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행 열차는 정파아닌 민족을 싣는다
아마도 꽃피는 봄 사월이면 김대중 전 대통령이 열차로 평양행을 결행하는 걸 볼 것이라 하니 생각만 해도 가슴이 울렁거리지 않는가!
복사꽃, 진달래가 흐드러져 하늘까지 연분홍으로 채색된 그 봄천지에 반도의 끊어졌던 허리가 이어져 기차가 달린다면. 허리신경이 마비되어 앉지도 서지도 못하던 환자가 어느날, 무슨 기적처럼 일어난다면, 이보다 더한 기쁨이 있을 것이며, 이보다 더 지극한 휴머니즘의 성취가 또 어디 있을 것인가
북녘 동포들이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때처럼 반겨주고, 북은 핵개발을 단념하는 대신 국제사회가 배려하는 큰 경제적 이득을 얻고, 남은 북을 향해 가졌던 적개심과 증오를 내려놓는다면 우리민족 남과 북 어느 누구에게 해가 되랴.
그런데 남과 북 어느 누구에게도 해롭지 않을 이 일은 과연 순조롭게 성사될 것인가. 좋은 일에는 항상 마가 끼는 법이어서 벌써부터 주판알 굴리는 소리가 떼구르르 요란하다.
우선 일차적으로는 휴전선을 넘는데 대한 남과 북의 군사적 보장합의서가 체결되어야 한다. 그보다 더 지난한 장애는 남한 내부의 각 정파간의 이해관계의 충돌에 있다.
DJ의 열차 방북을 우리 한민족의 숙원사업인 남북평화정착의 문제로 보는 시각보다는 이를 정파적 관점으로 보고자하는 오래되고도 완고한 시각때문이다. 곧 다가올 지방선거에서 열차방북이 끼칠 영향을 두고 설이 분분하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격분해서 외친다.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려는 광대놀이'라 하니, 축수에 축복을 거듭해도 어렵사리 성사될 일에 난감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한나라당의 단견과 소아적 발상은 전혀 역사를 성찰해 보는 여유가 없어 보인다. 2000년 4.13총선은 이와 비슷한 경로였지만 여당이 대패하지 않았던가. 국민들은 진정과 속임수를 지나치게 야멸차게 구분할 줄 알았던 것이다. 민주당 역시 의혹의 시선을 보태기는 마찬가지이다.
좀 통큰 정치를 볼 수 없는 것일까?
정파의 이익을 두고 여야가 치열하게 물어 뜯다가도 민족의 큰 이익을 두고서는 잠시 휴전하고 서로 격려해주는 그런 정치말이다.중국처럼 국공합작으로 일본 제국주의에 대항해 국가를 수호하려는 그런 ‘싸움의 기술’을 정녕 볼 수는 없는 것일까?
국가적 아젠다가 있을 때 전직대통령을 잘 활용하는 미국의 정치기술을 본받을 수는 없는 것일까? 카터대통령은 일촉즉발 전쟁발발 위기를 관리하는 기술을 발휘했다. 마침 정형근의원의 코페르니쿠스적 대전환의 발언도 들려온다. 무언가 희미하게 희망이 보이는 것도 같다.
남한 정치지도자의 방북은 48년 4월 김구선생으로부터 시작했다. ‘피로써 피를 씻는 민족의 대참극’을 저지해 보고자 갖은 방해에도 불구하고 평양행을 감행했던 김구의 정치실험은 참담한 패배로 끝났다.
72년 7.4남북공동성명은 곧이어 박정희 독재를 강화하는 명분용으로 전락하기는 했지만 그 자체로는 획기적인 것이었다.서울과 평양에서 동시에 발표된 이 성명은 외세의존없는 자주적 해결, 무력의존 아닌 평화적 방법, 남북 이념과 제도를 초월한 민족대단결의 3대원칙을 천명했다. 박정희의 대리인으로 방북한 이후락의 목숨건 결행이었다. 이후락의 부패타락한 중정부장으로서의 행적과는 별개로 그 역시 목숨을 담보로 북행길에 올랐던 것이다.
노태우정부의 88년 7.7선언 역시 그 의미가 깊지만, 남북화해와 개방이라는 시대흐름을 밝혔지만 통일정책 창구단알화 명분하에 정치수단의 독점화에 귀착된 아쉬움이 있다.
가장 극적인 것은 89년 3월 문익환의 방북이다. 분단독재의 감옥에서 이미 네 차례에 걸쳐 투옥된바 있는 노전사인 그는 유년시절의 벗인 윤동주와 성년의 벗인 장준하의 순결한 마음으로 평양행을 결행했다. 통일문제를 더 이상 독재권력의 전유물로 정권안보용으로 전락케 할 수 없다는 단호한 의지에서 비롯한 일이었다. 그는 민족모순을 절규하며 수없이 목숨을 버리는 김세진, 이재호, 조성만, 이동수들의 문제제기를 더 이상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김일성에게서 정확한 기억력과 인민에 대한 강고한 장악력을 지닌 공산주의자의 면모보다는 민족주의자의 면모를 읽었다. 남북정치군사적 대결해소와 다양한 민간교류의 확대등 많은 부문에서 합의한 내용이 있었다. 남북철도 연결도 그 실현방안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화려하고 정당하고 통쾌한 것은 김대중의 평양행이었다.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치러진 세기의 이벤트였던 것이다. 소떼를 몰고 고향을 찾은 정주영회장의 북행길 역시 규모는 작았지만 그러했다. 끊어진 길 위를 오고가는 것은 비록 나중에 정략에 이용되는 한이 있더라도 민족 모두에게 이로운 일이었다.
이 마당에 굳이 DJ 의 경의선방북을 비판할 까닭이 어디 있겠는가? 어느 누구에게도 손톱만치라도 해롭다는 말인가. 각 정파들이 소아적 울타리를 벗어나 대승적 자세를 가져야 할 소이가 여기에 있다.
문익환은 서울역에서 평양행 기차표를 사는 날을 열망했다. 80년대에는 그 꿈이 몽상가나 돈키호테의 그것으로 들렸지만 이제 곧 현실에서 실현될 지도 모르는 시기에 우리는 서있다. 민족의 자주적 단결만이 꿈을 이룰 수 있다. 경의선 연결도로를 통해 금강산과 개성공단에는 지금 이 시각에도 하루에 삼백여대의 차량과 이천여명의 남북 국민이 이동하고 있다. 더 많으면 더 좋아질 것이다.
자, 그러니 달려라 북행열차야.
끊어진 길 어서바삐 연결해 평화사절 싣고 달리려므나.
The more, the better.
The sooner, the better.
2006.2.14 유시춘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