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화려한 휴가>를 보면서 많이들 울었다고 들었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원래 영화를 보면서 우는 그런 일은 절대 없지만, 그냥 눈물이 나더군요. 왜 그럴까요. 눈물샘을 자극하는 최루탄 영화들이 그리도 많은데도 한 번도 영화가 의도하는대로 울어줘 본 적이 없는데 말이죠.
시대의 아픔이고, 지나간 일이라고 하는 말로는 설명이 되질 않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태극기 휘날리며>, <공동경비구역 JSA>, <실미도> 등의 한국 영화와, 팀버튼의 <화성 침공>을 떠올린 것은 어떤 실마리를 전해 주는 것이 아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화려한 휴가>에는 광주라고 하는, 대한민국에서 본의 아니게 왕따가 되어 버린 도시가 나옵니다. 영화 내내 주인공 역을 맡은 이요원은, 광주 시민들을 독려하면서 계엄군과 싸우는 시민군에 동참해 달라고 외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광주를 잊지 말아달라고 광주 시민들에게 절규합니다.
광주에서 계엄군과 그에 맞설 수밖에 없는 시민군의 항거와 울분을 잘 알고 있으면서 침묵하고 있는 광주 시민들에게 광주를 잊지 말아 달라고 하는 목소리. 그것은 광주라는 도시가 한국이라는 나라로 치환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한국은 근대 이후 계속되는 국제적 왕따 신세를 견뎌왔습니다. 식민 통치에 대항해서 왕따를 감수했고, 6 25 이후 국제적 거지 신세도 견뎠고, 그 이후도 역시 그랬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떻습니까. 광주의 어린 친구들은 취업에만 관심이 있고, 점점 역사는 잊어가고 있습니다. 광주에 대한 망발을 하는 대선 후보들도 있구요.
무엇보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왕따를 감수하는 상황에 대한 가장 극적인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 분단과 그로 인한 대립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로 남아 있는 한반도. 그러한 대치 상황으로 인해 발생했고 지금도 발생하는 국가적 낭비는 엄청납니다.
한국이 무얼 잘못을 해서 이런 상황에 놓인 것도 아닙니다. 국제적 상황 속에서 한국이 왕따가 되는 역할을 맡았을 뿐입니다. 분단 상황을 보여주는 일련의 영화들에서 잘못된 방향으로 강요되는 '애국심'은 <화려한 휴가>에서 매우 극적인 장면으로 표현되지요.
계엄군이 아무런 경계심없이 그들과 대치하며 물러간다고 약속한 상황을 믿고 있는 시민들에게 발포를 하기 시작하는 그 장면 말이지요. 그 순간에 울려 퍼지는 '애국가'는 블랙 코미디를 완성하는 도구가 됩니다. 전남 화순에서 왔다는 한 조연의 눈물나는 개그가, 관객들을 가끔씩 웃기기는 하지만 그 뒤에 숨겨진 슬픔 때문에 더더욱 비극적인 익살이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전남 화순은 과거에 빨치산으로 몰린 일반 양민들이 죽은 곳이니까요. 그래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엄연히 30여년이란 세월 동안 지속된 법치국가임을 생각할 때, 다시는 화순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란 확신으로 그의 어머니는 고향에서 코를 골며 자고 있다고 하는 말을 합니다.
아들은 언론마저도 독재 쿠데타 정권의 압력 때문에 아무 일도 광주에서는 없었다고 하는 상황에서 죽어가기 일보 직전인데 말이죠.
이런 블랙 코미디는 남북이 대치하는 상황에서 가장 극렬하게 드러납니다. 그리고 생겨나는 하나의 의문. 왜 이런 소모적이고 아무 이유없는 대치 상황이 계속되는 걸까, 하는 것. 광주에 진격한 한 특전사 출신 목사의 증언을 들어봐도, 단순히 월급의 인상과, 광주 시민 전체가 빨갱이들이다,라는 사상 교육 덕분에 그런 양민 학살을 자행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법치 국가에서 아무 이유도 없이 한 도시 전체를 사상범으로 몰아 죽일 수 있었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겠지요. 아무리 애국심을 그런 상황에서 강조해도, 결국은 북한을 뿔이 난 적으로 묘사해 북한 수령의 목을 따겠다고 하는 <실미도>의 자발적인 '애국심'이 보여주는 비뚤어진 애국심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한국에는 분명 그런 애국심외에 제대로 교육되고 전파된 애국심이 없었습니다.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강조하는 형제간의 우애 내지는 아버지를 잃어버린 형의 아우 지키기라는 주제는 <화려한 휴가>에서도 강조됩니다. 세상에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소시민적인 발상은 각종 수난을 거치면서도 살아남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보편적인 진리를 터득한 끝에 나온 말입니다.

