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출근하니 내 책상 위에 택배 하나가 놓여 있었다. 뜯어보니 기다렸던 ‘대한민국 개조론’이다. 붉은 표지에 적힌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유시민이 제시하는 국가발전전략 아젠다
- 성장지상주의와 낡은 복지국가론을 넘어 사회투자국가로!”
뭔가 강렬한 도전을 주는 글귀였다. 그리고 펜치와 거꾸로 놓은 한반도 그림, 개조론이라는 단어를 위해 독자에게 보여주는 화두 같은 그림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깨닫게 되었지만 이 두 그림 중 펜치는 낡은 복지국가를 고쳐 사회투자국가로 나가야 한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었고, 거꾸로 놓은 한반도 그림은 선진통상국가로 나가야 한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었다.
지구본을 거꾸로 봤을 때 한반도는 대양과 대륙을 연결하는 관문의 모양을 가진다. 전략적 측면 뿐만아니라 통상적인 측면에서도 한반도는 지정학적인 요충지였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 책을 읽어 가면서 저자에게서 웬지 모를 슬픔을 느꼈다. 뭐라고 표현하고 싶으나 막상 내가 느낀 감정을 표현할 방법이 막막했다. 아마도 「단성소」를 마음에 새긴다는 저자의 프롤로그에서부터 그 깊은 슬픔을 감지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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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께서는 무슨 일에 종사하시는지요? 학문을 좋아하십니까?
풍악이나 여색을 좋아하십니까? 활쏘기나 말타기를 좋아하십니까?
군자를 좋아하십니까? 소인을 좋아하십니까?
전하가 좋아하시는 것이 어디 있느냐에 나라의 존망이 달려 있습니다.
만약 하루라도 능히 새로운 정신으로 깨달아 분연히 떨쳐 일어나 학문에
힘을 쏟으신다면, 하늘이 부여한 밝은 덕을 밝히고 백성을 날로 새롭게
만드는 일에 얻으시는 바가 있을 것입니다.
뒷날 전하께서 정치를 잘하셔서 왕도정치의 경지까지 이르신다면,
신은 그런 때에 가서 미천한 말단직에 종사하며 심력을 다해 직분에
충실하면 될 것이니 어찌 임금님 섬길 날이 없기야 하겠습니까?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반드시 마음을 바로잡는 것으로
백성을 새롭게 하는 바탕을 삼으시고, 몸을 닦는 것으로 인재를 취해 쓰는
근본을 삼으셔서, 임금으로서의 원칙을 세우십시오.
임금이 원칙이 없으면 나라가 나라답지 못합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전하께서 신의 상소를 굽어 살펴주시옵소서.
신은 두려워 어쩔 줄 몰라 하며 죽음을 무릅쓰고 아뢰나이다.”
「 단성소 」 남명(南冥) 조식(曺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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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슬픔을 느낀 것은 바로 시대의 슬픔이 배인
저자의 이 안타까운 역설(逆說, paradox) 때문이었다.
대한민국의 왕은 국민이라는 엄연한 진실이 가려지고,
왜곡되는 것에 분노를 느꼈기 때문이다.
저자 유시민 의원은 보건복지부 장관을 그만두고 집필을 위해 집으로 향하며 우리들에게 도종환 시인의 ‘슬픔에게’라는 시를 들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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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픔에게 >
- 도종환-
슬픔이여 오늘은 가만히 있어라
머리칼을 풀어 헤치고
땅을치며 울던 대숲도
오늘은 묵언으로 있지 않느냐
탄식이여 네 깊은 속으로
한 발만 더 내려가
깃발을 내리고 있어라 오늘은
나는 네게 기약 없는
인내를 구하려는 게 아니다
더 깊고 캄캄한 곳에서 삭고 삭아
다른 빛깔 다른 맛이 된 슬픔을
기다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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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그 슬픔을, 분노를 삭이며 한 뜸, 한 뜸 대한민국 개조론을 집필했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왕인 국민에게 보내는 단성소는 이미 오래전 저자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저자 유시민의 ‘대한민국 개조론’을 읽은 감상문을 앞으로 약 세 편 정도로 나누어 쓸 생각이다. 몇 편의 독후감을 나누어 쓰려는 이유는 단지 책 한 권을 읽었다는 기억을 정리하려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아픔을 슬퍼하는 한 지식인의 슬픔에 동참하기 위해서다.
나도 내 마음 속에서 삭히고 삭혀 이 책의 다른 빛깔 다른 맛이 된 슬픔이 희망이 되고, 현실이 될 날을 기다려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