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대선 때 아랑이네는 경북 영덕군 지품면의 산골 오지마을에 살았습니다.
상수도도 없고 포장도로도 버스도 없고 전기, 전화만 되는 그 곳에 몸 아픈 아랑이 엄마 자연식 치료하러 간지 만으로 3년 되는 해였습니다.
젊은 시절 민족과 민중에 대한 사랑, 더불어 사는 나라에 대한 열정으로 두 번 감옥에도 다녀오고 그 후에는 노동운동 해볼 꺼라고 10년 동안 울산부터 경주, 포항까지 영남을 전전하던 중 아랑이 엄마를 만났습니다. 아내는 만날 당시보다 좀 나아졌지만 병명은 여전히 '경추탈구로 인한 전신마비'이고 장애등급은 1급입니다.
우리 집안의 만장일치 반대로 울산의 단칸방에서 삯월세로 살면서도 노동운동 단체 활동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랑이가 태어나고 나서는 엄청 제약이 따르데요. 낮에는 아랑이를 같은 아파트에 사는 분께 맡기고 일하러 가도, 집에 오면 아내 대신 늘 하던 가정 일에 갓난 아이까지 봐야 했으니까요.
활동하던 단체에서도 제 일을 줄여주더니 언제부터인가 저 없이도 잘 굴러가데요. 그렇게 저는,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해 한 몸 바치겠다던 당찬 젊은이는 조국과 사회 대신 아내와 딸 우리 가정을 택했습니다.
딸아이가 3살 때 산간오지 마을로 들어가서 한 몇 년은 물 맑고 공기 좋은 그 곳에서 빌린 땅일 망정 호미 들고 농사지으며 신선처럼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2001년 말 우연히 들른 노사모 사이트에서 노짱님이 영등포 노사모 모임에서 하는 연설 동영상을 듣고는 내 속에 잠자던 그 무언가가 터져나왔습니다. 아무리 산골에 살아도 내 한 몸 아무리 신선처럼 산다고 여겨도 우리집 울타리만 벗어나면 세상은 아직도 불합리 부조리 고칠 것이 많은 곳이었습니다.
그 동영상 다 보고 나서 노사모에 가입했습니다.
그리고 2002년 민주당 국민경선 선거인단에 뽑혀서 포항 실내체육관에서 노짱님께 투표하고 투표장 나와서 노짱님도 보았습니다. 물론 아랑이도 같이요. 노사모를 사이비 종교집단이라고 매도한 한나라당 박원홍을 규탄한다는 1인 시위(영덕에서는 종류를 불문하고 최초라고 함)를 영덕군 한나라당사 앞에서 할 때, 연말 돼지저금통 돌릴 때도 아랑이가 옆에 있었습니다.
2003년에는 노 대통령 취임식에 우리 가족이 모두 참여하는 영광도 받았습니다. 영덕에서 탄핵반대 시위할 때도 아랑이가 제 옆에 있었습니다. 이 때면 아랑이 나이 여섯, 일곱살 때 입니다.
그리고 다시 저는 한 달에 달랑 2천원 내고 열린우리당 당원직을 유지하는 것으로 이 사회에 대한 제 책무를 다했다는 듯 살았습니다. 그 새 아랑이는 2학년 초에 포항에 이사 와서 지금은 있는 집 아이들 보다는 덜하겠지만 학원 2개, 특기적성 3개, 수학 학습지 1개를 하면서 그냥 그 또래 아이들 처럼 살고 있습니다.
요즘 아랑이 소원은 오직 하나입니다. 좀 더 놀자는 것입니다. 당연히 저도 안쓰럽고 하니 아랑이 주장에 맞장구를 쳐 보지만 우리집 중요 결정권을 가진 아랑 엄마의 현실론 앞에서 깨갱합니다. "요즘, 4학년 짜리가 아랑이 처럼 많이 노는 애가 어딨어."
저도 처음에는 "아랑이 나이는 공부보다 노는 게 중요하다.", "사실 논다고 해도 그 절반은 학교 공부 안하고 책 읽은 거 잖아. 그건 빼줘야지."라고도 했지만 다른 집 아이들 무시무시한 공부량과 비교해서 "그러다가 애 한번 뒤쳐지면 평생 뒤쳐진다."는 말에 요즘은 걍 꼬리내리고 삽니다.
사실 아랑 엄마에게는 저보다도 아랑이가 전부인 듯 합니다.