그러나 광주 시민들이 시민군으로 무장하고 싸울 수밖에 없었던 이유처럼, 주인공도 동생의 어이없는 죽음을 놓고 싸울 수밖에 없게 됩니다.
형제 자매가 아무 이유없이 죽어 나가는데 가만히 있는 것이 더 이상하지 않습니까. 광주의 비극은 <태극기 휘날리며>에서처럼 아우라도 살아남지 못하고 형도 아우도 다 죽었다는데 있습니다. 법치국가에서 가능한 일일까요. 6 25 같은 전쟁에서도 한 명은 살아 남았는데 말이죠.
<공동경비구역 JSA>는 6 25와 분단 체제가 해외 입양이 된 한국인의 정체성 문제로까지 확대된 현실을 보여줍니다. 전쟁과 왕따의 상흔은 한국인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한국은 행복한가요? 국제적인 희생양의 역할을 아직도 수행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리고 지금 세계는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처럼 계속해서 희생양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런 희생양들을 보면서 위안을 삼으라는 것도 같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면 <화성 침공>에서 보여준 전지구적인 위기를 보면 됩니다.
핵무기를 가지고도 없앨 수 없었던 잔인한 화성인들을 물리친 것은 '올드팝'이라는 라디오 시대의 힘입니다. TV가 없던 시절은 영상으로 인한 폐해가 없던 시절일 것이고 사람들의 마음은 이처럼 황폐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그런 메시지로 보아도 크게 무리는 없을 것 같습니다.
너무나 진부하지만 현실은 잔인하지만 그것을 이기는 것은 무력이 아닙니다는 말을 떠올려 봅니다. 슈퍼맨 하나로 세상을 구원할 수 있을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최강대국인 미국의 무력으로 세상은 이미 평화를 찾았어야 합니다.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진리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불행들이 세상 곳곳에 널려 있습니다.
아무리 많은 '헐리우드 맨'들이 나와도, 그래서 세상의 영화 스크린을 잠식하고 있어도 인도에도 자체적인 영화 산업이 있고 소비가 됩니다. 프랑스, 한국, 일본에도 그 나라만의 영화들이 있습니다. 단 한방으로 세상을 구원하는 '맨'들은 그냥 허구입니다. 다른 세상을 보여주는 창으로서의 비헐리우드 영화들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우리는 화성인들의 침공에 대비해서 이길 수 있을까요? 어떤 외부의 적이 나타날 때, 비로소 반목하던 공동체는 하나가 됩니다. 그러나 희생양을 통한 국민들의 눈과 귀를 가리는 이런 한국의 블랙 코미디는 빨리 사라질수록 좋습니다. 그것은 분단 체계를 없애는 목표 이전에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의 전부를 보여줍니다.
아직도 횡행하는 정치 공세용으로서의 사상 논쟁이나 그것을 통한 정치적 편가르기는 여전히 한국 사회에 현존하는 왕따 사상을 보여줍니다. 통일 내지는 함께 사는 남북 관계를 지향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이러한 당연한 인식은 상식이라고 하는 말로 표현될 것입니다. 유시민의 사상은 다른 것이 아니라 이러한 '상식의 복원'을 위한 노력이라고 저는 봅니다. 지역주의 공세와 남북 관계의 어려움은 한국 사회에 고질화되어 있는 뒤틀리고 불화협한 음을 내는 '비상식'들에서 나옵니다.
저는 이러한 '비상식'을 '상식'으로 만들어 한국을 건강한 사회로 바꾸는 일을 유시민이 꼭 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언젠가 지역 감정이 별 거 아닌 것이 되고, 남북 교류가 활성화되어 북한에게 한국이 '청혼'을 하는 그런 날이 오면 한국 사회에도 건전한 '상식'이 도래하기 시작하겠지요.
지금 동남아 지역에서 신부감을 데려오는 현실이 북한에서 신붓감을 데려오는 그런 현실로 바뀌게 되어 남북이 하나의 피로 다시 뭉치게 된다면 그보다 더 좋은 민족 융합의 방법이 있을까 싶습니다.
이런 식으로 만들어지는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유쾌한 세상을 유시민을 통해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