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끝으로 복학생이었던 당신들이 직접 우리에게 가르쳤던 이야기 하나를 하고자 합니다.
‘아무도 원망하지 말라’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이 문장을 해석했을 것입니다. 나 또한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해석은 당신들이 가르쳤던 것과 직결됩니다.
“억압은 확실히 제거되어야 한다. 거기엔 타협이 있을 수 없으며 어중간함도 있을 수 없다. 명확히 제거되지 않으면 그것은 반드시 되살아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피억압자들은 종종 오해를 한다. 억압의 제거란 피억압자가 과거의 억압자를 똑같은 방식으로 억압하는 것, 단지 피억압자와 억압자의 위치를 바꾸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제거되지 못한 억압의 상황이다. 억압의 제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피억압자가 내면화한 억압자의 논리, 그 억압의 욕망 자체를 먼저 제거하는 것이다.”
아마도 파울리 프레이리란 사람의 논리였을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란 말인가? 아무도 원망하지 않으면서 무슨 수로 사람은 억압의 상황을 제거할 수 있단 말인가?
20대에 나는 이 문제의 답을 알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전혀 다른 측면의 이해가 다가왔습니다. 역사를 돌아보매 제대로 극복된 억압은 결코 보복되지 않는다는 것이며 반대로 보복된 억압은 똑같은 억압으로 되돌아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억압은 보복으로 제거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보복되는 것이 아니라 아무 소리 없이 그냥 사라지는 것입니다.
나는 이 땅에 억압이 사라진 민주주의가 도래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지 현실적으로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 땅에는 억압자와 친일파와 독재자의 역사는 있지만 자신이 그들이었거나 그들의 계승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억압의 역사는 존재하되 현존하는 억압자들의 흔적이 존재하지 않는 것, 결국 보복해야 할 대상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 바로 이것이 내가 이해한 억압의 제거입니다. 만일 억압자들을 보복하면 이 흔적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억압의 상황은 조금도 사라지지 않은 것입니다. 바로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는 노무현 대통령이 원망하지 않고 싸우는 이 방법을 우리에게 충분히 알려주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아가 그것이 정말 중요하기 때문에 그는 그런 말을 남겼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이제 원망하지 않고 싸우는 방법을 우리는 누구에게 배워야 할까요? 그건 우리 스스로 만드는 거라고요? 맞습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만은 틀렸습니다. 나는 이 자리에서만은 그 방법을 당신에게 받아야겠습니다. 왜냐하면 당신들이 나에게 그렇게 가르쳤고 나는 그 순간 깊이깊이 고개를 끄덕였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그것은 어떤 문화나 정서를 포함할 것입니다. 김남주 시인이 말합니다.
“짜증내지 마라! 그러나 분노하라!”
이 말은 옳습니까? 따라서 당신은 결코 짜증냄 없는 분노로 충실하십니까?
따라서 당신은 노무현 대통령이 끝낸 바로 그 자리에서 새로운 싸움의 원칙을 발명하실 수 있습니까? 하물며 불요불굴의 희생과 명백한 가난 없이도 당신은 그 발명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이제 어떻게 싸워야 합니까? 당신은 그것에 대한 대답을 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2.
그래서 당신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제 당신은 혈혈단신으로 황야에 나와 있으며 한 무덤을 등진 채 저 앞으로 펼쳐진 그 공간은 마치 당신이 첫 유학을 떠나던 단절의 시절만큼이나 철저히 새로운 공간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을 지킨다는 것은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결국 그가 해내지 못한 것, 그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다른 시공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더욱 가혹하게 고독해지십시오. 그리하여 우리가 아무 것도 알지 못할 때 한 방법을 알려주었던 노무현 대통령처럼 당신도 우리에게 완전히 새로운 것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당신은 더 이상 노무현의 경호실장 따위가 아닙니다. 만일 그랬다가는 하늘의 노무현 대통령이 통탄할 노릇이라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논의를 이끌어 갈수록 나는 잃어버린 선배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해집니다. 서울시장? 좋지요. 하지만 나는 싫습니다. 대통령? 그것도 괜찮군요. 하지만 난 싫습니다. 당신이 새로운 방법을 나에게 주지 않는다면 당신이 새로운 지평을 나에게 주지 않는다면 나에게 그것들은 다 껍데기들입니다. 그런 당신은 나하고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인 것이며 그런 당신은 기껏해야 뒤바뀐 억압자, 기껏해야 불요불굴의 욕망으로 정치를 하는 사람일 뿐이며 그것은 당신이란 역사를 나의 모든 기억에서 지우는 일일 뿐인 것입니다.
3.
유시민님을 믿지도 지지하지도 않는 나 같은 사람에게도 이 글을 허락해 주신 이곳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여러분들의 넓은 포용과 관용에 경의를 표하며 역시 허접한 푸념을 마무리 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