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장의 임명을 두고 한나라당이 또 다시 코드인사라며 비판하고 있습니다. 윤영철 헌법재판소장이 다음달 퇴임하게 됨에 따라 후임 소장을 대통령이 임명해야 합니다. 여성이라는 상징성과 개혁성향을 가진 전효숙 재판관이 물망에 오르면서 일부언론과 한나라당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코드가 맞으면 왜 안될까?
노무현 대통령이 인사권을 행사할 때마다 여지없이 등장하는 용어가 바로 코드인사입니다. 성향이 비슷한 인사를 임명하는 것을 비판적으로 묘사한 용어인데요, 대체로 인사의 편향성을 지적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코드가 맞는 것은 오히려 권장할 일이지 비판의 대상일 수 없죠. 과거의 어느 대통령도 코드가 맞지 않은 사람을 기용하거나 야당이 추천하는 인사를 기용한 일은 없습니다. 코드가 맞으면 정책의 혼선도 없고 호흡도 더 잘 맞을 것입니다.
책임정치라는 것은 오히려 자신의 의지대로 인사권을 행사하고 그렇게 호흡이 맞는 사람들과 국정을 이끌어 가면서 결과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앞으로 누가 집권을 하더라도 오히려 코드가 맞는 인사는 권장할 일입니다.
한나라당은 선거구제 개선을 전제로 제의된 대연정을 일축한 바가 있습니다. 모든 각료들의 임명까지를 넘겨주고라도 미래를 위해 지역구도를 완화해 나가자는 제안을 일고의 가치도 없는 정략이라며 외면한 일이 있습니다. 민주당의 인사를 국무위원에 임명하려고 했던 대통령은 오히려 정치공작을 한다는 비판에 직면하였습니다. 코드를 넘는 인사는 가능하지도 않은 환경이었던 셈입니다.
코드가 맞지 않는 인물은 결국 야당이 흡족해하는 인사여야 한다는 의미인데 누구를 임명한들 항상 야당은 최대한의 비판을 쏟아낼 것입니다. 그것은 이미 대통령의 인사권에 대하여 야당들이 정략적 접근을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인사권은 대통령의 뜻이 반영되고 결과를 대통령에게 책임물으면 되는 일입니다. 국회는 정해진 룰에 따라서 철저히 검증하고 국민에게 보고하면 됩니다. 코드가 맞아도 어려운데 코드가 안맞는 인사를 해서 국정이 원활히 되겠습니까?
개혁성을 갖춘 최초의 여성 헌법재판소장은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전효숙 헌법재판관이 대통령과 사법고시 동기이고 대통령과 성향이 비슷하다는 것이 비판의 이유인 듯하다. 사법시험 동기가 한두명도 아니고 그 중에 한 명이라면 임명에 결격으로 작용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합헌이라는 소수의견을 낸 것이 마치 대통령을 편든 것처럼 몰아가는 것도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다.
우리의 법조계에서 사법시험 동기나 선후배가 아닌 사람은 없다. 서로 전혀 반대되는 성향과 입장을 가진 사람들도 사실은 다 선후배이고 동기일 수 밖에 없다. 그러한 구조적인 한계를 가진 것은 우리 법조계의 문제점이고 단점이다. 그런 연관성을 배제하려면 아무일도 할 수가 없을 지경이다.
행정수도법이 위헌이라는 다수의견이 반드시 옳고 소수의견을 낸 전효숙 재판관이 옳지않다고 볼 근거는 더더욱 박약하다. 위헌이라는 논거가 경국대전으로부터 이어져온 관습헌법에 따르면 수도는 서울이라는 것도 황당하기 그지 없는 것이다. 성문헌법을 채택하고 있는 나라에서 그런 식의 관습을 헌법으로 본다면 헌법이 담고 있지 못한 내용은 모두가 관습헌법일 것이고 그것은 과거를 수구하는 것일 뿐 미래지향적 발전을 가져오지 못한다.