본인은 스스로 움직이기 힘든 1급 장애자이지 남편이라고는 가정보다 사회 돌아가는 것, 남의 일 에만 관심 있는 듯 하지, 자식이라고 달랑 하나 아랑이 뿐이지 하니까 자기가 다쳐서 하고 싶었던 것, 지금 장애인으로 느끼는 설움, 늘 신경쓰이는 시댁, 친정 식구들, 이 모든 돌파구를 아랑이에게서 찾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바라는 아랑이 모습은요. 우선, 효녀여야 한다는 겁니다. 엄마를 늘 도와드릴 자세가되어 있기를 바랍니다. 다음으로는 남들과 더불어 사는 사람이기를 바랍니다. 공동체가 위험에 빠졌을 때,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는 물러섬도 주저함도 없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녀석이 말입니다. 어려서부터 말을 잘해서 똑똑하다고 기뻐했는데 요즘 보니 잔꾀가 부쩍 늘었고요. 제가 있을 때와 없을 때 엄마 말을 듣는 태도가 다릅니다. 가진 것은 없어도 외동이라고 기죽지 말라고 키워놨더니 타인에 대한 배려가 적은 것도 마음이 쓰입니다.
아내 다음으로 사랑하는 아랑이에게 무엇을 남겨줄까? 대답은 늘 한결같습니다. '아빠의 사는 모습을 보여주자.'입니다. 힘든 일, 즐거운 일, 재밌는 일, 억울한 일, 모두 아이와 함께 하면 나중에 나이 먹고 머리 커지면 스스로 판단하는데 좋은 기억이 될 것입니다.
11살 아랑이를 내일 번개에 혼자 보냅니다.
지금 일하고 있는 곳이 병원이라 근무일정표대로 움직여야 하는데 지난 달 말 근무일정표 짤 때 8.18 번개 공지가 안나온 터라 남들에게 양보했습니다. 어쩔 재주가 없습니다. 물론 포항 시민광장 분들 편에 보내니 마음은 놓입니다.
이번에 혼자 보내는 것도 지난 1주일간의 참을성있는 협상의 결과였습니다. '아빠가 못 가니 너라도 가라.'고 하니 혼자 가는 건 갈 수 있는데 지난 대구 강연 뒷풀이처럼 술 먹을 텐데 자기는 그런 데는 안간답니다. 이건 분명히 나와의 협상을 원하는 멘트로 파악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날 누군가 술 먹고 취해서 안 좋은 모습을 보인 것도 없었고 정작 제 또래와 신나게 놀았거든요.
1주일간 애를 먹이더니 어제 폭죽 사달래서 마트에 가서 두 종류 1,500원 어치 사주니 "아빠 나 혼자 갔다 올께." 합니다. 그래서 이번엔 아랑이를 혼자 보내려고 합니다. 개혁세력의 출정날, 새로운 대한민국 개조의 닻을 올리는 그 역사의 현장에 이제 11살 아랑이 혼자 다녀올 것입니다. 나는 아랑이의 눈으로 본 번개 모임을 통해 개혁세력, 참여정부 계승세력이 살아있음을 느낄 것입니다.
아랑이는 제 닉네임 옆의 이미지와 똑같이 생겼습니다. 지난 대구 강연 후기 사진이 올라왔길래 오려서 만든 겁니다. UCC 방에 대구강연 이미지 화면에 분홍색 옷을 입은 아이이기도 합니다. 천방지축에 엉뚱해서 혹시 성가시더라도 예쁘게 봐주십시요.
내일은 유시민님께 꽃다발을 드리겠습니다.
사실은 5년 전 받은 것 돌려드리는 것으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2002년 10월 25일 창당을 앞두고
안동에서 개혁당 설명회를 할 때 역시 아랑이랑 같이 갔습니다.
정말로 꽃집을 한다는 ID '꽃집 아저씨'가 20만원 쯤 한다는 크고 멋진 꽃다발을 유시민님께 드렸습니다. 우리 아랑이가 그걸 보고서 "우리 엄마도 꽃 좋아하는데 아빠는 맨날 진달래, 들국화만 꺽어주고, 궁시렁.. 궁시렁." 사실 저도 아랑이 낳기 전까지는 꽃다발도 제법 주었습니다만 산골에 들어와서는 들과 산에 깔린 게 꽃이고 돈도 궁해서 그랬는데 요놈한테 딱 걸렸습니다.
결국 2부 뒷풀이 때 아랑이 옆에 차고 유시민님께 가서 "우리 딸이 한 번 만져봐도 되냐는데요?" 하니 유시민님 환하게 웃으면서 우리에게 주데요. 그날 밤 12시 넘어서 집에 도착했지만 아랑이는 그 꽃다발에 정신을 놓았습니다. 집에 가니 아내도 즐거워해서 그대로 말려서 네 달 동안 우리 집에서 같이 살았습니다.
이제 유시민님께 꽃다발을 드립니다. 개혁진영을 대표해서 출정하는 당신께, 참여정부의 성과를 승계하고 전장에 나서는 우리의 대표에게, 대한민국 개조를 위한 당신의 힘찬 첫걸음에 꽃다발을 드립니다. 아랑아빠의 마음도 담아서 우리 가정의 보배이자 미래인 아랑이가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