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YS에게 YS를 말한다.
2009년 6월 11일 여의도 63빌딩에서는 역사적 6.15선언 9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올해 기념식은 노무현 대통령의 억울한 서거라는 엄청난 사건이 맞물려 있어 어느 때보다 사회적 관심이 컸다. 특히, 이명박의 옹졸함 때문에 노무현 대통령 국민장 추도사를 하지 못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연설에 온 나라가 주의를 기울였다. 아니나 다를까. 김 전 대통령의 연설은 이명박이 추도사를 못하게 막은 이유를 선명하게 보여줬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다” 라는 일갈은 양심의 소리에 조금이나마 귀 기울이며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는 일성이었다. 반면, 6.15와 10.4의 선언문의 검정색 잉크가 오로지 붉은 색으로 보이는 색맹들에게는 너나할 것 없이 두 발 뻗고 잠자기 어려운 상태를 맞이하는 순간이었다. 이 연설은 독한 화학성분으로 구석구석 은거하는 바퀴벌레를 밖으로 나오게 하는 살충제와도 같았다. 다음 날 인터넷과 종이신문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여러 종류 곤충들의 울음소리는 우리 시대 이면의 현주소를 그대로 드러내 주었다. 그 중 압권은 김영삼의 울음소리이다. 그래도 한 시대를 풍미한 민주화 운동의 보스가 이 지경가지 올 수가 있나? 하는 장탄식이 나오게 하는 기상천외한 비상식의 극치였다. “그가 입을 닫지 않으면 국민이 그 입을 닫게 할 것이다”, "2차례에 걸친 핵실험과 미사일을 난사한 국가위기 상황에서 김정일을 두둔하는 것은 김대중 씨가 공산주의자가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 "김대중 씨는 자신이 저지른 엄청난 반국가 범죄에 대해 준엄한 심판을 받을 것". 견고하게 굳어진 그의 지능과 언어능력을 가름하게 하는 단순하고 저돌적인 언어 구사이다.
도대체 김영삼의 이러한 치명적이고, 칼날 같은 ‘애국적 발언’은 어디서 나오는 것 일까? 한 인간에 대한 개인적 저주가 이제 민족사의 운명에 까지 영향을 미치는 ‘장엄한 비극’이라고 할 수 있다. 김영삼의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원한과 복수심은 어디서 기인하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71년 대통령 후보 경선과정에서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당시 김영삼은 촉망받는 야당의 젊은 리더였다. 멸치를 타고 최연소 국회의원을 하고, 유진산의 비호아래 야당의 중심 소장그룹을 이끄는 선두주자였다. 당시 야당 돌풍의 시작인 ‘40대 기수론’을 처음으로 들고 나온 것도 김영삼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결선투표에서 이철승을 설득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승리였다. 그때부터 김영삼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뒤를 따라가는 신세가 되고 만다. 박정희는 그때부터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만 가공할 ‘사랑의 매’를 주어 그가 전 국민적 나아가 세계적인 지도자로 성장하는 발판을 주었다.
박정희의 이러한 편애와 극단적 김대중 콤플렉스는 김영삼에게는 몸은 편하고 마음은 불편한 야당 지도자가 되게 한다. 이러한 과정을 겪으며, 부잣집 아들 김영삼은 남한테 말도 못하는 열등감을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결정적으로 87년 대통령 선거는 김영삼이 김대중 전 대통령과 같은 하늘을 지고 살 수 없는 관계가 되는 분수령이다. 87년 월 항쟁의 결과로 얻은 직선제 헌법으로 민주정부 수립의 절제절명의 기회를 맞이하여 야권은 단일후보 만들기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결국 실패로 돌아가고 선거는 노태우가 승리하는 비극적인 결과를 낳게 된다. 이러한 결과는 지금까지도 민주화 역사의 통한의 한으로 남게 된다. 결과적으로 보건데 단일화의 실패는 저자거리의 통설처럼 양김 씨의 권력욕 때문이 아니라 김영삼의 과대망상과 김대중 전 대통령을 한번이라도 이겨보려는 부잣집 아들의 콤플렉스에 있음에 명명백백하다. 오늘을 딛고 돌아보건 데 김영삼으로 단일화 되어 김영삼이 당시 대통령이 되었다면? 하고 상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 IMF가 10년 먼저 찾아왔을 것이고, 독재정권과의 야합도 분명 4년 앞당겨 졌을 것이다. 