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성소'를 가슴에 새기며 >라는 멋진 프롤로그 부터 132쪽까지 < 책임성 없는 진보,일관성 없는 보수 >까지는 말 그대로 한 번에 읽어 내려갔다.
두 시간 만에 거기 까지 읽었으니 1분에 1쪽씩 읽은 셈이다. 그런데 그 다음 부터 '의료급여 제도 혁신'부터는 도무지 진도가 안나간다. '약제비 적정화와 한미 FTA' 도 진도가 더디긴 매마찬 가지지만 그 이유는 다르다.
약제비 문제는 잘 모르던 거라서 더디게 읽었고 의료급여 문제는 지금 혜택을 보는 당사자로서 너무 잘 아는 거라서 내가 살아온 것을 새겨보고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 하는 생각을 하느라 40쪽 읽는데 4시간 걸렸다.
아직도 우리 집은 기초생활수급자이다.
99년 영세민 부터해서 2000년에 기초생활수급자 1종이 되었고 작년에 직장을 구한 다음부터는 2종으로 바꼈다. 지체장애 1급인 아내와 오른손 엄지 한 마디가 없어도 생활이나 직업에 불편함은 없는 나는 지체 장애 5급이다.
올해 11살 딸아이가 3살일 때 울산에서 대기업 외주 업체 다니다가 아내와 자연식 치료를 하기 위해서 경북 영덕 산골에 빈 황토집은 얻어두었는데 땅 한 평 없고 농사 경험도 없는 처지라 생계대책이 막막해서 영세민 혜택을 보려고 99년 3월에 보건소에 장애등급을 신청해서 나도 장애인이 되니 부부가 장애인이라고 영덕에 가니 바로 영세민 혜택을 받았다.
영세민이 되면서 자동으로 의료보호 1종이 되어서 병원비 걱정은 덜었다. 사실 나는 건강했고 아내는 병원 간다고 좋아지는 것도 아니라서 특별한 일 없으면 병원에 가지 않았다.
물론 딸아이 감기 걸리면 읍내 개인 병원 가서 남들은 몇 천원 낼 때 한 푼도 내지 않고 돈 부담없이 치료 받았다. 2000년 기초생활제도가 시행되고 나서 처음 에는 이름만 거창하다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살던 영덕 산골 마을에는 딱히 달라 질 게 없었다. 생계비가 좀 더 나올 뿐 사회복지 시스템 자체가 미약한 영덕에서 더 받을 게 없었다. 딸 아이 초등학교 2학년이 되어 포항에 나와 살게되니 여기는 도시라고 제법 달랐다.
우선 딸 아이 학교 급식비와 우유값이 안나간다. 한 강좌에 2만원 정도 하는 특기 적성비도 1강좌는 무료다. 여기에 1주일에 세 번 4가지 반찬이 배달된다.(아내는 인스턴 트가 많다고 뭐라 하지만 나하고 딸 아이는 제법 잘 먹는다.) 1주일에 세 번은 가사도우미 분들이 와서 2,3시간 정도씩 청소며 빨래를 도와준다.
우리 식구 중에는 우리와 세대를 통합한 장인 어른만 지병이 있어서 대구의 대학병원에 3달에 2번 정도 가서 약 타오는 정도이고 파스 많이 타서 장사하는 짓은 안했어도 의료비 항목에 나오는 건강보험 부담금은 제법 나온다.
여기에 재작년 까지 우리 수입의 거의 다 였던 생계비까지 우리 4인 가족에게 적게 잡아도 연간 나라 돈 1,500만원 정도이상은 썼을 것이다. 여기에 재작년에는 직업 교육을 받는다고 직업전문학교에 1년 간 다녔는데 1년 교육비로 책정된 돈이 540만원 이라 했다.
재작년에는 국가에서 못해도 우리 가족에게 2천만원은 퍼부었을 것이다. 월급으로 쳐서 한 달에 180만원이상은 벌어야 유지되는 생활이었다.
빚 없이 살던 이 생활 유지하는데 변화가 왔다. 작년에 취업을 한 것이다. 기초생활수급권자 가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이 발생하면 탈락된다.
1년에 적어도 1,500만원 쯤 받는 혜택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 수준 이하면 버는 만큼 공제하고 생계비를 준다. 재작년 직업 교육받고 기능사 자격증 6개를 따고 작년에 처음 취업을 했을 때 세상 사는 철학이 잔머리 굴리기인 듯 한 우리 사장이 이 계통을 잘 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게 직원 서류를 만들지 말고 월급은 그대로 주면 월급은 월급대로 기초생활수급자 혜택은 그대로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나로 말하면 국가에서 받은 게 많다. 99년 이후 소득세 한 푼 안내고 술,담배도 안하니 간접세도 훨씬 적게 내므로 인해서 나는 마음의 빚이 컸었다.
이러다가 나 죽고 나면 묘비에“평생을 나라 도움 받아 산 사람, 세금 안내고 국고 축낸 사람.”이렇게 쓰여도 싸다 싶어서 기준에 미달하여 수급자 자격은 유지되더라도 정부에서 받는 돈이라도 줄여보자는 게 소신이었다.
듣자마자 “저는 그렇게 살아오진 않았습니다.” 한마디 말하고 월급 나오기도 전에 동사무소에 가서 기쁜 마음으로 직장을 구했다는 신고를 했다.
곧 바로 한 달에 생계비가 70만원이 줄었다. 의료 보호도 2종이 되었는데 그래도 위에 적은 혜택은 거의 그대로 받는다. 이달 부터 의료급여 1종이 부담하는 것 처럼 작년 봄부터 병원 진료비 1,500원, 약 조제비 500원은 낸다만 그 돈 없어서 아파 죽겠는데도 병원 못간다는 건 대한민국 현실에선 말도 안된다.
이 사회는 더불어 사는 공동체로 가고 있다.
선진국에 비해서 가난한 장애인 가정이 살아가기가 힘이 든 건 맞다. 그런데 우리 사회도 변하고 있긴 하다.
내 경우는 영덕 살 때는 주부 경력12년이지만 원체 음식재주 없는지라 집에서 밥하고 반찬 만들고
국 끓이고 빨래하고 끼니 마다 설거지하고 집안 청소를 혼자 할 때는 하루에 남는 시간이 몇 시간 되지 않았다.
가사 도우미 분들과 반찬 지원이 없으면 지금 처럼 남들 보기에는 그럴 듯하게 병원에 근무하는 것은 꿈도 못 꾼다.
가사도무미나 반찬지원 모두 정부 사업을 위탁업체에서 하는 것으로 100% 국고부담 이다.
게다가 겨울에는 감기 걸린다고 독감 예방주사도 무료로 맞혀준다. 암 걸린다고 암 진단도 무료로 해준다.
크게 보아 정부는 소외계층을 보듬고 가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9년 째 정부 도움을 크게 받고 사는 내가 볼 때 분명히 이 사회는 더불어 사는 공동체로 가고 있다.
우리 사는 형편은 볼품 없어도 나는 2002년부터 처음 몇 달은 노사모에 그 다음 부터는 개혁당비로 개혁당 없어지고 나서는 참정연에 참정연 없어지고 나서는 참평포럼과 시민광장에 매달 만원씩 당비 혹은 후원비로 낸다. 로또 사는 기분으로 후원금 내왔다.
사실 집안 망할 정도로 지출하는 건 아니고 우리 사회가 더 잘 될 징조가 있고 최근 몇 년 사이 분명히 발전해 왔으며 앞으로 대한민국 개조 발전을 위해 대한민국 대표펀드인 참여정부 펀드와 유시민펀드에 매달 적립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