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증의 첫시작 도덕성
사실 요즘 저는 여러가지 회의적인 감정에 빠져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 도덕과 정의의 잣대가 제대로 살아 움직이는 건강한 사회일까를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이런 우울함을 부채질 하듯 대선 지지율 1위이면서 검증의 도가니탕에 빠져 있는 한나라당의 모후보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최소한' 그시대가 요구하는 도덕성에 위반하고 살아오진 않았다."
그러니 어쩌라구요. 최소한의 주관적 도덕관에 의해 평균 만큼의 도덕성으로 살아온 사람과, 도덕에 대한 본질적 고민을 하고 살아온 사람의 행보를 구별해 평가하지 말아달라는 뜻일까요? 무조건 그시대에 열심히 살았으니까?
건강한 가치관이 사회를 지배하는 시대라면 공인으로든 자연인으로든 도덕성은 마땅히 차별화해서 평가 받아야 합니다. 더구나 국가경영을 목표로 하는 대선주자로서의 도덕성은 따지고 또 따져도 지나치지 않겠지요.
그러나 여론이라는 게 얼마나 믿을만 한지는 모르겠으나 이명박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하해와 같은 너그러움은 나를 슬프게 합니다. 지난 주말에 어떤 지인은 이런 말까지 했습니다.
"이명박보고 더럽다 더럽다 하는데 무엇인가를 추진하다보면 다 더러워지는거야"
그래서 괜찮다는 것일까요. 또 모두 그럴까요. 노무현 대통령도 행정수도 이전하면서 뭔가 구리구리한 일이 있었을까요?
추진력이 판단기준의 전부라면 참여정부도 어떤 정책을 추진하면서 뭔가 구리한 일이 있었더라도 나중에 확실한 면죄부가 되겠네요! 그쵸?
어느 시대나 다수가 추구하는 중심적 가치는 존재하며 도덕적 가치 또한 단호한 판단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저로서는 한나라당에겐 너무나 관대한 현재의 풍토에 대해 의아한 생각이 많이 듭니다. 건강한 사회라면 절대적 도덕에 대한 개인별 행함의 차이를 둠은 지극히 당연한 일일텐데 말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중심적 가치는 무엇일까요. 최소한의 주관적인 도덕관일까요,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와 공동체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대안과 연대의식의 재무장일까요. 우리는 엄중하게 시대와 국민을 향해 되물어야 합니다.
1997년과 2002년 이회창 후보의 발목을 끝내 잡은 것은 두아들 병역문제와 집문제 두가지였죠. 대쪽같은 이미지는 하루아침에 만신창이 되었고 선거내내 대세였다던 지지율은 곤두박질을 치고 끝내 잃은 민심을 회복하지 못하고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지금 우리의 국민의식이나 사회투명도가 그때보다 강화되었으면 되었지 나빠졌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다시 한나라당 주자들에겐 그토록 관대해진 것일까요. 정말로 '부패'가 '무능'보다 나아서?
박근혜 전 대표가 갖고 있는 도덕적 취약성 또한 만만치 않지요. 뜨거운 감자로 지목되고 있는 최태민 목사와 그 일가와의 광범위한 관계며, 영남대, 정수장학회, 육영재단...검증의 단계마다 이명박 후보에 비해 결코 수월하다고 말할순 없을 겁니다.
청와대 금고(?)에 있던 돈이라며 전두환으로부터 6억원의 생계비를 받았다는 고백은 이미 나왔지요. 당시의 6억원이면 현재가치로 300억원, 30평대 강남의 은마아파트 30채에 해당하는 막대한 돈이라고 같은 한나라당의 진수희 의원은 친절하게 계산까지 해주더군요.
대선주자들에 대한 의혹과 도덕성 시비문제는 당내에서 도토리 키재기식 검증대를 한쪽이 통과했다고 해서 끝날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 유보되고 있는 두사람의 도덕성에 대한 평가는 국민이 행하게 될 결정의 순간에 결정적으로 의심을 동반할 것이란 확신을 합니다.
국가의 5년을 단지 일방적인 추진력과 막연한 애국심만 믿고 맡기기엔 영 찜찜할테니까요. 다시 개발독재시대로 돌아가도 좋다 작심할 것이 아닌 다음에야 말이죠. 게다가 개발이란 것도 이제 대한민국은 두바이식 개발을 할 수 있는 사회도 아니니 말입니다.
어차피 한나라당의 최종주자가 결정되고 각 당의 대선주자가 동시에 검증 테이블로 나오면 상황은 지금까지와는 달라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최종 파트너가 정해지지 않은 가운데 도덕성 시비는 제한적으로 수면아래로 가라 앉아 있는 것이지요.
물론 위의 지인처럼 하염없이 이해하는 사람은 어쩔 수 없겠지만, 오죽하면 이명박이든 박근혜든 누가 나오더라도 본선은 오히려 쉽다는 말까지 나돌까요.
온갖 괴문에 휩싸인 한나라당 주자들과 비교해 보면 우리팀의 도덕성은 비교자체가 불가합니다.
유시민은 스무살 이후 자신의 삶을 지탱해 주는 에너지는 슬픔과 노여움 부끄러움이었다고 해서 다중의 뜨거운 공감을 얻은 바 있지요. 나이를 먹으면서는 부끄러움 쪽이 더욱 커졌다고 하던가요.
개인이 잘먹고 잘사는 것만으론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란 미안함, 부끄러움, 진보적 시민으로서 갖고 있는 '최소한'의 공동체에 대한 가치관을 표현한 말일 것입니다.

좋은세상을 위해 자신과 사회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한순간도 놓지 않고 살아온 사람 그가 바로 유시민이지요.
같은 '최소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는데 의미는 어쩜 이리도 다른지요.
비단 유시민 의원 뿐만 아니라 대다수 민주진영 노선을 걸어온 사람들은 엇비슷한 도덕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최소한 대선주자로서의 첫번째 관문인 도덕성에서만큼은 우리는 한나라당에 비해 확실한 강팀이지요.
지레 겁먹고 너무 일찍 백기를 들었던 민주화 세력들의 선택이 다시 아쉬워 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대통합 합류냐, 당대당 통합 고수냐, 열린우리당 사수냐, 의견과 판단과 희망사항이 각각 다른 가운데 어차피 해답도 안나오는 거 얼마 남지도 않은 시간에 맡겨 버리고, 저는 당분간 우리가 강팀인 희망스토리나 찾아보렵니다. 오늘은 그 첫번째 검증관문 도덕성 이야기였습니다.
"아무리 찌는 듯한 더위가 기승을 부려도 백만송이 장미는 피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