결국 김영삼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렇게 목청 높여 반대했던 3당 야합을 통해 대통령을 거머쥐게 된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자기 역사상 처음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을 이겨 본 나머지 긴장의 끈을 놓고 안 그래도 모자란 지능을 더 모자란 아들에게 의지 하다가 나라를 결단내고야 만다. IMF라는 역사의 참극이 벌어진 것이다. 동시에 김영삼은 본의와 상관없이 자기 인생을 통틀어 가장 위대한 업적의 발판을 만들어 버린다. 그것은 바로 역사상 최초의 여야 간 평화적 정권교체가 실현된 것이다. 이후 김대중 전 대통령은 김영삼이 저지른 온갖 난장판을 지혜롭게 수습하고, 경제적 안정 뿐 아니라, 김영삼이 똥칠한 민족 평화와 화해의 길을 6.15를 통해 열게 된다. 이러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최후의 승리 속에서 김영삼은 결국 과대망상과 자신감 상실을 넘어 인간성의 파탄이라는 극단의 상태에 이르게 된다. 파탄의 결과 앞에서 인용한 엄청난 ‘애국적 발언’이 용솟음치게 되고, 고혈압 발생연령을 중년에서 청소년층으로 낮추는 국민건강파괴 행위를 자행하게 된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한국전쟁이후 민족 최대의 국난이라고 일컬어지는 경제신탁통치가 시작된 1997년 겨울 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대통령이었고, 국가의 모든 결정권을 한 손에 쥐고 있던 ‘최고 통치권자’였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경제를 잘 모르기 때문인지 국가가 부도난 ‘그해’ 겨울이후 국민을 향해 제대로 된 사과 한마디 없이 강경식, 김윤호, 이경식 등 실무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기 급급했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그 책임을 위기극복의 지도자인 김대중 전 대통령에 까지 전가하는 분열증적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그러한 그가 다시 입을 열고 있다. 무소불위의 ‘독재MB비아그라’ 를 드시고 부활하고 있다. 그의 부활능력은 자신이 믿는 예수의 부활 권능을 초월한다. 다른 이들까지 부활시키는 권능까지 가졌다는 말이다. 자신의 경제적 무지 때문에 ‘박정희’, ‘전두환’, '이명박' 을 경제를 살리고 국리민복에 혁혁한 공을 세운 혁신적 지도자라고 칭송받게끔 하는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을 저질렀다. 김영삼은 과거 국민의 정부시절 “김대중 씨는 독재자이고, 김대중 정권은 독재정권”이라 말했다. 참으로 몰상식한 주장이다. 당시에는 오히려 김영삼의 망국적 주장보다 “위기극복을 위해 김대중 대통령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더러운 전두환의 주장이 더욱 설득력을 가지게 했다.
끝으로 김영삼 그는 이제 이웃동네 복덕방할아버지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산다. 그리고 통일도 할 수 있다. 김영삼에게 마지막으로 부탁할 것은 섣부른 상식으로 통일문제만은 거론하지 말아 달라는 부탁이다. 그것이 민족에게 할 수 있는 마지막 ‘봉사’일 것이다.
김영삼은 이번 발언으로 인해 자기 개인의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패배가 아니라, 더 나아가 자기가 만들고 일궈온 역사에서 완전무결하게 패배했음을 준엄하게 주장하는 바이다. 더 이상 자신의 몰상식과 무뇌적 인생관을 국민들 앞에 똥보다 더 더러운 단어로 구사하지 말라.
금수강산에 사는 국민들에게도 부탁합니다. 특히 부산, 경남 시민들에게 간곡히 부탁합니다. 또 다시 이승만,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이명박처럼 실패한 대통령의 역사를 만들어 낼 것인가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다시 한 번 대한민국의 아니 부산, 경남의 아버지/어머니께 부탁드립니다.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주십시오! 김영삼은 상도동 복덕방으로 가야합니다. 부마항쟁의 민주성지인 부산, 경남 시민들의 민주의식을 믿습니다. 김영삼이 복덕방 차릴 돈 없으면 국민성금을 모아서 깨끗한 복덕방 하나를 상도동 목 좋은 곳에 만들어 줍시다. 참고로 공인중개사 시험이 어려운 관계로 김영삼은 합격이 불가하니 전직대통령 예우차원에서 무시험 합격의 예우를 해 주는 게 도리라 여겨집니다. 또 다시 강권합니다. 김영삼은 분열적 ‘애국발언’을 즉각 중단하고, 제발 복덕방을 개업해서 국민에게 희망을 주어야 할 것이다.