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써 놓은 몇 개 글에 회원 분들의 댓글이 적지 않아 작정하고 한 판 줄다리기를 해 보았다. 나름대로 상황파악을 포함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또 쓰고 싶어졌다.
댓글 중에 내 자신의 것도 있는데 거기에 ‘앞으로는 여기에 사실상 글을 쓰지 않을 것이다’ 라고 적어 놓았었다. 그래 놓고는 벌써 조변석개다. 나는 심성을 다스림이 평균에도 못 미치니 이런 변심이 당연하다. 하지만 어지간히 단단한 사람도 대소간의 흔들림을 쉽게 감당하지는 못할 것이다. 뉴스를 보니 원희륭이란 한 나라당 의원이 ‘단호한 행동 번복 없다.’ 라고 말했다가 6시간 만에 그 말 자체를 번복했단다. 그렇게 변하지 않으면 어떻게 정치라고 할 수 있냐고 했다나? 그런 거다. 하물며 정치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그런 거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그들은 나 보다 평상심이 나아서 여기 시민광장 댓글 하나를 달아도 나보다 조변석개를 덜할까? 다른 사람들은 정치를 하면 원희륭보다 덜 변할까? 일상이 이럴 진대 뜻을 가지고 그 무서운 정치를 시작하게 되면 간디만큼 지독하지 않아서는 일순도 못 버틴다는 걸 단지 결벽으로만 생각할까? 여기 시민광장의 좁다란 면적조차 한 발 디디기가 버거운 정치의 장인데 그걸 보면서도 정치가 안 무섭고 안 심각할까? 노무현 대통령을 하늘로 보낸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는 것에 동의하지 못할 것이며 모든 정치인과 노짱의 차이가 바로 그것이었다는 인식에 동의하지 않는 걸까?
만일 내가 이 공간이 아닌 보다 공적인 글이나 개인적으로 좀 더 중요한 글을 썼다면 나의 조변석개는 약간 덜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자신의 진실을 걸고 출판이라도 하려 했다면 어땠을까? 나는 글쓰기도 정치와 같다는 것을 안다. 작정하게 되면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성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불요불굴의 욕망, 아니면
스스로를 위해 아무 것도 원하지 않는 불요불굴의 희생.
나는 정치하는 사람들에게 자꾸 불요불굴의 희생을 요구한다. 하지만 진심은 그게 아니다. 정치는 본래 나서는 거고 치장하는 거고 잘 난 척 하는 거고 수완을 부리는 거다. 그거 재밌고 멋지지 않은가? 연예인의 속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해서 세상이나 사람들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거다. 자기도 행복하고 말이다. 나는 연예인의 삶도 정치인도 삶도 싫으니 대신 그렇게 사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얘기도 듣고 찬성도 하고 반대도 하면서 즐겁게 살고 싶다. 제발 이래도 되는 세상이면 좋겠다. 좀 잘 못하고, 좀 거짓말 하고, 좀 욕심을 부려도 괞찮다. 이만큼 넉넉한 정치면 나는 불만 없을 것이고 나머지 나 혼자 재밌게 사는 데는 스스로 자신이 있다. 나는 우리 사회와 우리나라와 그리고 세상 모든 곳의 정치가 이랬으면 좋겠다. 정치가 비극이 아니고 희극이면 좋겠다.
하지만 나는 비극적이다. 물론 이것은 비관과는 아무 상관없지만 아무리 돌아보아도 지금 우리의 정치현실은 운명적 비극의 현실이다. 지금 여기서는 넉넉한 정치인이 존재할 수 없다. 불요불굴의 희생으로 목숨 걸지 않으면 남도 못 살리고 자기도 살아남지 못한다. 나아가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내가 가진 비극적 감각을 공유하지 못 할 때 자꾸 걱정이 된다. 전술도 중요하고 방법도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 정말 중요한 것은 이 비극적 현실을 명백히 하는 것이며 민주주의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은 지나치다 싶을 만큼 순백으로 탈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게 내가 쓴 글들의 핵심이다.
누구는 말한다. 뭐가 그리 심각하냐고. 사실 나는 심각한 사람이 아니다. 아마 푼수에 더 가까울 것이다. 그런데 도망치고 도망쳐서 아주 푼수처럼 살려니 이 비극의 현실을 꿰뚫지 않고는 방법이 없는 거다.
그래서 나는 했던 말을 다시 한다.
유시민님. 나는 당신에게 다음을 소망합니다. 무엇보다 당신 자신을 위해서, 당신을 살리기 위해서, 그리고 나 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그렇게 합니다.
첫째- 당신과 당신의 가족은 이후 영원히 가난해야 한다. 물질적으로 그리고 구체적으로 가난해야 한다.
