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盧서거 전후 경향신문보도盧서거 이전
4월11일 만평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전 한국 언론의 보도 태도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면서 경향신문도 자유롭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 가운데 경향신문이 겸허하게 수용해야 할 부분도 있지만, 상당 부분은 악의적인 왜곡·과장이 적지 않고 심지어 색깔론까지 제기하는 정치공세의 성격을 띤 경우도 있다.
경향신문은 권력 감시와 비판을 언론의 주요 기능으로 삼아 왔으며 ‘박연차 게이트’와 관련한 노 전 대통령과 그 가족 및 측근 부패에 대해서도 역시 엄정한 시선으로 보도해왔다. 특히 권력형 부패라는 한국 사회의 고질병을 근절해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살아 있는 권력이든 죽은 권력이든 구별하지 않고 시시비비를 따지려 했다.
검찰 주장에 대한 반론·해명 보도
5월11일 만평
경향신문은 검찰 발표 받아쓰기 관행의 문제점을 나름대로 보완하기 위해 노 전 대통령 측 해명을 최대한 반영하려 노력했다. 4월3일자 6면 <문재인 일문일답, “현금아닌 계좌로 검은 돈 오가겠나”>, 같은달 13일자 2면 <문재인 전 비서실장 일문일답, “노, 돈 요청한 적 없다”>, 5월6일자 2면 <노측, “정황뿐인 수사 결과” “600만달러와 관련없다” 반박> 등의 기사가 좋은 예이다. 4월13일자 2면 <‘박연차 진술’ 맞긴 맞나, 추측만 난무…검찰은 진위 확인 안해줘>는 검찰이 일방적으로 전해주는 박연차씨 진술의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또 하태훈 고려대 법대 교수는 4월24일자 30면의 칼럼 <피의사실 브리핑, 엄연한 범죄다>를 통해 “지금처럼 검찰이 피의사실을 공표하면서 죽은 권력에 칼을 겨눈다면 정당성도 잃고 신뢰도 잃는다”면서 “알 권리를 빙자해 중계하는 언론도 공범”이라고 비판했다.
정권 차원의 ‘기획수사’ 의혹 제기
5월8일 만평
노 전 대통령과 가족, 측근들에 대한 일망타진식 수사의 강도가 더해가면서 ‘박연차 게이트’ 수사의 배경에 대한 의문을 잇달아 제기했다. 3월28일자 2면 <박연차 수사 여의도 강타, 기획사정설 맞나>에선 “지난해 촛불집회 파문으로 정신이 없었던 청와대가 집권 2년차에 접어들면서 지난 1년간 축적된 비위 정보와 내사 결과를 기초로 ‘정권의 힘’을 과시하면서 국정을 다잡으려 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4월8일자 6면 <부인·친형·후원자·오른팔…‘노 패밀리’ 초토화>를 통해 검찰의 싹쓸이 수사 문제점을 짚으며 ‘전 정권 죽이기’ 수사 가능성을 제시했다. 박래용 사회부장은 5월11일자 30면 칼럼 <박연차 게이트 관전법>에서 ‘재계 620위 신발공장 털기’ ‘5년마다 죽은 권력 물어뜯기’의 부제 아래 “정권이 바뀌고 난 뒤 죽은 권력을 물어뜯는 것이 ‘정도 세정’이고 ‘선진 검찰’인지 판단은 관객의 몫”이라고 지적했다.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엄정수사촉구‘죽은 권력’에 혹독하고 ‘살아 있는 권력’에는 친절한 검찰 수사의 문제점을 지속적으로 짚었다. 3월24일자 3면 <한상률 전 국세청장 돌연 미국행, 누구를 위한 ‘입막음’>에선 “한 전 청장의 출국이 검찰 수사의 칼끝이 현 정부 인사 쪽으로 향하자 모종의 압력이 작용했기 때문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고 보도했다.
4월11일자 2면 <‘박연차→천신일→MB캠프’ 수십억 흘러간 고리 의혹, MB측근 천신일씨 ‘역할’ 촉각>, 같은달 27일자 31면 사설 <살아 있는 권력 수사에도 속도낼 때다>, 5월19일 35면 사설 <‘살아 있는 권력’ 수사 왜 주춤거리나> 등 성역 없는 검찰 수사를 집요하게 주문했다.
검찰 발표 의존과 일부 과도한 보도
5월12일 만평
그러나 노 전 대통령과 가족들의 ‘혐의’와 관련한 검찰의 발표나 주장을 검증없이 그대로 기사화한 경우가 있었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이 4월7일 “집사람이 박연차씨 돈을 받았다”며 대국민 사과를 한 이후 언론사 간의 보도경쟁이 한층 불붙고 검찰 취재원에 비중이 실리면서 검찰의 주장을 여과 없이 보도한 사례가 있었다.
4월10일자 3면 <검찰, 盧부부 “포괄적 수뢰죄 공범” 판단>은 검찰의 일방적인 견해를 무비판적으로 보도한 예이다. 또 같은달 17일자 3면 <꼬이는 100만불, 풀리는 500만불, 盧 연루 물증은 없어, 검찰 “부인·아들 거액수수 몰랐겠나”>에서도 노 전 대통령이 600만달러의 존재를 몰랐을 리 없다는 검찰의 논리를 반영했다. 5월5일자 5면 <“건호씨 미 주택 국정원서 물색” 檢 진술확보…노측 “靑 노트북 등 물증 아닌 정황”>은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었다.
칼럼과 사설 등을 통해 노 전 대통령과 측근들의 혐의를 기정사실화하면서 다소 과도한 비판을 한 경우도 있었다. 유인화 문화1부장의 5월4일자 칼럼 <아내 핑계대는 남편들>은 노 전 대통령이 직접 돈을 받았을 것이라는 의심을 전제로 썼다. 이 밖에 노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도덕성 및 실정을 냉혹하게 비판하면서 표현의 수위가 높은 것도 있었지만, 이는 그만큼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실망이 컸다는 걸 방증한다고 할 수 있다.
성찰하는 언론의 자세 지켜
5월21일 만평
경향신문은 5월29일자 31면 사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나보내며>에서 “고인은 검찰의 언론 플레이만으로 ‘640만달러짜리 서민대통령’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경향신문도 (고인의 죽음에 대한) 언론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을 겸허하게 새기고자 한다”고 밝혔다. 같은날 3면 <김용민의 그림마당> 만평에선 “받아쓰기식 중계만평 책임을 통감하며 반성합니다”라고 사과했다.
5월27일자 21면 <언론들 ‘망신주기’ 보도, “盧서거 책임” 비난여론>을 통해서도 “본질적으로는 검찰의 브리핑을 통한 피의사실 공표와 언론의 받아쓰기식 보도 행태가 교정돼야 한다”며 자기반성의 연장선상에서 언론의 고민을 전달했다.
<이재국·이지선기자 nostalgi@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