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기사 중 퍼온 글입니다.
아래 URL에 있는 기사 한번 읽어보세요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149173&CMPT_CD=P0000
"기사 중 일부"
"그들은 제2의 노무현 탄생이 싫었다"
이문열의 단편소설 <칼레파 타 칼라>는 보수 기득권의 이런 논리를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이 소설은 고대 그리스의 한 도시국가에서 일어난 혁명 상황을 묘사한다. 사회적 불만이 우연적인 요소를 통해 폭발하여 혁명에 성공하지만 곧 혁명세력들이 이전의 부패세력과 비슷해진다는 요지의 내용이다. 혁명이라는 걸 해 봐야 결국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이른바 혁명적 허무주의의 대표작이다.
혁명적 허무주의가 매우 위험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우선, 미래의 확실하지 않은 상황 때문에 현재의 사회적 모순이나 악을 방치하게 된다. 둘째, 현재의 개혁세력을 미래의 부패세력으로 미리 범죄시하는 잘못을 저지른다. "너도 권력을 갖게 되면 똑같아질 것"이라는 비아냥이 대표적인 사례다.
'노무현 집단따돌림'의 근본적인 목표는 바로 이것이다. 그들은 단순히 노무현 개인을 정치적으로 응징하고 보복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국회에서 탄핵받고 쓸쓸히 퇴장하는 노무현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 검은 돈을 받아 수의를 입고 포승줄에 묶여 수갑 차고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는 노무현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 그 한 장의 사진은 단지 개인 노무현의 위법이나 부패나 기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
|
▲ 노무현 전 대통령이 30일 오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사저 앞에서 대국민 사과의 말을 한뒤 고개를 숙이고 있다. |
| ⓒ 유성호 |
| |
누군가 노무현의 뒤를 따라 한국 사회를 개혁하겠노라고, 반칙과 특권을 없애겠다고, "그저 밥이나 먹고 살고 싶으면, 세상에서 어떤 부정이 저질러져도, 어떤 불의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어도, 강자가 부당하게 약자를 짓밟고 있어도, 모른척하고 고개 숙이고 외면"하면서 "이 비겁한 교훈을 가르쳐야 했던 우리 600년의 역사 이 역사를 주목하면서 권력에 맞서서 당당하게 권력을 한번 쟁취하는 우리의 역사가 이루어져야만이 이제 비로소 우리의 젊은이들이 떳떳하게 정의를 얘기 할 수 있고 떳떳하게 무리에 맞설 수 있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고 또 누군가 소리껏 외친다면 그때 그들은 제2의 노무현에게 수의 입고 수갑 찬 노무현의 사진 한 장을 보여줄 것이다. "결국 너도 이렇게 될 것이다!"라는 말과 함께.
어차피 누가 되든 결국에는 다 똑같아질 것이라면 그냥 지금 힘이 센 사람을 찍으라는 논리는 힘을 얻는다.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를 지지한 사람들에게도 이런 심리가 어느 정도는 작용하지 않았을까.
기득권의 공작은 당연히 노무현 개인에게 머무르지 않았다. 싹수가 보이는 인재들은 가차없이 초기에 싹을 잘랐다. 유시민을 비롯한 젋은 386들이 부당하게 언론의 십자포화를 맞은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한번은 청와대 386 참모들이 소주 대신 양주만 마신다고 도덕성에 큰 문제가 있는 것처럼 주요하게 보도되기도 했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제거했던 경험이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다. 정조 이래 세도정치 동안에는 똑똑해 보이는 왕가의 사내들이 암암리에 납치되거나 암살되었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 구체적인 증거를 나는 찾을 길은 없으나 이하응이 대원군이 되기 전에 목숨 하나 부지하려고 거렁뱅이 한량 노릇을 했던 이야기는 유명하다.
이것만으로는 불안했던지 보수 기득권은 자신들의 사회지배를 좀 더 확실하게 유지하기 위한 제도적 방편도 강구했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방송법이 대표적인 예다. 2002년 대선 패배의 원인을 방송 미디어 장악 실패에서 찾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재벌과 보수언론에게 보도채널을 안겨주려 한다는 이야기는 삼척동자도 다 안다. 사장 하나 바꿨을 뿐인데 1년 만에 KBS가 이렇게 바뀔 수 있느냐는 시청자들의 볼멘 소리는 방송법 개정 뒤의 한국 사회를 가늠하게 해 준다.