둘째-그 가난이 한 개인으로서, 한 가족으로서 진정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증명해야 한다. 그 삶과 역사로서, 그 물질성으로서, 노무현 대통령이 증명했던 그대로, 가난이 행복일 수 있다는 사실을 문자 그대로 입증해야 한다. 그리하여 모든 가난한 사람이 다시는 모욕과 공포와 자괴심에 빠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물리학처럼 분명하게 증명해야 한다.
셋째- 그리고 이렇게 말해야 한다. ‘국민 여러분, 저는 가난이 좋습니다. 하지만 나라와 국민이 가난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저는 부자가 될 줄 모릅니다. 그러니 국민 여러분이 꼭 부자가 되어 주십시오. 그렇게만 되면 나의 인생은 춤을 추고 즐겁겠습니다.’
넷째- 단 한 번이라도, 단 한 점이라도 권력에 대한 욕망을 가져서는 안 된다. 일체의 명분과 주변의 부축임과 합리화에 섞여 마치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처럼 스며드는 그 욕망, 그 욕망에 찰나라도 속아서는 안 된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 조차 오장이 부끄럽고 두려워야 한다.
다섯째-모든 역사가 증명했듯 함정에 빠진 시대와 사회는 자신의 탈출을 위해 숭고한 피와 희생을 요구했다. 살기위해 몸부림쳤던 현대사의 함정을 넘고자 우리는 전태일의 피를, 광주의 피를, 그리고 마침내 노무현의 피를 수혈 받아야 했다. 뼈가 저리도록 고통스럽고 서러우면서도 우리는 그 피를 어머니의 젖처럼 삼켜야 했던 것이며 그 아픈 수혈을 지나고서야 우리는 겨우 사람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알고 있다. 그 피의 수혈과 희생, 가장 죄 없는 자가, 가장 죄 없는 자만이 치룰 수 있는 피가 아직도 요청되고 있다는 것을. 그렇다면 과연 그 누가 있어 다시 한 번 전태일과 광주와 노무현의 죄 없음이 될 수 있을 것이며 과연 그 누가 있어 요구되는 희생을 불길처럼 단호하게 온 몸으로 내 던질 수 있을 것인가? 그렇게 준비된 사람이 우리에게 있는가? 그렇다. 당신은 그렇게 준비된 사람이 적어도 하나는 있다고 말해야한다. 반드시 그렇게 말해야 한다.
2.
나는 이곳이 주로 유시민씨를 지지하는 곳이라 나처럼 유시민씨를 사랑하지도 믿지도 않는 사람은 누가 될 거라고 걱정했다. 그랬더니 어떤 분들이 그러면 안 된다고 한다. 시민광장은 보다 폭이 넓은 곳이라는 거다. 그래서 동의했다. 또 어떤 분은 나같이 냉정하고 감시하는 입장이 제기하는 연대의 취지를 받아주었다. 그래서 확실히 연대하겠다고 했다. 이제 이 연대의 원칙을 검토해보기로 하자.
첫째, 지난 과거의 차이를 부정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 할 수 있는 한 긍정적으로 할 수 있는 한 북돋는 방식으로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
둘째, 첫째의 원칙은 무엇으로 담보하는 가? 말은 연대이면서 속으로는 이간질인지 어떻게 아는가? 우선은 행실과 내용 그 자체이다. 아무리 사기를 쳐도 시간이 지나면 보는 이들은 느끼는 것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다음으로는 명백한 행동이다. 무언가 하면 만일 용납될 수 없는 차이가 존재하면 결코 비난하지 않고 단지 조용히 사라진다는 거다. 쉽게 말해 떠날 때 잡소리 안하는 거다. 별 거 아니지만 나에겐 중요한 결심이다.
셋째, 이후 연대의 의미와 근거, 이것이 요구되는 현 상황에 대한 역사적 현재적 분석, 연대개념의 철학적, 사회운동적 이론과 전술을 대중적이고 구체적으로 고민하는 계기로 삼을 것이며 이것은 다른 이들에게 유시민과의 연대를 설득하는 나 개인의 주요한 교두보가 될 것이다. 또 가능하다면 다른 분들에게도 참고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우리 연대의 기본이 민주주의에 있다고 믿는다. 그것은 반드시 우리 삶과 투쟁의 방식과 연결되어 있다고도 믿는다.
연대 가능한 여러분, 여러분과의 연대를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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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여기에 쓴 첫 번째 글 35791번이 검색되지 않습니다. 회원 아이디로 검색을 하는 데 제 컴에서는 그 글만 빠져 있습니다. 제 컴만 그런가요? 왜 그러는지 아시는 분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컴맹수준이라 잘 모릅니다. 그 글을 찾는 분도 있고 필자로서 읽어주기를 바라는 핵심적인 글이라 검색에도 잘 떴으면 하는 바람 때문입니다.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