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가장자리” 라는 말이 있다. 문자대로 해석하면 질서와 혼돈이 만나는 그 접점을 뜻하는데, 카오스 이론에서는 이 “혼돈의 가장자리”라는 개념이 매우 중요하다. 바로 이 혼돈의 가장자리에서 생명 현상이 시작됐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실 잘 관찰해 보면 생명 현상은 질서정연한 안정적인 시스템과 충만한 에너지로 제각기 무질서하게 운동하는 혼돈계의 그 중간 지점에서 아슬아슬한 균형을 이루는 그 무엇이라는 데 공감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아이디어는 비단 수학이나 자연과학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와 자유방임주의가 서구 사회를 지배하게 되면서 극심한 빈부격차, 제국주의 등의 사회 모순이 심화되다가 급기야는 세계대전으로 까지 도달했을 때 사람들은 그렇게 해서 인류의 문명 사회는 끝장나는 줄로 알았다.
그런데 역사의 한 편에서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공산주의가 등장하여 자본주의의 모순을 해결할 수 있으리란 희망을 안겨줬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철저한 계획 경제에 기반을 둔 공산주의 경제 정책은 실패했다.
무조건 공정하게 분배해 준다고 해서 사회 모순이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이 엄연한 진리는 자본주의나 제국주의자들에 대항해 피 흘려 싸운 혁명가들에게는 충격적인 사실이었지만 결국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고 자본주의가 역시 최고라는 생각도 틀렸다.
앞서 말한 대로 자유시장 경제 논리를 기반으로 한 자본주의가 인류에 어떤 재앙을 가져오는지는 두 번의 세계 대전을 통해 충분히 학습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산주의는 망했지만 분배를 강조한 사회주의 정책은 자본주의의 약점을 보완하는 역할을 충실히 하며 유럽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대중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러나, 묘하게도 인간은 안정된 삶이 보장될수록 성장을 멈춘다. 아니 인간뿐 아니라 살아있는 모든 것이 그렇다. 도전과 응전의 개념으로 역사를 풀어간 토인비의 역사관 또한 같은 맥락이며 분명한 만고불변의 진리이다.
도전과 응전의 개념과 상통하는 또 다른 예를 들어보겠다. 우리가 알기로 커다란 혜성의 지구와의 충돌은 공룡의 멸종을 가져올 정도의 치명적인 재앙이다. 그런데 학자들이 조사한 바로는 지구상에 혜성 충돌이 비교적 빈번했던 기간 동안에 지구상의 생물의 종 역시 폭발적으로 늘었고 더 진화했다.
혜성의 충돌로 멸종이 있었지만 생명체가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고 다시 새로운 형태의 생명체가 진화를 했는데, 이 때는 먼저 번성했던 생물들보다 더 많은 개체 수가 더 우수한 모습으로 등장한 것이다. 이 것이 바로 우주를 지배하는 법칙이다.
사회 역시 발전을 위해서는 경쟁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자유 방임 상태에서는 빈부차가 격심해지며 파국으로 치닫는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최소한의 생존 조건은 보장 받아야 한다는 복지 국가의 개념에서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가면 굳이 힘들여 일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정체된 사회가 되어 버리고,
사람들을 경쟁으로 내몰면 매우 불공평하고 비인간적인 사회가 되는 바로 이 지점에서 과연 그 양 극단의 모순으로 빠져 버리지 않고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유지하면서 이 사회를 역동적으로 발전 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가? 이 질문은 21세기를 맞은 지구상 모든 나라의 매우 도전적인 과제였다. 이 해답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이야 말로 대한민국의 차세대 지도자의 자질을 갖춘 사람이다.
나는 “대한민국 개조론” 의 “사회투자정책” 에서 혼돈의 가장 자리에서 발생하는 생명 현상의 비밀의 단편을 봤다. 그야말로 어정쩡한 중도주의를 넘어선 시대를 앞서가는 혜안이 담긴 진정한 의미에서의 진보적인 정책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슬프게도 이런 진보적인 주장을 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너무 작다. 실은 목소리가 작은 것이 아니고 주변의 소음이 너무 크다. 이 작은 목소리를 어떻게 공명을 시켜 잡음으로부터 분리해 낼 것인가? 이것은 한 두 사람의 노력으로 될 일이 아니다. 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시간이 별로 없다. 기회도 별로 없다.
대한민국이라는 사회가 이 냉정한 국제 사회에서 어떻게 강인한 생명력을 유지하는 사회 시스템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인가 라는 질문은 우리의 생존권이 달린 문제이므로 매우 심각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 나라 국민이 이 질문에 대해 가장 현실적이고 진보적인 해답을 찾아낸 사람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일꾼으로 써 먹지 못하는 수준이라면 몇 십 년 더 고생한들 누굴 탓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