. 적어도 노동 시장에 관한 한 독일과 프랑스도 영국이 뚫어놓은 길로 차츰 걸어가고 있다. 더 앞질러 간 나라도 있다. 덴마크는 세계 최고의 복지 국가이면서 세계 최고의 유연한 노동 시장을 갖고 있다.
몇 년 전까지 침체된 경제와 10퍼센트가 넘는 실업률로 유럽의 환자로 불렸던 독일 경제가 지금 무섭게 상승세로 돌아선 것도 5년 전 사민당과 녹색당이 주도한 적녹 연정 때 과감하게 노동 시장을 유연하게 개혁한 성과가 이제 나타나는 것이다.
독일 노동자들은 5년 동안 실질 임금 인상 없이, 심지어는 같은 돈을 받고 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일하면서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일자리를 지켰다. 덕분에 최근 독일에서는 1년에 일자리가 무려 80만개 이상 늘어나고 있다. 자연히 세수도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오는 2011년이면 세수 증가분만 2000억 유로에 이를 것이라는 추산이다. 세계화와 치열한 경쟁으로 어느 나라에서나 생기는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기는 것이다.
실업률이 높아서 국가의 실업수당 지급 부담이 늘어나는 악순환이 아니라 취업률이 높아서 세금이 더 많이 걷히고 그 돈으로 교육이나 의료를 비롯한 복지에 재투자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기는 선순환의 구조가 확립되는 것이다. 얼마 전 프랑스 대통령에 당선된 사르코지도 노동 시장을 유연하게 개혁하지 않으면 청년 실업률이 20%가 넘는 프랑스 경제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보고 블레어의 길로 들어서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는 또 다르다. 영국, 독일, 프랑스 같은 서유럽 국가의 자본가들은 2차대전 이후 70년대까지 치열한 경쟁을 벌이지 않고도 흑자를 많이 보았기 때문에 노동자들에게 양보를 많이 할 수 있었다. 일하고 싶은 생각이 과연 들까 할 만큼의 충분한 복지 체계를 마련해놓을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세계화로 전 세계와 싸워야 하니까 그 복지를 조금 완화시키면서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다. 참여정부 들어 많이 좋아졌지만 한국은 아직도 장애인이 되거나 불우한 환경에서 태어난 우연한 조건에 개인의 운명이 많이 휘둘리는 나라다.
한국은 선진국에 비하면 복지가 태부족이므로 복지도 끌어올리면서 경쟁력도 끌어올리는 이중고를 겪어야 한다. 개인도 세금을 더 내야 하고 기업도 치열한 경쟁 상황이긴 하지만 법인세를 더 올려야 한다. 자유무역협정에서 보는 수혜의 일부를 공동체를 위해 내놓는 책임감이 필요하다.
그런데 얄팍한 수구 지식인과 언론은 선진국이 경쟁력을 살리기 위해 복지 혜택을 줄이는 추세이니 한국도 복지 같은 배부른 소리는 하지 말아야 한다고 선동한다. 이런 착시 혁상에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와 경제에서 모두 압축 성장을 해온 한국에게는 한국만의 길이 있다. 블레어의 길이 제3의 길이었다면 한국이 걸어야 할 길은 아직 아무도 가보지 못한 제4의 길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는 바로 그 제4의 길을 걸어가면서 2030 구상으로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그래서 세금을 더 걷지 않은 상태에서도 정부 예산에서 복지비가 차지하는 비중을 20%에서 28%로 무려 10% 가까이 늘렸고,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미국, 유럽과 자유무역협정을 맺었거나 맺으려 하고 있다.
그런데 중국과 일본과 경쟁해서 이기려면 노동 시장을 유연하게 하면서 기업의 경쟁력을 살려나가야 한다고 말하면 한국의 교조적인 좌파 언론에서는 신자유주의라고 입에 거품을 물고, 자원이 없고 수출이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나라에서 기업의 경쟁력을 살리는 것은 물론 중요하지만 경쟁에서 낙오한 사람들도 같이 보듬고 끌고 가는 것이 장기적으로 공동체의 건강한 경쟁력을 유지시키는 길이라면서 복지를 강조하면 수구 언론은 빨갱이라고 날뛴다.
독일 언론은 독일 경제가 지금 잘 나가는 것을 무조건 현 총리의 공로로 몰고 가지 않는다. 노동 시장을 개혁하는 바람에 핵심 지지층이 등을 돌려 결국 정권을 잃은 슈뢰더 전 총리의 공로가 훨씬 크다는 것이다. 올바른 정책의 성과는 단기간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뻔히 정권을 내줄 줄 알면서도 노동 시장 개혁을 단행한 슈뢰더의 용단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렇게 공과를 정확히 평가할 줄 아는 언론이 있으니까 그 나라의 정치인도 믿음을 갖고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백년대계를 내다보면서 정책을 추진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언론은 오늘도 자국 경제를 저주하기에 여념이 없다. 최근 외국의 한 경제 컬럼니스트는 주가가 가장 빠른 속도로 올라가는 나라로 남아공과 한국을 들었다. 실제로 한국의 주식은 참여정부가 출범한 이후 지난 4년 동안 3배 가까이 늘었다. 마의 1000은 벌써 옛날에 뛰어넘었고 지금은 1600선도 돌파했다.
그런데 한국 경제를 저주하는 한국 언론들의 논조에 휘둘려 상당수 한국의 개미 투자가들은 주식을 팔아치우고 부동산 투기로 몰렸고 한국 기업들이 열심히 뛴 덕분에 올라간 주식 시장의 단물은 외국인 투자가들이 쏙쏙 빨아먹었다. 노른자 기업의 주식을 외국인 투자가들에게 내준 주범은 정부도 아니고 국민도 아니고, 바로 자기들이 내뱉는 헛소리에 놀아나지 않는 대통령이 밉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한국 경제를 4년 전부터 지금까지 하이에나처럼 물어뜯고 저주한 쓰레기 한국 언론이다.
제4의 길은 제3의 길보다 험한 길이다. 제3의 길을 걸어온 유럽 나라들은 하나같이 제국주의 국가였으므로 자국 경제를 지킬 줄 알고 자국 이익을 추구하는 자국의 지도자를 아낄 줄 아는 언론의 전통이 있는 반면, 한국처럼 식민지를 경험한 나라는 대대로 공익보다는 사익을 추구해온 쓰레기 엘리트들과 합심하여, 사익보다 공익을 위해 살아가려는 지도자를 쓰레기장에 묻어온 언론의 유구한 전통이 있기 때문이다.
제4의 길은 서글프고 힘겨운 길이다. 타국과 겨루면서, 동시에 자국의 쓰레기 엘리트와 싸우면서 하지만 끌어안으면서 가야 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은 반드시 제4의 길을 뚫어야 한다. 후손을 위해서. 식민지를 경험한 온 세계 약소국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
ⓒ 웃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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