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굿모닝 팝스를 진행하던 이지영씨가 학력을 속인 사실이 밝혀져 진행자 자리를 내놓았다고 한다. 동국대 신정아 교수의 예일대 학위도 허위로 밝혀졌다.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논문조작 사건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데, 연이은 허위와 조작사건이 터지고 있다. 국무위원 후보자들의 논문조작이나 표절사건도 숱한 파문을 낳았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학벌주의와 거짓으로 만들어낸 업적들이 씁쓸한 미소를 짓게 한다.
개인 과외를 하는 대학생들도 서울대를 다닌다고 속여서 과외 자리를 얻는 경우가 적지 않을 것이다.
사교육 시장의 유명 강사들이 상당수 자신의 학력이나 출신학교를 속이고 있다고 한다.
허울과 간판에 의존하여 판단하는 관행이 만연된 것은 수 많은 위선자들과 바보들을 양산하고 있다.
1980년대에 이런 일화가 있었다. 유명한 단과학원 강사에게 수학을 배우며 칠판을 닦아주던 아르바이트 재수생의 이야기이다. 그는 재수, 삼수, 사수를 거듭하였지만 대학 진학에 실패하였다. 그러나 단과로 수강하던 수학만큼은 강사의 강의를 거의 외우다시피 했다. 그래서 다른 학원에 학력을 속이고 수학 단과 강사가 되었다.
수강생이 구름처럼 몰리고 돈도 많이 벌었다. 그리고 그에게 수학을 배운 학생들도 비교적 수학과목을 잘 이해하고 입시에 효과를 보았다.
학력을 속였으나 사실 그리 피해를 입은 사람도 없는 셈이다. 하지만 학력을 속인 사실이 들통나고 소문이 퍼져서 그는 꽤 유능한 강사였으나 아무도 써주는 사람이 없었다. 우리 사회의 능력 불문, 학력중시 풍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이다.
국회의원이 선거홍보물에 기재한 학력수준이 다른 것도 아니고 내용이 다르다는 이유로 당선무효
형을 받은 일도 있다. 그가 고의적으로 속인 것인지 단순한 실수를 한 것인지 모르지만 사법부는 가차없이 그의 배지를 떼버렸다.
수 많은 위선과 허위들이 발생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에 대한 비난이 일어난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사회의 시스템은 정의 방향으로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거짓으로 자신의 이력을 속이는 행위를 비호할 이유가 없다. 가차없이 징치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우리사회의 문제들이 모두 치유될 것으로 여겨지지는 않는다. 원인부터 생각해볼 부분이 많다.
첫째, 간판만을 보고 판단하는 단순함이다.
고졸이 훨씬 능력있고, 박사가 대단히 무능할 수 있는 가능성에 그다지 주목하지 않는다. 벌써 두명의 고졸 대통령을 배출하였으나 여전히 학력지상주의는 위력을 잃지않고 있다.
심지어 고졸대통령 불가론이 등장할 지경이다. 능력에 상관없이 그럴싸한 간판을 먼저 요구하는 사회는 확실히 합리성이 모자라는 사회다.
둘째, 기왕 학벌을 중시하고 학력을 자격요건으로 하려면 차라리 철저히 검증하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연구실적이나 논문이나 일반적인 업무능력에 있어서나 마찬가지이다. 철저한 검증으로 거짓이 통하지 않는다면 굳이 속이려고 마음먹지 못할 것이다. 간판을 보고 판단하면서 그 간판조차 철저히 검증하지 못하는 것은 속임수의 유인을 제공한다.
셋째, 표절이나 허위나 가짜가 드러나는 경우 거기에 따라 철저히 응징되는 것이 옳다.
누구는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덮고, 누구는 국익에 기여했다고 덮고 넘어가자는 주장을 해선 안될 일이다. 허위와 위선이 장려할만한 것이 아니라면 당연히 재발하지 않도록 응징되는 사회로 발전해야 할 것이다.
능력보다는 간판과 과거의 업적만으로 판단하는 단순함, 그렇게 요구한 간판마져 대강대강 검증하고 넘어가는 엉성함, 위선이 드러나도 관행이니 국익이니 하면서 덮고 넘어가는 쓸데없는 관대함이 수 많은 위선과 허위를 양상하고 있는 것이다.
간판보다는 능력을 검증해야 한다.
어렵고 복잡하더라도 그렇게 발전하는 것이 옳다.
기왕 요구한 요건이라면 그것에 대하여 철저히 검증하고 허위가 아닌지 짚어보는 것이 옳다.
그래도 허위나 조작이 밝혀진다면 당연히 재발하지 않을 정도로 징치하는 것이 옳다.
최소한의 합리성도 없이 무엇으로 우리 사회를 진보시킨단 말인가?
여전히 그리 나아지지 못한 이성적 합리성의 수준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