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권 국정홍보비서관실 행정관
전시작전통제권 논란을 둘러싼 일련의 상황을 복기해보자. 일부 언론과 한나라당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정치게임’의 전말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들은 전작권 장사로 ‘대박’을 노렸으나 ‘쪽박’을 차게 되자 정부에게 ‘정치공작’의 혐의를 덮씌어 면피하기에 바쁘다.
중앙일보 18일자 <노대통령 ‘자주·주권’ 정치게임 / 전작권은 대박상품?>이 그 전형이다. 17일자 <“한나라, 전작권 덫에 걸렸다”>에 이은 2탄이다. 중앙일보는 대통령이 낮은 지지율을 만회하기 위해 전작권 환수라는 이슈를 제기했고 한나라당이 여기에 말려들었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런가. 정반대다. 정작 조용하게 진행되던 전작권 문제를 쟁점화 한 것은 대통령이 아니라 일부 언론이다.
전작권 환수 논의는 1987년 노태우 당시 대통령 후보의 대선공약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20년 된 정부의 목표이고 참여정부가 3년 동안 일관되게 추진한 사안이다. 참여정부는 2003년 한미동맹 미래비전 합의, 한미지휘 관계에 대한 공동연구, 2005년 안보정책구상에서의 전작권 환수 제의, 한미연례안보협의회의 논의 가속화 협의 등의 과정을 통해 전작권 문제를 차근차근 협의해 왔다. 대통령은 지난해 공군사관학교 임관식(3월8일)과 국군의 날 기념식, 올해 연두기자회견(1월25일)에서 전작권 환수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이 때까지 언론은 별 말이 없었다. 그러다 8월2일 전임 국방장관들이 윤광웅 국방장관을 면담하는 자리에서 전작권 환수 반대 입장을 밝히자 일부 언론의 태도는 돌변했다. 나라가 결딴날 것처럼 연일 반대주장을 펼치기 시작했다. 전작권 환수에 대한 차분한 분석은 자취를 감추고 ‘한미동맹 균열’ ‘미군 철수’ 등의 선정적 제목이 지면을 어지럽게 장식했다.
일부 언론 불리해지자 ‘정치게임’이라며 야당에 퇴로까지 충고
일부 언론은 한나라당과 보수세력도 부추겼다. 이렇게 되자 그동안 전작권 문제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던 한나라당도 덩달아 한 두 마디 입장을 밝히더니 급기야 당대표의 국민투표 발언까지 이어졌다. 보수단체들 역시 집회를 열고 극단적 주장을 되풀이했다. 일부 언론이 전작권 환수 반대 전선의 선두에 선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연합뉴스 인터뷰(8월9일)를 기점으로 전작권에 대한 논란의 추는 기울어졌다. 뒤이어 미 정부는 전작권이 환수되더라도 한미동맹은 오히려 강화될 것이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각종 여론조사를 통해 전작권 환수에 대한 민심이 확인됐다.
일부 언론은 미국까지 동의한 전작권 환수 문제에 색깔론을 씌우려다 실패하자 ‘안보장사’라는 카드를 다시 꺼냈다. 정부와 대통령이 반미와 자주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것이다. ‘안보장사’는 일부 언론이 민주세력을 탄압하기 위해 써먹던 ‘전가의 보도’다. ‘적반하장의 전략’을 들고 나온 것이다.
‘정치게임’ ‘대박’ 운운은 ‘안보장사’의 후속탄일 뿐이다. 중앙일보는 더 이상 전작권 환수에 대한 민심을 되돌릴 수 없다고 판단하자 대통령에게 ‘정치게임’이란 혐의를 덮어씌우고 친절하게 한나라당의 퇴로까지 일러주고 있다. 중앙일보 18일자 사설 <한나라당은 언론에 매달려 살 것인가>엔 이런 속내가 더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이런 이슈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 한나라당은 그제야 움직인다. 그 움직임이라는 것도 언론이 제기한 반박이나 문제점을 되뇌는 것이 고작이다.”
한나라당으로선 억울하고, 모양도 말이 아니게 됐다. 일부 언론에 떠밀려 전작권 환수 반대 전선에 나섰는데 이제 그 책임까지 뒤집어쓰고 퇴로까지 충고받는 처지가 된 것이다. 집권을 꿈꾸는 정당으로서 책임감도, 소신도 망가져버렸다.
일부 언론의 노골적인 ‘한나라당 정치컨설팅’은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 정치 컨설팅이 성공할 확률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정치공작’과 ‘정치게임’이 모든 진실과 사실을 압도했던 80, 90년대의 수구적 정치관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낡은 시대의 미몽으로 21세기의 정치를 주도할 수는 없는 일이다.
사실을 외면하고 한나라당 당직자와 술자리에서나 나눌 법한 얘기를 1면 머릿기사로 올리는 것은 중앙일보의 ‘퀄리티에 대한 자해행위’다. 수구적 정치관에 사로잡혀 20년간 준비한 국가의 중대사마저 ‘정치게임’으로 보는 것은 중앙일보를 한나라당의 전략 페이퍼로 전락시키는 일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