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일년 만에 다녀 온 부산
두해 전까지만 해도 일년에 두 번 정도는 꼭 갔었는데 이제는 부산 가는 횟수도 점점 줄어든다. 내 생활이 눈 코 뜰새 없이 바쁘다 보니 마음적인 여유를 내기가 어려워진다.
고령의 부모님, 형제 대부분이 부산에 사는데 그것도 해운대에 집중적으로 오글오글 모여 산다. 내가 부산을 떠나서 산 지도 이십년이 흘렀다. 그래서 이젠 부산 혈족들과 대화를 하면 그들과 정서도 다르고, 의식, 말투 모두가 달라짐을 느끼고, 얘기를 하다 보면 의미 파악이 조금은 힘들어서 무슨 뜻인지 언뜻 이해가 잘 되지 않아서 약간의 이질감, 서운함도 가진다.
우선은 나 스스로가 너무 변한 점도 있지만은... 좁은 땅에서 살아도 환경적인 측면이 많이 좌우된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해운대 부근에서 오래 살았기에 고향을 떠 올릴때는 해운대를 빼고 말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해운대로 진입하는 수영만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동네에서 청춘기를 보냈다. 지금은 요트 경기장으로 변모한 수영만은 고운 모래사장이 펼쳐진 작은 해변이다.
집으로 향하는 시간에는 어김없이 일몰이 시작 된다. 지금도 수영만 바다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해와 주홍빛이 감도는 붉은 저녁놀을 잊지 못한다. 영원히 내 머리속에 각인되어 자리 잡고 있다. 바다가 해를 삼킬 때는 정말 '꼴까닥' 하는 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 하였고, 나는 속으로 하나 둘 셋 일몰에 맞춰 숫자를 세는 습관을 가졌었다.
초등학교 시절엔 큰댁이 해운대 부근 '민락'이란 곳에 살았는데 방학이면 큰 집에 자주 갔었다. 사촌들과 날이면 날마다 바닷가에서 놀았는데 세숫대야, 주전자 등을 가지고 나가서 조개, 꽃게를 한 가득씩 잡아서 머리에 이고 왔다. 남자 사촌은 곧잘 바다 장어를 잡곤 했는데, 그 때는 장어가 흔해서 아이들이 맨 손으로 다 잡을 정도였다. 사촌은 장어를 잡아서 마치 밧줄 휘두르듯 돌려가며 나를 겁주었다. 내가 제일 무서워 하는 것이 장어였다.꼭 뱀 같아서... 요즘에는 자연산 장어는 보기도 힘들지만.
해가 져서 어두워지면 가장 골치 아픈게 성게였다. 밤송이 같은 가시가 사정없이 발을 찔러서 상처를 입혔는데, 그래도 나는 내가 좋아하는 성게알을 마음껏 먹을 수 있어 좋았다. 밤송이 같은 둥글납작한 성게를 돌로 쳐서 깨면 샛노란 성게알이 있는데 그걸 입으로 쪽쪽 빨아 먹었다. 달큰하면서도 뒷 맛이 구수한 성게알은 일본 사람들이 아주 좋아해서 우리나라 성게알은 대부분 일본으로 수츨한다.
해운대 주변은 정말 변해도 많이 변했다.
나 어렸을 적의 풍경이란, 변함 없는 망망대해 바다와 언제나 그 자리에 올망졸망 엉켜 해안선을 따라 자리하고 있는 바위들이다. APEC 총회가 열린 장소인 해운대 동백섬의 '누리마루'가 새로이 생겼다.
누리마루가 건립되기 전에는 동백섬 해안가를 따라 걷는 일은 거의 불가능했다. 도로를 따라 걸으면서 아래를 내려다 봐야만 했는데 이번에 생긴 동백섬을 띠로 두른 듯 해안에 바싹 붙어 만들어진 산책길은 정말 근사한 풍경이었고 감탄사 연발이었다. 언제나 보아도 멋진 풍경! 바다 색이 수평선 끝까지 점점 다른 빛깔을 지닌 걸 눈으로 볼 수가 있다. 내가 왜 일년에 최소 한번은 이 바다를 봐야 하는지 바다는 말해주고 있다.
이번 부산 방문길에서는 정치얘기는 듣지도 하지도 않으려고 애썼다. 그럼에도 내가 부모님 집으로 간 날은 6.25 참전용사 전우회 이사회원인 부친이 광복절 기념 행사에 참석한 날이었다.
부친께 듣자니 8.15 전날인 8.14 광복절 행사는 대단한 규모였다고 한다. 재향군인회, 전우회 등등 모든 우익세력들이 총집결한 기념식이었다고 한다. 나의 부친은 행사에 다녀 온 후 한껏 고무되고 흥분됨을 감추지 못하였다. 재향군인회 회장인지 뭔지 아무튼 그 단체의 최고 수장직을 맡은 '박세직'에게 기대를많이 건다고도 하였다. 계속되는 부친의 극우적인 일장연설...
듣다듣다 나는, "아부지, 박세직이는 전두환이 꼬붕 노릇한 인물인거 세상이 다 아는데 무슨 영향력이 있을라꼬요?" 그때 옆에 있던 남동생이 나를 쿡쿡 찔러서 더 이상 말은 하지 않았다. 부친은 얼마 전 심장수술을 받았으나, 전우회 모임에 나가는 일만은 일생의 보람으로 여기는 분이다.
은행 중견간부인 남동생이 한나라당에 대해서 말하였다. 경상도인 대부분이 2007 대선에 무조건 한나라당 간판이면 오케이라고 한다. 후보가 박근혜든, 맹바기든, 소낙규든 절대로 가리지 않고,막말로 세살먹은 아이가 한나라당으로 출마해도 지지한다는 분위기라고 한다.
그리고 내가 받은 부산사람들의 인상은 뭔지 모르게 아주 불안해 한다는 것을 느꼈다. 어떤 이는 "나랏 빚이 너무 많다며... IMF가 다시 올 수도 있고..." 그야말로 조중동에서 주구줄창 떠들어 대는 말들의 영향력에 사로 잡힌 것만 같았다.
그러니 내가 정치에서 잠시 벗어나 휴가를 보낼려고 해도 귀경길은 가슴이 돌로 얹은 듯 무겁고 답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