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팅만 하다가 조금 갑갑한 느낌이 들어서 몇 자 주절거립니다.
최근 들어 유시민님(이하 존칭생략하겠습니다.)에 대한 애정어린 글들이 많이 올라오는 걸 봅니다.
나름대로의 격려도 있고 부탁도 있고 애교섞인 강요도 있습니다만...
한 가지 여쭙고 싶은 건, 유시민만 결단하면 대한민국의 미래가 장밋빛으로 변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유시민이 서울시장으로 나서거나 대구 수성구 국회의원으로 나서거나, 아니면 어느 님 말씀대로 죽을 결심을 하고 대선후보로 나서면 모든 게 갑자기 희망적으로 바뀔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하시는 분은 없으시겠죠.
세상은 절대 한순간에 바뀌지 않습니다.
유시민이 죽을 결심을 하고, 시민광장 회원들이 모두 죽을 각오를 한다고 해도 한순간에 바뀌지 않습니다.
언제였던가요?
유시민이 노무현 대통령(당시 경선후보)과 극적으로 연대하겠다고 발표했을때, 그때 유시민이 만든 정치아카데미(혹은 시민단체 성격이 강한 초보정당, 또는 시민방송 애청자 모임?)의 이름이 시민당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유시민을 후원하는 공식카페, 유시민을 대표로 여기는 사이트 이름도 시민광장이죠.
유시민이 참여했던 노무현 대통령 때의 국정 운영 모토도 참여정부였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이미 짐작하시겠지만, 시민 스스로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주인이 되어 정치에, 사회에 참여해야한다는 뜻이 아닐까싶습니다.
1만이 10만이 되고, 10만이 100만이 되고, 100만이 1000만이 되고...
그렇게 대다수 국민의 생각이, 가치관이, 철학이 (긍정적으로) 바뀌어야 우리가 원하는 세상,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는 뜻 말입니다.
정치인 한 사람의 결단.
물론 소중합니다.
그 한 사람으로 인해 미래가 앞당겨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계가 있습니다.
마하트마 간디도 죽음을 결심했고 넬슨 만델라도 각오했고 바웬사도 결단을 내렸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그랬었고 (믿지 않으실지 모르겠지만) 김영삼 전 대통령도 한때 그랬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바꾸려 했던 세상은 여전히 부패와 부정, 불합리와 부조리가 만연해있습니다.
결국, 정치인 한 사람이 결단한다고 해서, 그가 앞장서서 희생한다고 해서 그 나라의 미래가 바뀌는 건 아니라는 말입니다.
우리나라처럼 민주공화국이라면 대통령부터 시작해서 국회의원과 장,차관들, 장차관들 휘하의 실무부서 책임자들, 그 책임자들이 관리감독하는 부서의 공무원들, 공무원들이 만나고 대화하는 사람들, 언론인, 시민사회종교단체들. 나아가 국민 대다수에 이르기까지, 모두의 가치관이 역사와 철학, 문화적으로 바람직하고 긍정적이라고 생각되는 방향으로 나아갈 때 비로소 변화가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교육(가정교육+사회교육)이 중요한 것이고, 문화가 중요한 것이고,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동의하는 철학과 가치관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 교육과 문화, 철학과 가치관 등이 하루 아침에 형성되는 건 아니겠죠?
또는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통일시킬 수도 없겠지요?
오랜 세월에 걸쳐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되고 그 이상의 논의와 실험이 이어지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하는 사회적 공감대, 묵시적 합의에 따라 조금씩 형성되겠지요?
(짧게 쓰려했는데 예상외로 글이 길어지네요. 방금 거론한 원칙과 상식, 가치관, 철학, 교육 등 어느 한 분야만 해도 평생 토론거리가 나올 테니 이만 접고)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순간에 집중하되 넓고 길게 보자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중요할 수도 있지만, 마찬가지로 오늘 이 시간이 역사의 종점, 세상 끝날이 아니라는 사실도 명심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유시민은 유시민의 길을 가면 되고, 우리는 그를 지켜보면서 힘을 불어넣어줘야겠다 싶으면 힘을 불어넣어주면 되고, 같이 죽어야되겠다 싶으면 같이 죽으면 되고, 뒤에서 격려해주면서 내 주변을 먼저 신경써야겠다 싶으면 그렇게 하면 됩니다. 물론 방관하거나 비판하거나 냉소하고 싶으면 그렇게 하셔도 되구요.
중요한 건, 나 자신부터 어떻게 사는 게 옳은 것인가, 나와 내 주변 사람들에게, 혹은 내 아이들에게 어떻게 사는 모습을 보여줘야 옳을 것인가 하는, 내 삶의 목표와 방향을 잡고 주인의식을 갖고 살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지금 논쟁이 되고 있는, 유시민이 서울시장에 나와야하나, 대구 수성구에 나와야하나, 아니면 대선후보를 위해 각오와 결단을 다져야하나 하는 부분은 유시민에게 맡겨줬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강요해도 스스로 싫다면 안 할 것이고, 반대로 해야겠다는 의지가 있으면 천만 명이 위협한다 해도 당당히 해나갈 사람이니까요.
그런 유시민의 판단을 믿기에 이곳에 오는 것이고, 또 그런 판단을 믿기에 저는 잠자코 기다리는 쪽을 택하렵니다.
그렇게 기다리면서 지켜보다가, 그가 힘들어 보이면 함께 할 것이고, 혼자서도 잘 해나가고 있다면 뒤에서 격려의 박수를 보낼 생각입니다.
그가 어떤 결정을 내리건, 어떤 판단을 내리건, 유시민 본인보다 더 깊게 고민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이상, 마음가는 대로 막 쓴 글입니다. 흐름만 읽어주십시오.
인문사회학적 배경이나 용어, 무슨 주의 등에는 무척 약한 사람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