성문헌법을 채택한 나라에서 이미 멸망한 왕조시절의 법을 관습헌법이라며 차용한 논리는 기발한 수도권 기득권 수호의 논리일 뿐이다. 전효숙 재판관만이 그런 황당무계한 논리에 반하는 정상적인 판결을 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그런 소신이 대통령의 정책과 한번 일치했다고 그것을 코드라고 할 근거도 없다.
우리사회는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헌법의 해석도 점차 미래지향적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과거에 얽메여 수구하려는 경향의 헌법재판소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발목잡을 가능성은 없는지도 살펴보아야 할 일이다. 발전은 변화를 수용하는 데에서 시작된다. 변화를 저지하는 것이 법적 안정성을 지키는 것일지는 모르나 그것은 퇴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전효숙 재판관은 개혁성을 지닌 몇 안 되는 법조계 인물이다. 세계가 빠른 속도로 변화해 나가는 것에 우리도 발맞출 필요가 있다면 역사적으로 지금 가장 적합한 인물이다. 대통령과 코드 좀 맞으면 어떤가? 과감하게 소수의견을 좀 냈으면 어떤가? 다수결에 의하여 모든 것이 결정된다고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여성들의 권익이 많이 향상된 것도 사실이고, 정치권에서도 훌륭한 여성 정치지도자가 속속 등장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사회의 여성들은 가부장적 질서의 위세속에 살고있다. 여전히 좀 더 발전해야할 부분이 있다. 여성들이 질적으로 향상된 위치에서 사회를 이끌어가는 위치에 진출할수록 그러한 변화에 힘이 실릴 것이다. 중요한 발전을 상징하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개혁성과 여성이라는 두가지 측면에서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인사가 될 것이다. 그것은 대통령의 동기이고 성향이 대통령과 비슷하다는 것을 굳이 단점으로 보더라도 감수하고 임명할 가치가 충분한 역사적인 인사이다.
야당의 비판도 금도를 지켜라.
한나라당의 코드인사 비판론을 살펴보면 마치 자신들이 집권할 당시 코드가 맞지 않아도 유능하면 기용한 것처럼 보인다. 자신들이 그렇게 하지 못했는데도 그런 주장을 할 수는 없는 것이 인간사의 기본이기 때문에 국민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전신인 정당들이 집권할 당시에는 코드만 일치했을 뿐 아니라 엄청난 충성심까지 요구하는 인사를 하지 않았던가? 그것에 대하여 한나라당이 철저히 반성하고 국민앞에 사죄했다는 소리를 들어본 일이 없다.
또 그들이 코드가 맞는 인물을 기용했더라도 그것은 비판의 대상이 아니다. 그들의 집권이 정당성을 가지기 어려웠다는 점과 지역차별인사가 문제였을 뿐이다. 호남출신중에 과연 코드가 맞는 인물이 없어서 배제하였을까?
정책적으로 중요성이 떨어지는 국무위원 한명 정도를 호남출신으로 임명하여 장식품처럼 여기던 시절이 아닌가? 코드도 맞고 능력이 있다면 출신지역을 고려하지 않는 인사가 바람직한 것이라면 그들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중앙의 권력이 막강하던 시절에는 코드가 맞지 않는 인물도 일단 기용하고 나면 모두 청와대에 복종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그러한 권위적이고 위압적인 정권의 운영이 문제다.
비판을 하더라도 금도는 있어야 한다. 자신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데 상대가 잘못하고 있을 때 비판하는 것은 누구도 나무랄 수 없다. 자신들의 잘못을 철저히 인정하고 국민에게 반성문이라도 냈다면 비판할 자격이 있을지 모른다. 설혹 비판할 자격이 있더라도 도덕성과 능력을 비판할 일이지 대통령과 코드가 맞는다는 것은 비판의 대상이 아니다.
서로 금도를 지키면서 비판하는 정치판을 볼 날은 아직도 멀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