기득권 세력은 공화국의 진실이 불편하다
아마도 노무현은 5년 내내 아니 일생을 그들과 싸우면서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을 것이다. 탄핵이 두려워 불의에 고개를 숙이는 모습, 실체적 진실과는 상관없이 수의 입고 수갑 찬 모습, 그 모습이 개인 노무현 한 명의 굴욕과 불명예로만 기록된다면 노무현은 타협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16대 대통령으로서 노무현은 결코 그럴 수가 없었다. 그것은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자살로 내몰리는 길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오랫동안 잊혔던 대한민국의 헌법 제1조1항. 이 뜻이 궁금하면 그 다음 항을 보면 된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주권자인 이 땅의 국민이 곧 대한민국 권력의 원천이요 주체라는 것이다. 그래서 노무현 같은 상고 출신도 지고지순한 서울대 출신을 누르고 대통령에 오를 수 있었다. 한민족 5천년 역사에서 노무현 같은 천출이 최고의 권력자에 오른 예는 일찍이 없었다. 이것이 이 땅에 공화국 정부를 세운 보람이 아닐까?
그러나 한국의 기득권 세력은 공화국의 진실이 매우 불편할 것이다. 돈 많은 재벌 회장님들은 아무리 큰 죄를 지어도 실형을 살지 않아야 하고 상고 출신이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되며 힘없는 철거민들은 공권력에 타살을 당해도, 그냥 자살 테러리스트에 불과하다. 그 어느 누구도 이제는 더 이상 갑자기 대통령이 돼서 자신의 아성을 위협하지 않아야 하고 그런 싹들은 시위자의 마스크를 벗겨 발본색원해서라도 잘라야만 한다.
|
|
▲ 29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진행된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 영결식 노제에서 한 추모시민이 노무현 전 대통령 초상화를 들고 있다. |
|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
| |
노무현이 순순히 그들의 각본을 따랐다면 가장 훌륭한 실패의 본보기로서 전가의 보도가 되었을 것이다. '마치 국정을 잘못 운영한 것처럼 비판받고 지인들에게 돈을 갈취하고 부정부패를 한 것처럼 비치는' 그 모습 그대로 말이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그렇게 자살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노무현은 자신의 자살로 그 길을 잠시 막아 놓았다.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라는 고인의 유서를 보면서 나는 충무공의 사즉생 생즉사를 떠올렸다. 기막히게도 모순적인 2009년 한국의 상황에서 노무현의 죽음은 역설적이게도 한국 민주주의의 몰락을 잠깐이나마 저지하는 버팀목이 되어 버렸다.
보수언론은 죽음 초기부터 노무현을 자살로 내몬 자신들의 집단 괴롭힘에 대해서 비켜갔다. 검찰과 맺은 악연이니, 승부사의 인생역정이니, 무거운 수사 중압감이니, 넘쳐나는 추모물결이니 하는 건 죄다 사건의 본질과는 전혀 상관없는 내용들이다. 모든 내용은 노무현 개인의 문제로 환원된다.
그러나 우리는 똑똑히 알아야 한다. 자살로 내몰린 노무현은 곧 참살당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또 다른 모습임을.
이런 까닭에 지금 우리는 노무현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어떤 의미인가, 또 그의 유산은 무엇인가만을 따지고 있을 때는 아닌 것 같다. 아직 우리가 그를 위해 눈물을 흘리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이건희는 면죄부를 받았고 용산에는 용역이 들이닥쳤고, 방송법은 통과를 눈앞에 두고 있다.
노무현이 자신의 몸을 던져서라도 지키고자 했던 것이 있었다면, 그토록 그가 사랑했던 조국의 민주주의가 아니었을까?
그들이 말하는 잃어버린 10년
검찰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10년을 잃어버렸고, 경찰은 시위대를 한껏 두들겨 팼던 10년을 잃어버렸고, 대기업은 무분별하게 탈세하며 사업을 확장했던 10년을 잃어버렸다. 보수언론은 세무조사 받지 않고 기사를 마음대로 썼던 10년을 잃어버렸고, 정치인들은 마음껏 돈다발을 뿌리고 다녔던 10년을 잃어버렸고, 군인은 아무 생각 없이 태평스럽게 국가안보를 남의 나라에 맡겨 놓은 10년의 좋은 세월을 잃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